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부선(왼쪽)과 이재명 경기지사(오른쪽) [뉴스1]
“‘어머, 대선 안 바쁘세요’ 하니까 하나도 안 바쁘대. (폭소) 그러고서는 같이 잤지 뭐.” (배우 김부선, 2010년 11월 11일 한겨레 인터뷰)
11년 전 이 말이 시작이었다. 더불어민주당 1위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최근 ‘여배우 스캔들’로 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지사는 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부선 씨를 고소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소를 하면 그게 계속 커진다”며 “고소를 하고 경찰서 왔다 갔다 하고 불려 다니면 그게 더 커지는 얘기가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지사와 김씨 간에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없는 해명과 의혹 제기가 있었다. 이 지사가 정치적 성공을 거둔 세 차례의 선거(2010·2014년 성남시장, 2018년 경기도지사) 때마다 김씨의 폭로전이 이어졌다.
①발단=첫 성남시장 당선 후
노무현 전(前) 대통령 서거 5일째인 2009년 5월 27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은 영화배우 김부선이 분향소에 들어서고 있다. 훗날 김씨는 이 때 이재명 경기지사와 교제중이었고, 이 지사가 봉하마을을 가려는 본인에게 "뭐하러 가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중앙포토
김씨는 처음에 이 지사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다. 첫 폭로였던 ‘김어준이 만난 여자’ 코너 인터뷰에 따르면 “분명 총각이라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처자식 딸린 유부남이었다”며 “그래도 실명은 거론하지 말라. 그가 가진 권력으로 나를 괴롭힐 수 있다. 끝까지 말하지 않으면 너무 억울해 지금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얼마 후 네티즌들이 이 지사 인터뷰에 ‘김부선’ 아이디로 달린 이런 댓글을 찾아냈다. “거짓말로밖에 안 보인다, 나한테 총각이라고 했잖아.” 이후 김씨는 한때 “언론에 언급된 이니셜은 아니다”라고 진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2014년 6·4 지방선거를 열 달 앞두고 돌연 이 지사 실명을 꺼내들었다. “이재명 변호사님, 내 아이아빠 상대로 위자료 유산, 양육비 모두 받아준다고 하시더니 어느 날 행불(행방불명) 되셨습니다. 어이하여 귀하는 거짓 약속을 하셨는지요?”
②전개=성남시장 재선 시절
김부선 씨가 2018년 8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경찰서에 피고발인 신분으로 출석,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폭로의 장이 열렸다. 주된 내용은 양육비 법률자문이 아닌 혼외 불륜 관계였다. 이 지사 재선 임기 중인 2016년 1월 김씨는 페이스북에서 “성남 가짜총각”, “미안하고 부끄럽진 않냐”, “간통법도 없어졌는데 오리발” 등의 추가 주장을 이어갔다.
이 지사는 이때 처음으로 “김부선 씨가 양육비 상담을 요청했고, 이미 양육비를 받은 거로 드러나 포기시켰다”는 내용의 언론 인터뷰로 맞대응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 분이 대마를 좋아하신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법정에서 진위를 한번 가려볼 수 있을 것”이라며 공격성 발언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격해진 싸움은 2016년 1월 김씨가 “이재명 시장에게 미안하다. 이재명 시장과는 이런 일 외엔 아무 관계가 아니다”라는 사과문을 올리면서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③위기=도지사 선거 전후
경기지사에 출마한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왼쪽)가 2018년 6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스캔들 의혹을 제기하면서 김부선씨의 메시지(가운데)를 공개했다. [중앙포토, 김 후보 캠프]
하지만 2년 뒤인 2018년 지방선거 때 사생활 스캔들이 정치 네거티브 공세로 탈바꿈했다. 당시 이 지사 경쟁자였던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가 토론회에서 형 강제입원설, 조폭 연루설, 혜경궁 김씨 논란 등과 함께 김씨 스캔들을 공개적으로 꺼냈다. “(이재명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비 오는데 봉하를 왜 가냐. 옥수동에서 만나자’고 했던 놈”(김영환)이란 공격이 이때 나왔다.
선거일 사흘 전 “저들의 주장은 대부분 허구이니 100% 안심하셔도 된다”며 “정치공작세력들로부터 반복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김부선씨와 그분의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대응한 이 지사는 득표율 56.4%로 남경필(35.5%), 김영환(4.8%)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경기지사가 됐다. 하지만 그가 취임 후 김영환·김부선 두 사람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싸움이 다시 확전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김부선 씨는 2018년 6월 KBS와의 인터뷰에서 "더는 숨길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거짓이면 천벌을 받을 것이고 당장 구속돼도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다. KBS 뉴스화면 캡처=연합뉴스.
