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까지도 손톱을 엄마가 깎아줬습니다. 면도나 혼자 제대로 할까 싶어 걱정하던 엄마는 어디서 당근을 많이 먹으면 수염이 잘 안 난다는 얘기를 듣고 오셔서 한동안 당근을 제게 엄청 먹이셨습니다.
근사한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동료도 없이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현대인의 필수품 핸드폰이 없어서 늘 인간관계에서도 제외되기 십상이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특별히 피한 것은 아닌데 세상이 날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였기에 아버지 상을 당하고 나서 가족들은 저거 문상 올 사람은 집에 자주 드나들던 대학친구 3명뿐 일 거라 다들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품앗이 성격이 강한 경조사 특성상 가족들의 생각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전 저 나름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잘 떠나보내야겠다 맘 먹었습니다.
다행히 형과 매형, 매제들이 활발히 사회 활동을 하는 분들이라 문상객들이 많이 찾아 주셨고 평소 사람 좋아하시는 아버지 가시는 길 시끌벅적하게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이러시더군요.
“아니, 저 성질 급한 양반이 어떻게 저렇게 누워있대? 사람들 이렇게 많이 와서 떠들썩한거 보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춰야지. 어떻게 저렇게 누워만 있대. 응. 자식들 자랑하고 싶어 입이 간지러울텐데 어떻게 저렇게 입 꽉 다물고 참고 누워있대. 일어나봐요. 이것 좀 봐요. 일어나보라구.......”
그래서 또 한 번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장례 도중 형이 그러더군요.
“형이 깜짝 놀랐다. 선배 너 손님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친구들이 참 많이 찾아오니 참 보기 좋다.”
형과 매형이 하는 얘기는 대충 이런 거였습니다. 거래처 관계자들이나 사회에서 만나 예의상 오는 사람들은 솔직히 어쩔 수 없이 오고가는 것이지만 친구들은 맘을 담아서 오는 것이니 그게 진짜라는 칭찬이었습니다. 물론 저 듣기 좋으라고 하신 측면도 있을 수 있겠지만 또 한 편 그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도초, 대전서중, 유성고, 서울교육대학교 친구들이, 대전동화읽는어른모임 회원들이, 모퉁이어린이도서관 자원활동가들이, 아름다운 동행 산악회 회원들이, 은평교회 목사님과 교우들이 그리고 이선배독서교실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아버지 가시는 길을 직접 찾아와 배웅하고, 남은 가족들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뿐 아니라 직접 오지는 못했지만 댓글로, 물질로, 여러 형태로 그 마음을 전해주신 모든 분들게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가족들이 절 보는 걱정이 조금은 가셨습니다. 아마 아버지도 늘 잘 사는지 걱정이었던 막내아들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고 하늘나라 가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모두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참 고맙습니다.
문상객수와 조화의 개수로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하는 것에 전 물론 동의하지 않습니다. 썰렁한 장례식장에 대한 손가락질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례식은 맘을 담은 고인에 대한 추모가 가장 핵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직접 찾아 위로해주시고, 맘을 보내는 것 자체 역시 무시되거나 폄하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아버지 하늘나라 잘 보내드렸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쓰려다보니 또 말이 길어졌습니다. 게다가 덤으로 가족들이 절 보는 근심이 일정정도 해소되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이제야 처음 가족을 잃은 자의 슬픔을 알았기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위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 일상을 돌아와 그 삶을 소중하게 제대로 사는 것 그것이 먼저 가신 아버지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도 부끄럽지 않은 자식일 수 있도록 그렇게 살도록 애쓰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은평교회에 출석한지가 13년도 넘었는데 교우분들과는 특별히 인사를 나누고 지내지도 않고 그냥 예배만 드렸답니다. 늘 나눔을 남모르게 실천하며, 반복을 즐거워하는 은평교회가 좋아서 자랑스런 마음으로 다니기만 했습니다. 이번에 아버님 상을 당하여 목사님께만 기도 부탁을 드렸는데 각 남선교회, 여선교회 그리고 성도님들께서 직접 찾아와 위로해주시고, 기도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고마운 마음 한가득인데 어찌 표현해야 할지 잘 몰라서 이렇게 글 몇자 적어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은평교회 일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애쓰겠습니다. (이선배, 정유정입니다.)
첫댓글 아하, 이선배 집사님, 정유정 집사님,
두 분 집사님이 이렇게 글을 올려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좀 더 가까워지고 좀 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아버님의 아름다운 삶도 더욱 빛나게 되구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랜만에 만배씨 향숙씨 지은씨를 만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신도안 생각도 울컥 올라오구요.
감사합니다. 샬롬!
뒤늦게 알았습니다. 슬픈소식을요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족과 가문에 풍성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주님안에서 한자녀이기에 생각날때마다 기도하겠습니다. 평안하시길..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유족들 가운데 가득하기기를 기도합니다.
집사님 많이 수척해 보이셔서 ;; 잘 추스리시고 힘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움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불쑥 불쑥 찾아와 아프더군요. 그래도 하늘 소망의 위로가 집사님 가정과 어머님께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13년~ 얘기는 처음 나누어 보았지만, 그 마음은 세월이 쌓여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도 또 그이후에 교회에서도 찾아주시는 모습에서도.
그리고 여기 인터넷카페상에서
진정으로 예를 갖추시는 모습
참으로 존경합니다.
상한심령을 기뻐받으시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한동안 가족분들의 마음에 빈 자리가 있겠지요.
주님께서 크게 위로하시고 대신 자녀분들이
좋은 소식 많이 가져오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랜동안 뵈었는데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했네요 하나님이 가족들을 위로하시길 기도합니다
함께 슬픔을 나누지 못해 죄송합니다.
카페에 올라온 글을 읽으면서 제 자신이 너무 부족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소중한 인연인데.....
주님이 함께 하심을 알기에 집사님 가족을 위해 기도로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