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옷 뜨기
-이수니
나의 몸 둘레만큼 코를 뜬다.
어린 들숨을 한껏 들이마신 꿈은
아직 날숨에 이르지 않았지만
마파람이 쉽게 드나들 수 있게
헐렁하게 품을 맞추어도 좋겠다.
허리춤엔 결리는 칡넝쿨 같은 실을 쓰면 안 되겠지
풋내 나는 자두나무의 뭉쳐진
그늘을 풀어 목덜미를 짜도 좋겠다.
목덜미 가장자리에 무늬를 새기는 실로는
나팔꽃 줄기만한 것이 없겠지
목덜미에 새로 생긴
주름살 한 줄 곁들이면 조금 여유로워지겠다.
새치가 박힌 머리카락, 열린 사립문으로 들어와서
뒤란 들창으로 빠져나가는
소나기 바람 줄기로 주름을 짜 넣으면
한여름에도 한기가 으스스 돋겠다.
두 팔목은 토란 밭고랑 북을 돋우는 일을 시켜 놓고
그 사이 어깨까지 마무리 짓는다.
무심한 등짝은 갑작스런 소나기 빗살로 뜨면 좋겠고
오후 한나절 등나무 그늘을 빌린 깜박 졸음에,
듬성듬성 코가 빠진 가슴팍에는
마파람을 꿰어 넣어도 좋겠다.
입다 보면 늘어지는 곳이 생기겠지
늘어지지 않는 것은 지나간 시간뿐이니
살짝 그리움으로 느슨하게 짜도 좋겠다.
촘촘히 코를 짠다. 허리쯤에
그리움을 닮은 보라색 도라지꽃으로 주머니를 달고
마무리로 한여름 밤 반딧불을 모아
보일 듯 말 듯 단추를 달아도 좋겠고
풋살구 몇 개 따다가 달아도 좋겠다.
어차피 실로 뜬 옷이나 얼기설기 얽힌 일들이란 다
그 신맛에 찡그린 얼굴들이니까.
ㅡ『시와표현』(2017,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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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부터 집사람이 외손녀 외손자들에게 준다면서 뜨개질을 하고 있습니다
토끼인형이랍니다^*^
장맛비 소리를 들으며 선풍기를 돌리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핑크색 털실로 점점 넓어지네요
지인 중에 여름옷을 따로 입는 이가 있었습니다
풀 먹인 모시옷도 삼베옷도 얼마나 그럴듯 했던지...
그런데 그도 잠시 지금은 그냥 메이커 기성품만 걸치고 다니더군요
아무래도 그의 아내가 고생하는 게 안쓰러웠던지,
아니면 그냥 편한 게 좋은 거라 생각하게 됐는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건 '사랑'입니다
사랑은 계절도 가리지 않고, 표정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귀찮음이 묻어나도 그 밑바탕이 사랑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