성예진의 춤 '기원(祈願)'…불색무(佛色舞)의 미학적 승급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입력2024-03-04 09:49
이미지 확대보기성예진의 '초혼무'
선업 공덕 깨달음의 희열을 대중들과 나누고자 한다/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연산홍 붉게 피던 시절/ 아버지는 늘 미소로 외로운 나를 달래주었다/ 주변엔 진달래 꽃처럼 든든한/ 엄정하고 따뜻한 가르침의 동희 스님/ 영남 전통춤의 경량 선생/ 참으로 아름답던 시절이었다/ 바람이 실어 간 이승의 추억/ 딸은 춤으로 회향의 마음을 전한다/ 나비춤으로 죄를 참회하오니/ 지혜의 광휘로 무명의 어둠을 사르시고/ 메마른 땅에 감로의 비를 적셔주시옵소서/ 구도의 서원을 법고로 대신하오니/ 들어주소서!
3월 16일(토) 저녁 다섯 시,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영남문화예술연구원 주최·주관, 동희범음회·박경랑류영남교방청춤보존회·초이스코퍼레이션 후원, 성예진(영남문화예술연구원 원장)의 춤 『기원』이 공연된다. 백재화(동희범음회 전수자, 박경량류 영남교방청춤·연구·보존계승학회 회장)의 사회로 선보인 춤은 1장 「붉은 영산홍」(초혼무(招魂舞, 넋전풀이춤), 정선아리랑과 강원도아리랑), 2장 「삼보의 바다」(운심게작법(運心偈作法)과 소리), 3장 지혜의 광휘(사다라니四陀羅尼) 바라와 법고(法鼓))의 3장 6품으로 구성되었다.
이미지 확대보기붉은 영산홍
이미지 확대보기삼보의 바다, 관세음보살
이미지 확대보기삼보의 바다
이미지 확대보기삼보의 바다
붉은 영산홍: 불자 성예진이 아버지를 떠올리는 꽃이다. 붉게 번지는 무리 앞에서 불효의 춤을 봉헌한다. 「초혼무」(넋전풀이춤): 박경랑류 살풀이춤과 지전춤이 재구성된다. 그리움의 긴 살풀이 수건은 부녀를 이음 한다. 추억을 매만지며 미운 마음을 털어낸다. 춤의 끝에 딸은 다시 태어난 듯 홀로서기를 다짐한다. 지전춤은 감사와 축원을 담아 춤추며 이별을 고한다. 영가를 초혼하여 넋을 위로하고 길을 닦아드린다. ‘정선아리랑과 강원도아리랑’이 허탈한 마음을 달랜다. 예술가들은 늘 후회를 달고 산다. ‘있을 때 잘해’가 읽힌다.
삼보의 바다: 불교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세 가지 보물로 여기는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를 삼보라 한다. 불보는 진리를 깨친 모든 부처, 법보는 바른 부처의 교법, 승보는 화합하고 청정한 부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 삼보에 돌아가 의지하는 것이 삼귀의이다. 춤은 운심게(運心偈)의 법문을 형상화한다. 「운심게작법」(運心偈作法): 운심이란 보살계를 받을 때 자기의 죄를 참회함을 뜻하며, 춤의 전체적인 내용은 부처님에 대한 보은 사상을 내포한 ‘나비춤’이다.
온전히 참회로 선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지극정성으로 올리는 보시의 춤은 보살행의 극치를 보여 준다. ‘운심게’는 원차향공변법계(願此香供遍法界), 보공무진삼보해(普供無盡三寶海), 자비수공증선근(慈悲受供增善根), 영법주세보불은(令法住世報佛恩)(원컨대 이 향을 법계에 두루 미치게 하고, 끝없는 삼보의 바다에 널리 공양하오니, 자비로 공양받으시고 선근을 더하시어, 부처님 말씀 세상에 두루 머물게 하시고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게 해주십시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 소리가 따른다.
이미지 확대보기지혜의광휘
이미지 확대보기지혜의 광휘, 감로의 비가 내리네
이미지 확대보기지혜의 광휘, 문수보살
이미지 확대보기지혜의 광휘, 문수보살의 사자
지혜의 광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원하고,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원하듯 오묘한 깨달음을 얻고자 부처님 지혜의 법을 청하는 장(場)이다. 「사다라니(四陀羅尼) 바라」: 나무시방불(南無十方佛)·나무시방법(南無十方法)·나무시방승(南無十方僧)이라는 사설을 홋소리로 부르고 이어지는 진언(변식진언·감로수진언·일자수륜관진언·유해진언)에 춤꾼 성예진은 바라를 들어 사다라니를 시작한다. 사다라니는 현실의 유한한 공양물을 '진언'을 통해 불·보살과 배고픈 중생에게 충분히 베풀어질 수 있도록 질과 양을 변화시킨다.