“15개월을 만났다”(녹취록), “내가 곧 증인”(KBS 인터뷰)이라고 하던 김씨는 유튜브에서 이 지사와의 밀회 장소라며 자신의 아파트를 공개했고, 페이스북에 “찬 바람 불고 비가 오는 날은 (이 지사가) 가끔 그립다”는 글을 올렸다. “(이 지사에게) 허언증 환자로 몰려 정신적·경제적 손해를 입었다”며 이 지사를 맞고소도 했다.
두 사람의 진실 공방에 관한 사건들은 증거불충분 등 이유로 검찰에서 무혐의·불기소 종결됐다. 도중에 김씨가 “더 시달리기 싫다”며 맞고소한 혐의 일부를 소 취하하는 일도 있었다.
④절정=자발적 신체검사
이재명 경기도지사 2018년 10월1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최근 배우 김부선 씨가 밀회 증거로 주장한 신체 부위 점에 대해 신체검증을 마친 후 나서고 있다. 이날 신체검증은 객관성 확보를 위해 경기도청 출입기자, 경기도청 관계자, 피부과·성형외과 전문의 등이 참여했다. 뉴스1
그러나 한 번 생긴 네거티브 불씨가 종잡을 수 없는 곳들로 옮겨붙어 활활 타올랐다. 김씨의 2016년 사과를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개입, 종용했다는 논란이 도지사 선거 직전 나왔다. 2018년 10월에는 급기야 소설가 공지영씨가 김씨와 함께 이 지사의 ‘신체 부위 둥근 점’에 대해 언급한 녹취록이 등장했다. 공씨는 이를 경찰에 제출도 했다.
보다 못한 이 지사가 2주 뒤 경기 수원 소재 아주대병원을 자진해 찾았다. 피부과·성형외과 전문의에게 신체검증을 받기 위해서였다. 검사 당일 그는 라디오에 나와 “저는 몸에 혈관이 뭉쳐서 생긴 빨간 점 외에는 점이 없다”며 “우리 집은 어머니 덕에 피부가 매우 깨끗하다. 그래서 점이 없다. 특정 부위가 아니고”라고 말했다.
이날 검사엔 경기도청 출입기자 2명도 입회했다. 의료진이 “이재명 지사 몸에 점은 없다. 제거 흔적도 없다”는 결론을 내자 이번엔 ‘셀프 검증’이라는 반론이 또 제기됐다.
“바지 벗을 운명의 시간”…⑤결말?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JTBC 창조관 스튜디오에서 JTBC와 MBN 공동주최로 열린 예비경선 2차 합동 TV토론회를 앞두고 OX퀴즈판을 들고 웃고 있다. 임현동 기자
3년 뒤 여권 1위 대선 주자가 된 이 지사는 지난 5일 민주당 예비경선 3차 TV 토론회에서 “제가 바지를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말했다. 아주대병원에 가던 날 “이 얘기를 하는 자체가 너무 치욕스럽다”고 했지만 본인이 먼저 센 발언을 던지는 전략을 편 거다. 캠프 측근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11년간 선거 때마다 지속 공전해 온 네거티브를 선제적으로 제압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가수 나훈아씨를 연상케 한 이 발언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지사에게 역풍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계 의원은 “그간 선거가 있을 때마다 김부선씨가 목소리를 키우지 않았나”며 “이번에도 경쟁 후보들이 기다렸다는 듯 물어뜯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젠 얄짤없다”며 진흙탕 전면전을 또 예고 중이다. 그는 이 지사가 “바지” 발언으로 의혹을 부인한 이틀 뒤(7일) 이 지사의 ‘신체 특정 부위 점’을 다시 확인하겠다며 법원에 신체감정을 신청했다. “이 지사, 이제는 당신이 그리도 좋아했던 바지 벗을 운명의 시간이 왔다”는 주장이다. 김씨 측 강용석 변호사는 “김씨가 연인 관계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신체의 비밀을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한 배우 김부선 씨가 지난 4월 2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재판 출석 전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강용석 변호사. 연합뉴스
“검증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미 끝난 얘기”(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라는 게 정치권 다수의 시각이다. 하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치르는 대선판에서 유력 주자의 불륜이라는 자극적 소재가 어떤 결과로 끝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익명을 원한 정치 컨설턴트는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듯 강경한 조치가 없으면 이 지사의 여성 지지율 회복에 계속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