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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 (알라, Allah) 신은 전지전능하며, 과거의 것, 그리고 지금의 것, 그리고 미래에 올 것을 모두 만드신 창조자이며, 선과 악을 구분하는 정의로운 심판자이며, 예언자와 성전을 통해 인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자비로운 안내자이다. 신에게는 필적할 아무런 상대도, 협력자도, 자손도 없으며, 그의 권능을 막을 어떤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하신 하나님(Allah)에 대한 믿음
유일하신 하나님(Allah)에 대한 믿음일러 가로되, 하나님은 오직 한분 이시고 영원하시며 성부와 성자를 두지 않으셨으며, 그분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꾸란112장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수호하시니, 하늘과 땅의 열쇠들이 그 분의 것이로다 /꾸란 39장62,63절
꾸란에서 위와 같이 언급하고 있듯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의 존재와 소멸은 바로 그 분, 하나뿐인 신으로부터 시작되며 결정지어지고 또한 그 모든 것을 거두는 것도 그분이다. 또한 이 모든 권능은 오직 한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이를 대신할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음을 "라 일라하 일랄라 /La Ilaha Illallah : 그분외에는 신이 없다"이 구절을 통해 사도 무함마드(그분에게 평화가) 또한 모든 이에게 그 사실을 기억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신앙인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이슬람 사상의 바탕이며 기둥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에서는 '유일신', 그 존재를 의심하거나 비하 혹은 인격화시키는 것을 용서받을수 없는 가장 큰 죄로 간주한다.
2) 천사들 무슬림들은 신의 창조물들 중 모두가 인간에게 보이거나 들리거나 느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진(Jinn)"이라고 불리는 영마(靈魔)는 지상에서 많은 선과 악을 행하며 이는 꾸란에 나타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강력히 신의 계획을 따르는 피조물은 신의 심부름꾼에 해당하는 천사들이다. 천사는 남녀의 구별이 없으며 인간보다도 낮게 창조되었다. 신은 꾸란을 직접 무함마드에게 계시한 것이 아니다. 천사인 가브리엘을 통해 꾸란을 내려보냈다. 이 천사의 개념은 유대교나 기독교의 개념과 거의 동일하다. 대천사 가브리엘이나 미카엘이 있고 최후의 심판일을 알리기 위해 나팔을 부는 이스라필 천사도 있다. 아랍어로 이브리스(Iblis) 또는 알 샤이탄(al-Shaytan)이라 불리는 악마는 원래 천사였으나, 아담을 경배하라는 신의 계율을 조롱함으로써 신의 은총에서 버림받아 인류를 타락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하나님(Allah)의 천사(Al malaika)에 대한 믿음
천사(Al malaika)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서 인간의 능력이나 어떠한 특별한 과학적 지식 또는 특별한 육감으로는 그 존재 유무에 대해 증거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 또한 큰 죄임을 꾸란에서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주지해야 할 것은 '천사'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로서 그 존재를 믿어야 하지만 그것이 경배의 대상이나 구원의 주체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인간과는 달리 천사에게는 선택을 위한 자유의지가 부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는 물질이나 육체적 욕망으로 인한 범죄의 속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뿐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 의해 창조되어진 피조물로서 다음과 같이 구분되어 진다.
3) 성서들 무슬림들은 신이 인간들 중에 정의로운 한사람을 예언자로 선정해 그의 입을 통해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복음들이 성서가 되었다. 인간이 타락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마다 신은 예언자들을 통해 복음을 내렸다. 언제 어떤 민족들에게 어떤 예언자들을 통해 어떤 복음들이 내렸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부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다윗에 의해 전해진 시편, 모세가 유대인들에게 전한 토라(Torah, 구약), 예수가 기독교인들에게 전한 인질(Inzil, 신약),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함마드가 무슬림에게 전한 꾸란이 그것이다. 하지만 무함마드 이전에 계시된 성서들은 번역과정을 통해서 내용이 변질되었거나 위정자들이 정치적·경제적 목적으로 일부 내용에 수정을 가했기 때문에 그것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무슬림들은 유대인 자신들이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고 묘사하기 위해서 구약(Torah)의 몇 구절을 바꾸었거나, 또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신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복음서를 다시 쓴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오직 꾸란만이 계시된 이후부터 한 점 한획 의 변질없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진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꾸란은 계시된 장소에 따라 메카에서 계시 된 장과 메디나에서 계시 된 장으로 나뉜다. 뒷부분의 짧은 장들이 주로 메카에서 계시된 장들로서 길이가 짧은 대신 상징적·은유적인 표현이 많아 이해하기 어려우며 신의 전능과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대한 경고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앞 부분의 긴 장들은 메디나에서 계시된 장들로서 실생활의 구체적인 규범들로 가득 차있다. 꾸란은 아랍어로 계시되어졌지만 그것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내용의 오역이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렇게 번역된 것은 단지 '주해서' 혹은 '해설서'로 간주될 뿐이다.
꾸란은 수많은 아랍 민족들을 시·공을 초월해 하나로 묶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즉, 꾸란의 언어는 북 아프리카 서쪽 끝에서부터 아라비아 남부의 예멘에 이르기까지 아랍어를 사용하는 20여 개국의 표준어일 뿐 아니라, 1400여 년 동안 변함없이 꾸준하게 읽혀져 내려왔기 때문에 계시 당시의 아랍인이나 현대의 아랍인들이 별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하나님의 성서(Al Khutub)에 대한 믿음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내려 보낼 것이니 나의 복음을 따르는 자 두려움도 그리고 슬픔도 없을 것이며, 방황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을 것이라 /꾸란 2장38절, 20장123절
하나님으로 부터 지상에 내려진 계시(성서)는 총 10.000편의 수흐프와 4권의 책(Khutub)이 있었으나 현재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거의 대부분은 유실되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성서의 대부분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원서라 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일종의 번역서 혹은 개정서 라 밖에 할 수 없다.
그 예로써 아브라함에게 계시된 수흐프는 현재 지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도 그 원본은 없는 수정 보완서 일 뿐이다.
또한 사도 예수에게 계시된 신약(Injil)은 새로운 것에 대한 계시가 아니며 이는 이전의 사도들에게 내려 졌으나 분실 또는 손상되어진 구약 서를 다시 회복코자 계시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역사의 흐름을 거쳐 많은 부분이 또다시 수정 왜곡됨으로 인해 현존의 성서는 그 정통성을 상실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성서의 정통성과 그 의미를 위와 같은 성서들과는 달리 변질 없이 그 정통성 지키고자 내리신 것이 인간 세계의 마지막 성서인 꾸란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성서를 내려주시고 이것이 변질되지않게지켜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심을 꾸란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꾸란85장22절)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1천4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꾸란 낭송시 원문 그대로의 원어로 읽기를 권장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며 하나님의 약속대로, 계시받은 꾸란의 원본은 일 점 일 획의 변환 없이 그 정통성을 유지하며 보존되고 있다
이같은 성서들이 변질되었건 변질되지 않았건 간에 최초에는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성서들임을 믿는 것이 무슬림의 세번째 믿음이다.
4 ) 사도들 사도(使徒), 예언자 혹은 선지자라 함은 신의 복음을 인간들에게 전하기 위해 신에 의해 선택된 인간을 말한다.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마지막 예언자임을 강조하지만, 구약, 신약, 꾸란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즉 아담, 노아, 아브라함, 요나, 욥, 등을 인정한다. 무슬림들은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을 이단으로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모세나 예수 역시 예언자로 간주해 존경과 찬미를 보낸다. 꾸란은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을 인정하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거나 또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한다. 또한 심판의 날까지 더 이상의 예언자는 오지 않는다.
사도와 선지자에 대한 믿음 사도(Al Rasul)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인간을 뜻하는 단어로 이는 선택된 사람의 신앙심이나 사상 또는 그 사람의 배경이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특별한 뜻, 섭리에 의해 결정되어 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듯이 그분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사도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하나님의 사도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역시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사도라 할지라도 그들 또한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경배의 대상도 구원의 주체자도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선택을 받은 사도들에 대한 그 믿음에 차별을 두어서도 안되며, 받은 계시에 대하여 인간으로서 그 경중을 따져서도 안된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이며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역할의 차이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보면 수 많은 사도들이 그들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으며, 그 수에 대해서는 정확한 숫자가 전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대략 124,0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등이 있는데 이중 아브라함은 신의 친구(Khalil)로 택함을 받았을 정도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를 경배하였으며(꾸란4장 125절),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모세5경/토라를 계시 받은 모세(Kalimullah:신과 직접 대화를 나눈 사람),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꾸란3장 47절) 신의 뜻에 따라 승천(꾸란4장 158절)하기 까지 많은 기적을 이룬 사도 예수 등이 꾸란에 잘 명시되어 있다.
