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인다 / 詩 박노해
가을이 오면 창밖에
누군가 서성이는 것만 같다
문을 열고 나가 보면 아무도 없어
그만 방으로 돌아와 나 홀로 서성인다
가을이 오면 누군가
나를 따라 서성이는 것만 같다
책상에 앉아도 무언가
자꾸만 서성이는 것만 같아
슬며시 돌아보면
아무도 없어
그만 나도 너를 따라 서성인다
선듯한 가을바람이 서성이고
맑아진 가을볕이 서성이고
흔들리는 들국화가 서성이고
남몰래 부풀어 오른 씨앗들이 서성이고
가을편지와 떠나간 사랑과
상처 난 꿈들이
자꾸만 서성이는 것만 같다
가을이 오면 지나쳐온 이름들이
잊히지 않는 그리운 얼굴들이
자꾸만 내 안에서 서성이는 것만 같다
#서성인다 #박노해 #노동의새벽 #얼굴없는시인
♣ 박노해 : 시인, 사진작가, 혁명가
1957년 전남 함평 출생.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 출간.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의 필명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이라 불렸다. 1985년 노동자들의 정치조직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을 심상정, 김문수 등과 함께 창립하였고, 1987년 노동자계급해방투쟁동맹을 결성했다.
1989년 지하조직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해 급진적인 사회주의 혁명투쟁을 주도하였고, 1991년 3월 10일 안기부에 의해 체포되어 고문 끝에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수가 되어 감옥 독방에 갇혔다. 1998년 7년여 만에 석방. 이후 민주화운동유공자로 복권됐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2000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라며 권력의 길을 뒤로 하고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어 평화 활동을 펼쳤으며, 전 세계 분쟁 현장과 빈곤지역, 지도에도 없는 마을들을 걸으며 진실을 기록해왔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자급 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농부마을’을 세워가며 새로운 사상과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저서로는 ‘노동의 새벽’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걷는 독서’ ‘너의 하늘을 보아’ 등이 있다. 사진전 ‘광야’ ‘나 거기에 그들처럼’ ‘다른 길’ 등이 있다.
첫댓글
오늘은 유명하신 거목 의 시인님 글을 올려 주셨군요 ~
가을의 표현이 어쩌면 저리 담백할까요 !!!
가을이라는 계절은 참 오묘 합니다
그리움이 동반 되는 계절
아마 모든걸 비우는 계절이라서 그럴것 같습니다
음악 너어무 좋습니다
참으로 멋진 시인인란 걸 이 詩를 통해서도 느낄 수가 있어 좋더라구요... 고맙구 감사해요. 행복한 금욜 밤 되세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10.19 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