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과 비움의 길로
회계학을 가지고 강연하는 것보다
지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퇴직 후에 살아갈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퇴직의 실감의 시작은 연구실이었습니다.
퇴직까지는 책과 비품이 생기면 차곡 차곡 체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퇴직을 위해 거의 한달 동안은
책과 집기를 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비워가고 있습니다. 삶도 이와 같겠지요.
퇴임은
이제까지 채우는 일에서 비우는 일로 전환하는 계기인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크게 2가지 기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산’이었습니다.
산은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태어날 때 성(崔)에 산을 머리에 얹어서 태어났습니다,
출생지도 양산군 초산리이었습니다.
어릴 때 이사 온 것도 부산이었고,
부산중학, 부산고등학교, 부산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시간강사에서 퇴직하는 시점까지 42년간을
부산대학교에서 그것도 산의 30번지이었고,
사는 곳도 와우산 기슭에서 살았습니다.
산 활동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산악부에서
매주 만덕 쌍계봉에서
암벽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부산대학교 산악부 지도교수를 지금까지하게 되었고,
김동인 부산학생산악연맹 회장님을
동아대학교 최고과정에서 만나,
연맹에 관여하게 되었고,
81년 파빌봉 원정과 연맹 회장도 하게 되었습니다.
엑셀시오 배종순 김원겸을 통해
빙폭과 암벽을 나이 40부터 다시 하게 되었고
유럽알프스 3대 북벽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는
부산대학교 산악부와
네팔 히말라야, 유럽알프스 3대 북벽을 여러차례 원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산행활동을 통해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저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참선’이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연) 전국수련대회에 참석을 계기로,
통도사 극락암 호국선원에서
방학이면 먹물 옷을 입고 말석에 앉아,
새벽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13시간을 좌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스님께서 동화사로 옮기시면
동화사 금당에서,
성전암으로 옮기시면
파계사 성전암에서
전국 뮤명한 선방에서
좌선을 하게 되었읍니다.
이러한 참선을 통해 명상의 진정한 고마움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퇴직준비로 작년 여름방학에
까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로 가는 길:순례길) 930킬로를 걸었습니다.
사람들은 각각 다른 동기로 이곳에 와서
그 힘든 길을 각각 다른 속도로 걸어면서
각각 다른 해답을 가지고 갑니다.
남들과 같이
까미노를 마친 것에 대한 감동이나 희열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느림과 침묵과 그리고 고요함을 같이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빠름과 자랑스러움보다
느림과 부끄럽지 않는 여유로움을 얻었습니다.
퇴임후
저는 산대신 부드러움과 느림의 운동인 ‘태극권’을 할 예정입니다.
10년전 인민대학 초빙교수로 갔을 때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도 받았어나,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화두를 중심으로 하는 ‘간화선’에서
들숨과 날숨의 알아차림을 중심으로 한 ‘위빠사나’로 옮겨 볼까합니다.
8년전 미암마에 갔을 때
양곤의 마하시 사야도 명상센터에서
2시간 가르침과 수행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다음 겨울방학에는
1개월이나 2개월 미암마에 가서
위빠사나를 제대로 익혀올 예정입니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의의 속도에 결코 좌우되지 않고
바쁜 생활 속에서도 한 호흡 쉬며 자신을 재충전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겠지요.
느림의 지혜가 선사해주는
아름다운 우회로로 걸어가는
퇴직 후 삶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지 않겠습니까?
빠름과 자랑스러움보다,
느림과 부끄럽지 않은 여유로움으로
앞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이 텅 비고, 지극히 고요한 상태를 ‘좌망’이라 하고,
잡념 없이 한결 같이 하여 텅 비우고 모든 것을 포용하며,
또 편안함과 고요함을 잃지 않는 것이 ‘심재’라 하지요.
새롭게 마련된 사무실과 산속에 마련된 명상센터을 오가며
느림과 비움을 통해
‘침묵’과 그리고 ‘고요함’을 같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이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큰 기둥 2개는 저에게도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한 1989년 5월의 설악산 등반은 지금도 저의 등산길에 큰 힘을 주고 있으며, 선생님께서 마련해주셨던 선생님의 산친구분들과의 만남도 제게는 새로운 세상을 눈뜨게 해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또, 불교수행을 가까이 하시던 선생님 덕택에 [초발심]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겼으며, 학문과 교육의 과정에서도 수행을 멈추지 않는 힘을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드디어 이 글을 올려 주셨네요.
미처 몰랐던 선생님의 과거사와 미래의 설계를 통하여 후학들에게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여기 계시네요. 자유인이 되심을 추카, 추카드립니다.
다만, 앞 선 분이 "느림"을 말씀하시고 꽉 찬 분이 "비움"을 말씀하심은 떠나신 뒤에도 끝까지 후학들을 어지럽게 만들고자 하시려는 뜻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