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3:2)”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돈을 사랑하여 돈, 돈, 돈 하다가 돈 사람들이 많다.
K장로님은 어려서 부잣집 외동아들로 자랐다. 옛날에 부잣집에서는 지금과 같이 은행에 돈을 저축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다가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장로님은 어려서부터 벽장문만 열면 마음대로 돈을 내다 쓰면서 살았다. 그러니 어른이 되어서도 소비정신이 투철하여 돈을 물 쓰듯 쓰면서 살았다. 자기 분깃을 갖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 도시에서 돈을 물 쓰듯 하며 살던 작은 아들처럼 어느새 가진 돈은 다 없어졌다. 지금은 하루 세 끼 밥 먹고 살기도 힘든 삶이 되었는데도 머리속에는 여전히 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입만 열면 돈 얘기를 한다. 그러다가 그 돈 줄기를 타고 마귀가 들어가서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
내가 중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학년 초가 되면 담임 반 아이들의 기초조사를 실시했다. 놀라운 것은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돈 많이 버는 것”이 되어 갔다. 목사님과 장로님들도 모일 때마다 주요 화제가 ‘돈’ 이야기가 태반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회에서 가끔 모임이 있다고 연락이 오는데 메시지 마지막에 ‘돈 많이 법시다!’라는 구절을 찍어 보내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만큼 지금 세상의 주인이 ‘돈’인 모양인데 어쩐지 나에게는 그것이 버석거리고 껄끄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돈’을 초월하여 산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에게도 돈이 늘 필요하고 나도 돈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온통 ‘돈’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다.
폼페이의 베수비오산이 화산폭발을 일으켰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한 여인이 화산이 폭발하여 곳곳에 불이 붙어 난리통인데도 자기 집의 장롱 속의 금은보화를 잔뜩 챙겨 끌어안고 가다가 흘러내리는 용암에 뒤덮여 죽어 화석이 되었다고 한다. 오랜 후에 폼페이 발굴 작업 때 금은보화를 가득 안고 죽은 여인의 시신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사건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생명인가, 돈인가? 더욱이 정말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인가, 이 세상 물질인가?
창세기 19장에서는 소돔성이 유황불로 멸망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롯의 가족들이 그 성으로부터 도망을 치게 되는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창19:26)”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이들이 롯의 처와 같이 복음을 안고 앞만 바라보고 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늘 뒤를 돌아보며 세상에 두고 온 것들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아니 복음과 세상과 더불어 살고 있다고 해야겠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18:21)”고 하니 백성들이 한 말도 대답지 못하였다. 야고보서 4장 4절에서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다.
우리 교회가 있는 시골 마을에도 연세가 많으신 노인들인데도 돈을 사랑하므로 죽을지 살지 모르고 일만 하는 일중독자들이 여럿 있다. 그들의 특징은 밤에도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낮에는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 자기 집 논밭 일은 퇴근 후에 하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둘 중 하나는 놓아야 한다고 조언을 하지만 듣질 않는다. 일을 너무 많이 하여 허리는 굽어지고 버는 돈보다 병원비가 더 들어가는데도 그런 식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
우리 부부는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8시에서 9시 사이에 농로를 따라서 산책을 하곤 한다. 어느 날은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인데도 주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 “노루가 물 마시러 내려왔나 봐” 했더니 남편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쉿!” 했다. 한참 멀어진 후에 “노루가 아니라 김씨 할머니가 일하고 계셨어” 라고 했다.
또 한 명은 허리는 90도로 굽었는데 낮에는 가마니 짜는 공장에서 일을 하여 돈을 벌고 퇴근 후에는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바로 길가에 있는 밭과 논에서 일을 하신다. 그러다가 결국 남편이 병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영양실조라고 하였다. 일만 하느라고 남편의 밥 차려주는 것도 소홀히 했다. 지금은 남편은 죽고 혼자 사니 더더욱 일만 한다. 그분은 특기가 논두렁 농사를 잘 지으신다는 것이다. 밭이 부족하여 밭작물을 심을 데가 없으니 자기 논두렁뿐만 아니라 남의 논두렁까지도 파헤쳐서 콩이며, 참깨, 들깨, 팥 등을 심어서 많은 수확을 올린다. ‘부지런하면 굶는 일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부지런함도 지나치면 흉이 된다. 그분들을 보면 집안에 밑 빠진 독이 하나씩 있는 것 같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의 독 말이다.