이중 특히 사도 무함마드는 최후의 사도로서 이전의 사도들에게 계시되었으나 그후 많은 왜곡을 통해 변질되었던 성서를 온전하게 회복, 완성하셨으며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배의 길을 가르칠 것을 계시받았다.
5) 최후심판일 (來世) 최후의 심판 일을 믿는다는 것은 내세를 믿는다는 말과 같다. 이 운명의 날에 모든 산 자들은 죽을 것이며, 그들은 그 이전에 죽은 자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행한 선과 악한 행위를 심판 받기 위해 신의 권좌 앞에 소환될 것이다. 그들의 죄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 꾸란은 천국을 시원한 샘물들과 풍성한 음식과 음료 그리고 아름다운 시종들이 있는 그늘진 정원이라고 묘사한다. 지옥은 무서운 짐승들, 잔인한 고문, 유독한 안개, 썩은 음식과 끊는 물만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지옥에는 평화도 조화도 없는 곳이며, 신은 나타나지 않고 형벌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곳이다. 최후의 심판과 부활에 대한 믿음
일반적으로 이슬람 사상에서는 인간의 육체적 발달 과정을 3단계로 보는데 그 첫번째가 흙의 단계(꾸란 )이며 두 번째가 자궁내의 단계(꾸란 ) 그리고 마지막이 탄생의 단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적 단계 또한 생명이 주체이기는 하지만 아직 자의식이 없는 상태로 모체에 있는 시기, 그 후 호흡을 갖고 살다 죽음을 통해 무덤에 이르는 중단단계, 그리고 마지막 부활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위에서 구분한 바, 영혼의 중간 단계에서 마지막 단계로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은 누구나 그 삶에 대해 옳고 그름을 행한 대가를 심판 받게 되는데 이는 마지막 단계에 있는 최후의 심판과는 또 다른 의미로써 이 중간 단계에서 내려지는 심판은 인간 사회의 법처럼 상황에 따라 또는 지휘나 가진 것에 따라 타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행한 만큼 그대로 심판 받게 되는 것이다.
그 후 우리는 영혼의 마지막 단계의 최후의 심판 날에 이르게 되는데 이 시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단정지을수 없으며 이는 창조하시고 거두시는 절대자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다.(꾸란40장59절,34장3절,7장187절) 심판의 날에 모든 인간은 그가 생애에 행했던 모든 선행과 악업에 따라 분류되어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워진다.
6) 정명(定命)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를 중요시한다. 즉, 다른 피조물과 달리 신은 인간에게만 '이성'이라는 축복을 내렸기 때문에 그 이성에 따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중시함과 동시에 자유의지의 선악에 따라 최후의 심판 일에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
현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많은 부분을 과학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 과학의 발전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부분에 있어 삶의 질은 어느정도 향상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본질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과연 과학의 발전이 언제나,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삶의 질의 향상이라기 보다는 단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과정상의 시간 단축 즉 편리성에 대한 기술적 진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답은 아닐는지… 또한 모든 사람들이 마치 유토피아라도 건설할 수 있는 과학과 전문 기술의 세기가 도래한양 기다려 마지않던 21세기가 되었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것 만큼 그에 따른 많은 문제 또한 발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굳이 그 예를 나열하지 않아도 연일 매스컴을 통해 귀가 따갑도록 접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이러한 노력들 뒤엔 자연의 섭리, 인간의 섭리와 같은, 이 세상을 운용하고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섭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그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닐지.. 물론 발전을 위한 노력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실제로 이슬람에서는 현세의 삶도 내세의 삶만큼이나 중요시 하며 현세의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과연 발전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그 가치들이 함께 고려되고 있는가? 과연 무엇을 위한 발전이며 그 결과가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는 유한적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도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특권이며 동시에 신성히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을 활용하되 그 권리와 의무의 한계를 벗어나려 해서는 안되며 노력한다 해서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또한 우리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자손들이 그럴 것 처럼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운영섭리에 속하는 피조물이며 그것이 인간에게 허락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인정하고 믿으며 그 안에서 노력할 때에 우리의 방향을 올바로 볼 수 있으며 발전에 대한 가치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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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준수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인간을 위한 보편적 기본 권리들을 총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권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이슬람은 법적 보장 조항 뿐만 아니라 매우 효과적인 도덕 체제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이나 사회의 복지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이든 이슬람에서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고 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다.
이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에 아주 많은 중요성을 두고 있어서 지나친 형식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성 꾸란은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들이 너희들의 얼굴을 동과 서로 돌리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과 최후의 심판일, 천사들, 성서 그리고 선지자들을 믿고; 하나님을 위한 사랑으로 너희들의 친척, 고아들, 가난한 사람들, 여행자들,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 그리고 노예들의 몸값을 위하여 너희들의 재산을 사용하며; 꾸준히 예배를 드리고, 정기적으로 자선을 행하며 그리고 너희가 맺은 계약들을 이행하고; 고통과 역경 그리고 공포의 모든 시기를 통하여 변치 않고 인내하는 것은 옳은 일이니라. 그와 같은 사람들은 진실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니라 ”.( 2장 177절)
우리는 이러한 성 꾸란 구절에서 진실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 대한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다. 이러한 사람은 유익한 규정들을 따라야 하지만 그는 하나님과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응시해야 한다.
우리는 4가지 주된 항목들을 부여 받았다:
1) 우리의 신앙은 진실되고 충심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행위의 형태가 선하고 악한 것으로 판단되고 구분되는 기준이다. 이러한 판단의 기준은 모든 도덕적 행위에 대한 중심역할을 한다.어떠한 도덕적인 명령들을 내리기 이전에 이슬람은 인간의 마음속에 자신의 행동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자신을 지켜보시는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확신을 확고히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숨길 수 있으나 하나님으로부터는 숨을 수 없고, 인간은 모든 사람들을 기만할 수 있으나 하나님을 기만할 수 없으며, 인간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수중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수중으로부터는 달아날 수 없다.
따라서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의 만족에 둠으로써 이슬람은 최고의 도덕적 가치에 기준을 둔다. 이것은 인류의 도덕적 발전을 위한 무제한의 방법들을 필연적으로 제공하게 한다. 하나님의 계시를 지식의 원천으로 함으로써 올바른 조정과, 적용, 혁신의 합리적인 여지를 제공해 도덕적인 기준에 영속성과 확실성을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두려움 안에서 도덕성을 허가해 주는데, 그 사랑과 두려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떠한 외적 압력 없이도 도덕률에 따르도록 한다. 이슬람은 하나님과 심판의 날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한 인간에게 진지함과 성실함 그리고 모든 진심을 다하여 도덕적인 행위를 채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길을 제시해 준다.
이슬람은 창의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어떠한 새로운 도덕적 가치도 추구하지 않으며, 잘 알려진 도덕적 규범의 중요성을 최소화하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또한 어떤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과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유없이 다른 것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도덕적 가치를 채택하고 균형과 조화로운 의식으로 삶의 총체적인 계획 속에서 각자에게 적합한 위치와 기능을 부여한다.
