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드라마가 그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역대 다른 역사 드라마에 비해 횟수를 줄여 방영되는 만큼 유독 이 드라마에서 이방원은 킬방원이란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포은 정몽주를 비롯해 조선건국에 반대하거나 방해가 되는 인물을 처치했고 조선이 건국되고 난 뒤 세자책봉을 둘러싸고도 1차왕자의 난을 일으켜 삼봉 정도전을 비롯해 자신의 이복동생들을 처단했다. 물론 이방원의 살인행위가 정당하냐 또는 명분이 있느냐를 논하기 이전에 권력을 잡기 위해 피를 많이 흘린 것은 사실이다. 결국 그는 왕위에 올랐고 무소불위 권력의 소유자가 됐다. 그는 이제 마지막 정리작업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태종 이방원 드라마에는 스포일이 없다. 한국 역사에서 워낙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고 이만큼 더 많이 드라마나 영화로 많이 제작된 역사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의 행적이 요즘 다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이 시대의 상황과도 맥이 많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지금 이 시점을 미리 예상하고 제작되었을리 만무하다. 드라마 제작자들이 쪽집게 예언가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이 시대에 묘한 교훈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은 지나친 예감일까. 역사교육을 @무시하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의 역사 드라마는 역사 강의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뻔한 드라마 구성이지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태종은 자신의 부임이후 발생한 최초의 난인 조사의의 난을 진압한다. 조사의는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친척으로 왕세자 방석이 제거된 것에 대한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난을 일으켰다. 조사의가 반란을 일으킨 곳은 태조 이성계의 수하가 많은 지역이어서 이방원에 불만이 많은 지역민과 여진족들이 합세해 일으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직접 난을 지휘했는지 여부는 아직 논란거리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사안이다. 태종은 조사의의 난을 직접 진압하고 아버지 태조를 궁으로 모시게 된다. 철천지 원수가 되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을 풀어줄 계기로 삼은 것이다. 매일 아침 문안인사를 올리면서 태조와 태종은 아주 조금씩 가슴속에 맺힌 앙금을 없애는 일을 한다. 태종의 탕평책가운데 하나이다. 포은 정몽주의 명예를 회복시키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태종 이방원은 주변 정리를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자신을 왕으로 만든 일급 공신들 가운데서 시범케이스를 찾아낸다.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맞지만 겸손하지 않고 그 위세를 내세우며 훗날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의 권위에 도전하고 국정수행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거이이다. 그는 1,2차 왕자의 난에서 큰 공을 세운 핵심 일등공신이다. 이거이의 장남은 이성계의 장녀이자 태종의 누나인 경신공주의 남편이며 차남은 태종의 장녀 정순공주와 결혼했으니 태종의 사돈으로 조선 왕실과 이른바 겹사돈인 인물이다. 그가 얼마나 위세가 당당했겠는가. 태종은 말한다. 공신이라고 오만과 특권을 가진 자는 이제 자신의 옆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앞으로 행보에 걸림돌이 되거나 지탄이 되는 인물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아주 강한 의지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태종 이방원의 마지막 칼은 바로 자신의 처갓집으로 향한다. 이방원을 왕으로 만든데 정말 대단한 일을 한 조직이 바로 그의 처갓집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신의 계모인 신덕왕후 강씨의 농간으로 세자책봉이 엉망이 되고 자신이 결국 킬방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이가 바로 자신의 계모인 것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다. 아버지 이성계의 판단이 흐려진 것도 바로 계비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방원이다. 처갓집 그러니까 외척세력에 대한 견제와 정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 바로 이방원이었던 것이다. 이방원의 부인과 처남 그리고 장인 장모들 모두 그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지만 결국 그것이 그의 앞날의 행보에 걸림돌 그리고 모난 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그는 판단한 것이다. 또한 그의 아들 즉 세자의 앞날을 위해서도 그렇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방원은 킬방원의 마지막 칼을 자신의 처갓집에 꽃아 넣는다. 꼭 그렇게 했어야 했느냐는 역사가들의 지적도 있지만 태종과 그의 아들 세종의 행보를 감안하면 그의 판단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태종 이방원의 행보가 이 시대에 주는 교훈이다. 그 속 이야기를 더 이상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대단한 스승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겨울철에 난로를 피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불쏘시개와 장작의 역할을 말이다. 난로에 불 피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처음 불씨를 살리기 위해 불쏘시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가. 불쏘시개가 없다면 나무에 불이 붙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그 다음의 불은 장작이 맡는다. 이제 불쏘시개는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불쏘시개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세상이치가 그런 것이다. 불쏘시개가 계속 남아 있으면 오히려 불편함을 주게 된다. 거대한 불이 피어오르기 위해서는 불쏘시개는 그정도 역할에 만족하고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난로가 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태종 이방원은 이 시대에 중요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그 메시지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얻을 것인가 아닌가는 관련된 인물들의 몫이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오만과 특권속에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잡음과 오명을 남길 것인가 또한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교훈을 얻지 못하는 조직에게 또 다른 승리의 여신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또 다른 교훈이다.
2022년 4월 10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