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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
오원성
경기 침체로 울적한 사회의 한 가운데 서서 언제 다가올지 모를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마음 조이고 있는 것은 내게만 오는 불행이라
불평한다.
심리학자 제임스 링게는 '인간은 슬프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고
울기 때문에 슬픈 것’이라 했는데 내가 그와 같은 사람은 아닐는지.
시 낭송으로 마음에 향기를 심어 조급함을 달래고 주위와 더불어
슬기롭게 살아가자고 자위해 본다.
지난 6월 중순경 아침 신문을 펼치다 시선이 머문 곳이 있었다.
시 낭송 대회?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주최측에 궁금증을 물었더니 한 분을 소개시켜 주었는데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현재 대전충청시낭송협회 회장이며 극단
(劇團)아낙의 대표이기도 했다. 동아방송 성우로 수년간 근무했던
경력이 있고 98년 대상 수상자란다. 나이 탓을 하며 가능성을 묻
는 내게 ‘무슨 상관있느냐'고 희망을 주셨던 그 분으로 인해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호기심에 도전장을 던졌다.
나의 시 낭송대회 참여는 허허 벌판의 사막에 땅을 파서 오아시
스를 만들고 기둥을 세워 집을 짓는 것처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그렇게 시작했다. 음악처럼 악보도 없는 시 낭송의 첫 발
은 참으로 어려웠다. 셀프서비스(selfservice)라고나 할까? 자신이
감정에 맞게 스스로 노력해야만 했다. 시집을 여러 권이나 사서
내게 어울리는 것을 찾던 중 서정주 시인의 초기 작품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그 처절했던 아픈 심정을 그린 ‘바다’라는 시가 내게
맞을 것 같아 선택했다. 처음 몇 일은 외우는데 보내고 그 다음은 마치
일제시대 나라를 잃고 탄광에서 모진 고생을 하시던 아버지의 한을
풀 듯이 감정을 잡았다.
이웃에 소음 공해를 줄까 신경이 쓰여 무더운 여름날 바람 한 점
없는 한 평 짜리 공간 화장실에서 문을 꼭 닫고 땀을 뻘뻘 흘리며
극성스럽게 연습했다. 운전할 때는 녹음테이프를 틀고 옆에서 누
가 보든 무드를 잡고 목청을 돋구니 졸리움을 참는 데는 최고였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중얼중얼 거리며 아마도 수백 번은 반복했을 게다.
목표를 세웠으니 최선을 다 하자고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런데 신은 이런 나의 노력을 외면하려는 것이었을까? 이날 본
우울함 때문이었던지 양쪽 사에서 회의가 소집되었기에 난감했다.
한 달간 들인 정성을 포기해야 하다니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침에
갑자기 복통이 났다고 하자. 그러나 밤이 깊어 갈수록 불안은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새벽이 되니 마음이 변했다.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현명하다. 대회야 내년에 또 기회가 있고 요즈음 같은
I.M.F.시대에 겁도 없이... 하필이면 토요일 날 회의를 한담?
혹시 늦게라도 참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여섯 번째인
내 순서를 마지막인 열 일곱 번째로 바꾸어 줄 것을 주최측에 전하고
출연자의 양해를 구했다. 새벽에 신탄진을 출발하여 성남 본사에
도착하니 어깨가 뻐근하다. 몹시 속이 상해서 그랬으리라.
회의는 끝났지만 실적이 좋지 않아 분위기가 무거웠기에 선뜻
일어 설 수가 없다. 안절부절 보낸 시간은 참으로 길었고 이런
기분으로는 참석한다해도 좋은 결과가 없을 것 같다. 갈까, 말까?
아니야, 이제라도 출발하자. 혹시? 행운의 여신은 내 것일 수도
있다. 성미 급한 내가 내년까지 어찌 기다릴 수 있겠는가. 급히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휴가철에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타
는 간장을 시원하게 해 주듯 차량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홉
번째의 출연자 순서를 확인한 후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고 넥타
이를 바로 매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아니, 점심도 굶었
잖아? 갈증을 해소하려 음료수 자판기에 지폐를 넣어도 작동하지
않는다. ‘음료불가'일 것 같아 누가 볼세라 화장실의 수도꼭지를
틀어 얼른 마셔 버렸는데 맛이 미지근하고 찜찜하다. 도대체 오늘
일진이 왜 이래?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못하고 침을 삼키며 무대에
올랐다. 나를 주시하고 있는 관중과 심사위원들에게 인사를 하니
박수 소리와 함께 실내는 곧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다. 뛰는 심
장을 진정 시키며 첫 구절을 머리 속에 떠올리니 다행히 기억이 난다.
