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진보와 현실 극복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로그인
예술은 세계를 긍정하고 세계와 타협하는 데 방점이 놓여 있다. 그러나 헤겔의 논리처럼 세계를 긍정하는 예술은 현실의 모습을 부질없이 미화할 뿐이다.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현실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데서만 발견된다. 세계에 대한 비판을 담음으로써 예술은 이제 더 이상 절대적 진실을 주장하지 않고 현실의 극복을 주장한다. 말로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은 작가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수필도 예술에 속한다. 냉철하고도 엄정한 판단으로 비뚤어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미적 진보의 펜을 휘둘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저항적 관점으로 하반기 수필을 조명해 보는 것은 a better world를 추구해야 하는 문학의 목적에 비추어 당연한 평론가적 시각이라 하겠다.
II. 세련된 지성과 저항적 인식
훌륭한 수필가는 사회의 한 복판에 서서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문제를 작품 속에 담아내려고 늘상 노력해야 한다. 한 알의 보리나 밀에서 우주의 진리를 알 수 있는 수필에 독자는 매력을 느끼는 법이다. 사회수필은 무엇보다도 푹 찌르는 맛이 있고, 톡 쏘는 맛이 있어야 한다. 정보적 가치가 있고, 지적 욕구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힘의 문학으로써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담고 있는 점도 크나큰 장점이다. <월간문학>에 게재된 수필은 위에서 말한 대로 사회수필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어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뜨겁게 하는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주었다고 하겠다. 5월호에서부터 10월호까지에 나타나 있는 수필적 메시지는 현실에 대한 강한 직시와 적발의 모습을 띠고 있다. 특히 다양한 일화와 예화 그리고 삽화는 설득적 공감을 주는 바, 많은 독자들의 감동을 받아 내리라 확신한다.
김상미의 <트라우마>는 거짓말의 허와 실을 체험을 통해 보여주고자 기획된 작품이다. 수필 속에 불안 문제의 해결책을 담아내려 한 것은 작가정신의 발로다. 항상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주제 지향성으로 삼아 작가는 인간 탐구라는 큰 틀 속에서 거짓말과 불안의 역학관계를 잘 풀어내었다. 송병록의 <출근길 단상> 역시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사슴을 쫓는 사람은 숲을 보지 못한다’라는 은유적 보조관념으로 치환해서 형상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고 하겠다. 현대적 자본주의 삶에 대한 성찰은 물론 삶의 근본에 대한 탁월한 사유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한 저항의 몸짓을 변치 않는 인생의 궁극적 진리와 좌표로 연결시켜내는 데 성공했다. 조태현의 <다시 읽는 논어초>는 오늘날과 같이 안보와 경제 상황 등 불확실성이 점차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논어 다시 읽기를 통해 불안의 문제에 대한 지혜를 제공하고자 한다. 사리판단이 누구에게나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것을 체험적 사건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메시지의 직설성에 따른 비문학성을 완화시키고 있다. 박정숙의 <퍼즐>은 단세포적인 시각이 난제를 더 키운다는 것을 예화를 통해 증명하는 수필이다. 다양한 시각의 중요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지사지의 교훈을 통해 타자-되기, 끝내 우리-되기를 이끌어내려면, 단 한 사람의 견해도 소홀이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예화를 통해. 그리고 ‘퍼즐’이라는 지배적 인상을 통해 잘 표달하고 있다.
권정순의 <대국다운 국격이란> 작품은 코스모스처럼 서정성으로 무장된 고운 수필보다는, 글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깨어있는 의식으로 세상의 보이지 않는 면을 발견하고자 하는 지성이 번득이는 수필이다. 이 수필 역시 작가의 저항성이 빛을 발한다. 지금은 따뜻한 자본주의 4.0시대다. 승자독식의 카지노 경제, 피도 눈물도 없는 샤일록 경제 사회는 더 이상 발을 붙일 수가 없는 시대다. 이런 시대적 요구와 요청에 부응하는 글이야말로 ‘진정한 문 학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드보복을 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중국 의존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작가의 제언이 충분한 공감을 얻고 있다. ‘대한민국은 조선이 아니다’라는 명제로 주제의식에 대한 근거를 간접화한 전략이 매우 돋보인다. 지식인은 선비다. 양산되는 지식인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은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관념의 지식인은 많지만 현실의 개선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할애하려는 지식인은 몹시 보기 어렵다. 국난의 문제에 직접 나서서 비판을 가하는 지식인은 그리 많지 않다는 데서 그녀의 글은 큰 의미를 갖는다. 글은 이처럼 사건이나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멋과 맛이 결정된다. 좋은 글의 창작 조건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이와 같이 세상을 저항적으로 읽어내는 독해력에 달려 있음을 권정순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권예자의 <흙수저 군자란> 역시 불공정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군자란의 유래를 통해 시정하고자 한다. 이런 작가의 지성적인 노력으로 인해 해석에서 형상화로 이어지는 과정이 성공함으로써 이 수필은 사회수필의 성격을 지니면서 손맛을 내는 것이다. 박종윤의 <자물쇠>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해 정조준을 가하는 글이다. 작가는 분노조절장애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현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진단하며, <파커>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해 주제의식을 의미화해서 문학성을 고취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사회의 등불이 되지 못하고,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지 못하는 수필은 일반 수필은 될 수 있어도 사실상 훌륭한 수필은 결코 될 수 없다는 차원에서 이들의 수필은 시공을 초월해 독자들의 가슴을 울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계숙의 <여우는 살아있다>는 남해로 가는 버스 옆자리에 앉은 k여인과 남편의 ‘귀걸이 전달사건’을 두고 전개되는 남녀관계의 불가지론과 각인각색의 결혼 생활에 대한 나름의 의미 있는 비판이 재미를 준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여우짓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빗겨나 아예 닭살을 제거해야겠다는 단호한 입장정리가 통쾌함을 안겨준다. 시류나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주체적인 여심이 한편으로 믿음직스럽다.
