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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작가 ; 프루스트(1871-1922)
발행 ; 1913-27 (전 7권)
<프루스트>
파리 교외의 오퇴유(현재 파리 16구에 속함)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아실아드리앵 프루스트(프랑스어: Achille Adrien Proust)는 전염병 예방의학의 권위자이며 모친 잔클레망스 베유(프랑스어: Jeanne Clémence Weil)는 유대계의 부유한 집안 딸이었다. 9세의 천식 발작을 시작으로 평생 동안 고통을 받게 된다. 1882년 콩도르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일찍부터 문학작품을 가까이하여 학교에서 작문과 논문으로 상을 받기도 하며 재능을 발휘했다. 졸업 후에 군대에 지원 입대하여 1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파리 대학 법학부에 들어가 1893년 법학사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문학 살롱과 사교계에 자주 드나드는 한편 직업은 갖지 않고 문학에 열중했다.
최초의 저작 《즐거움과 나날(Les plaisirs et les jours , 1896)》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인지나 그 밖에 발표했던 소품과 단편을 모은 것이 다. 1895년부터 1899년에 걸쳐서 3인칭 형식의 자서전적인 장편소설 《장 상퇴유(Jean Santeuil, 1952)》를 시도하였으나 미완으로 그쳤다. 존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서>와 <참깨와 백합>을 번역하였다(1904, 1906). 후에 《모작과 잡록(Pastiches et mélanges, 1919)》과 《시평집(1927)》에 수록될 평론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활동은 모두 '유일하고 참다운 글'을 쓰기 위한 준비라 할 수 있다.
1906년 양친을 여읜 정신적 타격을 넘어서 《생트뵈브에 반대한다(Contre Sainte-Beuve, 1954)》을 쓰기 시작하며, 이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집필로까지 이어진다. 이후 프루스트는 죽을 때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몰두하였고, 총 일곱 권으로 구성된 이 방대한 분량의 작품은 1913년부터 1927년에 걸쳐 출판된다. 대전 이후 출간된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로 1919년 공쿠르상을 받아 일약 유명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 걸작으로 20세기 최대 작가의 한 사람이 되어 널리, 그리고 깊이 영향을 끼쳤다.
1912년에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원고 출판에 프랑스 출판사가 퇴짜를 놓았다. 세번째 출판사가 출판에 동의하긴 했지만 프루스트가 자비로 출판을 한다는 조건을 달았었다. 초기의 독자가 언급한데로 “이 712페이지 짜리 원고를 읽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알길이 없었다.” 도대체 이 책의 주제는 무엇인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결론이 무엇인가? 작가 앙드레 지드는 프루스트가 고상한 체하는 사교계의 속물로 잘 알려진 인물이라는 이유로 이 책의 원고를 읽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프루스트처럼 부유하고 까다로운 속물이 무슨 할말이 있었던 것일까?
결론적으로 보면 그의 작품은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을 정도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연령 미상의 젊은 주인공 남성은 독서애호가이고 수줍음을 타며 내향적인 인물이지만 기괴하거나 반사회적이지는 않다. 그는 자신의 모친을 사랑하며 베니스로 여행을 가고 싶어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나중까지 여행을 미룬다. 프루스트의 자전적인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르셀은 자연과 음악, 레스토랑, 호텔, 해변, 성당, 예술, 극장, 파리를 사랑한다. 그는 또 우정과 소녀들에 대한 공상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을 탐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가차 없는 아이러니와 예리한 시각으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성인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삶의 아름다운 부분들을 예찬하면서 언젠가 인간과 예술가로 성숙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창조해볼 수 있기를 꿈꾸고 있다.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독자를 반사경으로 비추고 있다. 프루스트의 경우는 돋보기를 들고 병적으로 기이한 자신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인식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프루스트의 작품을 읽고 모든 문단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의 작품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얻는 깨달음은 우리가 결코 자기성찰적이거나 솔직하지도 않고, 솔직함과 관련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고사하고 느끼는 것을 인정할만한 대담함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사랑에 대한 그의 시각을 논하자면, 사랑이 많은 굴곡과 불가사의를 내포하고 있어서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왔을때 너무나도 왜곡된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질투, 앙심, 학대로 불리우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면 그것을 거의 알길이 없을 것이다.