옳지, 그래...음악이 흐르자 배에 힘을 주었다. 두 눈을 지긋이 내리고
감정을 가다듬어 낭송을 시작한다.
‘바다’...... 서 정주......
귀 기울여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 위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아 - 반딧불 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 울
음에 젖은 얼굴을 온전한 어둠 속에 숨기어 가지고...... 너는, 무언
(無言)의 해심(海心)에 홀로 타오르는 한낱 꽃같은 심장으로 침몰하라.
아 - 스스로 푸르른 정열에 넘쳐 둥그런 하늘을 이고 웅얼
거리는 바다, 바다의 깊이 위에 네 구멍 뚫린 피리를 불고......
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포를
잊어 버려 마지막 네 계집을 잊어버려, 아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오 - 어지러운 심장의 무게 위에
풀잎처럼 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
에 그득 해야 하는가.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 뜨라......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으로도 밤과 피에 젖은 국토가 있다. 아라스
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
어떻게 끝까지 이어 왔는지 정신이 없다. 음악이 끝나고 박수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 왔다. 단 5분도 안 되는 이 시간을 위해 쏟은
정성이 허무하다. 몇 몇 분이 다가와 '성량이 풍부하고 아주 잘 했
다'고 말을 건네 온다. 충북대학교수필반의 한 분은 휴대폰에 응원
의 메시지를 남기었기에 고맙다. 89명의 예선을 뚫고 본선에 진출
한 17명 중 많은 분들이 시인, 성우, 시 낭송가, K. B. S.리포터, 동화구연가,
연극인등 무대경험이 많은 분들이며 또한 이 대회에 몇 번씩이나 참여한
경험이 있다 하기에 심사평을 기다리면서 동상이면 족하리라 생각했는데,
장려상 동상 은상이 지나가고 마지막 남은 세 사람을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한다. 금상은 받아 놓았다는 안도를 하면서도 처녀 출전하여 대상이
내 것이길 기대하였으니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는가 보다. 가정에서
고개 숙인 가장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일어서라고 인터뷰에 답을 했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사회자는 발표에 뜸을 들인다. 드디어 가슴 조이는
대상자 발표! 관중들이 숨을 죽인다. 제발, 제발, 나이기를....
에이, 그러면 그렇지. 대상의 영광은 나를 피해 갔지만 ‘이 나이에도
하면 된다.’는 성취감을 맛보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깜짝 놀랐습니다.
예선 심사 때 들어 본 카세트 테이프와 오늘 본선의 상황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전율을 느끼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겪었던
일제시대 징용의 아픔을 느끼며 또한 I. M. F.에 실직한 가장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온 신의 을 쏟으셨기에 좋았습니다. 연세도 지긋하고
대 기업의 임원으로써 술이나 마시고 시간을 보낼텐데 시낭송에
빠진 것은 대단히 훌륭한 것입니다. 호응도 아주 좋았어요.
50점 만점에 41.8점으로 0.1점 차이로 아깝게 대상을 놓치셨습니다.
목소리 무대 매너도 흠이 없었고요.” 사회를 본 대전일보사 문화국
장께서 제4회 충청권 시 낭송 대회를 마치고 내게 격려를 한다.
금상의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0.1점 차이로 '150만원 짜리 스키세트’와
‘시 낭송가 인정서’를 잃었으니 아쉬움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랴!
나 보다 연륜과 사회 경륜이 많은 대상 수상자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다. 그 날밤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어린애처럼 자랑하느라 많은 국제전화 요금을 지불했지만 아깝지
않다. 곁에 있다면 몇 배의 기쁨을 더 맛보았을 텐데. 심사위원의
평이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시는 정신적 생물의 최고 가치이며
문화 유산입니다. 시는 예술과 문학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것입니다.
시(詩)자를 한문으로 풀어 보면 말씀 언(言)과 절사(寺)자가 합쳐진
것입니다. 시의 한마디 한마디는 산문의 원고지 10장 내지 20장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시의 무게, 시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시 낭송은 1980년대 이후 우리 나라에 꽃피기
시작했고 시의 대중화는 그 나라 문화의 척도가 됩니다. 시 낭송은
시를 이해하고 시에 맞는 감정처리를 잘 해야 합니다. 시는 밝은 시,
무거운 시, 엄숙한 시 등이 있는데 성격에 따라 감정을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듣기 좋은 낭송은 자 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연과 연 사이를
너무 띄면 낭송자가 어디 갔나 하는 당혹 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행과 행 사이 보다 연과 연 사이를 약간 더 띄어야 하는데 너무
지나치게 효과를 내려다 오히려 감점이 되기도 합니다. 시 낭송은
시각적인 시를 청각으로 옳기는 문화예술입니다. 박자와 퍼즈(pause)
즉, 휴지(休止)를 통해 효과를 내야하고 우리말의 조화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발음의 조화,고저,장단, 붙여야 할 곳은 붙이고 띄어야
할 곳은 띄어야 합니다.
