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 - 기계화가 나타나다
빅토리아 시대는 기계화가 이루어지면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에머슨은 ‘기계가 육체를 압박하는 차원을 넘어 정신까지 지배한다.’며 위기 의식을 드러냈다.
이제는 인간이나 국가와 사회를 평가하는 데 딱딱하고 건조한 수치로 나타냈다. 한 나라와 한 민족의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서 석탄 생산량, 철 생산량, 조선의 규모 등을 수량화하여 나타냈다. 제품의 다양화를 이룰 수 있는 발명 건수가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해마다 수치가 올라가야 한다고 믿었다.
가치의 기준을 물질적인 수치로 평가하면서 이에 대한 거부감도 높아 갔다. 19세기에 이르러스는 기계만능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심해져서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나타났다. 이들은 기계가 미치는 나쁜 영향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나쁜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인간을 기계에 예속시키는 일이다.
기계를 거부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 기계의 규칙성과 편리함은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켜 주었다. 인간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다보니 인간도 자꾸만 기계를 닮아갔다. 인간 생활도 규칙적이어야 하고, 기계처럼 정확하기를 요구했다. 인간의 삶도 기계처럼 규칙적인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스러워야 할 삶이 기계처럼 정형화시키다보니 우리 세상도 추상화되어 갔다. 겨우 한, 두 가지의 작업만 수행하면서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일이 바로 추상화이다.
기계의 작업에는 실수가 없다. 돌발적인 볕칙은 생각할 수도 없다. 매마르고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기계적 공정만이 있다. 수공업에는 실수도 있고, 변화도 있다는 점이 기계 공정과 차이이다. 반면에 수공업에서는 따뜻한 인간의 정을 느낄 수 있다.
기계제품은 몽상도, 사색도, 애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우리가 기계제품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성 때문이다. 인간의 따뜻한 피부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미가 뿜어내는 신비감을 느낄 수 없다.
가정도 사회도 무정한 기계 제품들로 채워져갔다. 생명으로 충만한 인간의 삶이 생명이 없는 추상세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형국이다. 기계만능주의는 이 세상을 생명이 없는 기계의 기능 가치로 덮어버렸다. 생명이 없는 기능의 세계가 바로 추상 세계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제품이 기차나 기선의 운송 수단으로 세계 곳곳을 날랐다. 세계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해방되었다. 19세기를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은 기계주의가 인류에게 발전을 가져다 주고 굶주림을 벗어나게 해준다고 믿었다. 굶주림에서 해방은 인류의 인도주의적 소망이기도 했다. 기계가 인류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준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와 같은 기대와 믿음은 반영한 행사가 국제만국박람회이다. 박람회에는 사람들이 탐을 내고, 본뜨고 싶어 하는 기계제품을 전시했다. 파리에서는 1844년부터, 영국에서는 1851년부터 세계박람회를 열었다. 박람회는 관광객에게 좋은 눈요기감을 제공했다.
1851년에 영국 런던에서 열었던 국제박람회는 기념비적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발전과 풍요를 상징하는 행사였다. 개막 연설을 한 빅토리이아 여왕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날’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기계주의에 대한 신봉을 표현한 말이다.
기계주의가 극대화할수록 기계만능주의에 반대하는 세력도 형성되었다. 진보주의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계의 기능이 발전할수록 윤리와 지성도 발전하리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오히려 퇴보로 나타났다. 정치에서도 현실을 중시하는 현실주의(Realpolik-현실주의 정치)가 나타났다. (* real은 실물을 뜻한다.) 원칙을 고수하기 보다는 물질적 이익에 치중하는 정치를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실주의 정치는 영토 확장을 추구하는 국민을 먹여살리는 일이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 전쟁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현실주의 정치에 냉소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1840년에 독일에서는 ‘신은 죽었다’를 선언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이 나타났다. 개인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가능한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는 무정부주의가 맹위를 떨쳤고, 러시아에서는 칼 마르크스와 바쿠닌이 저서를 통하여 민중을 선동했다.
허무주의도 나타났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다음 기회에 따로 공부하겠습니다.)라는 역작을 발표했다. 결론적으로 쇼펜하우어는 욕망을 어루만져주는 예술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이 시대의 예술에서는 어떤 변화가 나타났을까?
낭만주의의 기세가 한 풀 꺾이면서 시의 열품이 수그러들었다. 그대신 소설이 각광을 받았다. 소설은 사실주의(realism)라는 이름을 내 걸면서 사실주의를 유행어로 만들었다. 사실(ㅡreal)이라는 말은 일상 생활에서 실제로 접할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예술가가 글이나 그림에서 묘사한 것은 예술가의 의식 앞에 실제로 나타난 대상이다. 이것은 역사 서술과 닮았다.
소 설은 사건을 일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듯이 썼다. 소설에서느 인간이 사회에서 처하는 곤경을 심리학과 사회학을 동원하여 묘사했다. 그러면서 소설가는 자기의 주장을 펼쳤다.
이로서 소설은 19세기 문학에서 지배적인 장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