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김치
통폐합 논의 1년7개월만에 현행체제 유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25개 과기출연연 중 하나인 세계김치연구소가 통폐합 논의 19개월 만에 ‘생존신고’를 했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세계김치연구소 지부는 22일 세계김치연구소 통폐합 논의가 시작된 지 1년 7개월 만에 ‘현행체제 유지’ 라는 성과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다만, 6년간의 연구기간 동안 2차례 점검이 필요하다는 조건이 있어 통폐합을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점에는 아쉬움이 남는다고도 덧붙였다.
광주에 둥지 튼 출연연 세계김치연구소
통폐합 논의 속 20개월 기관장 공석 사태
연구회 이사회, 최근 '현행체제 유지'결론
세계김치연구소 노조에 따르면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지난달 25일 이사회를 열고 세계김치연구소를 한국식품연구원과의 통합이 아닌 현행과 같이 체제를 조건부로 유지한다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19년 11월 제3대 하재호 소장의 임기 종료 이후 지난 20개월간, 햇수로 3년째 공석 상태에 있었던 기관장에 대한 공모절차에도 들어갔다.
세계김치연구소 노조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이번 결정을 환영한다”라며 “그동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세계김치연구소 존치를 위해 투쟁에 함께해준 연구소 직원과 광주시 및 김치업체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에 자리잡은 세게김치연구소
MB 때 출범, 평가 저조 속 통폐합 논의
세계김치연구소는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년 1월 김치 관련 분야의 연구개발을 종합적으로 수행하고, 국내 김치 산업을 대표적인 성장 동력 산업으로 육성ㆍ발전시키기 위해 한국식품연구원 부설기관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설립 10년도 채 되지 않는 2019년 11월 하재호 소장의 임기 종료를 기점으로 ‘공공기관 경영체제 효율화’라는 목적으로 통폐합 논의가 시작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김치연구소의 연구성과가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연구소 설립 이후 첫 기관평가인 2013년 ‘미흡’을 받은 데 이어, 2016년에도 ‘미흡’을 받았다. 2019년엔 ‘보통’으로 평가가 상승했지만, 현 정권에서 이미 ‘미운털’이 박힌 뒤였다.
‘세계김치연구소의 현행체제 유지’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지난해 이미 기획평가위원회를 열고, ‘통폐합’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당시 원광연 이사장은 기평위의 이같은 의견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다. 소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또한“세계김치연구소 통폐합 문제는 이사회에서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지난해 11월20일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서울 농협중앙회에서 열린 제1회 김치의 날 기념식에 앞서 전시된 김치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광역시가 반대한 연구소 통페합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과기정통부의 이 같은 어정쩡한 태도의 뒤에는 정치적인 고민이 있었다는 게 과기계의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가 비판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애초 김치연구소를 만들었지만, 현 정부의 지역적 기반인 호남(광주)에 들어서 있는 점 때문에 연구소를 ‘없애고 싶어도 못 없애는’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다. 세계김치연구소 설립 당시 전북 완주와 충북 괴산, 경남 거창, 광주광역시가 연구소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광주 5미’(五味:떡갈비ㆍ한정식ㆍ김치ㆍ오리탕ㆍ무등산보리밥)와 함께 김치 전통발효식품단지 조성을 진행 중이던 광주로 돌아갔다. 이후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은 그간 연구소 통폐합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 2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용섭(더불어민주당) 시장이 이끄는 광주광역시는 지난해 9월 과기정통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등 관련 기관에 세계김치연구소가 독립연구기관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공문으로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광주광역시와 연구회 기평위의 상반된 의견 사이에서 표류하던 김치연구소의 운명은 지난 1월 임혜숙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현 과기정통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임 이사장은 취임 후 첫 현장방문으로 광주 세계김치연구소를 찾아 ‘현행체제 유지’의 뜻을 밝혔다. 때마침 최근 중국의 ‘김치 동북공정’이슈와 ‘중국 김치 위생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여론도 김치연구소에 유리하게 돌아서기 시작했다.
과기계의 한 관계자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명박 정부 당시 광주가 세계김치연구소를 유치했다는 점이 절묘했다”며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광주시가 반대한 김치연구소의 통폐합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