그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 사회적 행동 그리고 정치적 · 경제적 · 법률적 · 교육적 · 사회적 관계 등 인간의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삶의 영역을 넓혀준다. 그것은 가정으로부터 사회까지, 식탁에서 전쟁터 그리고 평화 회담까지, 문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의 삶을 망라하고 있다. 요컨대 삶의 어떠한 영역도 이슬람의 도덕적 원리의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적용으로부터 제외되지 않는다. 그것은 도덕성이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며 이 세상의 일들이 이기적인 욕구나 작은 이익에 의하여 좌우되는 대신에 도덕적 기준에 의하여 통제되도록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선에 기반하고 모든 악으로부터 벗어난 삶의 체제를 인간에게 제시해 준다. 그것은 사람들이 선을 행하고 악을 금하기 위하여 미덕을 강조 할 뿐 아니라 해악을 근절하도록 호소한다. 그것은 양심의 판단이 우선하여야 하고 미덕이 악의 밑에 놓여 복종 되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사명에 부응하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무슬림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게 된다. 이러한 공동체(움마 : Ummah)의 설립을 강조하는 유일한 목적은 그것이 선을 확립하고 강화하며 악을 금하고 근절시키기 위한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데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슬림의 삶의 다양한 면들을 위한 이슬람의 기본적인 도덕적 가르침 몇 가지를 제공한다. 그것들은 무슬림의 사회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도덕적 행동의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성 꾸란은 무슬림의 가장 높은 자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희들 중에서 가장 영광을 받을 자는 너희들 중에서 가장 의로운 자(들)이니라. ”( 49장 13절)겸손, 정숙, 열정과 욕구의 억제, 진실성, 성실, 인내, 불변성, 그리고 약속 이행은 성 꾸란에서 다시금 강조된 도덕적 가치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내하는 자들을 사랑하시느니라. ”(3장 146절)
“너희 주님의 용서를 받기 위한 노력을 서둘러라, 그리고 천국은 하늘과 땅(의 전체)의 넓이가 같으니, 정의로운 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니라 -
부유할 때나 또는 역경에 처하였을 때나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고;
분노를 참으며,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는 자들이니라 ? 하나님은 선행하는 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니라 ? (3장 133-134절)
“오 나의 아들아! 규칙적인 예배를 행하고, 올바른 것을 요구하며, 부정한 것을 금하라; 그리고 무슨 일이 너에게 일어나든 부단히 인내하라; 이것이 일상의 업무(의 처리) 속에 있는 (의지의) 견고함이기 때문이니라.
“(자만으로) 사람들에게 뽐내지 말고, 이세상에서 오만하게 걷지도 말아라: 하나님은 거만하게 자랑하는 자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니라.
“걸음걸이를 적절히 하고 너의 목소리를 낮춰라; 틀림없이 가장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당나귀들의 울음소리이기 때문이니라. ”( 31장 17-19장)
무슬림의 도덕적 품행에 대해 선지자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께서 말씀하시기를 :
“나의 부양자이신 하나님은 나에게 9가지 명령을 부여하셨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든 하나님을 늘 의식하고; 화가 나던 기쁘든 간에 공정하게 말하고;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늘 절제를 보이며; 나와 사이가 갈라진 사람들과 우정을 회복하고; 나를 거부하는 자에게 베풀며; 나의 침묵은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야 하고; 내가 바라보는 것은 경고가 되며; 나는 옳은 것을 명령해야 하느니라. ”
사회적인 책임 사회적인 책임에 관한 이슬람의 가르침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친절과 배려에 기초하고있다. 친절의 범위가 광범위 하다 보니 자칫 특수한 상황 속에서 무시되기 쉽기 때문에 이슬람은 친절의 특수한 행위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관계의 책임과 권리를 규정하고있다. 게다가 관계의 범위가 넓어지는 가운데 우리의 첫번째 의무는 우리의 직계 가족인 부모, 남편 또는 아내 그리고 자녀들에게 있고, 그 다음 우리의 친척들, 이웃들, 친구들과 친지들, 고아들과 과부들, 공동체의 불우한 사람들, 우리의 동료 무슬림들, 우리와 같은 인간들과 동물들에게 있다.
부모 부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이슬람의 가르침에서 매우 강조되고 있으며 무슬림의 신앙 표현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너의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어 너희는 그분 외에는 아무도 섬기지 말고, 너희는 부모를 사랑하라 하셨느니라. 그들 중 한 사람 또는 두 사람모두가 노년에 이르렀을 때, 그들에게 경멸하는 말을 하지 말고, 그들을 배척하지 말며,그들에게 존경하는 말을 하라. 그리고 친절로서 그들에게 겸손의 날개를 낮추고, 말하라: “나의 하나님! 그들이 제가 어렸을 때 저를 소중히 길렀던 것과 똑 같이 그들에게 당신의 자비를 베푸소서. ”(17장 23-24절)
다른 친척들 “그리고 친척들과, 가난한 자들, 그리고 여행자들에게 그들의 합당한 권리를 제공하라: 그러나 재산을 탕진하는 자와 같이 낭비하지 말지어다. ” (17장 26절)
이웃들 선지자 무함마드(그 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께서 말씀하시기를 : “자신의 곁에 배고픈 이웃이 있을 때 배부르게 먹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며; 그리고: 그는 이웃들이 자신의 부정한 행동으로 인하여 상처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않는 자이다. ”
실제로 성 꾸란과 순나(Sunnah : 선지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무슬림은 자신의 부모, 친척들 그리고 이웃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 동물들 그리고 유용한 나무들과 식물들에게도 자신의 도덕적인 책임을 이행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유희를 위하여 새와 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열매를 맺는 나무와 식물을 자르는 것은 아주 절박한 필요가 있지 않는 한 금지되어있다.
따라서 이슬람은 기본적인 도덕적 특성에 기초해 보다 높은 도덕 체제를 건설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인류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슬람은 자기 본위의 자만, 포악 행위, 방자함 그리고 자제심 결여로부터 정신을 정화시킨다. 이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며 자신의 이상에 충실하며, 신앙심과 절제 그리고 수양을 갖추고 거짓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을 만들어 낸다. 이슬람은 도덕적인 책임감을 이끌어내고 자제심의 능력을 배양하여 준다. 이슬람은 모든 상황에서 모든 창조물에 대한 친절, 관용, 자비, 동정, 평화, 사욕이 없는 선의, 양심적인 공정함과 진실함을 갖게 해 준다. 이슬람은 오로지 선 (善) 만이 기대될 수 있는 고상한 자질들을 육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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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는 단지 판단 자료의 분류와 분석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사후의 삶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의 문제는 과학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 한다. 더욱이 인간은 지난 수세기 동안 과학이라는 현대적인 관념으로 연구와 조사에 몰두해왔으나,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사후의 삶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은 그들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숭배하고 사후의 삶을 믿도록 명하였다. 선지자들은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확고 했기 때문에 심지어 그것에 대한 약간의 의심조차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모든 다른 믿음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느님의 모든 선지자들이 그들 사이에 수천 년이란 기간의 간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후의 삶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그토록 확신을 같고 한결 같이 다루었다는 그 사실은 그들 모두에 의하여 공포되었듯이 사후의 삶에 대한 지식의 출처는 같았다는 것, 즉, 신의 계시였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큰 문제는 그들의 백성들이 이사실에 대하여 불신 하였기 대문에 그들로부터 많은 이의를 제기 받았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은 아주 많은 진실한 추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 무엇이 그 추종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공통체로부터 완전히 소외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 선조들이 갖고 있던 확고한 믿음, 전통 그리고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그들의 심적 능력으로 진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지각 (知覺) 을 통하여 진실을 깨달았는가? 그렇지 않다, 사후의 삶에 대한 지각적인 경험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느님은 지각 의식 이외에 이성적, 심미적 그리고 도덕적인 의식을 또한 사람에게 부여하셨다.