외부 세계에 있어 마르셀 프루스트는 핸섬하고 매력적이고, 재치있고 친절하고 박식하며 매혹적이고 놀라운 천재성을 갖고 있으며 영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또한 매우 부유한 부르조아 출신으로 프랑스의 일부 최상류 집단에서 일원으로 모시기를 갈구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쯤에서 해볼만한 질문은 그가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무엇이 잘못됐는가, 매우 쾌할한 그가 왜 철저하게 고독했으며 슬픈 정서를 지니고 있었는가가 아니라 작가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그가 펜을 들기까지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하는 점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그의 작품에 있지 않다. 그 대답은 바로 그의 작품 그 자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프랑스어: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1913년부터 1927년까지 쓴 일곱 권의 장편 소설이다. 작품의 길이와 '마들렌의 에피소드'로 유명한 '비자발적인 기억'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루스트 현상’이란특정한 냄새나 맛, 소리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 말은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프루스트의 유명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성인이 돼 가는 주인공이 어느 날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먹는 순간 마음이 기쁨으로 넘쳐 오르면서 예전 기억들이 떠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유명한 장면 때문에 '프루스트 현상'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다. '과자 부스러기가 섞여 있는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나의 몸 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고, 뭐라 형용키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이, 외따로,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솟아나 나를 휩쓸었다. 그 쾌감은 사랑의 작용과 같은 투로, 귀중한 정수를 채우고, 그 즉시 나로 하여금 삶의 무상을 아랑곳하지 않게 하고, 삶의 재앙을 무해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삶의 짧음을 착각으로 느끼게 하였다.'
사실 과거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에 있는 게 아니다. "과거는 지성의 영역 밖,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물질적인 대상 안에 숨어 있다"는 프루스트 말처럼 지나간 일들은 억지로 떠오르기보다는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갑자기 떠올라 나를 엄습하는 때가 더 많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전체 7편으로 구성된 소설인데 주인공은 나(마르셀)다.
1인칭 고백 형식으로 부르주아 출신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나'는 풍부하고 예민한 공상가적인 인물로 사교계를 출입하며 인생의 어두운 이면에 절망한다. 사회적인 명성, 여인에 대한 동경 등에 회의를 느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마들렌 과자를 먹다가 무의식적으로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자각한다. 시간의 위대함을 알게 되면서 그가 찾아낸 것은 예술적 자아다. 유추하자면 예술만이 시간의 파괴력을 이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는 시간성이다. 시간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이야기들이 모이는 곳은 '스완네 집' 같은 하나의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이 몽환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보니 줄거리를 말하기조차 모호하다. 무슨 기하학 퍼즐을 보는 것 같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간은 전지전능하다. '나'와 주변 모든 인간들은 시간 앞에서는 그저 덧없이 흘러가는 존재일 뿐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동경했던 사람들이 늙고 초라해진 모습으로 게르망트가 파티에 참석한 모습을 길게 묘사한다. 소설에서 인생은 언제나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일 뿐이다. 시간에 풍화되어 버린 인생을 관조적으로 그리다 보니 소설은 철저하게 역동적인 사건이 아닌 내적 풍경을 담고 있다. 바로 이 점이 프루스트 소설의 묘한 매력이다. 물론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집중해 읽으면 한 구절 한 구절 잠언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교향곡을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현대소설의 원전이라고 할 만큼 모든 소설적 실험이 숨어 있다. 무의식에 대한 탐구, 액자 형식의 시도, 회상에 기댄 의식 흐름 기법, 시간성과 공간성을 무시한 소설적 구조 등은 요즘 소설가들도 쉽게 운용하기 힘든 기법들이다.
그 모든 것을 대성당을 짓듯 한 편의 소설에 담아냈으니 그 가치는 대단하다. 프루스트는 천성적으로 병약한 공상가였다. 심한 천식 환자였고, 한때는 지나친 쾌락을 추구하기도 했으며, 어머니 죽음에 충격을 받아 평생 외톨이로 지낸 사람이었다. 그 외톨이가 방에 처박혀 어린 시절 낙원을 회상하면서 10년 동안 매달린 소설이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줄거리)
제 1권 – "스왕네 집 쪽으로" - *마들렌- 프루스트 현상의 표상
스왕네 집 쪽으로(Du côté chez Swann)」라고 이름 붙여진 첫 권은 마르셀의 유년기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그가 매년마다 부모와 함께 콩브레에서 보냈던 여름 휴가의 기억들이 그려진다. 마르셀이 이 초창기 시절에서 떠올리는 유일한 기억은 잠자리에 들기 전의 인사를 거부했던 연극이다. 그 집안의 친구인 스왕이 저녁마다 찾아오면 당시 열 살배기인 마르셀은 어머니에게 받고 싶어 했던 잘 자라는 뽀뽀도 받지 못한 채 어김없이 잠자리로 가야 했다. 어머니의 관심을 계속해서 잃게 되자 이것이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되고, 그 내면적 상처는 이후 마르셀에게 여성에 대한 상실의 불안과 공격적 질투심이라는 형태로 남게 된다. 잠자리 인사의 에피소드가 유년기의 유일한 기억인 반면에, 저 유명한 마들렌 과자 맛의 느낌은 돌연히 유년기 당시에 있었던 인물들, 장소들과 더불어 그의 기억을 다시 살아나게 만든다.
*마들렌- 프루스트 현상의 표상.
