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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of me
- Trespassers William
It’s a place that’s not so far
I dream there and sometimes I wake there
Do you want me caring less
Sometimes we don’t ask for what we need
And I guess how I want to be loved
And I’ve guessed what of me you need
It doesn’t matter if we lie
Your sentences never defined you
Do you think that I can’t feel
When I touch you there’s words on your body
Should you be scared
When I say sometimes I’d want you dead
So no one else can have you when it ends
How’d I reach this point on my own
And how fragile right there I was
This is not the first time
That I’ve watched the end of that thing that had no end
Do you want me caring less
Sometimes we let go of what we need
Why can’t you guess how I want to be loved
You can’t even tell me what of me you need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부모님께 담배를 피우겠다는 선언을 하고 흡연을 시작했다. 중고등학생때 잘나가는 아이들이 말보로 피우던 모습을 가끔 목격하기도 했지만, 초심자의 마음으로 내가 처음 선택했던 담배는 88이었다. 그러다 곧 88 골드로 기종(?)을 바꿨고, 가끔 도라지 필터를 끊고 피우는 등의 빠른 진도를 보이기도 했다.
내 군시절은 소위 군팔이 군디스로 바뀌는 시기였고 덕분에 군팔과 군디스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군디스를 보급받던 시절에 휴가를 나가면 선배들이 부럽다는 소리를 하곤 했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 선배들은 모두 양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므로 나는 속으로 막 욕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제대 후에는 줄곧 디스를 피웠다. 88을 구할 수 없던 것도 아니지만, 군대에서 1년간 디스를 피우고 나니까 다시 88로 돌아가기가 힘들었다. 말보로나 던힐, 마일드 세븐을 피우던 여자 동기들은 여전히 말보로나 던힐, 마일드 세븐을 피우고 있었다. 애국자도 아니었으면서 양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이유는 일단 가격 차이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1학년때의 어떤 일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학생회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학내의 어떤 행사에… 아니다 그 얘긴 안하는게 좋겠다. 어쨌든 트라우마가 좀 있어서 양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던거다.
친구들이 모두 제대를 하고 난 다음부터, 세련된 국산 담배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기억나는건 시나브로 (친구들은 시나브로를 디스를 똥구멍에 넣었다 뺀 담배라고 불렀다.), 레종, 타임, 더 원… 아이들은 점점 디스를 버리고 레종으로 타임으로 옮겨갔다. 나는 여전히 디스를 피웠다. 줄곧 디스를 버린 녀석들에게 나는 반쯤 농담으로 부르주아 새끼들이라고 불렀는데, 하루는 친구 하나가 디스랑 자기가 피우는 레종인가랑 백원 차이밖에 안나는데 어째서 부르주아냐고 항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디스 플러스가 나오고 난 자연스럽게 디스 플러스로 이적. 아마 가장 오랜 시간동안 피웠던 담배가 디스 플러스였을 것이다.
그러다 작년에 다니던 회사 회식때 담배가 떨어져서 어쩔까 하는 와중, 경리 아가씨가 피우던 담배가 있길래 하나만 달라고 해서 피웠던게 팔리아멘트였다. 그런데 이게 꽤 괜찮았다. 아… 양담배를 이래서 피우는구나 싶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당장 팔리아멘트로 담배를 바꿨다. 그렇게 또 그걸 한 1년 피웠다.
최근에 피우는 담배는 던힐 밸런스다. 내가 이걸 피우게 된건 두어달 되지 않는데, 자주 가는 술집에서 담배가 떨어져 아는 사람 담배를 하나 빌려 피운다는게 던힐 밸런스였던 것이다. 맛은 뭐 그냥 무난했다. 팔리아멘트나 던힐 밸런스나. 그런데 내가 담배를 또 바꾸게 된 이유는 던힐 밸런스는 종이 덮개 안에 비닐 덮개가 하나 더 있어서 담배가루가 새어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던힐 밸런스를 피우고 있다.
