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리 섬의 哀歡
장재섭
야! 오가리 섬놈!
이 얘기가 내가 어릴 때 듣던 속상하던 말이다. 이 소리가 우리
동네를 비웃을 때 하던 읍내 아이들의 장난이다. 이 말을 들을 때
마다 기분이 상했는데 그럴 때면 야! 항아리보다 오가리가 쓸곳이
더 많다는 것을 너이들은 아니 ? 하면서 대들던 생각이 난다.
섬 중에 섬 오가리 섬 ! 이 말은 우리동네가 외딴 섬이어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정확히 “전남 신안군 압해면 가란리 "이다. 위
치를 설명하면 목포에서 도선으로 한10여분 남짓 가야하고 또 거기
서 차로 한10분 가면 외로운 섬이 나타난다. 바로 여기가 나의 사
랑하는 고향이다. 이곳에 가면 사방이 모두 백사장으로 둘러있어
천연의 해수욕장이다. 강물이 밀려오면 해수욕하면서 고기를 잡고
썰물에는 세발낙지, 꼬막, 대롱 등 많은 고기와 조개들을 잡는다.
들판에는 감자들이 여물어 가고 깨소금 나무들이 키자랑한다.
항아리섬 옆에 오가리 섬 ! 아름다운 난초가 피고 바다에서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이 나의 깊숙한 마음까지 여미어든다. 이럴 때면
어머님이 생각난다. 열심히 공부해라 착실해라 일러주시고 꼬깃꼬
깃 넣어두신 천원 짜리 몇 장 들려주시던 어머님! 굶지 말고 밥도
끼니 되거든 잊지 말고 찾아 먹어라. 당부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귓
가에 울려온다.
내고향 이 오가리 단지는 정말 쓸모가 많다. 우선 의식주 걱정
이 없다. 천연의 보고인 이곳은 여기를 보나 저기를 가나 먹을 것
이다. 요사이는 수박, 참외, 낙지, 꼬막, 조개,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 그 밖에도 많다.
한 두 달 지나면 김, 망둥이, 숭어, 가오리, 모치 등이 많고 겨울
이 다가오면 알이 수북한 망둥이 잡이와 또 곳간 깊숙이 묻어둔 씨
고구마를 삶아 물김치에 곁들어 먹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내린
다. 특히 중요한 것은 김이다. 우리 마을에서 나는 김은 거의 전
량이 일본으로 수출이 되고 일부만 시중에 유통된다. 이렇게 주
부식이 많고 움직이기만 하면 음식이고 마음만 달리 먹으면 이 모
든 것이 현금화 된다는 것은 우리 고향의 특성만은 아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교통이 불편한 점이 있으나 우선 거지
없는 마을 이웃이 모두 한가족인 마을, 서쪽 끝에서 일어난 일을
동쪽에서도 모두 알고 좋은 일이나 잘못된 일이 나면 함께 즐거워
하고 같이 울어주는 마을, 이런 마을은 우리 나라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외따로 독립되어 있는 집성촌이라서 이웃밖
에 없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우리마을에 제법 늘씬하고 키도 크면서 잘생긴 청년 한
사람이 친척집에 인사차 방문했다. 저녁을 먹고 친구 집에 놀러
나갔더니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였다.
웬일인가 싶어 가봤더니 어떤 불청객이 남의 동네에 와서 거드름
을 피우고 노는 것이 건방지다며 손좀 봐야겠다고 야단들이다. 그
렇다면 물론 작살내야지! 남의 마을에 와서 함부로 여자들과 놀아
나... 하며 아우성이다. 조금 있으니 친구 하나가 그 집에서 놀고
있는 불청객을 불러내 몇 사람이 옆집 마구간으로 데리고 가서
적당히 혼내준 적이 있다.
