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화의 여정” 주님을 닮은 ‘참나’의 성인들
2026.8.4.화요일 성 요한 마리 비안네 사제(1786-1859) 기념일
예레30,1-2.12-15.18-22 마태15,1-2.10-14
누구나 사람 마음 깊이에는 주님을 닮은 ‘참나’의 성인이 되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이 갈망이, 꿈이 실현될 때 비로소 참 기쁨, 참 행복의 삶이겠습니다. 그러니 믿는 이들의 여정은 “참나”의 고유한 성인이 되어가는 <성화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인을 꿈꾸며 쓴 짧은 오래전 자작시 두 편이 생각납니다.
“늘 맑게 흐르는
‘생명의 강’ 마음으로 살 수는 없을까?
늘 밝게 타오르는
‘사랑의 불’ 영혼으로 살 수는 없을까?”<소망;2000.4.25.>
“햇빛 사랑에
투명히 빛나는 아름다운 단풍들
하느님 사랑에
투명히 빛나는 아름다운 영혼들”<사랑;2000.10.8.>
오늘은 성 요한 마리 비안에 사제 기념일입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로 알려진 성인은 전 세계 모든 본당 신부들의 수호성인입니다. 1786년 프랑스 리옹 근처에서 태어나 사제가 된 성인은 1818년부터 작은 시골 마을인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1859년 선종 때까지 무려 41년 동안 평생 목자 직무에 충실하면서 냉랭했던 신자들의 분위기를 완전 회복했고,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은 하루 16-18시간을 고해성사를 주면서 많은 이들을 회개로 이끌었던 <고해소의 성인>이었습니다.
1859년 8월4일 새벽 2시, 요한 마리 비안네 성인은 41년 5개월 동안의 사목활동을 마치고 향년 73세 아르스 본당에서 선종했고, 이날 아르스의 모든 사람이 슬피 울었다 합니다. 가톨릭교회의 후속 조치도 참 섬세하고 배려가 깊고 분명합니다. 1874년 교황 비오 9세는 비안네를 가경자로 선포했고, 1905년 교황 비오 10세는 복자로 시복함과 동시에 모든 본당신부의 모델로 제시하였고, 1925년 교황 비오 11세는 성인으로 시성하고 오늘 8월4일을 기념일로 제정합니다.
이어 교황 베네딕도 16세는 2009년 성인의 선종 150주년을 맞이하여 1년간 <사제의 해>로 선포했으며 2010년 6월19일 로마에서 세계 사제의 날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성인을 “그리스도의 양떼를 돌보는 목자들의 모범”이라 일컬으며 성인의 덕을 기렸습니다. 오늘 성인 기념 미사 중 본기도 역시 아름답고 은혜롭습니다.
“하느님, 복된 요한 마리아 사제에게 놀라운 열정으로 양 떼를 보살피게 하셨으니, 그의 모범과 전구로, 저희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많은 형제들을 얻어, 그들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참으로 착한 목자 예수님을 닮아 평생을 아르스 본당의 참 목자로 살았던 성 비안네 사제였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꼭 성인들 축일을 지내며 성인들의 덕을 기립니다. 가톨릭교회를 명실공히 명품종교로 만드는 명품성인들입니다. 기념하고 기억할뿐 아니라 각자 삶의 제자리에서 각자 고유의 주님을 닮은 참나의 성인이 되어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엣 현자의 말씀이 성화의 여정에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우면 원망 없는 세상이 된다.”<다산>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하게 하라.”<채근담>
한번뿐이 없는 소중한 인생 모두가 성인이 되라고 불린 <성화의 여정> 인생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어둡고 혼탁한 시대에 회개의 표징, 희망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어, 밤하늘의 별처럼 세상을 밝히는 <삶의 좌표>가 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 성인들입니다.
누가 성인입니까? 바로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전통고수의 성인이 아닙니다. 전통고수의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 대한 주님의 시원한 일갈이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나를 헛되이 섬긴다.”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여 이들을 꾸짖으신 다음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이어 이 말씀을 못마땅해 하는 바리사이들에게 주시는, 우리의 무지를 일깨우는 주님의 죽비같은 말씀입니다.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무지에 눈먼 인도자가 아니라, 잘 듣고 잘 보면서 부단히 주님을 닮아 깨달음의 여정에 충실한 눈밝은 <지혜롭고 겸손한 이들>이, 안팎이 같은 <진실하고 순수한 이들>이 성인들입니다. 입은 닫고 지갑과 귀와 눈은 활짝 열고 묵묵히 조용히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성인들입니다. 입단속에 앞서 마음의 정화가, 깨끗한 마음이 우선입니다. 마음의 온갖 오물들이 입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처럼 희망의 표징이 되는 이가 성인입니다. 마치 우리의 희망, 예수님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내가 그들을 영예롭게 하리니, 그들이 멸시당하지 않으리라.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도록 다가오게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누가 감히 나에게 다가오겠느냐?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은 우리의 하느님이 되니> 바로 이런 관계에 충실한 이들이 성인들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닮아 참내가 되는 성화의 여정은 예닮의 여정이자 하닮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참나의 성인이 되는 성화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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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786년 프랑스 리옹 근처에서 태어나
사제가 된 성인은 1818년부터 작은 시골 마을인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1859년 선종 때까지
무려 41년 동안 평생 목자 직무에 충실하면서
냉랭했던 신자들의 분위기를 완전 회복했고,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은 하루 16-18시간을
고해성사를 주면서 많은 이들을 회개로 이끌었던
<고해소의 성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