그런데 내가 왜 이걸 쓰고 있냐면, 내가 던힐 밸런스에 대해서 뭔가 심리적으로 밀어내려는 경향이 있는지 담배를 사러 가게에 들어가면 갑자기 던힐 밸런스 이름이 생각 안나는거다. 던힐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밸런슨가 뭔가가 생각이 잘 안난다. 몇 번은 무의식적으로 팔리아멘트를 달라고 했다가 바꾸기도 했다.
오늘도 퇴근 후에 집 근처 가게에 들어갔다가 한 십초를 ‘어… 음… 아줌마 담배… 음… 뭐였지? 아줌마 저 뭐 피우죠?’ 했던거다. 허허.
뭐 그렇게 삽니다.
10년 전에 그녀는 이혼했다.
6년 전에는 다시 한 번 더 술을 마시면 다음에는 자기가 아니라 장의사를 만나러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핀잔을 들었으며,
2년 전에는 목소리가 갑자기 나오지 않아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9개월 전부터는 허리 디스크로 인한 통증 때문에 하이힐은 커녕 십 분 이상 서 있기도 힘들었다.
19일 전에는 삼개월이나 밀린 방세 때문에 드디어 집에서 쫓겨났고
지금은 클럽 주인인 조니의 배려로 가게가 문을 닫고 나면 간신히 분장실 한 쪽 간이침대에서 잠을 잘 수가 있다.
그래도 웃으며 무대에 선다. 웃으며, 나는 웃음을 판다.
Joan Osborne – “Ain’t No Sunshine” – Live at The Roxy
(* 위 내용은 실제 Joan Osborne의 삶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잔뜩 신경을 쓰고 있었더니 어깨가 또 굳어왔다. 민방위 훈련장에서는 내내 오른쪽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핵폭발시 행동요령을 듣고 있자니 쓴 웃음이 났다. 굵은 팔뚝에 퍼렇게 문신을 한 사내와 세 번을 마주쳤다. 한 번은 담배 피우다가, 또 한 번은 화장실 앞에서, 마지막은 훈련이 끝나서 귀가하던 도중에. 버스를 한참 기다리다가 그 곳에서는 어느 노선을 타도 집에 갈 수 없다는걸 깨닫고는 다시 한 번 쓴 웃음이 났다.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운전 내내 딸과 아들 자랑이었다. 그의 딸은 노스랜드인가 뉴질랜드인가에서 2년간 영어를 배웠고 무슨 교육 자격증을 따서 귀국 후 유치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데, 그게 돈이 꽤 된단다. 젊은 것이 독하게 하루에 몇 탕을, 그의 표현을 빌자면, 뛰는걸 보고 세 탕만 뛰고 나머지는 과외를 하라고 호통을 쳤다는, 그게 그의 딸에 대한 염려라면 염려였다. 전문대 밖에 못나온 아들은 기특하게도 삼성 하청 회사에서 일한다는데, 3년만에 대리를 달았고 연봉이 또 얼마라는 이야기를 했다. 최근엔 매월 20만원을 더 준다는 경쟁 회사에 스카웃 제의를 받고 고민했다는데, 또 호통을 치며 옮기지 말라고 했단다. 가만 있기가 뭐해서, 잘 하셨어요 회사 자주 옮기는건 좋지 않죠, 하며 맞장구를 쳤다. 나는 다른 한쪽으로 진저리를 쳤다. 다행스럽게 그 즈음에서 내릴 곳이 되었다.
돌아오며 동사무소에 들러서 새로 입사한 회사에 제출할 등본을 떼고 언덕을 내려가는데, 그만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십분 전 기억이 꿈처럼 모호했다. 실시간으로 모호함이 갱신되었다. 한쪽으로는 자기파괴가 진행되고 다른 한쪽으로는 자기수복이 진행되는, 터미네이터의 T-1000이 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자체로는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있기만 하면’ 되었다. 항상 전쟁은 나의 최전방에서만 일어났고, 중심의 뒷편에 있는 나는 관찰하기만 하면 되었다. 알아서 하라지, 알아서 세 탕을 네 탕을 뛰라지, 알아서 이직을 하고 알아서 대리를 달라지, 나는 여기서 계속 관찰할테다, 움직이지 않을테다. 하지만 이 어지러움과 구역감의 원인은 세계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었음을, 나는 여전히 알고 있고 부인할 수 없다.
