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인은 성실함으로,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은 인간품위의 기초다>
2026.8.8.성 도미니코 사제(1170-1221) 기념일
하바1,12-2,4 마태17,14ㄴ-20
"주님,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
밤이면 당신의 진실을 알림이 좋으니이다."(시편92,3)
게절의 흐름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어제 입추후 오늘 아침 공기는 선선한 가을 분위기입니다. 사람은 생명이지만 AI는 기계입니다. 사람은 얼굴이 있지만 AI는 얼굴이 없습니다, 사람은 믿음이 있지만 AI는 믿음이 없습니다. 사람만이 생명을, 얼굴을, 믿음을 지닙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 표지글이 강렬했습니다.
“AI습격에 저항하라. 사람이 먼저다! 인공지능은 들불처럼 확산되고, 사람들은 그것이 인류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인류는 그것을 원하는가? 일자리와 기후, 사생활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는 디지털 몰록(Moloch) 앞에서 저항은 세계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현대판 몰록, 강력한 우상이, 얼굴도, 생명도, 믿음도 없는 기계인 인공지능 AI입니다. 참으로 절실해지는 <믿음의 삶>입니다. 생명의 믿음이요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믿음입니다. 얼마전 <겨울 숲 노년인생이 좋다>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여름오니
겨울 좋은 줄 알겠다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겨울 숲
여름 숲 나뭇잎들 온통 하늘을 덮었는데
겨울이 되면 나뭇가지들 본질만 남고
환히 드러날 배경 하늘과 산
이래서 젊음의 환상 허욕 탐욕들 거품 다 걷힌
그래서 믿음만 남은
텅 빈 충만 겨울 노년 인생이 나는 좋다.”<2026.6.27.>
더불어 생각나는 <소원>이란 엣 자작시입니다.
“누웠을 때는
넉넉한 들판이 되고
앉았을 때는
듬직한 산이 되고
서있을 때는
늠름한 나무가 되고
걸을 때는
유유히 흐르는 강이 되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다”<1998.3.12.>
다 증발되고 남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그래서 노년의 품위 유지의 우선적 순서는 1.믿음, 2.건강, 3.돈이라 강조합니다. 하느님 믿음이 없고 밥과 돈, 건강 욕심뿐이라면 노욕老慾의 노추老醜에 참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일 것입니다. 그러니 노년이 되어 갈수록 품위 있는 삶에 각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주 예전 왜관 본원에서 저녁 어둠 속에 걷는 노수도자들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참 초라해 보였습니다. 순간 <믿음이 걷는 모습>으로 보이면서 존경스러운 마음 가득했던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제 좌우명시 제목도 “믿음으로” 말마디를 집어넣어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았습니다>로 해야 완전합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믿음뿐입니다. 믿음의 빛이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믿음의 <푸른 솔>같은 참으로 품위 있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식과 제자들의 물음과 예수님의 답을 통해 뚜렷이 부각되는 믿음입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라.’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삶의 거품이 걷혔을 때 과연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남아 있을런지요? 진짜 부자는 믿음 부자요 진짜 가난한 자는 믿음이 없는 자임을 깨닫습니다. 탓할 바 주님이 아니라 내 믿음 부족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날로 닮아가는 성화의 여정은 그대로 믿음의 여정이 됩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입니다. 주님은 초조해하는 하바쿡 예언자에게 기다림과 인내의 믿음을 촉구합니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죽음처럼>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살리라.”
<죽음처럼> 말마디는 제가 삽입했습니다.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입니다.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살 때 거품은 걷히고 본질적 깊이의 투명한 믿음의 삶만 남을 것입니다. 결코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는 유혹에도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믿음으로 삽니다. 모든 성인들이 특히 오늘 기념하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창립자인 도미니코 성인이 그 좋은 모범입니다. 그는 수도공동체를 거룩한 배움의 중심지로 삼고 구성원들의 연구, 교육, 설교, 그리고 기도에 전념하도록 했습니다. 성무일도는 전통적인 방식보다 간소한 형태로 낭송했으며, 최초로 육체노동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수도회였습니다.
프란치스코와는 달리 뛰어난 조직가였고 공동책임의 선구자였습니다. 도미니코는 간결하고 조정의 여지가 있는 아우구티누스 규칙을 선택했고 더 큰 효과와 효율성을 위해 몇 가지를 추가했으며, 유럽 전역, 아시아, 북미, 중미, 남미로 까지 전파된 선도적인 선교단체중 하나가 됩니다. 성인의 말년 삶에 대한 묘사입니다.
“도미니코는 육류를 피했으며, 정해진 단식 시간과 침묵 시간을 준수했고 사치스러운 침소를 피하고, 될 수 있는 한 가장 누추한 거처와 가장 초라한 옷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입술은 슬픔이나 부정적인 말 대신에 오직 하느님을 찬미하는 소리만이 나왔습니다. 오늘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의 하나인 묵주기도가 가톨릭교회에 널리 확산되어 활발히 보급되기까지 도미니코가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도미니코는 금욕적인 생활과 노동으로 몸이 버티질 못해서 결국 51세에 선종합니다. 도미니코는 죽기 전, ”형제들 간에 서로 사랑하여라, 겸손하여라, 청빈을 자발적으로 실천하여 영적인 보화를 만들어 가도록 하여라.” 유언한 후 1221년 8월6일 정오에 선종합니다. 1234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300년 경에는 500여 곳의 수도원에 1만 여명의 회원들을 지닌 수도회로 성장합니다.
성인의 성덕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참으로 믿음의 거인, 도미니코 성인이었습니다. 믿음의 여정, 믿음의 의인이요 성인들입니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믿음으로 삽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루하루 <믿음의 여정>에 충실함으로 성실한 의인으로 품위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하시는 일로 날 기쁘게 하시니,
생각하심 그 얼마나 깊으시나이까"(시편92,6).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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