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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을 책망한 세례 요한 6:14~20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5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세례 요한의 죽음 6:21~29
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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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롯왕은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여깁니다. 전에 헤롯은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한 요한을 투옥했지만, 그가 의로운 사람임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자신의 생일잔치 때 춤을 춘 헤로디아 딸의 요청과 자신이 한 맹세로 인해 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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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을 책망한 세례 요한 6:14~20
예수님의 사역과 제자들의 전도로 예수님 명성이 널리 알려집니다. 예수님의 권능에 놀란 사람들은 그분을 ‘엘리야’라 하고, 예수님의 권세 있는 교훈에 감동한 사람들은 그분을 ‘선지자’라 합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목 벤 ‘세례 요한’으로 여깁니다(16절). 당시 갈릴리와 베뢰아를 통치하던 헤롯은 방탕과 탐욕과 살인을 일삼았고, 예수님도 헤롯을 ‘여우’라고 칭하셨습니다(눅 13:32). 헤롯이 이복형제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하자, 세례 요한은 헤롯의 불의를 책망했습니다(18절). 헤로디아는 요한을 죽이고 싶어 했지만, 헤롯은 의로운 요한을 죽이지 못하고 투옥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한 선지자요, 당대 권력자의 불의를 용기 있게 지적한 사람이었습니다.
● 더 깊은 묵상
헤롯의 불의에 대해 세례 요한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공동체 안팎에서 지도자의 불의를 인지했을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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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죽음 6:21~29
본문은 요한이 어떻게 생애를 마쳤는지를 알려 줍니다. 헤롯의 생일을 기념하는 연회가 시작되자 헤로디아는 자신의 딸 살로메를 연회에 보내 춤추게 합니다. 살로메의 춤은 참석한 이들을 기쁘게 했고, 헤롯은 딸의 소원이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맹세합니다. 이 순간을 기다렸던 헤로디아는 딸에게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며 끔찍한 일을 사주합니다(24절). 헤롯에게 ‘급히’ 돌아가 요한의 머리를 구하는 모습에서 살로메 또한 헤로디아처럼 심성이 악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섣부른 맹세로 인해 번민하면서도 헤롯은 결국 요한을 참수합니다. 비록 짧은 생애지만, 요한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 더 깊은 묵상
헤롯의 경솔한 맹세는 어떤 결과를 낳았나요?
잘못된 일인지 알면서도 내가 멈추지 못하는 죄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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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은 있다!
남들에게 하나님 심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무례한 행위가 아니라 가장 큰 사랑의 행위다. 레베카 피펏의 말처럼 진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파괴하는 것에 맞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나 가족 앞에서 심판이라는 주제를 꺼내기 어려워하는 것일까? 왜 평생 예수님을 믿은 성도가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할까? 그것은 우리가 심판을 믿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나친 배려심 때문일까? 불편한 주제를 꺼내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일까?
좋은 의사는 환자의 병이 심각할수록 공격적인 치료법을 단행한다. 아이가 독약을 마시려고 하면 사랑 많은 부모일수록 더욱 절박하게 멈추라고 소리를 지를 것이다. 친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을수록 그의 진정한 크리스천 친구는 영원한 현실에 대해 더 직설적으로 말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천국은 실재하고, 지옥도 실재한다고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우정과 겸손, 배려와 사랑 안에서 심판에 관해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부담스럽더라도,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 진리를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다.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 스캇 솔즈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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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마가복음 6장 25~26절
진리에 대한 무감각과 탐욕은 인생을 일그러지게 합니다. 무엇이든 구하라고 말한 헤롯에게 헤로디아의 딸은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합니다. 자신이 한 맹세와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헤롯은 그 안에 갇혀 진리와 자유를 상실하고 맙니다. 그와 달리 헛된 욕심과 남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진리 안에서 자유롭습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인간의 탐욕에 휘둘리지 않고 진리 위에 설 때, 인생은 아름다워집니다.
진리를 접하고도 진리를 받아들일 분명한 결단이 없다면 진리로 충만한 삶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 캐럴 메이홀
오늘의 기도
주님, 말씀은 달게 들으면서도 그 말씀대로 행할 의지가 없었던 헤롯의 어리석음이 제게는 없는지요. 하나님 말씀보다 제 자존심이 앞서지 않게 살피고, 죄에 대해 책망하거나 책망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진실하고 신중한 입술과 삶으로 하나님 의를 이루어 가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40 주가 맡긴 모든 역사)
오늘 본문은 예수의 소문이 퍼지자 헤롯 왕이 듣고 자신이 죽인 요한이 살아났다고 말하는 내용으로, 마가복음의 저자는 헤롯이 저지른 과거의 악행을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헤롯대왕 일가의 추잡한 가족관계와 치정에 얽힌 스캔들이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소문에 대한 헤롯의 반응, 헤롯에 대한 세례 요한의 비판, 헤로디아의 계략, 세례 요한의 죽음과 장례입니다.