오래 전에 나는 가능하면 내가 믿는 이야기 대신 믿지 않는 이야기만 하기로 다짐했다. 사람들은 내가 믿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 더 좋아했다. 그래서 차마 당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민방위 훈련의 훈련 일정을 묻기 위해 동사무소에 전화를 건다. 처음에 전화를 받은 직원은 담당이 아닌듯,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담당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돌려주었다.
“이번 민방위 훈련 일정 때문에 전화드렸는데요. 제가 이번주에 훈련 참가를 못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죠?”
“이번에 못받으면 다음에 받으면 되요.”
나이 지긋한 목소리의 남성이 불친절하게 대답한다.
“그러니까 전화드렸잖아요. 다음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일정이… 5월 15일 16일에 있고… 17일이랑 18일에…”
“이번주에 사정이 있어서 훈련을 못받는다구요. 다음주는 어떻게 됩니까?”
“다음 일정은, 그러니까 31일, 27일… 에, 또…”
“아무튼 다음주에도 훈련이 있는거죠?”
“네.”
“다음주 무슨 요일…”
“(딸깍)”
“…”
나는 친절함을 원하진 않는다. 사랑도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하게 대답해주기를 바란다. 17일에 훈련 일정을 묻는 사람에게 15일날 훈련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원하는게 다음주 훈련 일정이면 다음주에 훈련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무슨 요일에 몇시에 있는지만 알려주면 된다. 31일, 27일은 또 뭐야. 대체 저 fully-꼰대풀한 답변은 뭐냐고.
아르바이트 몇 개를 했거나 하고 있는데, 내가 처음부터 작업을 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변형하거나 데이터 마이그레이션 작업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코드도 육개월이 지나면 보기 싫어지고 뭔가 자꾸 리팩토링 하고 싶어지거나, 싹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싶어지는게 이 바닥의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남이 여러해 전에 날림으로 만든 것이야 오죽할까. 끔찍한 비유지만, 마치 태어나자마자 개천에 버려진 기형의 아기가 끈질긴 목숨으로 살아나 성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장담하건데, 이 코드를 만든 사람도 자기가 뭘 만들고 있는지 모르는게 분명했다. 의미없이 이 파일이 저 파일을 인클루드하고, 그런게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물론, 그래 물론, 나도 이런 비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아마 아무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딱히 뭔가 짚고 싶은건 없다. 말 나와 봐야 똑같다. 그 얘기가 그 얘기. 뭐 좀 더 잘하자, 정도? 책임을 지자? 우습다. 누가 책임을 져. 그거 만든 개발자만의 책임도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납기일만 되뇌이며 쪼는 PM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제대로 모르면서 어디서 주워들은 것만 가지고 이런거 가능하죠? 쉽죠? 운운하는 클라이언트 문제도, 이쯤 되면 나오는 대한민국은 원래, 하는 것의 문제도 아니다. 그런 코드들은 수도 없이 많고,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다. 그래, 그게 문제라면 문제다. 그럭저럭 돌아간다는 것. 소스코드는 원래 겉으로 드러나는 생산물이 아니다. 사용자(user)는 인터페이스만 본다. 심지어 게시글을 GD 라이브러리를 통해서 이미지로 구워서 보여줘도, 이쁘게만 보이면 그만이다. 그냥 보이면 된다.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만 해도 오케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우리 세계는 조금씩 불안과 우연을 얼기설기 이은 지푸라기 위에서, 더 위로, 더 위태로운 그 위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다.
