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을 보내며
케네스강 (글무늬 문학사랑회)
이브 몽땅 (Yves Montand)의 샹송, 심금을 울리는 ‘고엽’ 에서 9월이 가고 10월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릴 때는 9월이 되면 즐거웠다. 한가위 때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가 해주시는 새 옷과 아버지가 사다주신 새 신발을 신고 친구들과 제기치기를 하며 놀았다. 맛있는 햅쌀 떡과 부침개도 마음껏 먹었다. 9월은 풍성하고 아름다운 계절이다. 패티 김의 노래 ‘9월이 오는 소리’가 생각난다. 느린 템포에 중량감 있는 가수의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우리들의 마음에 낙엽은 지고~~’
9월에 있었던 사건들을 회상해본다. 나는 청년시절( 1959년 9월)에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한반도 남쪽 진해 만에서 한가위를 맞았다. 그때 태풍 사라호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사라 (Sarah)는 영어권에서 아가씨 이름이다. ‘태풍아 좀 부드럽게 불어줘’ 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다. 최대 시속 300킬로미터의 풍속으로 영남과 호남 곡창지대를 모두 휩쓸었다. 당시 사망 실종된 사람은 대략 9백명 . 부상자는 3천여명, 이재민은 37만명, 또 재산 피해액은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4천억원 정도나 되었다. 그 후의 청년시절 대부분은 군복무 중이거나 학업연마 또는 직장생활 중에 수없이 많은 해외여행을 하면서 한가위와 맞물리지는 않았다.
미국유학시절1974년부터3년 반 동안 나는 북아메리카 대륙 동북부, 5대 호 근방에 있는 미드랜드 라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9월을 맞고 보냈다. 5대호는 다섯 개의 거대한 담수 호수로서, 슈페리어 호, 미시간 호, 휴런 호, 이리 호 그리고 온타리오 호를 일컫는다. 그 넓이는 25만 평방 킬로미터로서 남북한을 합친 것 보다 더 넓다. 이곳은 가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겨울엔 폭설이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분다. 미국인들은 추석보다는 11월 추수 감사절을 지키며 가족들이 모여 칠면조고기를 즐겨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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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 돌아온 후 1978년 9월에는 호텔신라를 대표하여 인도의 뉴델리에서
일행과 함께 보냈다. PATA 총회라 부르는 국제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무척 더웠다. 뉴델리는 올드델리와 연결되어 있다. 인구는 천오백만에 가까운 거대 도시였다. 우리 숙소는 최고급 아쇼카 호텔이었다, 거리에는 산더미처럼 큰 코끼리들이 어슬렁거렸고 차들은 그들에게 길을 양보하는 모습이 재미 있었다.
아마 추석날이지 싶다. 타지마할에서 택시로 호텔귀환 중, 교통체증에 걸려 멈춰 섰다. 이때 얼굴이 새까만 어린 소년들이 제각기 코브라 뱀을 어깨에 메고 택시 창문으로 뱀을 들이밀었다. 우리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피하니 뱀 구경한 값을 달란다.
1987년 9월 한가위는 고국에서 보낸 마지막 한가위였다. 어머니 생전에 고향집에서 형제들과 함께 보내고 나와 처자식들만 그 해 10월에 호주이민을 왔다. 그 때 어머니께 불효했던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1991년 9월은 호주 관광팀 일행과 함께 평양 대동강변에서 보냈다.
지금은 작고하신 교민원로 M 선생의 인솔로 우리 호주 팀 일행 12명은 당시 항공료가 제일 싼 일본동경 경유 항로를 따라 평양 순안 공항으로 들어갔다. M 선생은 인품이 원만하고 학식이 풍부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공항에 영접 나온 여성 안내원이 친절하게 웃으며 “북조선 조국에 오신 것을 열렬히 환영 합네다.” 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추석날 아침에 모란봉에 올라갔다. M 선생은 북한 아가씨들을 만나면 의례 “피양 테네들은 다 고와.” 를 연발해서 일행을 웃겼다. 남쪽말로 “평양 처녀들은 다 예뻐” 라는 뜻이다. 마침 미국에서 온 듯한 중년교포여성 대여섯 분이 이곳에서 살던 처녀시절을 회상하는 듯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을 내려다보며 ‘모란봉아 을밀 대야 네 모양이 그립 구나~~’ 를 낮은 목소리로 합창을 하여 여갣의 마음이 애닯게 울렸다. 모두가 지나간 추억의 한 페이지다.
살아오며 인생 희로애락과 같은, 많은 사연이 서린 9월을 보냈다. 지금 나는 내 인생 9월을 보내고 10월에 들어서있다. 마치 가을걷이로 한창인 들판에서 풍요로움을 느끼는 심정이다. 앞으로 어떤 사연을 담은 9월을 맞고 또 보낼 것인가?
카페에서 커피 한잔에 곁드린 감미로운 이브 몽땅 (Yves Montand)의 ‘고엽’을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