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유가족분들은 어떨까요?
북한하고 싸우다 죽었다고 죄인 취급받고 아들이 뭐하다 죽었냐고 묻더랍니다
자랑스런 아들을 두었는데 그분들의 인생은 망가져가고있습니다.
추모카페의 회원은 고작 2천몇백명.
작년 신문기사에 났을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나오지도 않습니다. 월간조선에서 한번 ,다음넷에서 카페가 소속됐으니 그래도 고맙게도 기사한번, 그리고 조선일보에서만 기사가 나옵니다
누구는 그러겠지요
수구꼴통들이 또 선동한다고? 북한군은 더 많이 죽엇는데 그들도 추모해야하고 그러니 잊어버리자고. 군인이 자기일하다 죽었는데 뭐 대수냐고.
만일 그렇게 말하는 자가 내앞에 있다면 그자는 자신의 내장이 배밖으로 흘려내리는것을 보게 될것입니다.
슬픕니다 너무나 슬픕니다
나라는 이들을 잊은지 오래입니다 국가 원수도 군상층부도 , 국가원수나 정부가 신경안쓰는데 그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군이야 알아서 기겠지요
자기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종교의 자유를 박탈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무고한 가족들까지 수용소에 집어넣고 노역,기아, 그리고 신이 주신 인간의 존엄성을 길가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만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정권에 대해 이나라는 오히려 동족이라면 사랑을 보내고있습니다
좋다이겁니다
동족 좋죠.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것이 그들의 정부를 감싸는 것을까요? 그런들 굶주리는 정치범들에게 밥한공기 더 갈까요?
전 이런 우리나라가 부끄럽습니다.
인과응보라는것이 있습니다 . 그리고 이런 얘기가 있죠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신이 만든 섭리입니다. 특히 값진것 가령 자유같은, 이것의 댓가는 아주 비쌉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것을 주어야 얻을수잇는것이죠 . 그 비싼것이란 누군가의 목숨입니다 그의 피가 대지를 적시고 그의 살이 대지안으로 부패해들어가 기름지게 해야만 그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더구나 한두사람의 피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의 피가 흘려져야 한 두세배되는 사람들이 자유라는 열매를 얻는것입니다
자유는 피인 동시에 고통입니다
죽은 자들은 피만 흘리면 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남은 여생을 고통으로 그 자신을 갈가먹습니다
우리가 자유로운 삶을 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가 민주화라는고 하는것를 얻기 위해 또 여러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북의 사람들이 우리가 가진 것과 같은것을 가질려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할까요?
우리 역시 인과 응보를 받을것입니다.
솔직히 짜증납니다.
만리타국, 그거도 우리와 전혀 다른 자연과 문화를 가진 나라에 돈벌어 학비벌려고 했던 사람이 테러단체에게 납치되어 끔찍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한 사람의 죽음을 이렇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해도 좋습니까? 그렇게 말도 안되는 구라를 떨어대고 싶습니까?
그거야 말로 김선일씨를 두번 죽이는 일입니다.
2년 전, 월드컵에서 한국이 준결승까지 진출해 터키랑 붙은다고 흥분하던 토요일.
서해에서 357정이 격침되었습니다.
미군 부대 물건 납품하던 것도 아니고 돈벌어 학비 벌려고 외국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국민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격침되었습니다.
2년이나 지났다고 잊자는 겁니까? 진정한 영웅들은 기껏해야 해당 부대 내에서만 추모식을 가진 채, 애꿎은 사람만 영웅만들기에 급급한 자신들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인기 좀 얻어볼려고 김선일씨 빈소에는 가는 고위층은 있으면서 서해교전 전사자 추모식에는 갈 사회 지도층은 없는 겁니까?
입력 : 2004.06.28 18:30 33" / 수정 : 2004.06.28 18:33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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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간소한 추모식
서해교전이 29일 2주기를 맞는다. 같은 민족의 총탄에 6명의 생명을 빼앗긴 서해교전은 김선일씨 사건, 효순·미선이 사건보다 더 비극적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사회는 더 쉽게 이들을 망각하고 있다. 취재진이 접촉한 유족들은 북받치는 감정을 누르고, 하루하루 체념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살고 있는 듯했다.
▲고(故)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30·경기도 광주)씨
내일이면 2주기인데, 소외감을 많이 느낀다. 작년 이맘 때는 지금보다 조금은 나았다. 아무리 참혹한 사실도 시간이 흐르면 잊혀진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 잊혀짐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해교전이 6월, 호국영령의 달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아마 다른 달에 일어났다면 더 기억 못했을 것이다.
지난 3월부터 해군 예비역 단체에서 제대로 추모제도 하고 시민들도 참석하는 문화행사로 치르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6월 10일 한 예비역 장성으로부터 “어렵게 됐다”는 전화통화 통보를 받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이유는 짐작이 갔다. 평택 2함대에 보관된 참수리호도 아직 용산 전쟁기념관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다. 바로 2년 전 참수리호를 벌집으로 만드는 교전이 있었던 것, 나라를 위해 숨져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7월 27일 매사추세츠 우스터에서 추모 행사가 있다. 센트럴 매사추세츠 한국전 참전기념탑 건립위원회 회원들이 초청했다. 비행기 티켓까지 보내줬다. 오히려 미국 사람들이 더 기억해 준다. 솔직히 한국이 싫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고(故)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62·경기도 시흥)씨
추모 분위기? 미안하지만 이제 그런 거 말하고 싶지 않다. 자식잃은 부모 마음은 변함없는 것 아닌가? 추모해 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아달라고 읊어댈 필요 없는 거 아닌가? 난 다른 사람이 신경 쓰는 것 바라지도 않고, 섭섭할 것도 없다. 작년에 추모집회 가졌다고? 그게 추모집회인가? 허허, 그정도만 해줘도 고맙다고 해야겠죠. 그만합시다. 전화 끊습니다.