본문의 헤롯 왕은 유아 살해명령을 내린 헤롯 대왕의 둘째 아들로, 갈릴리와 베레아를 통치하고 있는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정식 왕의 자격을 받지 못한 군주로, 아버지 헤롯 대왕으로부터 권력 세습은 받았지만 로마로부터의 인준을 끝내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 칼리굴라 황제 때 왕의 칭호를 얻으려 하다가 실패하여 A.D. 39년에 실각하고 맙니다. 그런 이유로 역사학자들은 그를 무능하다고 평가합니다. 또한 그는 도덕적으로도 비난 받은 자입니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아우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본처는 ‘퍄샬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아라비아의 공주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남편이 헤로디아와 결혼할 것을 알고, 사해동쪽 접경지역인 ‘마케루스’ 요새에 다녀오겠다고 하고는, 비밀리에 국경을 넘어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그것으로 인하여 아라비아와의 전쟁은 불가피했는데, 거기서 헤롯은 대패하고 맙니다. 예수님은 그를 여우라고 부릅니다. 간사하고 교활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그와 결혼한 헤로디아는 헤롯 대왕의 아들인 아리스토볼로스의 딸입니다. 그녀는 처음 자신의 이복 삼촌인 헤롯 빌립 1세와 결혼하지만, 그 남편을 버리고 남편의 형제인 헤롯 안티파스와 재혼하니, 결국 이복삼촌과 또 결혼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근친상간의 범죄로 보고, 과거의 예언자들처럼 단호하게 비판했던 것입니다. 즉, 그 옛날 다윗 왕의 간음에 대해 나단이 비판한 것처럼 말입니다. 다윗은 회개하였지만 헤롯은 요한을 감옥에 넣습니다. 유대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요한의 투옥 이유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유대백성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었기에, 그런 정적을 일찌감치 제거할 목적으로 투옥시켰다고 합니다. 헤롯은 딸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그 말은 당시 유행하던 말로, 무엇인가를 후히 주려고 할 때 사용된 속담과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헤롯의 신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영토의 관할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 로마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주권이 없는 하급 군주 곧 분봉왕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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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 헤로디아가 요한을 죽이려고 하지만 남편 헤롯이 워낙 그를 의롭고 성스러운 사람으로 알아서 보호해 주고, 또 그의 말을 들을 때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오히려 달게 들었기 때문에 죽일 수 없었다. ‘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헤롯은 요한을 존경하고 후대해야 합니다. 설령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요한을 투옥시켰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간 뒤 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합니다. 석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살해한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그의 양심은 그러한 사실을 똑똑히 주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의 소문이 들리자 즉각 세례 요한을 떠올리고는 그가 살아났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깊은 내면에서 일어난, 의인을 죽였다는 양심의 소리였을 것입니다. 곧 죄책감으로 인한 영혼의 울림입니다. 후회한들 이미 그 때는 자신의 과오를 돌이킬 수 없습니다. 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할 수 있을 그 시기를 놓친 것이지요. 그의 이성이 요한을 의롭다고 인정하고, 그의 감정이 그를 거룩하다고 느낄 때, 그리고 양심조차도 그를 선지자로 받아들일 때 그 때 그는 선한 행동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후 그는 세상과 타인에게 자신을 빼앗기고 맙니다. 경솔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맹세까지 했기에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과할 것이 있으면 사과하고, 용서할 때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까지 상대방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사랑할 때 사랑해야 합니다. 흘러가는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지요. 특별히 회개할 때 회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악한 세상이 가만히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심각한 죄의 지적이 있을 때 즉시 무릎 꿇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헤롯처럼 더 악한 죄악이 다음 단계에 준비되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오늘 일로 만난 사람 다시는 보지 못 할 수 있습니다. 살가운 눈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상사나 동료 그리고 이웃들은 일평생 동반자가 아닙니다. 내일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부, 부모, 친구들은 무덤까지 갖고 가는 사이입니다. 애틋한 눈길, 진실된 마음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성, 지성, 감정 그리도 양심 가지고는 안 됩니다. 손과 발이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선한 미소, 다정한 눈길 그리고 우리 예수님의 사랑을 손과 발로 전하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틈타기 전에, 무엇보다도 아직 우리가 이 세상에 있을 때, 용서하고 회개하고 사랑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같은 배에 탄 교회 식구들, 섭섭해도 꼴 볼기 싫어도 인내하며 끝까지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천국에서 만난다면 얼마나 무안할까요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문을 듣고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고 여겼는데 이는 그의 죽음이 여전히 헤롯에게는 양가적인 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동생, 헤롯 빌립의 전처이자 헤롯 대왕의 손녀였던 헤로디아와 불륜을 저질렀고 이를 요한이 계속적으로 비판하였던 것을 몹시 불쾌하고 불편하게 여겼던 헤로디아가 자신의 딸을 이용하여 춤으로 그를 유혹하고 헤롯 안티파스로 하여금 결국 세례 요한을 목베어 죽이도록 유도했습니다.