지각의 자료를 통하여 입증되어질 수 없는 사실들에 관하여 인간을 인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식이다.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모든 선지자들이 사후의 삶이 인간의 심미적, 도덕적 그리고 이성적인 의식에 호소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면 메카(Makkah)의 우상 숭배자들이 사후의 삶의 대한 가능성조차도 부정했을 때 성 꾸란은 매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증을 펼쳐나감으로써 그들의 논리의 결점이 드러나게 하였다: 인간은 하나님과 유사한 것들을 지어내며 그가 창조된 것을 잊어 버리고 말하기를, “바짝 말라버리고 부패한 이 뼈에 누가 생명을 부여 하느냐? ” 라고 하더라. 말하라, 하나님께서 최초에 그들을 창조 하신 생명을 그들에게 주리라! 그분은 모든 창조에 관하여 알고 계시기 때문 이니라. 그분은 너희들을 위하여 푸른 나무로부터 불을 만드시니 너희들이 그것으로부터 불을 피우리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그분이 그와 흡사한 일을 할 수 없단 말이냐? ” 결코 아니니,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지고한 창조주 이시기 때문 이니라 ! (성 꾸란36장 78-81절)
또 다른 경우에서 성 꾸란은 불신자들이 사후의 삶에 대한 부정에 논리적으로 올바른 어떠한 근거를 갖고있지 않다는 것을 매우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그들의 사후의 삶에 대한 부정은 억측에 근거를 두고있다: 그리고 그들은 “현세의 삶 이외에 우리에게는 어떠한 것도 없으며, 우리는 죽고 우리는 살며 시간 외에는 어떠한 것도 우리를 멸하지 못하느니라 ” 라고 말하니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하며 단지 추측할 뿐이라.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이 그들에게 전해 졌을 때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그것을 믿는 사람들 이라면 우리의 선조들을 데려오라! ” 라고 주장하더라.(45장 24-25절)
확실히 하나님은 모든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며 모든 사태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계획을 갖고 계신다. 모든 우주가 파괴되고 다시금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부활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은 결코 끝나지 않을 삶의 시작이고, 그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선행이나 악행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사후의 삶의 필요성에 관한 성 꾸란의 설명은 인간의 도덕적인 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에 사후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그 믿음은 부적절한 것이 되거나, 또는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 하나님은 한때 인간을 창조하였으나 인간의 운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하나님이 될 것이다. 확실히 하나님은 공정하시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사회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며, 그들의 일시적인 기분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일 따위의 셀 수 없이 많은 범죄들을 저지르는 폭군들에게 하나님은 벌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매우 짧은 수명을 갖고 있고 이러한 물질세계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 인간들의 악행이나 훌륭한 행동에 동등한 처벌이나 보상이 이 세상에서는 충분하지 않다. 성 꾸란은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오고 하느님은 인간 각자의 행위에 대한 기록에 따라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결정하실 것이라고 매우 단호하게 언급하고 있다 :
불신자들은 “그 시간은 결코 우리에게 오지않을 것이라 ”고 말하니: 말하라, “그렇지 않느니라! 주님을 두고 맹세하니 틀림없이 그것은 너희에게 다가올 것이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계시는 그 분에 의하여 ……”(34장 3절)
부활의 날은 정의와 자비에 대한 하나님의 속성이 완전히 표명되는 날이 될 것이다. 영원한 천국의 기쁨이 그들을 기다려 왔다는 믿음으로 현세의 삶에서 그분을 위하여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나 다가올 삶을 전혀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악용한 사람들은 가장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날은 인간들 행위에 대한 선악을 구분하며 이에 관하여 성 꾸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이들 둘이) 서로 같으냐? 하나는 우리가 훌륭한 약속을 하였고 그 약속의 이행에 다가가고 있는 자이니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주었으나 심판의 날 (벌받기 위해) 불려 세워질 자들 중에 있게 될 자이니라. (28장 61절)
또한 성 꾸란은 현세의 삶이 사후의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임을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부인하는 자들은 그들의 열정과 욕구의 노예가 되어, 고결하며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그런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임종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이 세상에서 더 이상의 기회가 부여되기를 간구하지만 결국 허사가 된다. 그들의 임종 시 비참한 상태, 최후의 심판 일의 공포 그리고 진실한 신자들에게 보장된 영원한 천국의 기쁨이 다음의 성 꾸란 구절에 매우 훌륭하게 언급되어 있다 :
죽음이 그들 중의 한 사람에게 이르렀을 때, “오! 나의 주님이시여, 제가 게을리 하였던 정의로운 일들을 행할 수 있도록 돌려보내 주소서, ” 라고 그가 말하니, “불가하노라 ! ” 진실로 그것은 그가 애원하는 말에 불과하니 그에게는 부활의 날까지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성 꾸란 (23장 99-100절)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은 내세에서의 구원을 보장하여 줄 뿐만 아니라 각 개인들이 행동하는데 있어 가장 책임 있고 성실하게 행함으로써 이세상을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게 만들어 준다.
그들이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던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Arabia) 사회는 도박, 술, 부족간의 불화, 약탈 그리고 살육이 그들의 주된 특성이었다. 그러나 유일신과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이게 되자 곧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수양 된 민족이 되었다. 자신들의 악습을 버리고 필요 시 서로를 도왔으며 그들의 모든 논쟁들을 정의와 평등의 기초 아래에서 해결하였다.
마찬가지로 사후의 삶에 대한 부정은 내세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그것 자체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 한 민족이 전체적으로 그것을 부정할 때 모든 종류의 해악과 부패가 그 사회에 만연하게 되고 종국에 가서 그 국민은 멸망한다. 성 꾸란은 아드 싸무드(Aad Thamud)와 파라오(the Pharaoh)의 끔찍한 종말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싸무드와 아드의 민족들은 심판의 날을 부정하니, 싸무드 민족은 무시무시한 괴성에 의하여 멸망하였고 아드 민족은 사나운 폭풍에 의하여 멸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7일 밤 8일 낮 동안 계속해서 벌하시니, 너희들은 그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알게 되리라, 대추야자나무의 밑둥이 처참히 쓰러지듯, 너희들은 그들 중에 살아남은 누구를 볼 수 있겠느냐? …….성 꾸란(69장 4-8) 따라서 사후의 삶을 믿는 매우 설득력이 있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들의 백성에게 사후의 삶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믿도록 촉구하였다. 둘째, 인간 사회가 이러한 믿음의 기초 위에 건설 될 때, 그것은 사회적이고 도덕적이며 해악이 없는 가장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었다.
셋째, 선지자의 반복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 집단에 의하여 진리가 거부될 때 그 집단 전체가 현세에서도 하나님에 의하여 벌받았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넷째, 인간의 도덕적, 심미적 그리고 이성적인 능력은 내세의 가능성을 확인해 주고 있다. 다섯째, 정의와 자비의 하나님의 속성은 만일 사후에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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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절대자이시고 우주의 유일한 주인이시기 때문에, 인류의 주님이시고, 보호자이시며 부양자이시니, 그분은 자애로우심은 모든 존재들을 소중히 보존하신다. 그 분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명예를 주시고 그 분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그분에게 속하게 되며 그분을 통하여 목적을 추구할 수 있다, 비록 그분의 피조물 들이 피부색과 민족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본질적으로 그분으로 부터 비롯된 하나이며 실제적인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모두가 가장 자비로우신 주님에 대한 명예롭고 충실한 종으로서 서로서로 형제애를 나누는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이렇게 신성한 분위기 속에서 정의된 이슬람은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중심이 확실하며, 인류의 평등 성과 형제애의 개념을 필연적으로 가르친다.
이슬람 국가가 지구상 어디든지 세워질 수 있으나 이슬람은 인간의 권리 또는 특권을 그 국가 자체의 지리적인 범위에 제한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인류를 위하여 어떠한 보편적인 권리를 총괄하며 이것은 한 개인이 그 국가와의 관계가 좋거나 그렇지 아니하거나, 또는 평화 상태이거나 전시이거나, 모든 상황 아래서 반드시 준수되고 존중되어야만 한다. 성 꾸란은 이에 관하여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다:
“오 믿는 자들이여! 공정한 거래에 대한 증인으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굳게 인내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너희를 잘못으로 유도할 수 있으니 정의로부터 이탈하게 하지 말아라. 공정 하라: 그것은 신앙심에 보다 가까이 있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실로 하나님은 네가 행하는 모든 것들을 잘 알고 계시느니라.” (성 꾸란 5장 8절)
인간의 피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신성한 것이고 의로운 일로 인정되지 않는 한 흘려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만일 누구를 막론하고 의롭다고 인정되지 않는 살인을 행하였을 경우 이슬람은 이를 신성을 모독으로 간주하고 성 꾸란에서는 이를 인류 전체를 죽이는 것과 동일시 하고 있다:
“누구든 사람을 살해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 아니거나 지상에서 해악을 퍼뜨린 것이 아닐 경우 사람을 살해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죽이는 것과 같으니……”.(성 꾸란 5장 32절)
그리고 이슬람은 여성들과 노약자들, 어린이들, 부상 당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여성들의 명예와 순결은 모든 상황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이 제공되어야 하고, 벌거벗은 사람에게는 옷이 제공되어야 하며, 부상당한 사람들 또는 병든 사람들은 그들이 이슬람 공동체에 속하든 적들 중에서 온 사람이든 간에 상관없이 보호 받아야 한다.