이렇게 우리 마을은 불의를 보면 못 참고 너나 할 것 없이 한 덩
어리다. 허긴 옛날에는 청년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죽는 것처럼
싫어했다. 그래서 "기피자"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마을에도 이 기피자가 몇 분 계셨다. 그러나 이분들을 누가
와서 잡아가기란 무척 어렵다. 우선 나루터에서부터 무슨 상황이
벌어지면 먼저 동네로 연락이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릴 적에도 순경아저씨들은 복장이 있었기에 그 복장으
로는 도저히 무슨 권리 행사를 할 수 없었다. 또 사복을 입더라도
그 시절에는 순경들이 몇 사람되지 않아 모두 얼굴을 알고 있기에
그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면 우선 나룻배를 건네주지 않으니 우리마
을로 그 분들이 올 수가 없다. 이렇게 사람들은 보호가 되어 왔고
지금도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모두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에 동네
에서는 일을 보기가 힘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한번 고향에 가면 여기저기에서 응 00인가? 하면
서 달려나와 손목을 덥석 잡아 준다. 하기에 이곳은 인정미가 있
어 살만한 곳이다. 겨울에는 잠바 깃을 똑바로 세우고 군고구마를
먹는 기분처럼 달콤하다.
또 이즈음은 세발낙지가 인기다. 한 마리 전체가 한입에 딱 들
어가는 이 낙지는 먹어봐야 맛을 안다. 한 마리에 요사이는 상당
히 비싼 편이다. 몇 마리 먹을려면 상당한 돈이 든다. 이렇게 비
싸기 때문에 우리마을이 부자 동네다. 보통 한사람이 바다에 나가
면 낙지 한두접 정도는 쉽게 잡는다. 한 접에 사만원, 잔 낙지에
한해서 그렇지만 큰 낙지다 하면 작은 세발낙지에 비해서 두배의
값을 받으니 수입차이가 많이 난다. 이래서 우리동네는 부자동네
로 소문이 나 있고 유학생이 많은 편에 속한다.
내고향 이렇게 좋은 동네가 또 있을까 ? 아무리 나쁜 고향이라도
내고향이면 경치 좋고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들 한다. 나
도 이 고향이 경주 불국사보다 좋은 경치가 있고, 부산 해운대보다
시원한 바람이 있으며, 강릉 경포대 보다 좋은 해수욕장을 갖고 있
는 동네는 아마 우리 동네이고 그림 속에서나 봄직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서다.
이 고향에는 죽마고우들이 있었다. 남자친구 다섯명, 여자친구
아홉명 ,이 사람들이 방학 때 고향에서 모였다 하면 태풍이 불었다.
가자하면 수박 참외서리, 쉬쉬하면 야밤 닭서리 쳤다하면 내기 나
이롱뽕 등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때는 왜 그리 야행성 활동을
좋아했는지 모른다. 아마 모든 즐거움의 역사가 밤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리라.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재미있던 추억이다. 즐거움이 있었고 스릴
이 있었으며 철없이 불사르던 사랑도 있었다. 이제 할아버지 할머
니가 다된 지금 만나면 야! 너 그날 밤 내 가슴 만졌지? 그 때 너
나 좋아했니? 좋으면 좋다고 얘기하지 슬쩍기 손이 들어오면 어떻
게 해! 그 때 좋아한다고 말만 했더라면 혹시 몰랐는데 하며 농담
을 할 나이들이 되었으니 세월이 빠르긴 빠른가 보다!
이제는 모두 황혼기에 접어들어서 만나기만 하면 더 늙기 전에
한번씩 만나자고 야단들이다, 그래서 이번 십일월 오일날 고향의
초등학교에서 다같이 만나 한바탕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로 하고 전
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연락이 가능한 모든 동창이 만나기로 약속했다.
자식들! 얼굴 한번 보자고 하면서 어릴 적 습성나오는 것 아니여!
그래도 만나서 손 한번 잡아보고 커피 한잔 먹으면서 얼마나 변했
는지 알고 싶다.
야! 친구들아 얼굴 좀 보자!
1999. 5 집
첫댓글 어릴 적 고향 친구가 생각나는 글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