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재영>, <이다영>, <김세영>, <이주아>, <도수빈>, <루시아>를 아시나요. 저도 지난 11월 11일 이전에는 몰랐던 이름입니다. 그러면 <김연경>은 아시나요. 많은 분이 아실 것입니다. 대한민국 여자배구의 간판스타이자, 몇몇 예능프로에도 등장한 인기인이니까요.
이들 7명은 11월 11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 GS칼텍스와의 경기에 출전한 흥국생명 주전선수들입니다. 저는 우연히 TV에서 이 경기 재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경기 결과는 당연히 몰랐고 여자배구 국내 경기를 차분하게 본 것도 아마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골프 채널을 보다가 우연히 채널을 돌렸는데 옆 채널에서 이 시합이 중계되고 있어 보게 된 것뿐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몇 세트부터 보았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도 1세트 아니면 2세트였을 것입니다. 그냥 잠시 보게 된 것뿐이었는데 채널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세트는 GS칼텍스가 25대23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제가 어느 팀을 응원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정확하게는 어느 팀에도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흥국생명의 한 선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곱상한 얼굴에 단발머리를 한 선수의 공격 모습이 다부졌습니다. 등에 쓰인 이름은 <이재영>입니다. <김연경>만 알고 있는 저에게 또 한 명의 배구 선수 이름이 각인된 것입니다. <이재영>을 주목하고 경기를 보니 경기가 달리 보였습니다.
2세트에 들어서니 GS칼텍스의 한 선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독 키가 엄청나게 크고 환한 미소를 짓는 외국인 선수였습니다. 그 선수의 이름은 <러츠>였습니다. 키 206cm인 <러츠>의 공격은 수준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김연경>의 공격 성공에 힘입어 2세트는 흥국생명이 22대25로 승리하여 세트스코어 1대1이 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경기가 금년 최고의 경기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재미있어 눈을 떼지 못하고 넋 놓고 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경기 도중 비디오 판독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시간 귀에 익은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집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명작 만화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OST, 인생의 회전목마(Merry-Go-Round of Life)입니다. 배구장의 움직이는 '공'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묘하게 오버랩됩니다.
3세트가 되니 선수들이 점점 눈에 들어옵니다. <이재영> 선수와 이름이 비슷한 선수가 있습니다. <이다영>입니다. 얼굴도 비슷합니다. 호기심에 인터넷을 찾았습니다. 먼저 <이재영> 선수를 찾았습니다. 가족관계에 '쌍둥이 여동생 <이다영>'이 있습니다. <이재영>과 <이다영>은 쌍둥이 배구선수였습니다. 어머니도 남동생도 모두 배구 선수 가족이었습니다.
<이재영> 선수의 수상 및 기록을 보고 제가 얼마나 배구에 무식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재영> 선수는 6년 차 선수로 2년 차부터 5년 차까지 득점 1위, 6년 차 득점 2위이고, 2018-2019 V리그 챔피언 결정전 MVP, 올스타전 MVP를 한 최고의 배구 선수였습니다.
<이다영>은 179센티미터의 장신 센터입니다. 언니 <이재영>과 함께 2014-2015 신인 드래프트에서 누가 전체 1번을 하느냐를 놓고 다투었습니다. 결국 언니 <이재영>이 1등, 동생 <이다영>이 2등을 하였습니다. 부모님들은 행복한 고민을 하였을 것 같습니다.
<이다영>은 긴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쌍둥이라 구분이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습니다. 3세트는 25대19로 흥국생명이 승리하였습니다. 마지막 3점은 흥국생명 교체 선수 <김미연>의 서브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2점은 서브 포인트였습니다. <김미연>의 이름도 각인되었습니다.
GS칼텍스는 세트스코어 1대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4세트도 17대19로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GS칼텍스는 기적 같은 힘을 발휘합니다. 20대19로 역전한 것입니다. 3점을 따내는 동안 GS칼텍스의 한 선수가 맹활약을 합니다. <이소영> 선수입니다.
176cm의 비교적 단신인데도 초등학교 때 단거리, 멀리뛰기, 높이뛰기 등 육상 선수로 활약해 순발력과 점프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어쩐지 점프하여 활처럼 휘는 모습이 남달랐습니다.
그러나 흥국생명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23대23으로 다시 동점을 만듭니다. 이 상황에서 GS칼텍스 <러츠>의 공격과 블로킹이 성공하여 23대25로 GS칼텍스가 승리합니다. 세트스코어 2대2, 다시 원점입니다.
배구가 너무 재미있어 TV 앞에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5세트는 15점 승부입니다. GS칼텍스가 줄곧 리드하다가 13대12에서 흥국생명의 <도수빈> 선수가 멋진 수비를 하여 13대13 동점이 됩니다.
만약 흥국생명이 그 수비에 실패하였으면 14대12가 되어 매우 불리하였겠지요. 캐스터는 <도수빈> 선수가 2점 자리 수비를 하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수빈> 선수의 옷 색깔이 다릅니다.
<도수빈> 선수는 리베로, 수비 전문 포지션을 맡고 있는 선수입니다. 리베로는 다른 색의 유니폼을 입어야 한답니다. 그런데 캐스터와 해설자가 수비를 설명할 때 '디그'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디그(dig)'라는 용어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서브를 되받아치는 것은 서브 리시브라고 하고, 상대방의 공격에 몸을 날려 막는 것을 모두 디그라고 합니다. <도수빈> 선수가 디그를 멋지게 한 것이었습니다.
경기는 계속됩니다. GS칼텍스 대 흥국생명은 13대13, 14대13, 다시 14대14 동점, 그리고 GS칼텍스는 블로킹 성공으로 15대14로 다시 앞서갑니다. 그 순간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이 어필합니다. 흥국생명 김연경 선수가 흥분을 못 이기고 배구 네트를 잡고 늘어진 것에 대해 주의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경기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속개된 경기,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요.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공격 성공을 시작으로 내리 3득점을 하여 15대17로 기적같이 역전승을 합니다. GS칼텍스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차상현> 감독이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고 그냥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그러나 흥국생명이 역전승하는 바람에 이 경기는 전설의 경기가 되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승리한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은 그제야 마스크를 내리고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알게 된 것이지만 그 경기는 흥국생명이 개막 6연승을 달성하는 경기였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이 경기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제가 자주 보는 골프 채널 옆 스포츠 채널들에서는 열 번도 넘게 재방송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다 알고 보아도 정말 재미있고, 영화나 드라마보다 매 순간 박진감이 넘쳤습니다.
우연히 전설의 경기를 본 저는 여자배구에 반해 버렸습니다. 그날 이후 흥국생명의 팬이 되었고 7연승, 8연승 소식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기를 좋아하시나요. 코로나 시대에 경기 중계에 빠지는 것은 언컨택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11.23.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