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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추수 감사 주일)
시편 138:1-8 감사가 믿음입니다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먼저 감사의 곡식을
추수하시길 바랍니다.
감사 풍년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옛날에 비해 돈은 많고,
먹고 살 것도 많고,
가지고 있는 것도 많은데
감사는 적거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행합니다.
여러분, 감사가 믿음입니다.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많은 은혜를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은
감사하는 가족이 많은 가정입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교회의 건강성은 성도들의 감사를 통해서
유지됩니다.
음식 조리법을 보면 대개 한 가지
촉매 요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촉매제란 다른 요소들과 합하여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거나
유발하는 물질을 말합니다.
음식은 이런 촉매제를 통하여
맛있게 만들어 집니다.
신앙생활에도 촉매제가 있습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우리에게 감사가 있으면
맛있는 신앙생활이 됩니다.
그러나 감사가 사라지면
염려와 불안이 찾아옵니다.
이 염려와 불안이 우리에게
어떤 행패를 부립니까?
우리의 삶을 조각조각 분열시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사방으로 잡아당겨
중심을 잃게 하고 맙니다.
나의 생각과, 계획과, 수행해야 할
많은 일들을 사정없이 찢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복된 생애를 사는 비결은
오직 감사에 있습니다.
성공했을 때도 감사하고,
실패했을 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도 감사하고,
질병에 걸렸을 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좋을 때도 감사하고,
환경이 악화되었을 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해야 내 인생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2:7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사도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간절히 부탁한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 뿌리를 내리고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감사를 넘어서
최대한으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감사가
극히 부족한 시대입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런 경향을 보입니다.
지금도 서로가 얼마나 비난을 하며
물어뜯고 있습니까?
뉴스만 보면 그런 모습이 나와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국민도 이들을 통해 알게 모르게
그런 모습을 배우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오로지 자기들만 옳습니다.
자기들만 최고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를 온통
헤게모니(hegemoy)의 현장으로 만듭니다.
서로를 향한 감사의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의 많은 국민이
대통령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탄핵을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
좋다고 만족했던 시절이 있었습니까?
특히 이런 일에는 정치인들이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이번 1027 연합 예배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서로 마음이 나뉘어 갈등하고
질시하고 공격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속상해하셨을까요?
이런 행태로는 사회를 향한
기독교 운동이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비웃음만 사게 됩니다.
자꾸 옳고 그름만 따지면
절대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니고
지엽적인 방법론 안에서는
모두가 관대하게 수용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페이스북과 많은 단톡방에
감사 봉헌을 올리고 있습니다.
매주 1회 171번째 감사 봉헌을
올리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거의 7가지 항목으로 감사하게 하십니다.
페이스북과 단톡방에도 이런 유형의
감사 글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들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조회수가 많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 감사를
기뻐하신다는 증표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불평 많은 이 세상에서
감사의 선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 세상을 감사로 물들이고 싶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저와 함께 범사에 감사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의 씨앗을
퍼트리는 일에 앞장 서시길 바랍니다.
언젠가는 감사에 대한 책도
출간하고 싶습니다.
이미 글은 다 써놓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개척 당시부터
오후 예배에서 감사 봉헌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순서를 따라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중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변치 않고 하나님께
감사 봉헌을 드리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이 감사 봉헌이
다시 복구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회,
가장 행복한 교회는
감사가 넘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우리가 가게 될 천국도
감사만 있어서 행복한 나라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감사하는 자만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병상에서 이런 일기를 썼습니다.
“하나님! 제게 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병을 통해 주실 축복을 받고
감사를 배우기 전까지는 이 병을
거두지 마소서!"
파스칼은 자기에게 들어 온 질병이
축복의 도구임을 믿고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자세를 갖기 전까지는
범사에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불신자라도 감사한 것은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불평할 것도
감사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감사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가 바로 믿음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다윗도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언제나 무엇이나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잘될 때도 감사하고,
안 될 때도 감사했습니다.
심지어 죽음의 위험 앞에서도
감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에는 전천후 감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은 다윗의 감사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여호와여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은
그들이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고대에는 부족이나 국가 간의 전쟁을
신들의 전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승리는
곧 그 국가의 신이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열왕이 주께 감사했다"는 것은
이미 다윗이 모든 열국을
평정했음을 시사합니다.
다윗이 이 시를 쓴 시점은
정치적으로 최고의 절정기였던 것입니다.
인생의 정점에 올랐을 때도
그는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입니다.