사람이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여기고 연세가 들수록 세상 것에 너무 착념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날이 가까우니 천국에 갈 날을 준비하며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처럼 자기를 단장하며 그 날을 기다리며 살면 좋으련만, 그 일 또한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라고 하였다.
우리 교회 P집사님은 올해 79세이신데 굉장히 부지런하다. 이 분 또한 마을에서 내로라하는 일중독 할머니 중 한 분이시다. 그 연세에 가마니 공장에 다니기도 하고 면사무소에서 하는 공공근로를 하기도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온갖 마을의 삯일을 하신다. 그러니 허리며 다리가 남아날 수가 없다. 아들이 목사이다. 몇 년 전까지는 새벽기도를 하러 오셨는데 언젠가부터 그만 두시길래 이유를 물어 보니 “허리, 다리 아파서 걸어 올 수가 없어”라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일은 하루에도 두 탕씩 하신다는 것이다. 낮에는 남의 일을 하여 돈을 벌고 밤에는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 마을의 성도님이 바꿔서 하라고, 즉 일을 줄이고 기도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라고 조언을 해도 막무가내이다. 그 집에 심방을 하러 가서 목사님이 “아들이 목회를 하니 어머니의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라고 당부하건만 들을 때뿐이다. 왜 그렇게 돈을 벌려고 기를 쓰느냐고 물으니 “손자들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었는데 그거 넣느라고 그런다”라고 하시더란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늘상 자녀들에게 돈 물려주려고 하지 말고 신앙 물려주고 기도 물려주라고 하는데도 들을 때뿐이지 별로 실행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인간은 재물에 대한 자기 조절이 필요하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가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이 많은 것 같다. 재물에는 날개가 있어 하나님이 불어버리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어느 날 어느 목사님과 식사를 함께 하느라고 장어집에 갔다. 손님들이 목회자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표시가 났다. 그리하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주인이 작년에 큰 손해 본 얘기를 하게 되었다. 작년(2011년) 여름에 이 지방에 하루에 400mm가 넘는 비가 내린 적이 있었다. 곳곳에 홍수가 나서 많은 피해가 났었다. 그 장어집도 장어 양식장을 갖고 있는데 작년 홍수에 장어가 비에 쓸려가 10억~20억 정도의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그 일로 한동안 마음을 못 잡아서 힘들었었노라고 했다.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던 중 전도를 받아 이제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마음도 안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돈을 많이 벌어 그 돈을 하나님을 삼고 기고만장하게 살다가 지옥에 가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손해는 봤을망정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만지셔서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영혼이 구원받았으니 복된 일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니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딤전6:18)”가 되면 참으로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인생이 무엇인가? 인생은 안개와 같아서 순식간에 사라질 운명이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4)”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성취했노라 자랑하는 것은 다 악하고 허탄한 것이다 여호와의 날이 이르면 눈이 높은 자는 낮아지며 교만한 자는 굴복되고 대저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는 낮아지게(사2:11~12)” 될 것이다.
나는 작년에 정년을 10년 6개월 남겨두고 명예퇴직을 했다. 어찌 아쉬운 마음이 없었으랴. 남편과 몇몇 사람만 제외하고는 모두가 말렸다. 그 때 나는 최인호의 소설 <상도>를 읽으면서 위안을 받았다. <상도>의 주인공 임상옥은 거부가 되었는데 70% 정도 차면 술이 사라져버리는 ‘계영배’라는 술잔을 가지고 있으면서 늘 자신을 경계하며 살았다. 그 술잔의 비기처럼 그는 50대 후반이 되자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자기의 삶에도 그 교훈을 적용하였다. 그 후 그는 일에서 손을 떼고 단출한 집을 짓고 채소밭을 가꾸며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여생을 검소하고 청렴하게 살았다. 그의 호는 가포(채소밭을 가꾸는 늙은이)였다.
나는 명예퇴직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의 인생을 삼등분하여 첫 삼분의 일은 나서 자라고 배우는 기간이었고, 두 번째 삼분의 일은 결혼하여 자녀들을 기르고 직장 생활을 하며 노후생활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으니, 이제 마지막 남은 삼분의 일은 목회자인 남편을 도와 예수님의 대위임령인 “내 양을 돌보라”를 좌우명으로 삼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리라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틈틈이 책을 읽고 글도 쓰고.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