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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올라온 짐승
성경본문 : 계시록 13: 11-18
○ 두 번째 짐승
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계13:1, 단8:3
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왕상18:38, 왕상1:10, 눅9:54
14.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계12:9
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단3:3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계14:11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계17:9, 계21:17
지난 시간에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이 두 번째 짐승은 양의 모습을 했으나 용처럼 말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첫째 짐승보다 둘째 짐승이 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둘째 짐승은 가면을 쓰고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울수록 마귀가 사용하는 중요한 하수인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오늘 말씀드릴 땅에서 올라올 두 번째 짐승입니다. 첫 번째 짐승은 적그리스도 혹은 적그리스도 적인 세력의 상징으로 이해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두 번째 짐승은 그 성격상 거짓 선지자를 나타냅니다. 두 짐승은 모두 용으로 상징된 마귀의 조종을 받고 활동합니다.
마귀,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이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마귀의 삼위일체입니다. 마귀의 일평생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가 타락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모방하고 싶어하는 마귀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함께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자기와 함께 일할 두 부하를 거느리고 마취 삼위일체적인 사역을 하는 것처럼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계 16:13“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계 16: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세 더러운 영이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이 마귀의 삼위일체가 세계 열국들의 배후에서 역사 하여 최후의 전쟁으로 몰아가도록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귀의 삼위일체 중에서 용으로 상징된 마귀는 성부 하나님을 대적하고, 짐승인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대적합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에 나타나는 두 번째 짐승인 거짓 선지자는 성령님을 대적합니다. 이렇게 마귀는 하나님처럼 삼위일체의 모습을 가지고 삼위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합니다.
그러면 땅에서 올라온 두 번째 짐승의 특성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두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11절)
두 뿔은 이 짐승이 정치적 권세와 종교적 권세를 함께 소유할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뿔은 권세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이 두 가지 권세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 있다면 로마의 교황청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2) 용처럼 말합니다(8-9, 단 7:24-25).
이 새끼 양이 용처럼 말한다고 했으니 마귀 적인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짐승은 성경을 이용하면서도 성경을 파괴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때로 성경을 이용하여 시험하기도 하였습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모습은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린양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방한 것입니다. 어린양의 모습은 가지고 있으나 그가 말하는 것은 어린양의 말이 아니라 용의 말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비슷하기 때문에 미혹을 받는 것이다.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용의 말은 무엇입니까?
용은 곧 사단입니다.
사단이 최초로 인간에게 했던 말은 무엇입니까?
'네가 하나님 같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진다는 것, 더 높은 존재가 된다는 것, 위대해진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사단의 말입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이런 말이었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것,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
나에게 경배하면 세상 영광을 주겠다는 것, 이것이 사단의 말입니다.
예수님이 돌을 떡으로 만들고, 성전에서 뛰어 내려서 전혀 상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신비한 능력을 가진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세상으로 하여금 신비한 능력과 힘을 경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곧 거짓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모습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로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단의 특색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가 있습니다.
①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②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③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죄한 예수, 신인 양성의 일 인격, 대속의 주님, 부활하신 예수, 그의 재림을 믿는다.
④인간에 대해서는 전적 타락된 존재로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대속 받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⑤인간의 부활, 심판, 내세를 믿는다.
이러한 진리를 파괴하고, 변형시키는 것이 용처럼 말하는 것이다.
3) 첫 번째 짐승의 종노릇을 합니다(11-12절).
계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계 13: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첫 번째 짐승이란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 첫 번째 짐승의 권세를 행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용으로 상징된 마귀로부터 받은 권세를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13:4).
바다에서 나온 짐승처럼 땅에서 나온 짐승도 역시 똑같은 종류의 권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땅에서 나온 두 번째 짐승인 거짓 선지자는 사람들에게 첫 번째 짐승을 경배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12절).
적그리스도는 자기가 경배를 받으면서 사람들을 서서히 마귀에게 경배하도록 인도해 나갑니다(13:4절).
