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트레흐트의 백조 ‘마르코 반 바스텐
“Van Basten the divine!”

30년대 스웨덴 태생의 군나르 노르달(Gunnar Nordahl) 이후 AC 밀란이 배출한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손꼽히는 마르코 반 바스텐(Marco Van Basten)은 1964년 10월 31일 네덜란드의 유트레흐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고향의 자그마한 축구클럽인 Edilwijk에서 축구를 배웠고 이후 네덜란드 최고의 명문클럽인 아약스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
이 당시부터 주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던 16살의 반 바스텐은 80년 요한 크루이프가 아약스를 이끌고 친선 경기차 밀라노를 방문했을 당시 인터 밀란의 전설적인 영웅 산드로 마졸라(Sandro Mazzola)로부터 이러한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를 보라, 그는 새로운 크루이프의 출현이라 말할 만한 선수이다. 크루이프는 우리에게 반 바스텐이라는 유망주를 소개했고 우리는 즉시 그가 놀라운 재목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81/82 시즌 반 바스텐은 아약스에서 선수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데뷔 시즌 단 한경기, 니메겐(Nijmegen)과의 리그 경기에 출장했던 그는 그 경기에서 공교롭게도 네덜란드 최고의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를 대신해 교체투입되어 성인무대 신고를 자축하는 데뷔골을 쏘아올리면서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어쩌면 이는 당시 축구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요한 크루이프를 이어 네덜란드 축구가 새로운 대들보를 맞이했던 대물림의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한데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이후 반 바스텐은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우리에게도 친숙했던 대회인 83 멕시코 세계 청소년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아직 기량이 만개하지 않았던 탓인지 그와 네덜란드 모두는 대회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는데 실패했다.
다음 시즌, 그는 20경기에 출장해 9골을 터뜨리며 가능성을 선보였고 이듬해 그는 비로소 팀의 주전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데 총 26경기에 나서 28골을 터뜨리는 무서운 결정력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오렌지 유니폼을 입는 데도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아약스에서 보낸 나머지 세 시즌 동안 매 시즌 20골 이상을 득점하는 괴력을 선보였던 그는 86/87 시즌에는 26경기에서 무려 37골을 폭발시키며 유럽 최고의 골잡이에게 수여되는 ‘European Golden Boot’를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활약은 곧장 그를 유럽의 주요 자이언트들의 표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는데 당시 그의 영입에 목말랐던 스페인의 두 거함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를 따돌리고 그를 낚아채는데 성공한 것은 베를루스코니가 구단주로 부임한 이래 새로운 부흥을 꾀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명문 AC 밀란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약스와 함께한 시간동안 129경기 127골이라는 경이적인 득점기록과 세차례의 자국 리그 타이틀, 한차례의 컵위너스 컵 우승의 영광을 아약스에 안겼던 네덜란드의 득점머신은 이탈리아 평정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밀란에서의 첫시즌은 기대와 달리 그리 순탄하지는 못했다. 시즌 내내 그를 괴롭힌 발목부상의 여파로 인해 그는 87/88 시즌 대부분의 경기를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부상에서 돌아온 그에게 이제 어떤 것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본능적인 골감각을 결코 숨길 수 없었고 득점은 물론 어시스트, 그리고 팀플레이 등 모든 면에서 팀의 리더라고 하기에 손색없는 활약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와 더불어 오렌지 삼총사로 명명되는 대표팀 동료 굴리트(Ruud Gullit), 리카르트(Frank Rijkaard)와 함께 그는 밀란에 통산 세번째와 네번째 챔피언스 컵과 세차례에 달하는 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었을 뿐더러 88년 유럽 선수권에서 자국 네덜란드에 역사상 최초의 메이져 타이틀을 안기면서 프랑스 풋볼이 선정하는 올해의 유럽 선수상을 3회나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전까지 3회 수상의 영광은 크루이프와 플라티니가 그 전부였다.
하지만 축구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에게 불행은 너무 일찍 찾아들었다. 선수시절 내내 그를 괴롭힌 발목부상으로 인해 그는 4차례나 수술대에 올라야만 했고 결국 더 나빠질래야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발목부상으로 뮌헨에서 열린 92/93 시즌 챔피언스 리그 마르세이유와의 결승전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결국 두 시즌이 지난 95년 여름 베를루스코니 컵을 고별경기로,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Flying Dutchman’ 반 바스텐은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아쉬움 많은 나이에 그라운드를 떠나 추억의 자리에 나앉게 되었던 것이다.
본래 그의 어릴적 꿈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체조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러한 꿈을 필드에서 펼쳐보이며 그라운드에서 보여질 수 있는 가장 우아한 득점장면을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선물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큰 신장에도 불구하고 ‘유트레흐트의 백조(Swan of Utrecht)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유연한 드리블링과 테크닉을 자랑했고, 문전에서의 파워와 결정력 등 반 바스텐은 스트라이커로서 갖춰야할 모든 조건을 두루 겸비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슈팅을 위해 오른발, 왼발의 구분이 따로 필요치 않았을 뿐더러 강력한 헤딩을 자랑했고 루이 코스타 혹은 지아니 리베라(Gianni Rivera)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던 만능 플레이어로 손꼽힌다.
바로 이런 이유가 오늘날 스트라이커의 표준을 논할 때 반드시 반 바스텐이란 이름을 상기시키게끔 만듦과 동시에 우리 모두를 그에 대한 향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까닭이 아닌가 싶다.
1995년 8월 17일.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의 SERIE-A 명문팀 AC밀란의 사무실에서는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다.
이 회견장의 주인공은 AC밀란의 주전 스트라이커인 마르코 반 바스텐.
시간이 되자, 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슬픈 표정으로 짤막한 연설을 했다.
"이제 나의 축구 선수 생활은 끝났습니다.
2주 前 벨기에 앤트워프에 있는 마르단 박사를 찾아가 진찰을 받은 결과,
더 이상 호전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기대 했던 연골의 성장도 없었고
더 이상 치료한다고 해도 별수 없다고 생각되어 은퇴를 결심한 것입니다.
아쉽긴 하지만 제 운명이니 받아들여야겠지요.
8년간 밀란 소속으로 있으면서 훌륭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지 웨아(전 AC 밀란 스트라이커)
“반 바스텐은 모든 공격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나에게 조차도 그랬고 모두가 그와 닮기를 원할 정도였다.
그는 가장 위대한 선수 가운데 하나였고 나는 그가 진정한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그가 부상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된 것에 무척 마음아팠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를 기억할 것이며 그는 최고라는 이름으로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아드리아노 갈리아니(AC 밀란의 부구단주)
“축구계는 그들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잃었다.”
생년월일 : 1964.10.31.
출생지 : Utrecht, Netherlands
신장 : 188cm
닉네임 : Swan of Utrecht, Guido Cavalcanti of the Penalty areas (* 참고 : Guido Cavalcanti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시인)
포지션 : FW
전소속팀 : 아약스, AC 밀란
<클럽경력>
에레디비지에 (네덜란드 리그)우승 : 3회
네덜란드 컵 우승 : 3회
세리에 A 우승 : 3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 2회
컵위너스 컵 우승 : 1회
유러피언 슈퍼컵 우승 : 2회
<대표경력>
총 58경기 출장, 24득점 (83~92)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 : 1회 (네덜란드)
<개인수상>
에레디비지에 득점왕 : 4회
세리에 A 득점왕 : 2회
FIFA ‘올해의 선수상’ : 1회
프랑스 풋볼 ‘올해의 유럽 선수상’ : 3회
월드사커 ‘올해의 선수상’ : 2회
‘European Golden Boot’ : 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