세상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여호와의 공의와 선하심을 선포하였던 그의 삶의 끝은 세상적으로 비참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고 그분으로부터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자(눅 7:28)’라고 칭찬을 받은 복된 인생이었습니다.
욕망이 따라 세상적으로 화려하게 살아갔던 헤롯 안티파스는 이혼한 전처의 나라인 나바테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했고 의존했던 헤로디아의 강청으로 로마의 황제에게 더 큰 권력을 요구하려다 결국 그녀와 함께 유배 당하여 비참한 마지막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행하는 삶은 화려하지 않고 부러워할 만한 것이 없을지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과 진리와 생명에 거하고 그분을 바로 바라보는 인생이 복됨을 마가는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 겸손과 순종, 거룩과 순결로 나아가는 주님의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기사와 표적들은 영적인 충격과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인은 엘리야라 옛 선지자 중 하나라 하고, 헤롯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런 기사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요한 뿐일 거라는 존경심, 요한을 죽인 죄책감, 자기 악행에 대한 심판의 공포 등등 복합적 이유였겠지만, 무엇보다 그는 말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영적 이슈가 발생하면 종교인에게 그것을 설명할 책임이 있는 것처럼, 그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에 대해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도 종교인들과 정치인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근대 이후 새로운 유형의 종교집단 곧 진화론이라는 허구를 신앙하는 자칭 과학자라 하는 종교인들은 더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누군지 몰라서 엘리야가 다시 살아났다는 터무니없는 소리나 하던 옛 종교인들보다 더 허무맹랑한, 아무것도 모르면서 인류의 기원과 우주의 기원까지 안다고 말하는 무당 같은 종교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에게 부화뇌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기원과 우주의 기원을 이미 알고 있고, 진리의 주가 누구신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5:20)
우리는 알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요일4:16)
그러나 지금도 많은 교인들이 정사의 영에 미혹되어 우파니, 좌파니, 중도니 하며 저들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을 따르며, 심지어 교회에서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을 호소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당 짓는 자는 멸망할 것입니다
"당 짓는 것,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20~21)
그러므로 우리는 저들이 아무리 큰 입으로 말해도, 우리가 아는 진리에 더욱 착념하기 원합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
진리를 다시 생각하기 원합니다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유1:5)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전체 제자들의 성공적인 사역은 한 호흡에 서술되지 않고 잠시 세례 요한의 죽음으로 전환을 맞습니다. 이로써 독자의 시선은 흥분과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성공 이야기에서 선택받은 이의 허무한 죽음으로 옮겨갑니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러 앞서 온 세례 요한은 이제 그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죽음마저 예비하는 듯합니다. 우리 사역이 성공하고 부흥할 때, 자칫 그것이 전부인 양 복음을 성공과 번영의 길로 덧칠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진정한 모습은 성공과 능력의 정점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 가장 비천한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4-16절 전도 여행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납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이 부활한 것으로 생각했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 혹은 선지자 중 하나와 같다고 여겼습니다. 비록 그들의 이해가 정확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지식에 근접해 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의 선교는 철저하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역과 선교도 자신의 명성과 성공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는 사역이 되고 있습니까?
17-29절 진리의 말씀을 듣고 즐거워하는 것만으로는 죄의 지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헤롯은 요한의 가르침을 달게 들었고 헤로디아의 적개심에서 요한을 보호하기도 했지만, 그의 이런 모호한 호의는 ‘진리에 대한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력자들 앞에서 체면을 차리기 위해 의로운 요한을 참수하게 했을 때, 이미 진리에 대한 그의 가벼움은 만천하에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훗날 대중의 지지와 자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죄한 예수께 십자가형을 내린 빌라도의 모습 역시 헤롯의 이런 딜레마를 다시 보여줍니다.
진리에 헌신한 자, 옳은 일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던 요한이 춤에 대한 보상으로 무참히 죽임당하는 어이없는 일이 곧 예수님에게도 반복될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관심이 헌신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 죄는 그 틈을 파고들어 사람을 지배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내 삶을 형성하는 기초와 뼈대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기도
말씀을 통해 ‘주님이 누구신지’ 배우고, 삶을 통해 드러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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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당하게 예수의 주되심을 선포하는 삶입니다(14~16절).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니, 헤롯 왕이 그 소문을 들었습니다. 전도대로 파송을 받았던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예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또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들 말합니다. 헤롯은 이러한 소문에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세례 요한을 죽인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운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으로 받아 드릴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내 삶의 중심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님이 주 되심을 인정하는 고백이 삶의 축을 이루게 될 때, 내 인생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신앙의 괴도를 이탈하여 세상 즐거움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올곧은 생활과 성품을 지닐 때, 생활하는 공동체에서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내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지켜 나가는 삶입니다. 바른 말, 바른 생활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하는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당당하게 복음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삶입니다(17~20절).
