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2017 Bucket List, 소똥구리 인연/울 엄니 아부지
2017년 1월 22일 일요일인 바로 어제의 일이다.
오전엔 교회를 다녀왔고, 오후에는 남산 둘레길을 돌 참이었다.
그 시간을 오후 4시쯤으로 잡았다.
저녁을 그 유명한 장충동 족발집에서 족발로 때울 생각에서였다.
그 사이에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에서 인터넷에서의 내 글쓰기 공간인 우리들 Daum카페 ‘문중 13회’와 Daum카페 ‘아침이슬 그리고 햇비’ 사랑방에서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또 하나의 내 글쓰기 공간인 SNS 페이스북에 새로운 게시물이 뜨고 있었다.
클릭을 해서 확인해봤다.
일러스트 디자인 작가인 최민주씨가 사진 한 장을 게시해놓고 있었다.
빛바랜 사진이어서 내 시선이 특별히 끌려갔다.
양복 입은 젊은 남자와 한복 입은 젊은 여인 그렇게 둘이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 오른쪽 아래 여백에는 ‘ㄷㅐㅎㅏㄱ ㅅㅣㅈㅓㄹ’이라고 쓰고 ‘1962. 4. 17.’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런 것으로 봐서 최 작가의 부모님 사진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방금 장롱 속에서 꺼낸 부모님 사진이시군요... 근데, 그 사진, 참 분위기 좋아요. 따뜻해 보이거든요... 어울림도 색감도...’
그러고 나서 다시 그 사진을 한 번 더 확인해 봤더니, 한 줄 문장이 보태져 있었다.
그 문장, 곧 이랬다.
‘하늘 나라 살고 계신 울 엄니 아부지 보고 싶군요 사랑합니다 ^^’
내가 사진에 댓글을 달기 전부터 있었던 문장인데, 그 문장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사진만 보고 댓글을 달았던 것이다.
내 그 댓글 뒤에, 최 작가가 계속해서 새 글을 더 게시하고 있었다.
그 글은 먼저의 내 댓글에 대한 답이었다.
그 답, 곧 이랬다.
‘네^^ 일요일 가만히 하늘을 보니까 부모님 생각이 나서요 불효자는 그래요’
이제는 그 답에 대한 댓글을 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이리 달았다.
‘사진만 보고 댓글을 달았더니, 또 이런 사연이? 1962년이면, 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시절...근데, 그때 이미 부모님은 대학생이셨으니... 좀 더 사셔야 될 연세이신데... 오늘 오후 4시에 아내와 함께 남산을 오릅니다. 돌고 돌아서 장충동에서 족발로 저녁을 할 생각입니다. 땡기면 동행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남산 둘레길 돌고 난 뒤에 찾아간 장충동 족발집에서, 최 작가와 그 부인과 함께 하게 된 것이었다.
한 집안의 맏이라고 했고, 남산자락 충무로 일대를 누비면 살았다고 했다.
그러니 나와 대화꺼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여자들 문제로 아내가 상처받은 사연까지고 똑 같았다.
길고 긴 대화였지만, 우리 부부 최 작가 부부 해서, 넷 모두가 그 대화를 통해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위로를 받았다.
이날 밤 헤어진 뒤로, 최 작가가 이런 메시지를 내게 줬다.
‘오늘 형님 형수님 뵙고 좋은 말씀 가슴에 담고 살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그 메시지에 내 이리 답했다.
‘덕분에 함께 할 수 있었던 이 밤, 오랫동안 살아있는 추억으로 이어질 겁니다.’
그렇게 답을 하고 난 뒤에, 잠시 생각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최 작가의 ‘울 엄니 하부지’하면서 그 빛바랜 사진을 SNS 페이스북에 게시했을까 하는 그 마음을 짚어볼 생각에서였다.
그 생각과 함께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김진호가 울면서 부른 노래, 곧 ‘가족사진’이었다.
이렇게 불렀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에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 곳 저 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엄마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 꽃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내 그 노래를 떠올리면서, 내 마음 속으로 빌었다.
거름이 되듯 한 삶을 살았던 최 작가 엄니 아부지의 바람대로, 사진 속 그 얼굴에 꼭 웃음꽃 피워드리길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