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자비스
5월에는 어버이날, 어린이날과 같이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날이 모여 있어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100개가 넘는 국가에서 '어머니날'을 기념합니다. 빨간 카네이션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대표적인 선물이고요. 그런데 언제부터 어머니날이 공식적으로 생겼고, 카네이션을 드리는 전통이 생겨난 걸까요?
모성(母性)을 기리는 종교 행사나 축제는 과거부터 있었어요.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여러 문화권에서 중요하게 여겼죠. 영국과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기독교적 전통으로 사순절(四旬節·부활절 전의 40일) 기간 중 네 번째 일요일을 '어머니의 일요일'로 기념했어요. 자녀가 꽃과 선물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죠. 다만 현재는 대다수 국가에서 정한 '어머니날'을 따르면서 '어머니의 일요일'은 거의 없어졌어요.
현대적 의미의 '어머니날'은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어머니날이 제정되는 데 큰 영향을 준 '어머니'가 있었어요. 사회운동가 앤 리브스 자비스(Jarvis·1832~1905)입니다. 그녀는 '어머니 날 작업단(Mothers Day Work Club)'을 만들어 지역 여성들에게 올바른 육아법을 가르쳤고, 미국 남북전쟁 중에는 이 단체를 중심으로 부상당한 군인들 치료를 도왔어요. 앤은 1905년 5월 9일 자녀 곁에서 눈을 감았어요.
그런 어머니를 존경한 딸 애나 자비스(1864~1948)가 어머니날을 만듭니다. 그는 "이 땅의 어머니들이 베푸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노력을 기념하는 날을 만들어주길 기도합니다"라는 어머니 앤의 말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해요. 전국적으로 '어머니날'을 만들어 기념하는 것이 어머니들의 희생과 사랑을 존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어머니날 제정 운동에 나선 애나는 1908년 5월 10일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래프턴에서 첫 번째 공식적인 어머니날 행사를 여는 데 성공합니다. 교회에서 어머니날 예배를 열고, 교회에 온 어머니들에게는 흰 카네이션을 선물했죠. 물론 이 한 번의 행사로 '어머니날'이 법제화되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애나는 '어머니날'을 입법하기 위해 국회의원, 주지사, 시장, 신문사 편집장, 기업가들에게 편지를 쓰며 여론전에 나섭니다. 결국 1914년 우드로 윌슨(Wilson) 대통령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공식 선포합니다. 오늘날 어머니날이 등장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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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가게는 어버이날이 오면 카네이션을 종류별로 들여놓습니다. 그런데 미국 어머니날 창시자 자비스는 직접 찾아뵙거나 손편지를 드리라고 했어요. /박상훈 기자
애나의 어머니는 흰 카네이션을 좋아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애나는 카네이션을 어머니날 공식 꽃으로 삼고 상징으로 활용했어요. 그래서 당시 미국에서는 어머니날이 되면 어머니들에게 흰 카네이션을 선물했고, 자녀도 카네이션을 가슴팍에 달고 밖으로 나섰다고 해요. 당시 미국에서는 자식들이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다는 문화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나는 자신의 뜻과 다르게 어머니날이 점점 상업화되어가는 것에 염증을 느꼈어요. 애나가 어머니날 행사를 처음 시작했던 1908년에는 카네이션 한 송이가 0.5센트였는데, 4년 뒤에는 카네이션 한 송이가 15센트로 가격이 30배로 뛸 정도였다고 해요. 카드 회사도 어머니날에 편승해 '어머니에게 감사 카드를 드리세요'라고 마케팅에 나섰죠. 애나는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사람들에게 어머니날 꽃과 카드를 사지 말라고 했어요. 말년에는 아예 '어머니날 폐지 청원'까지 시작합니다. 어머니를 위하고 감사를 표시하는 날이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이 됐다는 걸 참지 못했던 겁니다.
애나는 최고의 선물은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게 힘들다면 정성 들여 쓴 손 편지를 전하라고 했지요. 애나는 특히 기성품 카드를 사서 드리는 걸 싫어했다고 해요. 미국에서는 카드 회사에서 속지에 멋진 문구를 적어 파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어요. "기성품 카드를 드리는 것은 세상 누구보다도 당신에게 헌신해온 여성에게 편지 하나 쓰지 않을 정도로 게으르다는 뜻이다."
내일은 어버이날입니다. 꽃도 좋지만 편지를 한 통 드리는 건 어떨까요.
☞'아버지날'은 美서 1972년 제정
미국에는 '아버지날'도 있어요. 미국 워싱턴주의 소노라 스마트 도드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 손에 자랐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1녀5남을 홀로 키워 냈는데, 도드는 아버지의 희생을 기리고자 1910년부터 아버지날(Father's Day) 제정 운동을 시작합니다. 결국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6월의 3번째 일요일을 아버지날로 정합니다.
한국에서는 1972년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신문 기고를 통해 아버지날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1973년부터 어머니날이 '어버이날'이 되며 양친을 위한 날로 바뀌었지요.
-조선일보 2019-05-07(화) A32면 / 윤서원·서울 성남고 역사 교사 / 기획·구성=양지호 기자 -
첫댓글 박선생님.
고맙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우리나라처럼 어머니 날을 어버이 날로 함 될 것을. . . .따로 두면 좀 복잡할 것도 같은데.
미국은 아버지들의 파워가 좀 센가 봅니다.ㅋ.ㅋ.
서옥주 선생님!
고맙습니다. 글을 잘 쓰시고, 시낭송도 잘 하시고, 노래도 아름답게 잘 하시니 참 훌륭하십니다.
우리 나라도 어머니 날에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컸지요. 나중엔 어머니 날을 어버이날로 바꾸고 노래도 어버이날 행사에 태산이 높은 줄은 알았으면서.... 라고 시작하는 노래로도 바뀌고요. 지난 어버이날이 되기 전에 이곳 마트에 카네이숀 꽃바구니가 잘 안팔리는 것을 보았어요.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허긴 꽃바구니 하나가 부모님의 은혜를 대신 할 수는 없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박선생님.
과찬의 말씀에 분홍빛 얼굴이 됩니다.
늘 선생님의 열정에 존경과 감동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