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동생
오늘은 전설속의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七夕)날이다.
음력 7월7일 칠석 이튿날은 누이동생의 생일이다.
내게는 두 누이동생이 있다.
칠석 이튿날 태어난 바로 아래 여동생과 막내 여동생이다.
5남매의 맏이인 나는 두 누이동생과 두 남동생이 있지만 형과 누나는 없다.
믿음직한 형, 예쁘고 정이 넘치는 누나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도 있다.
오늘은 내일 생일을 맞는 누이동생에게 카톡 으로 축하의 글을 보냈다.
옛날 종이에 쓰던 편지처럼 장문의 글을 써 보냈다.
나는 추석 다음날 세상에 나왔고, 다음 다음해 칠석 이튿날 누이동생이 태어났다.
나이 터울이 2년이 채 되지 않아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함께 성장을 한 셈이다.
생전에 어머니께서는 내게 더러 말씀하신 적이 있다.
‘네 여동생 때문에 너는 젖배를 곯았느니라’ 라고.
다른 동생들보다 우리 오누이는 대화와 감정의 교류가 많았었다.
학교도 내가 1년 앞서 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 누이동생은 문학적 소질이 있었다.
‘엽(葉)’이란 필명을 가지고 시작(詩作)도 하였다.
그런데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불호령으로 누이동생은 뜻을 접어야만 했다.
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포기하는 여동생이 보기 안타까웠다.
농촌의 대농가였던 우리 집은 식구가 무려 15~6의 대가족 이었다.
조부모님, 부모님, 초등학교 교사고모 두 분, 삼촌 두 분, 우리 5남
매, 어머니 시중들던 숙이, 농사일 하는 머슴 아저씨들 ,,,
집안은 늘 어수선했고 농사철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분주했다.
어느 날인가 누이동생은 같은 반 친구 여학생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 여학생은 며칠이 지나도 우리 집에 계속 머물며 학교를 다니는 것이다.
많은 식구들 보살피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 생각을 하면, 누이동생과 친구 여학생이 미웠다.
여동생 친구는 우리 집 식구가 되어 고등학교 때까지 함께 살았다.
수 십년 세월이 지나고 알게된 사연에 나는 놀라고 감동했다.
누이동생 친구 그 여학생은 도시 가정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가정 파탄으로 갈 곳 없는 불우한 처지가 된 것이다.
누이동생은 불쌍한 처지가 된 친구를 무작정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엄격하신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다.
자손들의 배움을 위해서는 모든 걸 아끼지 않으시던 할아버지,
장학(獎學)이념이 남다르셨던 할아버지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쾌히 허락을 하셨고 그 여학생은 한 지붕아래 가족이 되었다.
나는 누이동생의 용기와 우정에 놀랐고 감탄을 하였다.
원래 착하고 온순했던 여동생의 인간애가 내심 존경스러웠다.
누이동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을 마치고 노년을 행복하게 보낸다.
4남매 자식들 모두 잘 길러 남보란 듯 남혼여가(男婚女嫁)시켰고, 저희들도 효심이 지극한 것 같다.
일찍이 종교에 귀의해 진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노구에도 성경 전권을 필사한 노력과 끈기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소박한 마음으로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도 진정한 행복이다.
자랑스럽고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보며 인간의 행복이란 걸 생각해본다.
일찍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왕이든 백성이든 자기 가정에서 평화를 발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 이라고 했다.
가정과 가족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과 행복의 원천이다.
첫댓글 자랑스럽고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보며 인간의 행복이란 걸 생각해본다.
일찍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왕이든 백성이든 자기 가정에서 평화를 발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 이라고 했다.
가정과 가족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과 행복의 원천이다.
일찍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왕이든 백성이든 자기 가정에서 평화를 발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 이라고 했다.
가정과 가족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과 행복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