이번 시 낭송 대회 참여로 몇 가지 얻은 경험이 있다. 시 낭송
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 자기 개성에 맞는 시를 선정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어른들이 선호하는 시를 선택했다면 소화 능력이 떨어
지기 때문이다. 둘째, 배경 음악이 어울려야 한다. 16세기에는 시
=음악이었다. 조화롭게 음악을 택하면 좋겠다. 셋째, 시가 위주가
되어야 한다. 시에 다른 것을 부쳤다 하더라도 시 그 자체가 중요
한데, 배경 음악에 치우치면 시가 죽는다. 예를 들어 시화전을 할
때, 시는 조그만 하게 쓰고 그림을 크게 그린다면 시가 살지 않을
것이다. 음악이 지나치게 강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이외에는
복장 태도 마이크 사용법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따라서 심사 기준
은 다음과 같은 것을 중점으로 본다. 첫째, 어조는 시의 음성변화
즉 높낮이 장단이 변화 있게 맞아야 한다. 개성 있는 자기의 음성
으로 낭송해야 그 사람의 예술적 재능과 더불어 마음이 있다. 둘
째, 감정은 시 분위기를 얼마만큼 잘 나타낼 수 있는 가이다. 셋
째, 자연스러운 동작이다. 몸놀림이 심하면 산만하다. 제스처 위
주가 아니다. 넷째, 시를 이해하여 외워야 한다.
“그래 잘했냐? 애비도 잊어버리고 계집도 잊어버리라더니 다 잊
어버린 게야? 몇 일간 귀에 쟁쟁했었는데 이제는 집안이 조용하겠
군.” 시 낭송 대회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내게 어머니께서 말씀
하신다.
"예! 어머니, 금상 받았어요! 금상!" 수상자에게 주어진 꽃다발과
트로피 상장 상품들을 어머니께서 받아 드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신다.
한 달여 연습하느라 잊었던 초조함이 다시 억센 파도처럼 밀려온
다. 시와 함께 ‘여유’라는 나무를 가슴에 심고 싶다. 그래서 온갖
매연이 감돌고 있는 내 주변이지만, 잠시나마 시에 취해 진솔한 마
음으로 낭송할 수 있고, 그것을 즐길 만한 마음의 공간을 조금이라
도 비워 둘 수만 있다면, 나는 아등바등 거리는 탐욕의 세계에서
비교적 덜 불행해 질 수 있는 사람이 될게다.
1999. 5 집
첫댓글 이제는 집안이 조용하겠
군.” 시 낭송 대회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내게 어머니께서 말씀
하신다.
"예! 어머니, 금상 받았어요! 금상!" 수상자에게 주어진 꽃다발과
트로피 상장 상품들을 어머니께서 받아 드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신다.
한 달여 연습하느라 잊었던 초조함이 다시 억센 파도처럼 밀려온
다. 시와 함께 ‘여유’라는 나무를 가슴에 심고 싶다. 그래서 온갖
매연이 감돌고 있는 내 주변이지만, 잠시나마 시에 취해 진솔한 마
음으로 낭송할 수 있고, 그것을 즐길 만한 마음의 공간을 조금이라
도 비워 둘 수만 있다면, 나는 아등바등 거리는 탐욕의 세계에서
비교적 덜 불행해 질 수 있는 사람이 될게다.
시 낭송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 자기 개성에 맞는 시를 선정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어른들이 선호하는 시를 선택했다면 소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배경 음악이 어울려야 한다. 16세기에는 시=음악이었다. 조화롭게 음악을 택하면 좋겠다. 셋째, 시가 위주가 되어야 한다. 시에 다른 것을 부쳤다 하더라도 시 그 자체가 중요한데, 배경 음악에 치우치면 시가 죽는다. 예를 들어 시화전을 할 때, 시는 조그만 하게 쓰고 그림을 크게 그린다면 시가 살지 않을 것이다. 음악이 지나치게 강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이외에는 복장 태도 마이크 사용법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따라서 심사 기준은 다음과 같은 것을 중점으로 본다. 첫째, 어조는 시의 음성변화 즉 높낮이 장단이 변화 있게 맞아야 한다. 개성 있는 자기의 음성으로 낭송해야 그 사람의 예술적 재능과 더불어 마음이 있다. 둘째, 감정은 시 분위기를 얼마만큼 잘 나타낼 수 있는 가이다. 셋째, 자연스러운 동작이다. 몸놀림이 심하면 산만하다. 제스처 위주가 아니다. 넷째, 시를 이해하여 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