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출근 두번 째 날이다.
오늘은 새로운 전략을 펴기로 했다. 왕초보 바리스타의 실력을 알았는지 지난 첫 출근 때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덕분에 눈으로만 익힌 아메리카노를 차근차근 익힐 수 있었다. 허나 계속 손님이 없으면 실력도 늘지 않는 법. 이번엔 도서관에서 자원봉사 하는 분들과 사서님께 내가 만든 음료를 사서 대접하기로 했다.
이런 내 마음이 전해진걸까? 오늘은 지난 주에 보지 못한 분들이 꽤 보이신다.
우선 도서관 청소를 마치신 어머님 두 분께 다가갔다. 구석구석 깨끗하게 도서관을 청소해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땀방울 송송 맺힌 이마를 보니 시원한 음료수 한 잔 드시면 좋겠다 싶었다.
"(최대한 방긋 웃으며) 어머님, 뭐 드시고 싶은 음료 있으세요? 제가 맛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___^"
"음료요? 아유, 난 괜찮아요. 물이면 되유."
"(어? 이게 아닌데...;;) 아녀요. 꼭 드리고 싶어요. 그 참에 저도 음료 만드는 연습도 하고요."
보통 이쯤이면 목도 마르겠다, 음료도 준다 하겠다, 거절하기도 미안하다 싶어 먹고 싶은 음료를 얘기하신다.(가 내 생각이다.)
"형님, 음료 준다는데 뭐 드시겠소?" (형님 손사래를 치시며) "아녀 아녀. 나는 안 먹어. 안 먹어"
"에구, 우린 안 먹어유. 괜찮아유. 지도 당뇨가 있어서 안 먹을라요"
"아.....네... ^^;;;;"
음.... 대략 난감. 음료 꼭 드리고 싶었는데... 연습도 해야 하는데... 쩝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이번엔 새로 오신 자원봉사자께 다가갔다. 그분도 이 광경을 보셨는지 첨엔 안 드시겠다고 하셨다.
거의 애원!하다시피 꼭 드셔야 한다고, 드리고 싶다고 해서 겨우(?) 아이스티 주문을 받았다.
휴~ 다행이다. 아이스티가 어디야. 다음은 사서님. 사서님은 커피를 안 드신다고 티백에다 얼음 띄워 달라고 하셨다.
힝... 커피 연습해야 하는데... 아이스티나 티백은 그냥 물만 타서 만들면 되는데.. 쩝쩝 ^^;;;
별 수 없이 내가 마실 음료를 아이스라떼로 정한 뒤 실험해보기로 했다. 라떼는 처음 만들어본다. 지난 주에 라떼 부품이 없어서 레시피를 배우지 못했다. 만드는 것을 본 적도, 직접 만들어 본 적도 없는 라떼를 오늘 아침 사서님께 귀로 들은 레시피를 토대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귀로만 듣고도 만들다니! 거의 신의 경지이군! ㅎㅎ
사실 북카페에는 카페 팀장님께서 적어 놓은 공통 레시피가 있다. 그런데 팀장님께서 레시피를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떼 가셔서 이렇게 후루꾸로 연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도서관 북카페는 정량, 정품, 정성을 다합니닷! ^^)
라떼를 만들기 위해 에스프레소 머신 물통에 물을 2/3가량 채우고 원두 한 스푼을 넣었다. 버튼을 눌러 뜨거운 물을 빼내 기계를 데웠다. 그리고 가볍게 머신 버튼 두 번 클릭. 투샷 에스프레소가 내려졌다. 거기에 차가운 우유를 붓고 시원한 얼음 동동 띄웠더니 그럴싸한 아이스라떼가 만들어졌다. 두근두근 어떤 맛일까. 기대하며 마신 첫 맛은 왝! 너무 싱거웠다. 솔직히 이대로 팔면 욕먹을 것 같았다. 라떼 특유의 깊고도 크리미한 맛이 없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겉도는 이 맛. 뭐가 문제였을까?
우유를 살짝 휘핑해야 하나? 뜨거운 우유크림이 얼음을 녹일텐데? 에스프레소를 쓰리샷으로 해야 하나?
최상의 맛이 무엇일까 고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낯선 손님 한 분이 들어오셨다.
"저... 음료 되나요?"
"아!! 그럼요. 뭐 드릴까요?"
"아이스초코라떼 한 잔 주세요. 테이크아웃으로요."
북카페 바리스타 인생 최초의 진짜 손님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공통레시피가 없는 난감한 상황이지만 당황하지 않고, 10여년 넘는 주부 경력을 살려 정성을 다해 한 잔을 만들었다. 따뜻한 물 조금에 초코가루를 충분히 녹이고 넉넉하게 우유를 붓고 얼음을 띄웠다. 우유와 얼음이 맛을 희석시키니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초코가루를 넣는 게 음료의 포인트다.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스초코를 내어 드렸다.
"혹시.. 맛 없으면 말씀해주세요. 다시 만들어드릴게요"
첫 손님께 2,500원을 받는데 그 돈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던지!
문득 대학 축제 때 학과 주점을 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음식 해 본적도 없는 애들끼리 부침개 지지고 떡볶이랑 어묵탕도 만들면서 열심히 팔았더랬다. 1,000원 2,000원 코묻은 돈 버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뛰어다녔다. "엣다~ 서비스다" 하면서 부침개 한 장 값에 두 장, 세 장 막 퍼주었다. 장사를 마친 뒤 정산해보니 재료비 빼고나서 남는게 거의 없었다. 그래도 단돈 10,000원이라도 남겼다며 그게 어디냐 좋아했던 그 시절 즐거운 추억, 그 재미. 행복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 첫 손님이 참 고마왔다.
그나저나 이 손님은 어떻게 알고 북카페에 들어온걸까? 보통은 도서관에 볼일이 있어서 들어왔다 카페도 들르는데...
이 분은 그냥 차 한 잔만 주문하고 갔다. 어쩌면 내게 용기 주려고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가 아닐까?
첫댓글 첫 손님 맞이의 떨림이 전해져요. 그 순간이 항상 가장 긴장되는 것 같습니다. 일상을 나눠주시니 저도 글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
아, 시리즈가 회차를 더해질수록 '나도 도서관'에 가보고 싶어요!
읽는 사람이 뭔가 하고 싶게 만드는 신박한 '나도 이야기' 시리즈~~
생생한 현장감~!! 선생님의 떨림이 확~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