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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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갖춘 사람을 일컬어 산소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이미지를 최대한 살려서, 화장품이나 소주광고에 이런 사람들을 등장시켜 제품에 깨끗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신문 뉴스에 보니, "2위 자리를 건 뜨거운 전쟁이 펼쳐졌다. 승부를 가른 것은 산소 같은 남자 이상민(삼성)이 종료 직전 던진 역전 3점포였다."라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문성아씨라는 트롯트 가수가 "당신은 산소 같은 여자"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습디다.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당신 없인 살수 없어요. 이 세상에서 오직 한사람 당신만을 사랑할래요. 세상에서 그대만한 선물이 있나요. 이토록 고귀한 선물 나에겐 하나뿐인 오직한 사람, 당신은 산소 같은 여자"
여러분은 혹시 누구에게 산소 같은 여자, 산소 같은 남자, 산소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듣고 싶지만 못 들어 보셨다고요! 옆 사람에게 한번 말해 봅시다. "00은 산소 같은 남자(여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들어야 말은 산소 같은 남자 혹은 여자가 아니라, "당신은 산소 같은 신앙을 가졌습니다!" "당신은 산소 같은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요즈음 안티 기독교인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온 라인, 오프라인을 통하여 교회를 비난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는 정도가 점점 더 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물론 안티들 가운데는 상당수는 그저 자기들과 코드가 맞지 않다는 것 때문에 그냥 무작정 비난하거나, 혹은 악령들의 지배를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그리스도인들이 순수성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실망과 안타까움으로 인하여 비난과 함께 질책을 하는 자들도 없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맑고 깨끗한 산소와 같이 정직하고, 건전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혼탁한 세상을 정화시켜 주기를 기대하였는데, 그런 기대에 미치지 못하므로, '그리스도인! 너 마저도!' 하는 허탈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물론 잘 하고 있는 것들을 내 세워 그들에게 반박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우리 교회가 과연 이 세상에 신선함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산소 같은 교회인가?" "나는 과연 산소 같은 신앙을 가진 산소 같은 그리스인인가?"생각하며 자기반성의 기회를 삼는 것도 필요할 줄 압니다.
오늘 저는 산소 같은 신앙을 가지신 사람을 소개하고, 그들의 신앙을 본받아서 오늘 이렇게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가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하여, 우리들의 가정, 나아가서 이웃, 직장, 사업장을 새롭게 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드립니다.
소개하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예루살렘에 살았던 나이 많은 시므온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여느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구약의 모든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을 위로해 주실 메시야(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너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하루는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모세의 법 즉 첫아들을 낳아 하나님께 바치는 법을 따라, 주께 그 의식을 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온 것입니다.
그 순간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 아기가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 곧 구원주라는 것을 알고는 그 아기 예수를 안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29-32) 시므온은 맑고 깨끗한 영적인 눈으로 구주를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들을 가진 자였고,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 구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의 감정과 이익을 따라 신앙생활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 감정에 맞고, 이익이 되는 것만 취하고, 그렇지 않는 것은 무시하고, 민족적인 정서와 자기들의 생각을 따라 지키고, 예배와 의식은 형식만 있고, 지도자들은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권력과 부를 축적하며, 자기들만 선택된 민족이라고 이방인들은 다 멸망을 받아야 한다며, 무시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국회구덩이 같이 혼탁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렇게 기다리던, 하나님의 약속하신 구세주 예수가 오셨을 때, 기쁨으로 맞이하여,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모습을 보고 자기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또 예수가 와서 자기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권위를 무너뜨리고, 불이익을 준다고, 오히려 배척하고, 박해하여 고난을 주며, 결국 죽이고 맙니다. 혼탁한 신앙생활의 표상입니다. 지금도 혼탁한 신앙은 사람을 죽이고, 교회를 파괴합니다.
시므온은 그런 세대에 그들과 함께 살면서도, 의롭고 경건하여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성경에 예언한 말씀 그대로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항상 성령께서 그 위에 계셨고, 때에 맞게 지시하셨고, 눈을 열어 예수가 구주이심을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시므온의 찬송의 내용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주의 구원이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즉 주의 구원은 이스라엘백성뿐 아니라, 만민 즉 모든 이방인들도 함께 구원이요. 그 만민의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이스라엘에 영광이 됨을 고백합니다.
그 당시의 선민사상으로 무장되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이방인들의 구원을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분명히 이스라엘을 비롯한 이방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함은 이미 선지자들을 통해 밝힌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을 괴롭힌 이방사람들에 대한 감정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관계없이, 이방인도 함께 구원하러 오신 예수를 구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오직 자기들만의 구원을 바라는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순수하고 깨끗지 못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시므온이 살고 있을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의 전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그런 자기민족적인 감정이나 시대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인간적인 감정과 이익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이방인의 구원을 인정하였고, 오히려 이방인의 구원이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 것을 이스라엘의 큰 영광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때문에 남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할 때, 같은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시므온은 자기들 때문에 남이 잘 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정말 산소 같은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 중에 북한 사람들을 도우는 일에 어떤 사람은, '저 00들 아직 회개하지도 않는데!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퍼다 주느냐! 그 인간들은 굶어 죽어도 싸다. 정신 번쩍 들게 둬야 돼!' 고 비난을 하며, 절대로 주면 안 된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첫째는 저들이 굶지 않아서 좋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저들을 먹이게 하시니, 우리에게 큰 영광이고! 우리나라에 큰 영광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도울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고, 우리로 이 일을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면 어떨까요! 시므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후에 이 시므온의 이 한마디의 말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초대에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이 예수만 믿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라는 논쟁이 크게 벌어졌을 때,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서서, 바로 이 시므온이 고백했던 내용 즉 "주의 구원이 만민과 이방을 비추는 빛"이라는 내용을 증거로 사용하였습니다.(사도행전15:14) 이로 인하여 복음은 날개를 달고 이방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시므온의 신앙이 산소 같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이권이나, 민족의 정서, 개인적인 생각등 그 어떤 것도 개입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불순물입니다. 산소 같은 신앙은 그런 요소들을 가미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감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말씀을 거스리고, 개인적으로 이익에 되지 않는다고 계명을 거부하고, 가문에 정서, 나라의 정서, 시대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사명을 거부하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그야말로 자기 기분 따라 신앙생활 하면, 맑고 깨끗하지 못한 혼탁한 신앙이 됩니다. 혼탁한 신앙은 혼탁한 세상이 맑게 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욕합니다. 이런 교회를 싫어합니다. 안티그룹을 만들어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여 교회를 향해 정면으로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이 세력을 이기는 비결은 같이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산소 같은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혼탁한 물에 신선한 산소가 공급이 되면, 시들시들해 지던 식물들이 다시 살고, 호흡이 곤란하여 죽어가던 생물들이 다시 살아나듯이, 이 혼탁한 세상에 신선한 산소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질 때 모든 안티가 사라지면서, 생명들이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