천도와 공양 목적의 재(齋)에서 빠질 수 없는 사다라니 바라에 수반되는 곡의 첫 번째 <무량위덕자재광명승묘력변식진언>(변식진언(變食眞言)은 무량한 덕, 자유자재한 광명, 묘한 힘으로 음식을 변하게 하는 진언이다. 두 번째 <시감로수진언>은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감로수를 베푸는 진언이다. 세번 째 <일자수륜관진언>은 감로제호(甘露醍醐)가 쏟아지는 것을 관하는 진언이며, 네 번째 <유해진언>은 <일자수륜관진언>이 원동력이 되어 감로제호가 모자람 없이 베풀어질 수 있도록 관하는 진언이다.
성예진은 익숙한 수행의 「법고」로 수행의 환희와 구도의 서원을 표현한다. 「법고」에 애틋한 사연이 스며든다. 두드림 속에 숱한 연꽃이 피어나고, 자신을 경계하는 다짐이 가슴에 들어와 앉는다. 시주와 동참자들에게 신심과 희열을 유도하고 다 함께 정진할 것을 유도했다. ‘법고’의 기본은 수행의 자세를 헤아린다. 타고의 반복과 속도의 변화로써 세련된 서정감과 양상을 보여 주었다. 오랜 기다림으로 천상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모습은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속창(續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운은 가슴속에 남았다.
이미지 확대보기성예진의 '법고'
이미지 확대보기성예진의 '법고'
시간의 무거운 눈꺼풀이 내려오기 전, 찬란한 것들이 갑작스러운 광영으로 다시 봄을 비집고 들어선다. 비통한 서사를 웃음과 춤으로 뿌리면서 맞이한 선홍의 기운은 기원으로 이어진다. 성예진은 너무나 인간적인 순수 이미지의 춤과 깊은 불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으로 춤의 진수를 공재(供齋)했다. 숱한 즐거움으로 만든 경건, 숱한 가벼움으로 만든 묵직함, 숱한 미안함과 아쉬움으로 만든 간절함이 『기원』이 되었다. 기도는 노래가 되고, 노래는 울림이 된다. 성예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성예진은 동희범음회 전수자,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 연구·보존·계승학회 부회장, 영남문화예술연구원 원장,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 일무 이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 이수자로서 연구와 춤 작업 모두를 활발하게 진행 시키고 있다. 그녀는 2017 제20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 종합대상(2017, 국회의장상), 불교무용대전 대상(2021)을 수상한 한국무용가이다. 성예진이 꾸린 불민속(佛民俗)의 향연 『기원』은 연희자의 순수한 마음을 읽게 해주었다. 길게 깊게 불심을 담은 춤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미지 확대보기성예진의 '운심게작법'
이미지 확대보기성예진(한국무용가)
불교의식무도 시대 발전과 주변 예술 환경에 따라 정서적 세련미를 더해 간다. 『기원』의 기획자 이유림은 미디어아트를 접목시켜 성예진의 춤에 진정성을 도출시키는 스토리텔링을 창출한다. 가시적 미디어아트는 모션크루 대표 김성준이 맡았다. 높이, 너비에 따른 크기, 각도와 위치에 따른 입체감, 광원의 소스를 고려한 미디어의 빛으로 만들어진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은 불전에 올리는 새로운 공양이었다. 시간과 공력을 들인 『기원』을 통해 불교의식무의 예술적 상부구조에 접근하는 미학적 승급에 이르렀다.
성예진의 춤은 사상과 춤 다스림으로 다듬어졌다. 춤에 대한 사고의 깊이 축적은 어산어장 동희 스님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영산재 전수교육조교자이자 비구니 최초 어산어장승은 반세기 넘게 지켜온 범패 수행으로 송암 스님의 기능을 정통으로 계승했다. 범패, 작법, 화청 등 독보적 경지를 개척하고 전통 불교예술을 두루 수련한 분이다. 예기(藝技) 수행은 운파 박경랑 선생에게서 이루어졌다.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보존회를 이끌며 영남 전통춤의 멋과 흥을 두루 펼치며 후학들을 양성하는 열정 한국무용가이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