우리가 이슬람에서 인권을 이야기 할 때 이러한 권리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셨으며 왕이나 입법 기관에 의하여 부여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왕들이나 어떠한 입법 기관에 의하여 부여된 권리들은 그것들이 주어진 것과 같은 방법으로 역시 철회될 수 있다. 독재자들에 의하여 받아들여 지고 인정된 권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다. 그들은 권리들을 그들이 하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그들이 원할 때 철회할 수 있으며 마음이 내킬 때 공공연히 권리들을 침해한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인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어떠한 입법부 또는 지상의 어떤 정부도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들에 대해 어떠한 수정 또는 변경을 할 수 있는 권리나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폐지 하거나 철회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인권들은 보여주거나 전시를 위하여 종이 위에 쓰여져 제공된 기본적인 인권들이 아니며 보여주는 것이 끝났을 때 실제의 삶에서 부인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신성함이 없는 철학적인 개념들도 아니다.
국제연합의 헌장과 선언서, 결의안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권리들과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자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없으며 후자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적용된다. 인권은 이슬람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자신이 신앙인라고 주장하는 모든 무슬림들과 관리자들은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따른다. 만일 그들이 그것을 시행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하여 보장된 권리들을 부정하거나 수정하고 변경, 또는 말로만 동의하며 실질적으로 모독하는 경우, 성 꾸란의 평결은 명백하고 명료하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으로 판결하지 못하는 자는 누구라도 불신자들 이니.”(성 꾸란 5장 44절)
이슬람 국가에서의 인권
1. 생명과 재산의 보호: 선지자께서 고별순례 때에 행하신 설교에 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께서 딤미(dhimmi : 무슬림 국가의 비 무슬림-계약 하에 있는 자)에 대하여 역시 말씀하셨다: “딤미를 죽이는 자는 천국의 향기조차도 맡지 못할 것이니라.”
2. 명예의 보호: 성 꾸란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믿는 자들이여,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비웃지 않게 하라. 서로 비방하지 말라. 별명을 사용하여 모욕하지 말아라. 서로 뒤에서 중상하거나 헐뜯지 말아라.” (성 꾸란 49장 11-12절)
3. 사생활의 존엄과 보호: 성 꾸란은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서로 감시하지 말지어다.” (성 구란 49장 12절) “너희들이 주인의 허락을 받을 때까지 어떤 가정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성 꾸란 24장 27절)
4.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호 : 이슬람은 어떠한 국민도 그의 죄가 공개된 법정에서 입증되지 않는 한 투옥될 수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단지 의심에 근거하여 사람을 체포하고 적절한 법적 절차와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그를 투옥하는 것은 이슬람에서는 허용할 수 없다.
5. 폭정에 저항 할 수 있는 권리: 이슬람이 인간에게 부여한 권리 중에는 정부의 폭정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성 꾸란은 이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에 의하여 고통을 입은 것이 아니라면 사악한 언사가 들어 남을 원하지 않으시니라.” (성 꾸란 4장 148절)
이전에 논의 되었던 바와 같이 이슬람에서는 모든 힘과 권한이 하나님께 속하고 사람에게는 위임된 권력이 있을 뿐이다. 위임된 권력을 부여 받은 자는 국민을 위하여 정당한 권력을 행사하도록 요청 받게 될 때 그들의 국민 앞에 위엄을 고수할수 있다. 아부 바크르(Abu Bakr)는 이에 관하여 그의 첫번째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옳을 때 나에게 협조하라, 그러나 내가 실수를 저지를 때는 나를 바로 잡아 주고, 내가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의 율법들을 따르는 한, 나에게 복종하라, 그러나 내가 이를 벗어날 때에는 나를 외면하라.”
6. 표현의 자유: 이슬람은 모든 국민들에게 해악과 부정이 아닌 미덕과 진실의 전달을 사용하는 전제 하에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주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슬람의 개념은 서구에서 보급된 개념보다 훨씬 우월하다. 어떠한 상황 에서도 이슬람은 해악과 부정이 유포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비평이란 이름을 빌어 매도하거나 모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권리를 주지 않는다. 어떤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명령이 그에게 계시되었는지 여부를 성스러운 선지자께 문의하는 것이 무슬림들의 관례였다. 만약에 선지자께서 자신이 어떠한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것이 없었다고 말하면 무슬림들은 그 문제에 대하여 자유롭게 그들의 의견을 표현하였다.
7. 결사의 자유: 이슬람은 또한 사람들에게 결사의 자유 그리고 정당과 조직의 구성에 대한 자유의 권리를 부여하였다. 이 권리는 확실한 일반적인 규칙을 조건으로 한다.
8. 양심과 확신의 자유: 이슬람은 명령하고 있다: “종교에는 강요가 있을 수 없느니라.” (성 꾸란 2장 256절)
이에 반하여 전체주의는 완전히 개인들로 부터 그들의 자유를 박탈한다. 국가의 권한을 부당하게 높이는 것은 일종의 노예 상태와 맹종을 요구한다. 한때 노예 상태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의미하였다. 현재 그러한 형태의 노예제도는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전체주의 사회는 개인들에 대한 유사한 형태의 통제를 강요한다.
9. 종교적 사상의 보호: 확신의 자유 그리고 양심의 자유와 함께 개인의 종교적인 생각이 존중을 받을 것이고 자신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것도 말하거나 행해지지 않을 권한을 이슬람은 개인들에게 주었다.
10. 임의의 투옥으로부터의 보호: 이슬람은 또한 타인의 범죄로 인해서 체포되거나 투옥되지 않을 개인의 권리를 인정한다. 성 꾸란은 이러한 원칙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짐진 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짐을 질 수 없노라.” (성 꾸란 35장 18절)
11. 기본생존권에 대한 권리: 이슬람은 도움과 원조이 제공되어져야 할 빈곤한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재산 중에서 가난한 자들과 필요로 하지만 요구하지 못한 자들에게 인정된 권리가 있느니라.” (성 꾸란 51장 19절)
12. 법 앞에서의 평등: 이슬람은 국민들에게 법적인 견지에서 절대적이고 완전한 평등의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13. 법을 초월 할 수 없는 통치자들: 높은 귀족 가문의 한 여성이 절도와 관련되어 체포되었었다. 그 사건을 선지자에게 가져와서 그녀가 절도에 대한 처벌로부터 용서 받을 수 있도록 권고되었다. 선지자께서 답변하셨다. “너희들 이전의 민족들은 보통 사람들의 범죄에 대해 처벌하고 고귀한 사람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나의 생명을 관장하시는 하나님께 맹세코, 무함마드의 딸인 파티마(Fatima)가 이 범죄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나는 그녀의 손을 절단하였을 것이다.”
14.국사(國事)에 참여할 권리: “그리고 그들의 업무를 그들 사이에서 협의를 통하여 처리하며…”(성 꾸란 42장 38절) 슈라(shura) 또는 입법부는 정부의 행정 수반과 의회의 구성원들이 국민의 자유롭고 독립된 선택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뜻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끝으로 이슬람은 특정한 법률적인 보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혈연에 의한 친족 관계, 인종적 우월, 언어적인 오만 그리고 경제적인 특권에 의하여 조장된 단순한 관계를 넘을 수 있도록 인간을 이끌어 냄으로써 위에서 언급한 인권들과 다른 많은 것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슬람은 인간의 내적인 장점으로 형제애의 이상을 실현 할 수 있는 단계로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인간을 이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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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된 오해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꾸란에서 이르기를: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진리는 암흑 속에서부터 구별 되니라” (꾸란 2:256)
이 꾸란의 절에서 하나님은 진실과 거짓을 서로 구별되게 하셨으므로, 사람들은 전자 혹은 후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어떤 종교를 믿도록 강요당할 수는 없다. 믿음이라는 매우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꾸란을 따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꾸란을 믿도록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선지자 모하마드(평화가 그분에게 깃들기를)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무슬림이 되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다음의 말씀을 그에게 이르시기를:
“주님의 뜻이 있었다면 지상에 있는 그들 모두가 믿음을 가졌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대는 강요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하느뇨.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는 믿지 않으며” (꾸란 10:99-100) 하나님으로부터의 이 가르침은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혹은 그녀가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그분은 모든 사람들을 믿는자로 만들 수도 있으시나,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선택하는 자유를 주신다. 그렇다면, 어느 누구도 힘으로 믿음을 강요당할 수 없다. 개인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이다. 어디에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가르침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감히 어떻게 진실히 꾸란을 따르는 자가 뒤에 돌아서는 다른 사람에게 그의 믿음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이와는 대조적으로, 꾸란은 꾸란을 따르는 자들에게 어떻게 사람들에게 진실한 신앙심을 불러일으킬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지혜와 아름다운 설교로 모두를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되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그들을 맞으라” (꾸란 16:125)
꾸란의 어느 부분이 칼끝을 사람들에게 들이대라고 말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도(평화가 그분에게 깃들기를)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기를:
“백성들에게 일러가로되 이것이 나의 길이라 나와 그리고 나를 따르는 백성들은 예증으로서 하나님을 경배하나이다” (꾸란 12:108)
여기서 다시, 그러한 부름은 분명한 증거와 함께 확실한 앎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가르침들을 함께 제시하면서, 무슬림은 분명한 증거(즉 확실한 지식)로 이슬람을 보여주어야 함을 이해한다. 또한 지혜와 아름다운 설교를 사용해 믿음에 대한 증거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이성적으로 설득시켜야 한다. 어디에 감히 칼에 대한 언급이 나올 수 있는가?