궁극적으로 사단에게 경배하는 것이 마귀의 목표입니다. 문화가 발달하면서 점점 사단 숭배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이 세상에는 점점 사단 숭배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요즘은 사단교회가 생겨서 실제로 경배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4) 이 짐승은 큰 이적을 행합니다(14절).
계 13: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수단으로서 기적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기적 자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증거일 수는 없습니다. 표적 중심의 신앙 생활은 항상 위험합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언제든지 이적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들도 많은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병 고침, 귀신 쫓음, 이상한 능력 등을 사단이 사단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적을 행한다면 문제가 안 되는데 어린양의 모습으로 가장하여 이적을 행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후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계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이것이 거짓 선지자들의 종말입니다.
5) 이 짐승은 매우 인본주의적입니다(17-18절).
계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계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666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666의 정체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666은 도미티안 황제이다'
또는 '네로 황제이다'.
어떤 사람은 상품의 바코드이다 라고 해석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666은 사람의 수라고 말씀한다.
6이라는 수는 하나님의 수인 7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의 수입니다.
18절에 보면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의 수를 육백육십육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사람의 수라고 말합니다.
육이란 무슨 뜻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7일 동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육일 동안입니다. 칠일 째는 단지 안식을 하신 것이지 무엇을 만드신 것은 없습니다.
칠일 째 안식을 하셨다는 것은 피곤해서 쉬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의미하는 안식입니다.
즉 하나님이 육일 동안 만드신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기쁨까지 포함되는 것이 바로 천지창조입니다. 따라서 칠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칠일에서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을 빼버리면 이것은 결국 하나님이 하신 것을 인간이 가로채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기쁨과 안식과 영광을 인간이 가로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짐승의 수, 즉 육백육십육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666이라는 숫자는 인간이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고 추앙을 받으려는 모든 세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666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666은 그냥 666입니다.
서울에 가면 옛날 666번이라는 버스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계시록에 나오는 666이 아닐까하여 꺼림직 하게 생각하여 번호를 바꾸었습니다. 상품의 바코드나 그 어떤 것이 666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모든 것이 666입니다. 하나님과 어떻게든 비슷해 보려고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하는 사단의 본질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짐승이란 하나님의 힘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어가면서 인간의 위대한 힘을 드러내고 자랑하고자 하는 존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권력과 권세를 경배하고 섬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위대함과 성공은 권력과 권세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그것은 권력과 권세의 옷을 입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와 어린양의 표를 받은 자의 수는 이미 확정되어 있습니다. 육백육십육과 십사만사천입니다. 이것은 물론 실제의 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수입니다. 수가 확정되어 있다는 것은, 어린양의 표를 받은 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표를 받은 자, 즉 하나님의 종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를 설득해서 어린양의 표를 받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만을 증거함으로서 어린양의 표를 받은 하나님의 종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오실 마흔 두달 동안 증인으로서 해야할 역할인 것입니다.
교회란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권력에 굴복하고 세상 권력을 도와주기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란 세상이 권력과 권세 앞에 굴복하고 아부하고 살아갈 때 오직 어린양만 경배함으로서 세상의 실체를 증거하는 역할을 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가 만약 세상에서 살고자 한다면 결국 세상과 함께 권력과 권세를 섬기고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17절에서 짐승의 표를 받은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한다는 것은 세상의 권력을 경배하지 않는 자는 억압을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짐승의 다스림을 받는 세상처럼 세상 권력과 권세에 아부하고 경배하고 섬기며 사는 것이 더 편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오직 하나님만 경배할 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하나님만 경배할 자로 인침받은 자가 신자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힘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육백육십육입니다.
당장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자랑스럽게 만들지는 몰라도 결국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세상 권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내가 너를 키워주마' '내가 너를 성공하게 해주마'라는 말로 미혹하지만,
신자는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겠습니다'라는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그래서 권력과 권세가 부럽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을 믿는 자가 성공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