▲고(故) 조천형 중사의 아버지 조상근(61·대전시 동구)씨
아쉬움이야 뭘, 먹고살면 되지. 때가 돌아오면 생각나고, 마음이 우울하면 술 한잔 먹고 잊는 거지. 생활? 어렵지. 일도 못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들 묘소를 찾는 것이 낙이다. 유족들과는 자주 만난다. 위패가 있는 평택2함대 사령부에서 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나고, 대전 현충원에서는 각자 만나고. 계처럼 모여 음식도 같이 해먹고 그런다. 서러운 마음 뿐이지. 보훈처에 유족증을 해달라니까 며느리가 있는 사람들은 며느리가 수급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데. 해군본부에서 막내딸을 9월쯤 취업시켜 준다고 한다. 고맙지 뭘.
▲고(故) 서후원 중사의 아버지 서영석(51·경북 의성)씨
겉은 멀쩡해도 속은 골병 드는 거지. 나 자신을 스스로 추스르지를 못해 답답하다. 속이 답답할 때는 여자들처럼 수다라도 떨든지 해야 하는데.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맞다.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 “야, 그것도 자랑이냐” 할 것 같아서 겁이 나서 못하겠고. 국방부와 청와대가 했던 말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당시에는 전부 다 영웅이고, 교과서에 실릴 것이란 얘기도 나오지 않았나? 지나간 얘기 하면 불평 불만분자로 볼 것 같아 아예 입을 닫고 있다. 비교해 보면 내 아들을 포함한 6명의 용사들은 너무 홀대받은 것 같다. 너무 속상하다. 서해교전 터졌을 때는 지금처럼 감사원에서 감사했었는가? 솔직한 말로 ‘군인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 그대로다. 너무 외롭다. 밤 12시에 나가 아무도 없는 산에 올라가 펑펑 울다가, 후원이 이름을 목놓아 부르다가 눈물 흘리고 돌아온다. ‘내는 니가 보고 싶어 미치겄는데, 니는 내가 안 보고 싶나.’
▲(故) 황도현 중사의 아버지 황은택(57·경기도 남양주)씨
지금 대전 현충원이다. 추모 물결은 바라지도 않는다. 세월이 흐르는데 옛날 일만 말하고 살 수 있나? 집사람은 김선일 사건 때문에 우리 아이들 2주기가 너무 빛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한다. 나도 그저 답답할 뿐이다. 전사할 때도 효순이·미선이 사건 때문에 가려지고. 지금 우리 유족들은 완전히 죄인이다.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한민족이고 통일하자고 그러는데, 적들에게 목숨을 잃은 우리 자식들은 죄인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나처럼 이북과 원수는 없다. 아버지도 빨치산에 돌아가셨고, 아들 도현이도 잃었다. 지금 초등학교 아이들은 이북을 친구라고 환영하고, 미국을 적이라 하고 물러가라고 한다. 이북에 있는 김정일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북한을 친구라고 말하는 남한 사람들이 더 무섭다. 우리 아들을 포함해 그 많은 사람들의 피로 이 나라가 세워진 것을 모르는지… 어떻게 그런 말들을 할 수 있는지.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 우리 아이들이 죽었을 때 어느 누구도 사과하는 사람 없었다. 이라크 가서 죽은 사람에게는 수천명씩 가서 조문하고…. 현충원에 있는 아들을 남양주로 데려가려고 한다. 현충원에 있을 필요가 없다. 여기 있으면 죄인이다.
▲고(故) 박동혁 병장의 아버지 박남준(48·경기도 안산시)씨
2주기를 맞은 소감? 그걸 뭐 내 입장에서는 뭐라고 말할 것이 없다. 간 자식이 그리워서 정동진, 같이 다니던 낚시터 등 두루두루 다니면서 동혁이의 추억부스러기를 주워 담는다. 현충원에 매달 가서 유족들끼리 식사도 하고 그런다. 유족들은 대부분 두문불출하고 대인기피증에 빠져 있다고 한다. 그날 하루 모여 6가족이 서로 간에 마음 터놓는 것이 전부다. 조국에 몸 바친 아들인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현충원에 보면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도 부지기수인데 내 아들은 자랑스럽게 전사했다. 그 걸로 만족한다. 진짜 속마음? 혼자 썩는 것이다.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동혁이 엄마는 하루 웃었다 하루 울었다, 정신병자처럼 살고 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울고 그래서 지난해 7월부터 나도 일손을 놓았다. 하던 일 작파하고 전국 유람시켜 주면 끝나려니 했는데, 지금도 (울고 웃고) 그런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동안 건축해서 벌어놓은 것 까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