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10-07-07 19:10 조회 : 2195 |
| | | 다시 듣는 나나 무스쿠리
김창식 월드컵 예선 첫 경기인 그리스 전에서 우리 팀은 놀랄 만한 세련된 경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칼날 같은 패스, 간결한 볼 터치에 의한 게임 전개, 질풍 같은 드리블 돌파…. 스코어는 2대 0이지만 1~2 골 더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경기였습니다. 상대국 그리스는 요즘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친숙하면서도 동경을 자아내는 나라로 다가옵니다. 아마 고대 그리스가 신화의 발상지이고 현대 서구사회의 기본 틀을 짜놓은 철학과 민주주의의 나라인 때문이리라 여겨집니다. 그보다 필자가 좋아하는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를 배출한 나라여서일 것입니다. 자유칼럼에 올린 저의 첫 글도 나나 무스쿠리의 음악적 생애를 다룬 것(2008. 9. 4 게재)이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나나 무스쿠리와의 조우가 생각납니다. 저는 항공회사 직원으로 독일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지요. 어느 휴무 날 프랑크푸르트 시내 오페라 거리를 걷고 있는데 광고 벽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어요. 미인이라고 할 순 없지만 검은 테 안경을 쓰고 미소 짓고 있는 지성적인 여자. 바로 나나 무스쿠리, 그녀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 우리나라 트윈폴리오가 불러 히트한 노래 '하얀 손수건'의 원곡이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노래임을 알고 있었던지라 반가움이 앞섰습니다.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소냐!
그날 저녁 그녀의 공연을 관람하였습니다. 무대에 낮은 조명이 켜지면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낯익은 여자가 천천히 노래를 부르며 걸어 나오더군요. "Leise fliehen meine Lieder~(명랑한 저 달빛 아래 들리는 소리~)"로 시작하는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중 제 4곡 '세레나데(Serenade)'. 이어진 '사랑의 기쁨' 등 잘 알려진 몇 곡의 노래…. 그때 느꼈던 도취와 감격은 지금도 손에 잡힐 듯합니다. 전 숨이 멎을 것 같은 몰아지경 속에서 한 줄기 먹먹한 슬픔을 느꼈지요. 영혼의 정화를 체험한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는 나나 무스쿠리에 대해 '현존하는 세계의 어느 소프라노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음성"이라고 찬탄했습니다. 최고 수준의 정통 성악가들도 그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지만 특유의 투명한 목소리는 세미클래식이나 스탠더드 팝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타레가의 선율을 허밍으로 부르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은 오케스트라와 어울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듣는 듯'합니다. 호아킨 로드리고의 연주로 유명한 '사랑의 아랑훼즈(Aranjuez, Mon Amour)'는 언 땅에 눈물 스미는 듯 애잔한 보컬이 일품입니다. '용서하고 잊어라(Forgive and Forget)'도 특별합니다. 푸치니의 나비부인 중 '허밍 코러스'를 번안해 부르는데 한 줄기 청량한 기운이 사지백해로 퍼져나가며 관용과 포용의 정신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영국 그룹 무디 블루스의 록 오페라가 원곡인 '하얀 빌로드 같은 밤(Nights in White Satin)', 제니퍼 러시와 셀린 디온이 불러 히트한 노래를 리메이크한 '사랑의 위대한 힘(The Power of Love)'도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소화하여 온유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독일어 앨범인 <<웃고 울었다(Ich Hab Gelacht Ich Hab Geweint)>>에는 나나 무스쿠리 보컬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보석처럼 빛나는 노래들이 선곡돼 있습니다. '섬(Meine Insel)', '점점 더(Mehr und Mehr)', '아테네의 흰 장미(Weisse Rosen aus Athen)', '일곱 송이 검은 장미(Sieben Schwarze Rosen)', '빛으로 가득 찬 세상(Die Welt ist voll Licht)', 'Wenn Ich traeum(영화 '쉬리' 주제가인 When I Dream의 독일어 버전)' 등 주옥같은 발라드가 가득합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하수구를 흐르는 거친 물소리'라고 폄하받기도 하는 독일어가 '천상의 언어'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운 생명력을 갖춘 언어로 탈바꿈합니다.
나나 무스쿠리 노래의 본령은 기품 있는 투명한 목소리와 가슴에 스며드는 짙은 호소력입니다. 차제에 음악을 비롯한 예술의 효능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예술은 휴식과 감동을 주고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때로 메시지의 전달과 성찰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나나 무스쿠리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위무(慰撫)하고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여 높은 곳으로 인도합니다. 대저 '영혼의 구원'이야말로 뭇 예술이 구현하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이자 궁극적인 테마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녀는 제가 흠모하는 '마음속 누이'입니다. 아내가 허락했느냐고요? 물론이죠. 뿐 아니라 아내도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 게재 2010. 6.23(수) 김창식 |
| | 강승택 | 10-07-08 21:22 |  | | 나나무스쿠리, 이름만 들어도 반갑습니다. 그 녀의 대전 공연을 예매하고 얼마나 마음이 설레었던지, 하지만 공연 자체가 취소되었지요. 이유는 건강상의 이유로 기억합니다만 저의 가슴에 지금도 남아있는 청순한 이미지는 세월이 가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나무스쿠리를 사랑하는 김창식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 | | | 김창식 | 10-07-09 16:47 |  | | 강승택 선생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나 무스쿠리는 우리 곁의 뮤즈입니다, | |
| | | 박원명화 | 10-07-10 09:46 |  | 반가운 이름 '나나무스쿠리'...노래를 좋아해 한 때 듣고 또 듣고 하던...추억 같은 리듬이 세삼 가슴으로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감동이 뒤따라오지요. 이렇듯 여러분야를 듣고 보며, 글로 창출하신 김창식선생님의 견문이 세삼 놀랍습니다. | |
| | | | 김창식 | 10-07-10 14:06 |  | 과찬이십니다, 박원명화님. 워낙 제가 나나 무스쿠리를 흠모해서요. ^^ 그녀의 노래는 어지럽고 산란한 마음을 평안하게 해줍니다. | |
| | | 최복희 | 10-07-11 06:17 |  | 다방면에 조예가 깊으신 김창식 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그의 노래를 저도 다시 듣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 |
| | | | 김창식 | 10-07-11 10:23 |  | 최복희 선생님. 높은 곳으로 인도함은 원래 천사의 직분인데 그렇다면 나나 무스쿠리는 우리 곁의 천사인가요...? | |
| | | 임재문 | 10-07-11 12:16 |  | | 음악에 대해서 무뢰한인 제가 그래도 나나 무스쿠리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상당한 수확입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음악세상 열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 |
| | | | 김창식 | 10-07-11 14:11 |  | 임재문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오랜 시간 에둘러 처음 쓴 글도 나나 무스쿠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 |
| | | 김자인 | 10-07-13 17:37 |  | | "검은 테 안경을 쓰고 미소 짓고 있는 지성적인 여자" 김창식 선생님, 나나무스쿠리의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현장에서 직접보셨으니 읽는이에게도 현장감이 느껴집니다. 다방면에 조예가 깊으신 선생님 다운 글이네요. 나나무스쿠리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 |
| | | | 김창식 | 10-07-14 12:29 |  | 김자인 선생님 그간 안녕하신지요. 저도 나나 무스쿠리 얼굴을 떠올리면 벌써 그녀의 노래가 들려온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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