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지식 - 과거제도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1. 12.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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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지식
과거제도
"칸막이 방에 들어앉으면 밖을 기웃거리는 새끼벌 몰골이요, 시험이 끝난 후 밖으로 나오면 병든 새 몰골이며, 결과를 기다릴 때는 목이 묶인 채 안절부절 못하는 잔나비 몰골이요, 낙방을 확인한 후에는 약 먹은 파리 몰골이요." |
시험을 통해 관리를 등용하는 방식이 요즘에는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시험을 보지 않으면 어떻게 뽑나요?”
오직 시험만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질문이다. 그러나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에 시험 없이 관리를 등용했다. 언제까지? 중국에서는 587년 이전, 우리나라에서는 958년 이전까지.
그 이전 중국에서는 귀족의 자제나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과 그가 추천한 인물 또는 지방에서 관리나 백성들이 천거한 인물 등을 관리로 등용했다. 그러나 남·북조 시대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통일국가 수(隋)를 건국한 문제(文帝)는 당연히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보유하지 못했다. 5호(胡)16국(國), 즉 다섯 오랑캐가 세운 열여섯 나라 가운데 하나인 북주(北周) 출신인 문제 양견은 통일 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새로운 관리 등용법을 고안했으니 이것이 바로 과거제도였다. 자신이 믿고 의지할 만한 세력이 없었던 문제는 시험을 통해 관리를 등용한 후 그들에게 정치적 권한을 부여했고, 이때부터 관리들이 귀족보다는 황제에게 충성을 서약하면서 중앙 정부의 권한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과거제도는 그 이전의 관리 등용법과는 달리 모든 선비들에게 출세의 길을 열어 준 획기적인 제도였다. 이제 실력이 있는 자는 누구나 벼슬을 할 수 있었고, 가문이 훌륭하지 않은 자라고 해도 비관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과거에 등용된 자들은 그 이전이라면 언감생심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할 벼슬을 내려 준 황제에게 충성을 다할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수나라는 고작 40년도 못 되어 멸망했지만 문제가 만든 과거제도는 이후 중국 관리 등용법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았고, 나아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로도 파급되었다.
송대 과거 시험 응시자의 커닝용 속옷
사서와 오경 등을 붓으로 빽빽하게 적어 놓았다. 휴대폰을 이용해 커닝하는 요즘 수험생 뺨치는 발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가 좋다 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 성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법. 이러한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장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과거에 급제할 방법만을 찾아 헤맸다. 사진은 속옷에 빼곡히 적어 넣은, 요즘 말로 커닝 페이퍼다. 물론 이외에도 온갖 방법이 동원되었으니 점심식사용으로 휴대한 만두 속에 커닝 페이퍼 넣기, 문제 빼내기, 대리시험 등 과감한 방법도 동원되었다.
한편 과거에 급제한 사람과 낙방한 사람 사이에는 천당과 지옥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은 당연지사. 송나라 황제 진종이 지은 권학가(勸學歌)와 과거에 여섯 번 낙방한 《요재지이(聊齋志異)》의 작가 포송령(蒲松齡)의 ‘거자칠변(擧子七變)’이란 글을 비교해 보자.
권학가는 학문을 권장하는 노래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하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자가 되고자 하면 기름진 밭을 살 필요가 없느니
책 속에서 천 석 곡식이 절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안락하고 높은 집에서 살기 위해 집을 지을 필요도 없느니
책 속에서 금으로 지은 집이 절로 솟아나올 것이다.
외출시 시종이 없음을 한탄하지 말 일이니
책 속에서 수레와 말이 연이어 나올 것이다.
아리따운 아내를 얻을 인연 없음을 탓하지 말 일이니
책 속에서 옥 같은 미녀가 걸어 나올 것이다.
사내로 태어나 세상에 이름을 빛내고자 한다면
경서를 머리맡에 두고 읽고 또 읽을 일이다.
노래 내용을 보면 과거급제는 흥부가 탄 박에 비유될 만큼 안 나오는 것이 없는 요술단지 같다. 그렇다면 과거에 낙방한 자의 모습은?
거자(擧子)는 과거에 응시한 자를 뜻하고, 칠변(七變)은 일곱 번 변한다는 뜻이니 과거에 응시했다가 떨어지면 모습이 다음과 같이 일곱 번 변한다는 내용이다.
하나, 과장에 들어갈 때는 온몸이 무거운 거지 몰골이요,
둘, 몸 수색 받을 때는 죄수 몰골이며,
셋, 칸막이 방에 들어앉으면 밖을 기웃거리는 새끼벌 몰골이요,
넷, 시험이 끝난 후 밖으로 나오면 병든 새 몰골이며,
다섯, 결과를 기다릴 때는 목이 묶인 채 안절부절 못하는 잔나비 몰골이요,
여섯, 낙방을 확인한 후에는 약 먹은 파리 몰골이요,
일곱, 홧김에 세간을 부수고 나면 제가 품은 알을 깨뜨려 버린 비둘기 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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