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말 중에 “허접스럽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파생되어 “허접하다”. “허접쓰레기” 등의 표현으로도 쓰이지요.
이 말의 뜻은 대략 ‘허름하고 잡스러운 느낌이 있다.’ 정도로 되는데,
어디에도 이에 대한 어원이나 유래는 밝힌 곳은 없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어떤 정보에 의하면 최근에 생겨난 신조어라고도 하고,
국어운동문화본부에 올라와 있는 글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등장하는 허접(許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순 우리말이라 하면서도
이런 말이 어디에 유래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허접(許接)이 등장하는 왕조실록을 보면 명사로 보기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허접이란 말은 300군데가 넘는 곳에 등장하는데,
많은 경우 허접인(許接人), 허접자(許接者), 혹은 허접호(許接戶)로 쓰여서
‘허접한 사람(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이럴진대 과연 허접을 과연 명사로 볼 수 있을지는 상당한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허접스럽다”는 말이 왕조실록에서 쓰인 허접과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는지를 따져보자구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왕조실록에 쓰인 허접은 “허접스런 놈” 정도의 뜻을 지니기에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왕조실록에 쓰인 허접의 용도를 보면, 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즉, 왜구, 도망간 노비, 도적 역적 등과 결탁하여 그들을 머물게 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이것이 발각되어 노비 신분이 되거나 형벌을 받는 등의 불이익을 당하거든요.
그러므로 왕조실록에 쓰인 허접의 용도로 볼 때
이 말은 결코 좋은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근거가 될 수 있는 왕조실록의 기사들을 몇 개 살펴보면서
“허접스럽다”의 유래 혹은 어원을 밝혀봅니다.
먼저 세조 36권 11년 7월 14일 (기미)의 기사인
“좌승지 윤필상이 각도에서 잡힌 도둑을 국문할 것을 건의하다”의 내용을 보도록 합시다.
이 기사는 도둑을 처벌하는 과정을 말한 것인데, 여기서 ‘허접한 사람’에 대한 처분이 나옵니다.
“여러 차례 도둑질을 한 것이 명백한 자는 큰 도적으로 정하게 하라.
뭇사람이 다 알고 있는 큰 도적과 허접한 집[戶]은 제주(濟州)와 3도(三島)의 관노(官奴)로 영속(永屬)시키고,
정상을 알고 있는 절린(切隣)한 호수(戶首)는 곤장(杖) 1백 대에, 도(徒) 3년에 처하게 하라.
양쪽 어깨에 자자(刺字)한 사람은 제주(濟州)와 3도(三島)에 옮겨 두되 천구(賤口)는 관노(官奴)로 소속시키게 하라.
사는 곳이 아닌데 이접(移接)한 사람과 정상을 알면서도 허접(許接)한 호수(戶首)는
아울러 곤장(杖) 1백 대를 때리게 하고...”
여기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허접은 나라에서 금하는 범법자와 내통하여 그들을 받아들인 사람이나
그들을 받아들여 허접한 집, 혹은 허접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노비신분이 되어 제주도로 가서 관노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허접한 사람은
자신의 신세도 망칠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조에 천민이 된다는 것은 나라를 위한 군역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겁니다.
왕조실록의 다른 기록을 좀 더 보도록 한다.
연산군 63권 12년 8월 14일(신유)의 기사에
“도망간 운평 송초월 등을 연좌시켜 처벌하게 하다”는 내용이 있는데,
도망간 운평을 받아준 사람에 대한 처벌에서 허접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운평 송초월(松梢月) 등이 도망쳤으니, 자고 간 집 주인까지 잡아 가두고,
송초월 등을 처형할 때 운평들을 늘어 세워 보도록 하며,
그 고을[官] 수령은 잘 가르치지 못했으니, 아울러 국문하라.
전에 조관으로서 역시 도망쳐 화를 면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는 국가의 폐풍이다.
앞으로 조관이나 군사, 공·사천민으로 도망한 자는 중전(重典)에 처하고
그 부모 또는 그들을 ‘허접한 자’들은, 지정(知情) 여부를 막론하고, 장(杖) 1백에 처하여 온 가족을 변방으로 옮기라.”
운평은 연산군 때의 기생집단에 속해있던 사람으로 궁중이나 나라에 속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도망을 가면 나라에 죄를 짓는 것이 되겠지요.
나라에 죄를 짓고 도망을 간 사람을 받아주었다고 하여 곤장 1백대를 맞았으니
허접한 사람은 억울하기 그지없었겠지요.
허접인에 대한 기록은 이 외에도 여러 곳에 나타납니다.
인조 10년 3년 11월 14일(기미)의 기사에 “역적 정윤복 등을 체포해 국문하다”에 보면,
“도망한 역적 정윤복(鄭允福)이 그 아들 정개질동(鄭介叱同)과 조카 사윤(士允)을 데리고 서울로 들어와
민가에 숨어 있었는데, 포도 대장이 사찰(伺察)하여 체포해 국문하였다.
윤복은 적을 따른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복하여 마침내 정형(正刑)에 처해졌고,
개질동과 사윤은 불복(不服)하고 죽었으며,
‘허접한 사람’(許接人)인 김개(金介)·박개질동(朴介叱同)·정백수(鄭栢壽) 등도 국문을 받다가 모두 장하(杖下)에서 죽었다.”
역적을 받아들여 머물게 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다가 죽었으니
허접한 사람은 그야말로 허접스런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와 같이 허접과 관련된 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볼 때
허접은 명사라기보다는 형용사로 집, 사람 등의 명사를 꾸미는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왕조실록에 나타나는 ‘허접인’ 혹은 ‘허접자’ 등의 용어는 철종실록에까지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아주 폭넓게 쓰였던 말이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쓸모없는 노예 라는 천민으로 전락했으니
허름하고 잡스러운 느낌을 가지는 의미로 아주 적합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범법자나 도망자 등을 받아들여 살게 한 죄로 천민이 된 사람들은 제주가 아니면
길주·명천이 있는 양계(지금의 함경도)로 보내기도 했으니
쓸모없다는 의미로서 남쪽의 말인 ‘허접스럽다’보다 북쪽의 말인 ‘허섭스럽다’가 먼저 생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허접스럽다” 혹은 “허섭스럽다”는 20세기 중에도 꾸준히 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고향이 북쪽인 백기완씨가 지은 “백기완의 통일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오는 것에서 짐작이 됩니다.
“남쪽의 피눈물과 북쪽의 피눈물이 만나 굽이쳐 모든 군사장치와 허섭스레기를 쓸어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허접쓰레기”와 “허섭스레기”는 다른 말이라고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지금 쓰는 “허접쓰레기”와 같습니다.
어쩌면 “허접쓰레기”는 “허섭스레기”를 잘못 발음한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러나 허접이 현재 우리가 말하는 뜻으로 조선시대부터 이미 쓰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볼 때,
“허섭스럽다”는 북쪽 지방의 방언이고, “허접스럽다”가 맞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
첫댓글 허접하기가 이를 때 없다. 그냥 이런 말을 하고 살면서도
그 뿌리가 존재하는 어원에 대해선 보통 사람들은 생각조차도 못할겁니다.
긴 글임에도 역사 이야기라서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암튼 허접한 인간으로 불려지지는 않게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