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 언약의 피 말씀/ 마가복음 14:1-26 요절/ 마가복음 14:24 | 2024. 8. 25 | |
마가복음 제 22 강 |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언약의 피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마지막 만찬에서 자신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놀라운 은혜를 알고 생명력과 희망이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었습니다. 유교절과 무교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전국과 세계각처에서 모여드는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서 마음을 써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과 미움 때문에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유월절 기간은 피하고 그 후에 죽이고자 결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유다의 제안으로 디데이를 변경했고, 예수님은 유월절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3-9절은 한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였습니다. 시몬은 나병을 앓고 있었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치유 받고 깨끗해졌습니다. 그는 감사의 표시로 예수님을 초청하여 식사대접을 했습니다. 그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향유는 인도산 향유로서 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는 귀한 보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옥합보물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아낌없이 부어드렸습니다. 그녀는 한 두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으로는 자신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어떤 것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사랑의 표현으로 자기가 가진 것 가운데 최고의 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녀는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릴 때 자신도 함께 드렸습니다. 자신의 믿음과 사랑과 순종과 헌신을 드렸습니다. 그녀는 마음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섬겼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드려 주님을 섬겼을 때 그녀는 생애 최고의 기쁨과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이런 여인의 행동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화가 치밀어 서로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었고, 그 주동자는 요한복음에 의하면 가룟 유다입니다. 그들은 여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비싼 향유를 그런 식으로 허비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 보물을 팔면 노동자 1년치 연봉이 될 것이고 그 돈이면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구제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여인의 행동이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제가 볼 때도 여인의 행동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꼭 그렇게 다 쏟아부어어야 하나 적당히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인은 제자들의 책망을 듣고 내가 너무 오버했나 하며 마음이 오그라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인을 즉각 변호해 주셨습니다.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인의 행동을 제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녀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시며, 그녀의 행동을 예쁘게 받아주셨습니다. 예수님께 가치 있는 것을 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아름다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와 섬김과 순종과 헌신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고백과 사랑표현을 좋은 일로 받아주십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진심과 헌신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께 드린 것들을 좋은 일로 해석하시고 높이 평가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지난 선교여행 기간에 우리 선교사들은 잘 사는 것도 아닌데 우리 비전팀을 마음과 힘을 다하여 좋은 음식으로 섬겨주고 그 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와 건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헌신적으로 섬길 수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이 무엇이라고 이렇게 귀한 대접을 하여 주나, 평생 잊을 수 없는 섬김이요 사랑이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헌신적으로 섬길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사랑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보이지 않게 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섬김과 헌신을 주님께서 아시고 칭찬해 주십니다. 청년대학생 때 주님께 시간을 드리고 열정을 드리고 헌신을 드리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많은 학생들이 캠퍼스로 돌아올 것입니다. 캠퍼스 학우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주님께서 보내어주신 학우들을 섬기고, 춘천 5개 캠퍼스를 제사장 캠퍼스로 변화시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 곁에 항상 있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곧 죽으실 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섬기는 것을 뒤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항상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그것도 팔팔하고 조금이라도 기력이 있을 때 주님을 섬겨야 하지 않을까요?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예수님은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여인이 예수님께 기름을 부어드림으로 예수님은 위로와 힘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헌신을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으로 받아 주셨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하며 향유를 부어드렸는지 아니면 예수님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향유를 부어드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인의 헌신을 자신의 장례식을 위한 것으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념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건져주신 주님께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젊음을 드리고 가정을 드리고 우리의 생명까지도 드립니다. 어떤 분은 옥합을 드리고 어떤 분은 오병이어를 드립니다. 주님은 우리의 옥합도 받으시고 우리의 오병이어도 받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드린 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주님은 허누가 테레사 선교사님의 믿음과 헌신을 받으시고 강원대와 한림대 개척과 베트남과 영국과 미국 선교에 귀히 써 주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유타대 개척을 위해 귀한 가정을 부르셨습니다. 저는 이 가정이 보스톤에 남아서 보스톤 선교사님들과 아름다운 동역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했지만, 주님은 유타대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유타주에는 UBF 선교사가 없습니다. 또한 몰몬교도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환경은 매우 열악합니다. 하지만 허누가 테레사 선교사님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유타주로 가서 유타대를 개척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종들의 믿음의 결단과 헌신을 받으시고 유타대 개척을 이루어주시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10,11절은 가룟 유다의 배반 이야기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제자인데 왜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예수님을 영광의 메시아로 생각하고 따랐는데 예수님이 고난의 메시아의 길을 가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물질에 대한 탐욕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팔아 돈을 챙기고자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제거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거래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과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는 우리 앞에 두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예수님보다도 돈이나 권력이나 애인을 더 사랑한다면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반하는 어둠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세상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면 예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은 유월절 식사를 어디서 할 것인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 중에 두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성내에 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남자를 만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남자는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였고, 그의 집은 큰 다락방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식사 장소를 은밀하게 준비하도록 하신 것은 유다가 그 장소를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가르쳐주고자 하셨습니다.
저물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그 장소로 가셨습니다. 이번 유월절 식사는 최후 만찬 자리였습니다. 식사 하는 중에 예수님은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배반자가 누구인지 아셨지만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으셨습니다. 배반자에 대한 말씀으로 식사 분위기는 가라앉고 슬픔과 긴장이 밀려왔습니다. 제자들은 총 맞은 것처럼 충격이 컸습니다. 예수님은 그 배반자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배반자는 예수님 가까이 있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배반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유다만 알았는데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혹시나 내가 그 배반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하며 "저는 아니죠?" 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웠고 자기는 배반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싶어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반 때문에 죽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죽음의 길을 가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죽음의 길을 가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성경을 이루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종이 되어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유다를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의 운명이 너무나 끔찍해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을 뻔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는 배반자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씀 앞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말씀 앞에서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끝까지 회개를 거부함으로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하실 때 떡을 가지사 축복하셨습니다. 축복하셨다는 것은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22b절을 보십시오.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떡을 내 몸이라고 하신 것은 떡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떡은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찢으신 몸을 가리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믿을 때 새생명을 얻습니다.
떡을 나누어 주신 후 예수님은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니 그들이 그 잔을 마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것은 나의 피’라는 것은 ‘이 포도주는 나의 피를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언약의 피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언약을 맺게 해 줍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들은 그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옛 언약에서의 동물 제사는 한계적이고 일시적이었습니다. 짐승의 피는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은 그 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줍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단 번에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영원하고도 온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그리스도 피의 능력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의를 입게 해 줍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속사람을 변화시키고 양심까지도 깨끗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능력을 줍니다. 우리가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귀히 쓰임 받게 된 것도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언약의 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믿을 때 그 언약은 효력을 발생합니다. 매일 밥을 먹어야 육체의 생명이 유지되고 건강해지듯이 우리의 영적 생명이 유지되고 풍성해 지려면 날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적으로 예수님의 피를 마시고 있습니까? 다른 것으로 우리의 갈증을 채우고자 하지는 않습니까? 게임과 영상을 통해 갈증을 채우고자 하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스포츠나 연예를 통해 만족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영적 갈증과 배고픔을 채울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지 못하고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의 근본문제는 죄와 죽음입니다.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예수님의 피, 언약의 피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들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겠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새생명을 얻고 풍성한 삶을 얻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언약의 피요 능력의 피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피의 은혜와 능력을 믿을 때 모든 어두움과 슬픔과 무기력과 절망을 이기고 기쁨과 감사와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