조원석은 <나쁜 놈 생존전략>이란 글에서, 노력하지 않고 불로소득을 취하는 대표적인 놈으로 거미와 개미귀신을 꼽는다. 독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작가는 이들이 왜 나쁜지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예를 든다. 한마디로 맛있게 읽히는 수필이다. 쥐와 고양이에 얽힌 재미있는 유머로 주제의식을 의미화하는 전략도 아주 좋았다. 작가의 사회적 책무는 그릇된 현실타파를 외치고, 진실하고 정의로운 삶을 호소하는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작가라는 수필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세태에 간접적인 저항을 표시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횡포에 대해 소극적이나마 고발하려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고진국은 <눈>이라는 수필에서 제재를 잘 활용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구조를, 현실을 덮어버리는 ‘눈’에 빗되어 잘 형상화하였다. 직설적인 메시지 대신에 ‘눈’이라는 제재로 메시지를 비유적으로 의미화한 전략은 높이 평가된다. 해석만 있고 형상화가 없으면 관념적인 글이 되고 말았지만 해석과 형상화가 같이 어우러져 감동이 배가된 경우다. 홍유연의 <거울아 거울아>는 요양병원에 병문안을 가서 들은 한 할머니의 ‘거울 갔다 줘’라는 문장을 화소로 해서 거울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거울과 관련해서 여성심리를 잘 파헤치고 있어 관심을 자아낸다.
문학의 원리는 치환과 형상화에 있다. 사상과 형상의 변증법적 통일이 가장 중요하다. 위의 수필들이 이런 차원에서는 다소 미흡하지만, 모두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경계하면서도 긍정적이면서도 따뜻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하나같이 저항성으로 a better life를 추구함으로써 문학의 기능과 작가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보인다.
III. 로그아웃
한 마디로 현대는 격동과 시련에 직면하고 있으므로 미래가 불투명하여 변천의 방향을 예상할 수 없게 한다. 위에서 다룬 수필은 이러한 현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판독할 수 있는 시대적 좌표를 제시한다는 데서 커다란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이러한 때 오늘날 문학의 위치와 작가의 임무, 나아가서는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단순히 이상의 세계를 그리는 창작에만 몰두하기에는 오늘의 현대 문명은 급격한 가속과 중압감을 느끼게끔 하고 있다. 그러기에 작가는 역사적 바탕을 기반으로 미래를 응시하고 자기 자신과 겨레와 인류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현실의식은 위기에 처한 오늘을 극복해야 할 우리 작가의 모델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글로써 지켜야 할 진실이 있다. 위의 작가들은 이런 차원에서 소수자의 길을 택했다고 본다. 언제나 정의 편에 서고, 약자의 편에 서고, 서민의 편에 서고, 지배집단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모든 세상일에는 항상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오염된 세상을 겨냥하고 부패와 부조리를 정조준하는 글을 읽으면 가슴이 서늘해져 옴을 느낀다. 문학인에게는 이런 지배층의 오류를 감시 감독해야 하고, 그늘진 곳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사회적인 책무가 있다. 이들 수필이 내세우는 핵심 가치는 비판적 성찰이나 저항적 담론의 미적 형성이다. 비판하되, 문학의 멋과 맛을 살리기 위해 직설적인 비판이나 비난 대신 풍자와 기지로 그리고 지식과 유머, 세련된 지성을 담아 삶의 바른 길을 제시해주어야 할 것이다. 사상과 형상이 변증법적으로 통일된 위대한 작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