말 나온 김에 이번에 농협 시스템 장애도 걸고 넘어가보자. 전산시스템을 아웃소싱 했다고 하는데, 그게 그쪽 생리인지는 몰라도 금융권 시스템에 대한 완전한 지배력이 금융사 자신에게 있지 않고 외부에 있다는건 내 깜냥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그건 그냥 커뮤니티 사이트가 아니라 하루에도 수백억씩 오고가는 시스템이다. 이 바닥에선 이런 시스템을 미션 크리티컬(mission critical)한 서비스라고 부른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한두사람 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미. 아웃소싱해도 처음엔 시스템이 잘 도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사람들 인터넷 뱅킹 하는데 문제 없고 이것저것 서비스 하는데 문제가 없으면 오케이. 그냥 그러고 넘어간 것이다. 아무도 이게 어떻게 돌아가고 왜 이렇게 돌아가고 뭐가 어디에 붙어 있으며 그건 무슨 기능을 담당하고 어쩔씨구리 저쩔씨구리 그런건 신경 안쓴거다. 그리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러면 된거 아닌가?’ 했겠지. 차는 굴러가면 되고 집은 비바람을 피하면 되고 밥은 먹어서 배부르면 되고… 이런 양적 만족감에만 하악하악하고 있었다는건, 누구의 말대로 이 시스템들이 얼마나 우연의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돌아가고 있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3차 테이프 백업본 있어서 그걸로 복구하면 된다고 하는데 나 진지하게 묻고 싶다. 혹시 백업 플랜을 짜면서 그냥 데이터만 디립따 아카이빙하고 있었는건 아닌지. 가끔가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대비해서, 혹시라도 누군가가 ‘백업 제대로 되고 있는지 테스트 서버에다 리스토어해서 한 번 돌려볼까?’ 하고 말해 본 적은 있는지, 그냥 궁금하다. 그냥 아카이빙만 풀어 놓으면 예전처럼 시스템 제대로 돌아갈꺼라고 믿는 그런 순진한 사람들인가, 싶다. 뭐? 열시간이면 된다고? 야 이놈들아, 내가 쪼끄만 사이트 데이터 이전하고 셋팅하고 문제되는 부분 잡고 하는 시간만 해도 그정도다. 이놈들아.
뭐 됐고. 혹시나 내 대출정보도 함께 날아가는 아쌀한 이벤트가 있을까 싶어 들어가봤더니, 그건 여전하데. 허허. 뭐 됐어. 잘 돌아가면 된거지. 안그래?
워드프레스로 이전하였습니다. 댓글을 펼친 상태로 놔두는걸 설정해야 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둡니다. 상관없겠죠.
MMS From a Loser In Somewhere
Y, 나 좋은데 취직했어.
지금은 서초구 서래마을
팔레스 호텔 옆 빌라 2층에서 살아.
반지하, 매일 닦아도 닦아도 쌓이는 먼지와는 이제 안녕.
자동차는 포드 머스탱인데,
신형 컨버터블이야.
36개월 할부는 창피해서
그냥 일시불로 샀어.
얼마 하지도 않아, 한 오천?
일시불로 사니까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덤으로 주더라.
토요일 밤이면 자유로에서 드라이브를 해.
Y, 네 생각이 나.
신촌을 지날 때마다
어둑한 바에서 담배연기에 콜록이던 널 떠올리지.
이제는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심플맨Simple Man은 듣지 않아.
차라리 잘 된 것 같아.
내 아이폰엔 유럽풍의 품격있는 재즈만 가득해.
J형이 도미했을 때
난 거의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이야기 할 사람들이 필요해,
주소록에 저장된 연락처로 문자를 보냈지.
그런데 답장이 없거나 답장이 와도
퉁명스러운 대답 뿐이더군.
그래서 나도 그냥 살기로 했어.
이제 그냥 이렇게 사는게 편해.
Y, 그 날 엄청나게 취해서 실수를 한 이후 처음으로 행복한 것 같아.
우리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찾으려 먼 곳을 헤매느라 낭비한 시간들을
지금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헌책방을 하나 열고 싶어.
책은 절대 안팔고
그날 기분 따라 매일매일 아무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 내려가는거야.
그런데 Y, 내 처지를 솔직하게 말해줄까?
