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음이 어떻게 가정생활을 변화시키는가? 자녀 관계도 그렇고 부부 사이에서도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힘든 관계 속에서 늘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다. 성경은 결혼관계의 기본적인 뿌리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것"(엡 5:21)이라 말한다. . 피차 복종하려면 복음의 겸손이 필요하다. 복음의 겸손이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빌 2:3)이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뿌리에는 언제나 복음을 통해 내가 죄인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있다. 용서와 용납의 기초는 언제나 죄인됨에 대한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용납되었다는 사랑받는 자녀라는 정체성이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을 향한 공격에 비하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교만하게 무시하지 않을 균형을 배우게 된다. . 2. 언제나 죄의 본질은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운전하면서 차가 막힐 때 분노하는 이유에 대해 데이비드 폴리슨은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이다. 나만 바쁜 것이 아닐텐데 인간 안에 있는 자기중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황이다. . 3. 팀 켈러는 로마서에서 율법이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해주기도 하지만 증폭하고 선동한다고 표현한다."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롬 7:8~9) . 율법이 어떻게 우리의 죄를 증폭시키는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비뚤어짐' (perversity)때문이다. 인간은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성향이 있다. 어거스틴도 십대 때 배서리를 하면서 먹지 못할 배를 서리한 경험을 고백했다. 왜 먹지도 목해서 돼지에게 주어야 할 배를 서리했는가? 바로 그 죄 자체의 즐거움 때문이라 고백했다. '에께 꼬르 메움' (Ecce cor meum) 이라는 그의 고백은 '이것이내 마음입니다' 라는 표현으로, 죄가 정말 좋은 자신의 본성을 고백한 것이다. . 4. 어거스틴은 결국 죄에는 '더 깊은 동기'가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을 하거나 부조덕하거나 잔인할 경우 피상적인 동기는 탐욕과 분노 같은 것일지 모르지만 더 깊은 동기는 결국 내가 하나님 노릇을 하고 싶은 마음임을 알게 된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삐딱하게도 인간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려 하면서도 하나님 흉내를 낸다.. 단지 금지되었다는 이유로 그것을 즐길 때 바로 주인에게 도망가서 죄의 종노릇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모든 죄는 결국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는 교만이 근거하고 있다. . 5.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에덴의 죄는 인간의 첫 번째 죄일 뿐 아니라 모든 죄의 본질이기도 하다. 에덴에서 그들은 '하나님 처럼 되고 싶어서' 타락을 선택했다. 바울은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았다.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절망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죄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경험, 자기 무너짐이 없이는 복음을 발견하지 못한다. . 6. 결국 도덕적 실패와 자기의 가망없음을 율법 안에서 깊이 깨달을 때만 우리는 복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동시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깨달음이 커지지 않는다면 그의 복음은 결국 자신의 죄를 가리는 눈속임과 얇은 가림막에 불과하다. 참된 복음은 자신의 죄인됨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동시에 느끼며 기쁨으로 순종하게 한다. 결국 복음이란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자리다. . 7. 관계의 변화는 인간의 노력과 결단이 아니다. 복음을 통해 내가 죄인되었다는 깊은 깨달음이다. 바울은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달았다. 인간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임을 나는 죄인중의 괴수임(딤전 1:15)을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받는 존재라고 말한다. 내가 가망이 없는 존재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무릎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내가 너 보다 나은 존재라는 교만이 결국 잔소리로 핀잔으로 정죄로 이어지게 된다. . 부부관계의 회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러나 기술을 배운다고 인격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날지 못한 새가 둥지 에서 떨어졌을 때 다른 짐승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기어서라도 도망가야 하는데 기술은 그 정도의 도움을 줄 뿐이다. 그러나 복음을 우리 관계에 날개를 달아준다. 기존의 생각을 깨트려주기 때문이다. 가정의 변화는 결국 복음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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