제 2권 -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
사춘기로 들어선 마르셀은 난생 처음으로 성적인 경험을 하게 되고, 스왕의 딸인 새침떼기 질베르트를 샹젤리제에서 재미 삼아 만나 잊지 못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천식에 시달리던 마르셀은(프루스트도 그랬다) 열일곱 살 때 그의 할머니와 함께 노르망디 해변의 발베크로 해수욕을 하러 간다. 그곳에서 그는 로베르 드 생 루를 사귀게 된다. 생 루는 대단히 매력적인 젊은이인데, 훗날 동성애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질베르트와 결혼한다. 마르셀은 생 루의 삼촌 샤를뤼 남작도 만나는데, 그는 이후 동성애를 통해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르셀은 발베크에서 자신의 본격적인 사랑의 주인공 알베르틴을 만나게 된다.
제 3권- 게르망트가의 사람들
「게르망트가의 사람들(Le côté de Guermantes)」에서는 마르셀이 그의부모와 함께 파리로 이주한다. 그들은 이제 게르망트 저택에 속하는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마르셀은 (늘 그랬던 것처럼) 먼발치에서 게르망트 공작 부인을 사랑한다. 마침내 그 부인을 만났을 때 그는 (역시 늘 그랬던 것처럼) 실망한다. 당시 사회생활의 중심인 살롱의 끊임없는 대화 소재는 유대인 대위 드레퓌스 사건이다.
제 4권- 소돔과 고모라
소돔과 고모라(Sodome et Gomorrhe)」의 주요 테마는 동성애다. 처음에 마르셀은 우연히 샤를뤼 남작의 동성애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남작은 이 동성애 사건으로 점차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그 사이 알베르틴을 다시 만나게 된 마르셀은 그녀 역시 동성애적 성향이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제 5권 - 갇힌 여자
갇힌 여인(La Prisonniére)」에서 마르셀은 알베르틴을 자기가 있는 파리로 불러들인다. 그녀는 그의 집에서 기거한다. 알베르틴이 외출하면 그는 질투심에 불타 그녀를 감시한다. 소유욕에 사로잡힌 마르셀의 태도 때문에 알베르틴은 어느 날 아침 그 집을 떠나고 만다.
제 6권- 사라진 알베르틴
「사라진 알베르틴(Albertine disparue)」에서 마르셀은 친구 생 루에게 알베르틴을 수소문하여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마르셀은 알베르틴이 승마를 하다 사고가 나서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 7권- 되찾은 시간
제7권이자 마지막 권인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é)」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 마르셀은 게르망트 공작 저택으로 마티네를 방문한다. 그 집의 서재에서 마르셀은 문득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기억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르셀은 이런 깨달음을 오래 간직하기 위하여 소설을 쓰고자 결심한다. 그래서 프루스트의 소설은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처음으로 회귀하게 된다. 마르셀은 이 소설을 쓰게 되고,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는 비로소 독서를 마치게 되는 셈이다.
<여러 서평들>
프루스트의 분신임을 짐작케 하는 화자가 파리의 사교계를 드나들면서 세월이 흘러 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살롱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화자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분명하지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간이라도 나에게 작품을 완성시킬 만한 오랜 시간(longtemps)이 남아 있다면, 우선 거기에 공간 속에 한정된 자리가 아니라, 아주 큰 자리, 그와 반대로 한량없이 연장된 자리 ‘시간(temps)’ 안에 차지하는 인간을 그려보련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되찾은 시간, 국일미디어판, 499쪽)”라고 마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흩어지는 자신의 기억을 붙들어두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한 글쓰기인 것 같지만 실상은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탐구여행이기도 하다.
알랭 드 보통이 쓴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들>은 유예진교수가 쓴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과 함께 자신의 인내와 싸우듯 읽은 기억만이 남아 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예진교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열 갈래 길’이라는 부제가 달린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에서 프루스트가 활동했던 당시 프랑스 문단을 지배했던 작가들을 활동 시기에 따라 소개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새로운 시각에서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반면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들>은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어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한 프루스트의 작품과 편지 그리고 대화 등을 통하여 우리가 삶을 현명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첫 번째 주제,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비롯하여 ‘나를 위해서 읽는 방법’, ‘사랑 안에서 행복을 얻는 방법’ 등등의 제목들을 그런 의미로 읽을 수도 있겠다. 여러 가지 방법들 가운데 책을 읽는 방법에 눈길이 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고전들을 읽기 시작한 이유이다. 꼬리를 무는 책읽기가 드디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이르러 폭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보르헤스,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이탈로 칼비노가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정의한 고전의 의미 가운데 “고전이란 독자에게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처음 읽으면서도 마치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데,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라는 정의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민음사에서 올 초 새로운 번역으로 내놓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첫댓글 너무 방대하고, 문장이 어려워서 읽다가 중단하고, 1권으로 압축해 놓은 책을 읽어 봤습니다. 역시 어려웠어요.
이렇게 정래 해 놓은 것을 보니 좀 낫네요.
코로나 19는 저에게 '로마인 이야기' 15권과 그에 관련된 2권을 선물 했습니다.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