세례 요한이 감옥에 투옥이 되고, 죽음의 구심점에는 헤로디아가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18절)라고 말했습니다. 헤롯과 헤로디아는 각각의 배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습니다. 이에 대해 세례 요한은 상대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잘못 되었음으로 당당하게 비판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에 나아가 죽도록 한 다윗을 강하게 비판했던 나단 선지자(삼하 12:1~12)를 떠올리게 합니다. 헤로디아는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것처럼 세례 요한을 죽이고자 했지만, 헤롯은 세례 요한을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오히려 두려워하여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말에 대해 몹시 괴로워했습니다(20절).
복음은 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러한 복음을 통해 세상 사람들도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도록 때로는 책망으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정직하게 살아가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누르고서라도 자신이 성공만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생각과 사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향해 복음의 영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은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당당하게 복음의 영향력을 나타낼 때, 어두운 세상 가운데 밝은 빛으로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삶이 그리스도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 당당하게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가는 삶입니다(21~29절).
눈에 가시와도 같았던 세례 요한을 죽일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헤롯의 생일날 자신의 딸이 헤롯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게 합니다. 헤롯은 흡족했는지 딸에게 어떤 것이든 요청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즉흥적으로 약속합니다. 결국 헤로디아는 딸을 이용해서 세례 요한을 죽음으로 밀어 넣게 됩니다.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거절할 수 없는지라...’(26절)..
헤롯은 미련한 입술의 말로 인해서(잠 12:13) 세례 요한을 죽이는 어리석음과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들의 죄를 지적해서 헤로디아의 원수가 되었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난과 핍박을 감수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로부터, 믿지 않는 직장의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세상의 친구들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모한 무늬만 성도인 교우들로부터 고난과 핍박 그리고 미움을 계속해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마땅히 감수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 역시도 처음 신앙을 접했을 때, 그리고 신학교를 입학할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의 방해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나는 지금 목사가 되어있고, 가족들은 세례를 받고 함께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답게 그래서 당당하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결단합니다. 비겁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당당하게 그 길을 걷는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답게 믿음 안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나타냄은 물론 당당하게 고난의 십자가를 지더라도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막 6:14~29절)...
1.예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14-15절)
예수님의 행하신 일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헤롯왕의 손에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났다고도 하고 또는 엘리야나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닌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판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 이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실 메시야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보면서도 예수님께서 메시야 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참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하는 선물임을 이들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보지 않고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할 수 있고 그를 통한 구원을 확신할 수 있도록 영적인 선물을 받았음을 늘 감사하며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사는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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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함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감사하며 사는가?
2.죽었지만 진정으로 산 세례요한(16-29절)
세례요한이 헤롯왕에게 어떻게 죽임을 당하였는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의 권력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왕이라고 하여도 더 높으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못하게 행하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한 세례요한을 옥에 가두고 말도 안되는 일을 통해서 세례요한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헤롯이 더 강하것 같아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이 여자가 난 자 중에 가장 큰자라고 칭찬하실 정도로 세례요한의 삶을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삶이었고 그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자의 사명을 다한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의 성도의 삶은 종 종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세상의 권세앞에 핍박과 환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영원한 본향에서 하나님앞에서 칭찬과 상급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어떠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바르게 세우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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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나를 통해 공의가 세워지고 있는가?
세례 요한의 죽음과 헤롯(6:14~29)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 머뭇거리지 말고 즉각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를 주저하면 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헤롯은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세례 요한은 단호하게
그의 행동이 옳지 않음을 지적했습니다. 헤롯은 요한의 책망에 번민하기는 했지만 돌이키는 결단을 미루다가,
오히려 헤로디아의 꼬임에 빠져 세례 요한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가책을 느끼고 있던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신이 목 베어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간음죄를 방치한 결과, 살인죄까지 짓게 되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죄는 더 심각한 죄를 부릅니다.
어찌 보면 회개하지 않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죄입니다.
- 묵상 질문: 헤롯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회개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말씀을 듣고 양심에 찔리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회개도, 결단도 하지 않는 제 모습을 봅니다.
회개하기 싫어하는 마음 밑바닥에 있는 욕심을 말씀으로 깨뜨리고,
주님의 제자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부르신 그 자리에서 맡기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자녀 되길 소망합니다.
때론 세상이 무시하고 손가락질하여도
오직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고
주님 한 분만을 높이는 인생 되도록 선하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이 교만과 탐욕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온전히 붙들고 공의를 행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