나, 회사에서 짤렸어.
그러니까 서래마을도 포드 머스탱도 거짓말이야.
그리고 있지,
사실은 이번달 카드값이랑 대출 이자 낼 돈이 당장 필요하거든.
Y, 난 다음달이나 되어야 새로 시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월급 80만원을 받을 수 있을꺼야.
도로주행 연습하다가 문득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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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면허
1.
“항상 담배 먼저 뽑으라니까요, 아이 참 답답하시네.”
강사의 불만 섞인 목소리에 주헌은 움츠려드는 자신을 느꼈다. 벌써 몇번째 라이터를 먼저 뽑는건지,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먼저 손이 가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자 다시 해봅시다. 몇번째 설명하는거지만 라이터를 먼저 손에 들게되면 담배를 뽑을때 우물쭈물하다가 라이터를 떨어뜨리는 수가 많아요. 그럼 바로 실격입니다. 이게 작년부터 법이 바뀌어서 라이터 떨어뜨리면 바로 실격이에요, 감점이 아니라. 항상 담배를 먼저 뽑아물고 그 다음에 라이터에요. 아시겠죠? 천천히 해봅시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주헌은 담배를 뽑아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매끄러운 불티나의 느낌이 손 끝에 전해지자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안도감이 도를 넘었던 걸까. 이번엔 입에 문 담배를 떨어뜨렸다.
“허어, 내 강사생활 십년만에 입에 문 담배를 떨어뜨리는 분은 또 처음이요. 무슨 문제 있는거 아닙니까? 병원에 좀 가보셔야겠네.”
비아냥 대는 강사의 목소리 뒤로 수업이 끝나는 차임벨이 울렸다.
“주헌씨 다음 시간도 있죠? 쉬는 시간에 놀지 말고 연습 좀 하세요. 좀 쉬다가 십분 뒤에 봅시다.”
주헌은 작게 대답을 하고 그만 자리에 주저 앉았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담배를 뽑는 기초단계부터 막히기 시작한 자신에 대한 분노보다는 일단 이 지옥 같은 수업으로부터 잠시 멀어졌다는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공허하게 천장을 바라봤다. 왜 흡연면허같은걸 따야 하는걸까. 나이 서른이 넘어서까지 그는 흡연면허 없이도 충분히 행복했다. 니코틴이 필요하면 흡연자들 옆에서 간접흡연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직까지도 흡연면허가 없냐고 놀리는 직장 동료들에도 어지간히 면역이 된 그였다. 그런데 연애가 문제였다.
2.
올해 초 그는 거래처에 인사차 들렀다가 신입 여사원 하나를 알게 되었다.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어설픈 농담에도 환하게 웃어주는 그녀가 주헌은 마음에 들었고, 몇달 전부터는 이야기가 잘 풀려 몇 번인가 가벼운 데이트를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이처럼 마음이 맞는 상대를 만날 확률도 굉장히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취향에 있어서 윤대녕과 박상우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그녀는 윤대녕의 굉장한 팬이었다. 주헌은 오래전에 윤대녕을 포기했지만, 그다지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만했고 둘 다 이와이 슈운지를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커플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마음이 맞았다.
둘이 연인이 되기로 약속하고 일곱번째 데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계절은 늦가을로 바뀌어 거리엔 낙엽이 가득했다. 주헌이 회원으로 있는 영화 커뮤니티에서 소규모 영화배급사와 함께 이와이 슈운지 특별전을 기획했는데 그의 작품을 연달아 밤새도록 상영하는 것이었다. 주중에 열리는 상영회라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좋은 작품을 함께한다는 기대감으로 그녀의 의향을 물어 함께 월차를 내기로했다.
극장은 작았지만 아늑했고 시간은 꿈처럼 흘렀다. 두 편의 영화가 끝나고 30분간 쉬는 시간에 둘은 로비로 나갔다.
“오빠, 그런데 조금 출출하지 않아요? 나 뭐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
“샌드위치라도 사올께. 커피도 마실꺼지?”