캐나다의 Junior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슬람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이다”(The Junior Encyclopedia of Canada, Hurtig Publishers, Canada, 1990, Vol. 2. p. 396) 이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오늘날 누가 다른 사람을 무슬림이 되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무슬림들은 눈에 뜨일 정도의 적극적인 설교에는 심지어 참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이슬람의 품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이슬람은 이성적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Huston Simth씨는 그의 책 “세계의 종교” 256쪽에서, 선지자 무하마드(평화가 그분에게 깃들기를)가 무슬림의 지배 아래에 있는 유태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어떻게 종교의 자유를 주었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선지자는 그가 직접 규정한 문서에서 “유태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온갖 모욕과 무례함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유태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무슬림처럼 자유로이 그들의 종교를 일상생활에 실행에 옮길 수 있다”고 했다. (Huston Smith, Harper Collins의 The World's religion(세계의 종교, 1991), 256쪽에서 인용). Smith씨는 무슬림들은 이 문서를 인류의 역사에서 첫 번째 양심의 자유를 인정한 첫 번째 장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또한 계승되는 모든 무슬림 국가에서도 당국의 방식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 이슬람이 칼에 의해서 전해졌는가? 이 대답을 비 무슬림인 Ira Zepp Jr의 책 “A Muslom Primer(무슬림 입문서)"에서 들어보자. ”이슬람이 `칼의 종교` 또는 '칼에 의해서 전해진 종교`로써 고정관념화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역사의 진실은 이슬람의 확장이 군사적 무력이 아니라 설득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떤 경우에라도, 이슬람은 어느 누구에게라도 강요될 수 없다; 만일 shahadah(즉 이슬람의 선서)가 누군가에게 강요되었다면, 그것은 진실한 이슬람이 될 수 없다.“ (Ira Zepp의 A Muslim Primer(무슬림 입문서),1992, Wakefield Editions, US, 13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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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유일신 종교다.
서기 610년 예언자 무함마드(무하마드)가 천사 지브릴(차브리엘)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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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나, 혹은 페르시아의 옛 종교 조로아스터교등의 명칭은 각기 사람의 이름(기독교는 기독(Christ의 음차)에서, 조로아스터교는 그 창시자 조로아스터에서)에서 유래되었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기독교’라는 명칭과 더불어 ‘예수교’라는 명칭이 통용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 예수교라는 명칭이 기독교를 격하하는 듯한 어감을 준다 하여 기독교도들에 의해 배척되어 왔다. 그렇다면 이슬람교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민중서림에서 출판된 한 국어사전을 보면 이슬람은 "이슬람교도가 자기네 종교를 부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그렇다면 이슬람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이슬람을 뭐라고 부른다는 것인가.
이슬람의 어원적 의미는 복종과 순종, 그리고 평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슬람 교리의 핵심이자 어쩌면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유일신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이 단어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또한 두번째 의미 ‘평화’란, 작게는 개인이나 가족, 공동체의 평화부터 크게는 전인류, 전 우주의 평화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언제나 이 쌀람(‘샬롬’과 어원이 같다)으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이슬람 교리에 입각해 살펴보면 유일신(Allah, the God, 하나님, etc.)은 모든 것을 초월한 절대적인 존재이다.(글 '알라인가 알라신인가' 참조). 따라서 무슬림이 하나님의 사도로서 동등하게 믿는 이브라힘(아브라함), 무사(모세), 이사(예수), 무함맏(마호메트) 등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분의 뜻에 순종했던 사도이기에 깊은 존경을 드리는 것이지, 결고 그 사도들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성했던 이슬람세계와 오랜 역사에 걸쳐 대치해 온 서구 기독교 세계는 이슬람을 거친 사막 유목민들이 지닌 샤머니즘적인 종교인양 왜곡을 거듭해왔다. 이같은 왜곡과 매도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가는 다른 글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이 글에서 우선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이슬람은 ‘마호메트교’가 아니라 ‘이슬람’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마호메트(무함맏)는 하나님의 사도일 뿐, 그 분 자체가 신앙의 대상은 아니며, ‘유일한 신(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이슬람의 근원이자 본질임을 생각할 때, 마호메트교라는 명칭은 이슬람을 격하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슬람의 근원을 왜곡하는 명칭인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그 첫작업은 ‘이슬람’이라는 올바른 명칭의 사용과 그 인식으로부터 시작될 수 밖에 없다.
(아스마 이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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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종교적인 문제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 어떤 현상이나 제도,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편견이나 선입관은 대부분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과 그 사회제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상당부분 이슬람과 아랍, 혹은 이슬람과 그 지역을 지나치게 동일시하는 데서 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슬람의 관습(혹은 제도)라고 생각하는 일부다처제는, 사실 이슬람의 일부사처가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에 걸쳐 거의 모든 곳에서 자행되어왔던 일부다처제이다.
이슬람에서 말하는 일부사처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1. 일부사처는 권장 사항도 아니고, 의무 사항은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 꾸란에서는 일부일처를 최선으로 보고 있고 있으며 현재 무슬림 중 2%도 채 안되는 사람들만이 둘 이상의 부인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무슬림이 일부다처를 할 수 있고 또 하려고 한다고 믿고 있으며 이것은 이슬람의 여성관을 왜곡하는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2. 일부사처는 전쟁뿐 아니라 그 외에도 까다로운 제약조건을 두고 있어, 그 내용과 원칙 측면에서 볼 때 남성의 성적 충족(축첩)을 위한 장치가 아닌,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 점. (성욕을 위해 일부다처를 행하는 것은 이슬람에서는 죄악시한다는 점. )
3. 어느 종교든, 어떤 사회이든 항상 법이나 제도를 잘못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제시하는 일부사처를 자신의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악용하는 일부 무슬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특히 돈과 권력을 쥔 사람이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종교를 가진 모든 사람이 그 가르침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모든 종교에 해당되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이슬람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들이 과장되어 있고 잘못 알려져있으며 또한 부정적인 부분들만이 유난히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일부사처를 행할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전쟁이나 기타 재난 등으로 인해 남성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을 때 : 이슬람에서는 남녀 모두의 성욕을 합법적 절차를 통해 적절히 해소되어야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사회 문란이나 사생아 출산 등을 초래할 수 있는 간음을 엄격히 금하고 있으므로 이같은 경우 일부일처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으므로 또다른 완충 장치가 필요하다.
첫번째 아내가 질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부부관계 유지가 불가능한 경우. 첫번째 아내가 불임이나,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아이를 원하는 경우 다른 어떤 여성이나 고아들을 돌보아주어야할 필요에 의해 결혼을 하는 경우 : 예를 들어, 94년에 이집트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다. 한 학자가 자신의 은사가 사망을 하고 난 뒤 그 사모님과 자녀들이 물질적으로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음을 알고 그들을 돕기 위해 그녀와 법적 결혼을 하여 자신이 돌보아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 있어 이미 혼인 중에 있는 부인들의 동의가 없이는 다른 부인을 맞이할 수 없으며, 이슬람에서 보장하는 여성의 권리로 인해 부인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고 무시당했다고 여겨질 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 부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중혼은 위법이다.