과거에 다윗이 극도로
비천한 환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은 용기와 소망을 주셨으며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현재 누리고 있는 영광이
그의 능력이나 인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마음이 겸손한 자를
주시하시며 그들에게 변함없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감사로 기억하는 자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자신을 거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참된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내 삶의 여정에서 세심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며
평안하게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안전히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미리미리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까?
성공한 자녀입니까?
출세한 자녀입니까?
아닙니다.
잠깐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할 지 몰라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또다시 자녀로 인해
가슴 철렁하게 되고 한숨짓게 됩니다.
부모의 은혜를 알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감사하는 자녀가 효도하는 자녀입니다.
기왕에 한가지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가족이 무엇을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딱 한 번만 말하십시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 신경질을 내며 지적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서로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번 이야기한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용서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
변화를 이끌어 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집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욱더 큰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미국의 바우서 박사가 유명합니다.
그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과학자입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바우서 박사는 나이 40에
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교회 청소를 감당했습니다.
80세가 넘도록 교회를 청소했답니다.
그분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청소부 3명을 고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미국은 이렇게 땅이 넓은 교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가 젊었던 시절,
청소부 3명이 모두 교회 일을
그만두는 일이 생겼습니다.
불만 때문에 그랬던가요?
이렇게 되자 바우서 박사가
담임목사님에게 찾아가서
자신이 교회 전체 청소를 맡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은 힘들어서
안 될 거라고 하셨지만,
워낙 간절한 요청이었기 때문에
허락해 주었습니다.
청소 허락을 받은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더 많이 청소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크게 울면서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 후 신비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느날 30여 명의 물리학자들이
자리에 앉아서 회의를 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닥에 큰 글자가 나타났습니다.
이 글자는 물리학에 관한
엄청난 이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닥에 심오한
물리학 이론을 써 주신 것입니다.
그는 이 글을 발표했고
드디어 노벨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이 물리학 이론을
연구한 일이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바닥에
글자로 써서 알려 주셨을 뿐입니다."
그분은 세계에서 저명한 과학자로서
인정을 받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저도 한 겨울날 군인 교회에서
손을 호호 불며
물걸레로 차가운 강단을 닦고 있을 때
주님께서 제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하여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고린도후서 9:15입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가 큽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최고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가 이 사실을
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있는 곳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마귀가 있는 곳에는 불평만 있습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로 잘 되었을 때
교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정점에 올랐을 때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인자하신 하나님, 성실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과거 자신이 극도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용기와 소망을 주시고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윗은 현재 누리고 있는 영광이
그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베풀어 주십니까?
이렇게 마음이 겸손한 자에게
변함없는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다윗은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본문 7-8절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어려운 상황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미래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자신의 고난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젖어
푸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설사 환난 가운데 처하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비천과 고난에 처할 때
적들은 기뻐하겠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짧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손이
곧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은 능력을
동반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향한
사랑의 감정만 있고 능력이 없으시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는
그 사랑을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고도 영원하며
능력 있는 사랑을 확신하는데 있어서
나에게 가장 방해가 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이 방해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초등학교 시험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샌드위치 식빵 한 면에만
버터를 바르는 이유는 무엇인지 쓰시오.
두 면에 바르면 너무 느끼해서...
다음 도형이 사각형이 아닌
이유를 써 보십시오.
원래는 사각형인데 찢어져서...
다음과 같은 경우에 알맞은 인사말은
무엇인가요?
옆집 아주머니께서
떡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안 사요.
모두가 엉뚱한 대답밖에 없지요.
우리도 내 인생의 정답을 말할 때
빗나간 생각을 하면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답을
쓸수가 있어야 합니다.
감사가 정답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언제나 정답입니다.
감사가 오답인 경우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까?
남이 나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고린도전서 15:57-58에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날 구원하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만이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보장합니다.
결국 더욱 감사하는 자가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며
기도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앞으로 어떤 고난이 찾아온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설령 환난 가운데 처하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권능의 오른손으로
곧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고 나라가
부강해졌습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도 감사하여
복 받으시길 바랍니다.
복 받고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도 감사하고 사람에게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모두가 감사의 꽃밭을 가꾸며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여러분, 밥을 먹으면서도
감사하고 있습니까?
김치를 먹으면서도 감사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먹든지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감사하고 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이런 감사를
가르치는 부모가 되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할 때
하나님께서 계속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음에도
만족을 하지 못하고 불평만 일삼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비극적인 사실을 기억하며
정말 천국에 들어가길 원하시면
하나님의 은혜에 무조건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 감사하듯이
내 주변인에게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바라시는 것은
오직 감사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의 사람이 되십시오.
바로 감사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