“응. 사서 흡연실로 와요. 오래 참았더니 담배도 피우고 싶어졌어.”
“알았어. 가 있어, 금방 사갈께.”
그녀가 흡연실 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주헌은 매점으로 향했다. 작은 불안의 조각이 마음 속에서 달그락거렸지만 무시하고 먹을 것을 사서 흡연실 앞에 섰다. 그 조각은 이내 실체를 갖고 표면에 나타났다.
‘흡연 2종 보통 이상 출입가능.’
주헌은 난감했다. 흡연면허가 있는 사람만이 흡연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비흡연자에 대해 차별적이라고 하여 최근에는 비흡연자도 들어갈 수 있는 흡연실이 확산되는 추세였다. 물론 만 십오세가 넘으면 누구나 취득할 수 있는 면허라서 거의 모든 사람이 통과의례처럼 흡연면허를 따기도 하지만 주헌이 그 나이였을때에는 누구도 지금 이 면허를 따지 않으면 이십년 뒤에 너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충고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 자신이 흡연자가 아니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상영관의 흡연실 상황 따위를 체크해보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무엇보다 주헌은 그녀에게 흡연면허도 없이 담배도 피우지 못하는 남자로 보이기 싫었다. 그때 우연히 문이 열리고 그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오빠, 뭐해요 들어오지 않고?”
“아, 응. 흡연실 찾다가 이제야 왔어.”
“어서 들어와. 여기 동호회에서 오빠 아는 분이라는데 엄청 재밌어요.”
주헌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지키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뒤에 흡연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수십 기압의 유독성 기체로 가득한 금성같았다. 그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히히덕거리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을 즉시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 곳은 지옥이었고 악마들이 그의 처분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오빠, 여기 앉아요. 뭐 사왔어요? 나 참치 샌드위치는 싫은데. 아, 햄치즈다!”
입을 열면 기침을 할 것 같아서 주헌은 말쑥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샌드위치와 커피를 넘겼다. 그녀는 한참 내가 몇 번 오프모임에서 얼굴을 익힌 사내와 대화를 나누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주헌은 매운내를 가시게 하려고 연신 커피를 마셨다.
“… 그렇게 해서 주헌씨가 동호회 내에서 잠깐 유명해지기도 했었다니까요. 이 사람 참 웃긴 양반이에요.”
사내는 그렇게 말을 맺으며 주헌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렇게 아리따운 아가씨를 옆에 두고 이 양반은 왜 이리도 멀뚱하담? 담배 안 피워요?”
“아, 저… 마침 담배가 떨어져서요.”
주헌은 제발 그 다음은 말이 이어지지 않기를 바랬다.
“무슨 담배 피우는데? 그냥 이거 피우세요.”
그가 내민 것은 뻘건 포장지가 위압적인 말보로였다. 주헌이 듣기로 그것은 가장 독한 담배 가운데 하나였다. 가끔 간접흡연을 할 때에도 말보로를 피우는 사람 옆에서는 그 독함 때문에 어지러움증이 일 정도였다. 그는 정말 이 상황을 고사하고 싶었다.
“그럼 고맙게 피울께요.”
그러나 생각과 달리 손은 반쯤 삐져나온 말보로로 향했다. 아주 조금만 빨면 괜찮을꺼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꺼야, 그는 자신에게 암시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사내가 불을 붙였다.
아주 약간이었다. 빨아들인 연기의 양으로 치자면 2에서 3cc도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주헌은 구토에 가까운 기침을 내뱉았다.
“어, 어, 오빠 괜찮아요? 왜 그래 갑자기?”
“이 친구 사레들렸나… 괜찮아?”
순간 주헌은 흡연실 안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꼈다. 격렬한 기침과 부끄러움과 흡연면허가 없는 자신에 대한 혐오가 뒤섞여 울음이 날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기침하다,
“미안해… 사실 나 면허 없어.”
그 말만 남기고는 도망치듯이 흡연실을 빠져나왔던 것이다.
3.