또한 둘 이상의 여성과 중혼을 한 경우 남성은 부인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으로 완전히 동등한 대우와 처우를 해주어야한다. 그러나 이 동등한 대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므로 꾸란에서는 한쪽에 치우친 여성들로 만들지 말라 는 말씀과 함께 일부일처가 최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1부 4처는 엄격한 조건과 제한 설정으로 인해 사실상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해지지 않는 하나의 완충장치에 불과한 것이나 일부 사람들은 이를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악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명 이슬람에서 말하는 완충장치로서의 일부사처는 남성의 성욕 충족을 위한 축첩제가 아니며, 그같은 축첩제는 이슬람에서 엄금하고 있다.
이슬람의 모든 제도나 규정들은 서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하나만을 따로 떼어놓고 볼때에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도 그 컨텍스트 안에서는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을 이용해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의 여러가지 규정들을 분리하여 곡해하거나 왜곡시키고 있는데 이점은 충분히 경계를 하여야 한다.
또한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슬람의 1부4처는 제도화된 장치가 아니라 특수한 상황하에만 엄격한 제약하에 행할 수 있는 ‘완충장치’이므로 일번적으로 쓰이는 ‘일부다처제’라는 단어는 이 글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싸나 박정순, 아스마 이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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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 리 말
이슬람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흔히 "이슬람교도(무슬림)는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이러한 질문이 나오게 되는 까닭은 현대인은 복합적인 문화사회와 종교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과 또한 대부분이 이슬람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또 현대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이슬람교도들이 이슬람을 그릇된 색채로 도장함으로써 빚어지는 심각한 오해 때문이기도 하다.편견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슬람을 대하는 사람에게는 그 참뜻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슬람은 가장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실천적인 종교이다.
이슬람은 교리의 실천가능성을 강조하며 단순히 마음의 믿음에만 그치는 것은 하등 실천성이 없는 것으로 본다. 예언자 무함마드(P.B.U.H)은 말하기를 "다만 믿는 것으로 그치고 이를 실천하지 않는 자는 이슬람에는 있을 수 없다고"하였다.
무슬림이라면 자기의 신앙을 실천에 옮겨야하는 것이며 그것을 과학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이슬람교도가 아닌 사람들이 이슬람의 교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이다.
이슬람교에 대한 교인과 교인 아닌 사람들 사이의 무지와 완고의 암우를 걷우게 하기 위하여 과학적이고 이지적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무슬림은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의학적, 도덕적 견지에서 다룬 중국 이슬람 지도자인 "하지 이브라힘 마천영"의(현 말레이지아에 살고 있음)글을 번역 출판하는 바이다.
2. 위생학과 순결성 이슬람교에서 돼지고기를 금식시키는 이유는 위생학적인 면과 인품의 순결을 지키도록 하기 위한 조처인 것이다.
우선 청결한 생활을 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이슬람을 알아보기로 하자. 첫째―이슬람은 영혼의 순수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것을 양심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으나 "영혼의 순수성"은 양심과 구별된다.
둘째―이슬람은 과격하지 않은 운동을 가르치고 있다. "이슬람의 5주"의 하나인 예배는 가장 훌륭한 형태를 가춘 과격하지 않은 육체운동이다. (주:이슬람의 5주란―이슬람의 5대의무―즉 다섯가지 실천사항을 말한다. (1)"알라(하나님)외에 신은 없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유일신 신앙의 고백을 하고 (2)예배 (3)회사 (4)단식 (5)순례를 한다. 과학은 위생학에는 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도의심의 향상이 되는 인생수양의 중요성은 이를 등한시 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물질주의에만 주력하고 정신주의는 망각하고 있다. 물질주의와 인생수양의 향상―이 2가지 목적의 병행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과학과 철학이 이를 등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임시적인 것이며 언젠가는 햇빛을 보게 되리라고 믿는다.
현재의 위생학은 피상적이고 물질주의적이다. ― 인간의 내재적 자질개발은 물질과 정신 양면에서 진행시켜야 한다.
3. 이슬람은 정서를 다듬어 준다. 어느 종교이든 다 그렇지만, 이슬람은 훌륭한 인격과 도덕에 많은 힘을 쓰고 있다. 이슬람은 성선설을 가르친다.
"사람의 선악은 생후 배워서, 죽 사회에 적응하면서 그 주의환경에 영향을 받아 선악이 가름 되며 태어날 그 당시만은 결코 선한 것이다."라는 맹자의 사상은 이슬람과 견해를 같이 한다.과거 중국 초등교과서에서 중국 어린이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가르친 것은 "인간은 결백하게 태어났으나 환경에 따라서 선하게 되기도 하고 악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선악은 교육과 환경에 따라서 자라나는 것으로서 맹자의 가르침과 이슬람교에서의 이에 대한 차이점은 이슬람은 덕을 쌓는 방법과 선악을 행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있다.인간에게는 식(食), 숙(宿), 성(性)의 3대욕망이 있다. 또한 행복, 노여움, 비애, 사랑, 공포, 증오, 허욕의 감정을 지닌 고등동물이기도 하다. 허욕은 소유욕의 본능에 의해서 생긴다.
욕구불만은 시기심을 자아내고 시기심은 질투로 발전한다.―인간에게 생명이 있는 한 감정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이슬람은 이 일곱 가지 감정의 소멸을 주장하지 않고 그 통솔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마치 차량의 모―터와 같은 것이어서 이것을 잘 운전함으로써 목적지로 몰고가는 것은 운전사에 달려 있다. 교육, 특히 종교 교육은 그 운전자의 역할과 같다.
4. 음식물의 선택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은 물질주의적 교육의 제일보라 하겠다. 이 제일보는 결백한 인간성의 수양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깊이 이해시켜주는 방향으로 인간을 선도한다.
육체의 피는 생명의 흐름이며 먹는 음식이 피가 되는 것이므로 음식과 음료를 잘 선택하여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문화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음식 선택에 세심하다. 과거의 아프리카 미개인들은 식인종이었다.
말레이시아 원주민과 북부 보르네오에도 음식 선택을 할 줄 모르는 인종이 있다. 그들은 뱀, 굼뱅이, 쥐 할 것 없이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먹는다. 소위 인도의 불가촉천민들도 음식을 선택하지 않고 아무것이나 먹는다.
그러나 그들이 문화수준에 도달하면 음식을 골라먹기 시작한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인간은 문화수준이 높을수록 음식물을 골라 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슬람은 자연사한 동물의 고기와 소, 양, 닭을 막론하고 싸우다 죽은 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도록 금한다. 과학자들이 싸우다 죽은 동물의 피나 고기에 대하여 연구해본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슬림은 이런 고기를 먹지 말도록 교육 받아 왔다. 왜냐하면 생리학적인 면에서 독이란 악의 요소가 응결되어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슬림은 또한 사자, 호랑이, 표범, 뱀, 고양이, 개, 쥐, 따위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런 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런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인간의 성격의 정화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음식물은 창자로 들어가서 배설물이 되기 전에 뇌를 포함한 신체 각 조직에 흡수되어 신진대사를 하는데 그것이 인간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깨끗한 고기를 먹도록 가르치며 채식주의를 방지하지도 않고 권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고기를 먹을땐 골라 먹으라는 것이다.현대의 돼지는 깨끗한 먹이로 기르고 있으므로 돼지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깨끗하고 영양분이 많은 먹이나 아무리 깨끗한 먹이로 길렀다 해도 돼지의 성질까지를 변경시킬 수는 없는 것이며 돼지는 역시 돼지일 뿐 나무처럼 접목을 해서 그 성질을 변경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5. 돼지의 습성 돼지는 성질이 게으르고, 햇빛을 싫어하고 투지가 없다. 돼지는 거의 무엇이든 닥치는데로 먹는다. 모든 육류 중에서 해로운 병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돼지고기다. 돼지고기는 또한 질병의 매개체이다. 돼지고기가 식용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6. 돼지고기에 대한 고대 중국의 견해 중국의 유명한 생명학자인「탕야쇼」는 "돼지는 죽는 순간에 공포심이 심장으로 들어가며, 짐승은 죽을 때 마지막 숨(호흡)이 담으로 들어간다."고 여기 인용한 글은 공포심에 관한 것으로서 동물은 죽을 때 마지막 숨이 심장과 담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지적한 것인데 과학자들이 이것을 긍정하지 않을는지 모르겠으나 이 학자는 보통의 학자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음에 틀림이 없다.
