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기술력이 향상됨에 따라 수명이 늘어났다. 죽어야할 인간이 살아나고, 쓸데없이 많이 사는 기현상이 벌어졌가. 그로 인해 불가피한 질병이 생겼다. 바로 치매이다. 노인들은 기억을 천천히 잃어버리고, 현실을 직시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연쇄 살인마가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오늘의 책은 살인자의 기억법, 치매에 걸린 연쇄 살인마의 이야기이다.
꽤나 반전이 매력적인 소설이고, 나름대로 유명한 책이니 스포일러는 하지 않으려 한다. 주인공 김병수는 청년기~장년기를 연쇄 살인마로 살았다. 죽이고, 또 죽이고, 가장 완벽하게 살인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살인을 끝내고 차로 돌아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더이상 살인을 하고 싶지 않게 뇌가 한 부분 고장나 버린 것이다. 병수는 마지막 피해자의 딸을 그 유언에 따라 입양해 키웠다. 그리고 시점은 현재가 된다. 이재 김병수는 늙고 노쇠한 치매에 걸린 노인이 되었다. 자기 개도 못 알아보고, 기억은 온전치 못해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 못 하는 게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의 살인은 똑똑히 기억이 난다. 너무 자극적인 기억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영혼이 살인에 매료되었기 때문일까?..
살인자가 치매에 걸린다는 설정이 독특해서 재미있었다. 1인칭으로 쓰여진 글이라 화자가 점점 정신을 잃어가는 모습을 잘 묘사한 것 같다. 약간 화자가 자기 자신에게 쓰는 일기 느낌이라서, 더 몰두해서 볼 수 있었다. 보다 보면 나도 기억이 없어지는 것 같고, 머리가 아프다. 내가 치매에 걸리는 것 같다.
옛날에 치매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았는데, 주인공이 혼란에 빠지며 끝나는 점이 이 책과 결말이 비슷해서 신기하다. 치매가 아무래도 기억과 정신을 잃어버리는 병이다 보니, 그 특수성에 집중하면 그렇게 되는 걸까? 화자가 온갖 혼란에 빠져 살고, 이를 고칠 수도 없으니 어찌보면 새드엔딩은 예정된 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세는 악화되면 악화되지, 나아지지도 않고. 거의 모든 질병, 자연을 정복한 인간에게 무서운 병이 아닐 수가 없다. 천천히 죽음을 향해 정신부터 사라진다는게 참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