그 뒤 며칠간 주헌은 그녀의 연락에 답신하지 않았다.
‘오빠 괜찮아요? 오빠가 갑자기 그렇게 가버려서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연락주세요.’
‘오빠 면허 없는게 무슨 창피한 일이라고 그래요? 면허야 따면 되는거지요.’
‘나는 오빠가 면허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제발 괜찮으니까 연락 좀 주세요.’
‘내 주위에도 자발적 비흡연자들이 많아요. 요즘에는 그런거 다 인정하는 시대니까요. 오빠는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취향인걸요.’
‘오빠, 정말 이러기에요? 자꾸 이렇게 답장 안하면 나 화낼꺼에요?’
‘오빠, 제발…’
‘오빠…’
그 며칠간이 주헌에게는 군대 2년을 며칠로 압축한 것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그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으며 왜 이십년 전 친구들이 면허 따러 학원에 등록할때 그들을 비웃었는지 후회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 자신을 설득하고 싶었다. 제발 남들 다 하는거 똑같이 좀 하라고. 네놈 인생은 항상 그 삐죽거리는 태도 때문에 아무것도 안된다고.
얼마나 울었는지 아침에는 삼십분쯤 눈두덩이에 냉찜질을 해야 붓기를 빼고 출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며칠의 방황 끝에 주헌은 면허를 따기로 결심하고 그녀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미안해, 그동안 연락 못해서. 네가 잘못한 것은 전혀 없어. 이건 모두 다 내 문제야. 지금 이대로는 네 앞에 나설수가 없어. 나 면허 따기로 결심했어. 면허 딴 다음에 연락할께.’
곧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래요. 꼭 연락해줘요.’
주헌은 그 답장이 조금 메말라있다고 느꼈다.
4.
“아이고 이제 잘 하시네. 담배는요, 뭐 다른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자기가 그걸 즐긴다고 생각해야됩니다. 잔뜩 긴장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아주 간단한 것도 잘 안되고 그러거든요.”
“말씀 감사합니다. 시기가 지나서 하려니까 잘 안되네요, 긴장도되고.”
“그런 말씀 마세요. 요즘엔 오십 육십 먹고도 다 따러 오세요. 이제 느끼는거죠, 흡연면허 없으면 정말 불편하다는걸. 주헌씨는 그나마 빨리 생각 바꾸신거에요. 아무튼, 잘 하셨고요, 내일은 도너츠 코스 들어갑니다. 이게 뭐 어렵다고들 하지만 몇가지 요령만 알면 쉬워요.”
“네 감사합니다. 내일 뵐께요.”
“그래요 내일 봅시다.”
5.
주헌은 결국 흡연면허를 취득했다. 1종 보통이었다. 1종 보통이면 타르 함량에 상관없이 시중에 출시되는 거의 모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면허였다. 심지어 짧은 구간에 한해서는 도보 흡연도 가능했다.
관할 경찰청에서 면허를 받고 나오자마자 주헌은 주머니에서 뻘건 말보로와 지포라이터를 꺼냈다. 지포라이터는 한정판으로 꽤 비싼 값을 치르고 산 것이었다. 그는 열심히 연습한 결과로 지포라이터를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돌리며 곡예에 가까운 솜씨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주위에서 경탄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오늘 면허를 땄어. 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인지는 정말 몰랐어. 너를 만나고 싶어. 그동안 많이 보고싶었어.’
주헌은 그녀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이내 답장이 왔다.
‘오빠, 정말 축하해요! 나도 그동안 보고싶은걸 꾹 참았어요. 면허 따느라고 고생 많았어요.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니까 제가 오빠에게 좋은 곳에서 저녁과 함께 맛있는 와인을 사고 싶어요! 잘 아는데가 있거든요. ^^’
기뻤다. 기뻐야 했다. 기다렸던 메세지였다. 그러나 주헌은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와인이라고? 그는 음주면허가 없었던 것이다. 주헌은 반쯤 빨던 담배를 비벼 끄고는 애꿎은 지포라이터의 표면만 계속해서 문질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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