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최시형 때 발전한 동학 조직은 위에서부터 ‘법헌 → 포 → 접 → 교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다만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인원과 조직 수를 갖춘 체계는 아니었습니다. 조직의 개수와 소속 인원도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달랐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의 「포접제」를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1. 법헌·포·접의 위계와 기능
위계조직·명칭한자의 음과 속뜻책임자와 기능
| 최상위 | 법헌(法軒) | 법 법(法), 집 헌(軒). 동학의 가르침을 이끄는 중심 처소 | 처음에는 최시형이 머무는 곳을 뜻했습니다. 나중에는 최시형 자신을 가리켰습니다. 교단 전체를 이끄는 중심입니다. |
| 중간 | 포(包) | 쌀 포(包). 여러 접을 감싸서 묶는 큰 조직 | 대접주·도접주 등이 여러 접을 통솔했습니다. 교인 관리와 교단 일을 맡고, 농민전쟁 때에는 병력 집결과 전투 조직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
| 기초 | 접(接) | 이을 접(接).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을 이어 주는 조직 | 접주가 교인들을 지도했습니다. 동학을 전하고, 가르침을 익히게 하며, 교인 사이의 연락을 맡았습니다. |
| 구성원 | 교도(敎徒) | 가르칠 교(敎), 무리 도(徒).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 | 동학을 믿고 실천하며 접에 연결된 사람들이었습니다. |
법헌의 뜻은 우리역사넷, 포와 접의 역할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포」·「접주제」에 근거합니다. 법헌은 포나 접처럼 여러 곳에 설치하는 보통의 조직 단위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2. 각 조직의 숫자와 규모
‘숫자’는 전국에 몇 개 있었는가와 한 조직에 몇 명이 속했는가를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대상·시기확인되는 숫자해석할 때 주의할 점
| 법헌 | 최시형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최고 지도 중심 | 고정된 건물 한 채라는 뜻은 아닙니다. 최시형의 처소와 그 자신을 가리켰습니다. |
| 1863년 초기 접주 | 최제우가 16명 임명 | 동학이 성장한 뒤의 전국 접 수가 16개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
| 초기 접의 인원 | 접주가 40~50명 정도 지도 | 초기 규모에 관한 설명입니다. |
| 1880년대 접의 규모 | 대체로 30~70호 | ‘호’는 사람 수가 아니라 가구 수입니다. 100호 이상이 되면 접을 둘로 나누었다고 설명됩니다. |
| 1890년대 한 포의 규모 | 작은 포도 10여 접, 큰 포는 20여 접 | 전국 공통 정원은 아닙니다. 포가 거느리는 접 수에는 일정한 제한이 없었습니다. |
| 김개남이 이끈 포 | 24개 접 | 특정 포의 사례입니다. |
| 1891년 전라도의 포 | 16개 포 | 전라도의 숫자이며 전국 합계가 아닙니다. |
| 1893년 보은 집회 | 대접주 8명 임명 | 당시 임명된 숫자입니다. 전국 포가 총 8개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
위 수치는 우리역사넷 「포접제」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1894년 당시 전국 포와 접의 정확한 총수는 이번에 확인한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3. 책임자의 위계는 더 세분되기도 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책임자한자의 음과 속뜻맡은 범위
| 대접주(大接主) | 큰 대, 이을 접, 주인 주. 큰 조직을 이끄는 책임자 | 포를 통솔 |
| 수접주(首接主) | 머리 수, 이을 접, 주인 주. 접주들의 우두머리 | 군 단위 |
| 접주(接主) | 이을 접, 주인 주. 접을 이끄는 책임자 | 면 단위 |
| 접사(接司) | 이을 접, 맡을 사. 교인 조직의 일을 맡은 사람 | 마을 단위 |
다만 이것을 전국에서 엄격하게 시행한 행정구역표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동학 조직은 누가 누구에게 가르침을 전했는가 하는 사람 사이의 연결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마을에 살아도 소속 접주가 다를 수 있었습니다.
포 안에는 일을 나누어 맡는 육임(六任·여섯 육, 맡길 임: 여섯 가지 담당 직책)도 두었습니다. 교장·교수·도집·집강·대정·중정입니다. 이는 법헌·포·접 위에 더해지는 여섯 단계가 아니라, 교단의 일을 나누어 처리하는 직책입니다.
요점을 정리하면, 법헌은 최시형을 중심으로 한 최고 지도부, 포는 여러 접을 묶은 큰 조직, 접은 교인들을 직접 연결하고 지도하는 기초 조직입니다. 접은 초기 40~50명, 뒤에는 30~70가구 정도로 설명되며, 포는 10여~20여 접을 거느린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국 포·접의 총수나 모든 조직의 인원을 하나의 숫자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