당나라 때의 "마오 순시"는 위대한 의학자였다. 재상벼슬을 마다하고 받지 않았으며 그의 사후 천년동안 그를 따를만한 사람이 없었던 위대한 의학자이자 위생학자로서 100세까지 살았다. "건강의 기록"이라는 저서에서 그는 "돼지고기는 묵은 병을 재발케 하고 류마치즘(신경통)과 해소병을 기른다"고 했다.
이분의 학설은 현대 과학자들도 시인하고 있다. 여기에 예를 든 것 외에도 돼지고기는 인체에 해롭다는 논증이 많이 있다. 돼지고기를 먹으면 기억력이 쇠퇴하고 머리 카락이 빠진다. 돼지고기는 대머리의 원인이 되고 기억력의 쇠퇴를 초래한다는 것은 현대과학이 규명한 바이다.돼지고기를 파는 푸주간 사람들은 대개가 비대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비대하다고 반드시 건강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이것은 항상 돼지고기를 만짐으로서 돼지고기가 전해오는 병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렌 쉐퍼드"(Dr. Glen Shepherd)는 1952년 5 월 31일자 "워싱톤 포스트지"에 실린 글에서 돼지고기를 먹는데서 오는 위험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미국과 캐나다의 6명중의 1명이 선모충병균을 보유하고 있는 돼지고기를 먹음으로서 근육에 병균을 보유하고 있다.
이 병균 보유자들은 증세가 눈에 띄지는 않는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짧은 시일 내에 치료가 되지 않으며 때로는 생명을 잃는 수가 있고 병신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조심하지 않고 돼지고기를 먹는데서 오는 것이다. 이 병은 면역이 되지 않으며 치료법이 없다. 이 아주 조그마한 무서운 병균을 예방하는 항생제도 약도 주사도 없다. 오로지 예방만이 유일한 치료방법인 것이다.
성장한 선모충병균은 길이 1/8인치, 폭 1/400인치이다. 수명 40년으로 근육세포 사이에서 번식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병균이다. 이병에 감염된 돼지고기를 먹으면 그 병균도 함께 소화되어 세균으로 자 1마리가 1,500마리의 새끼를 낳아 2 ∼ 3주 후에 혈액으로 들어간다.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인다던가 불에 굽거나 해도 병균은 죽지 않는다.
도살장에서 잡아서 포장하면 깨끗하다고 생각하기 쉽겠으나 아무리 관이 검사를 잘한다 해도 병균을 보유한 돼지고기를 가려낼 수가 없는 것이다.
위의 전문가의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선모충병균이 보유여부를 보증할 방법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일종의 도박행위이며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노릇이라 하겠다. 1967년 1월 "이슬람 리뷰지"(Islamic Review)에서 "모함맏 쟈퍼"(Dr. Mohd. Jaffer) 박사는 현대적 연구방법에 의해서 발견한 돼지고기가 보유하는 16가지의 해로운 병균을 열거한바 있었다.
그가 1936년 "카이로"대학 의과대학을 방문했을 때 실험관 속에 담은 10피드나 되는 조충을 의과 과장이 내보이며 "이것은 중국산이오"하므로 "쟈퍼"박사는 당혹 하면서 "왜 하필이면 중국산을 특정참고로 하는 것이오"하고 반문하니 그 대답은 이러했다.
― "중국은 세계에서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이며 조충 환자가 세계에서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이며 조충 환자가 세계에서 제일 많으오. 돼지가 감병의 매개체인 선모충과 장균이 가장 많은 곳도 중국이오. 그래서 딴나라에서는 회충표본을 중국에서 사오는 것입니다."
8. 유럽인과 돼지고기 독일 사람은 그렇지도 않지만 구라파인, 미국인, 호주인은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고 쇠고기를 많이 먹는다. 이태리는 "로마 카톨릭 국가"라 할 수 있는데 냉장시설이 생기기전의 현대에는 5월∼8월 사이의 돼지고기 판매를 금했었다.
다른 구라파 국가에서도 그랬던 일이 있었고, 불란서는 이 기간동안 굴을 먹지 못하게 하고있다. 영국도 돼지고기에 대해서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람들은 「R」자가 끼지 않은 달에는 돼지고기를 사고 팔지 못하게 제도를 만든 모양이어서, 5월(May), 6월(June), 7월(July), 8월(August)달에는 돼지고기를 사고 팔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돼지고기가 해롭다는 주의를 환기시키는 증거라 하겠으나, 그 이유에 대한 깊은 지식 없이 그렇게 정했을 뿐이었다. 구라파 여러 나라들이 이달 중의 육류 매매를 장려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 것은 구라파인들만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도 그렇고 이웃 일본에서도 돼지고기를 비교적 적게 먹는 사람이 많다.
-고기의 실험
나이가 같은 돼지, 양, 소의 고기를 각각 햇빛에 놓고 볼 때 돼지고기가 먼저 썩고 다음이 양고기고 쇠고기가 맨 나중에 썩는다. 그 시간 차이는 약 1시간 씩이다. 쇠고기는 썩지 않고 말라버리는 수도 있다. 그리고 후라이판에 이 3가지 고기를 넣고 요리를 만들면 돼지고기가 제일 나중에 익는다.
뿐만 아니라 익은 돼지고기에 해로운 병균이 있는지 보증할 수가 없다. 의학적 연구 결과에 의하면 양고기와 쇠고기는 사람의 뱃속에서 소화되는 시간이 3시간이 걸리고 돼지고기는 4시간이 걸린다.
사람이 음식을 입에 넣기 전에 음식물을 구별하는 방법을 여러모로 가르치고 있다. 모든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본능적으로 음식을 구별할 줄 모른다. 그래서 영양학의 수준이 가장 낮다.
일반 동물은 취각을 이용할 줄 안다. 인간을 취각이 매우 발달해 있으므로 이를 활용해야 마땅하다. 식물 중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이 많다. 약초도 있고 독초도 있다. 고기도 사람에게 해로운 고기가 있는 것이다. 돼지고기도 말하자면 사람을 즉사시킬 정도로 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독소가 잠재해 있다는 것은 고령의 과학자들이 증명한 바 있다.
돼지고기는 다른 고기만큼 자양분이 많지 않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중국 사람은 먼 옛날부터 오랜 세대 동안 돼지고기를 먹어왔다. 돼지고기는 국민의 양식이며 돼지고기를 먹고 살아 왔어도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다"고 그러나 중국 국민은 부득이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 총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민은 돼지고기를 1년에 한 3번 정도밖에 먹지 못한다. 그 세 번이란 설날, 단오절, 추석이다. 그러니까 과거의 중국 농민은 1년에 돼지고기 3근 밖엔 먹지를 못했었다. 그것도 현재의 공산치하에서는 1년에 1근을 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사람이 주식물의 하나가 두부다. 파, 마늘은 북부 중국인의 건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돼지고기가 중국 사람들의 주식물의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매일 먹는 음식은 아니다. 중국 사람은 돼지와 돼지고기에서 전염되는 질병에 걸려있다고 말하는 의사들의 보고는 진실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바뀌어졌다. 중국인은 무지해서 돼지고기를 먹어 왔었으나 현대과학은 돼지고 기가 비위생적이라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음식물을 바꿔야 할 일이다.
중국 무슬림가 비무슬림(비교도), 중국인을 비교해 보면 무슬림이 귀가 2인치 크고 훨씬 건강하다. 비교도 중국인들이 일찍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딴 고기를 먹어 왔더라면 오늘날의 그들 육체적 조건이 타민족 보다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수신재가치국평천하의 가르침을 성취하였을 것이다.
독자들이 "이슬람은 왜 돼지고기를 금하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실예를 읽고도 아직도 속이 후련하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더 말할 길이 없겠으나 다음의 쿠란 구절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야담이지만 한국 동란 때 우리나라에 주둔했던 토이기 군인들(이슬람 교도였다)은 유엔군에서 받은 보급품 속에서 돼지고기 통조림은 땅을 파고 묻어 버렸다고 한다.
9 . 무슬림은 교리에 복종한다 무슬림이 자신을 무슬림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무슬림은 쿠란과 "무함마드의 어록을 성실하게 믿기 때문이다. 쿠란에 신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오! 인간이어, 땅위에 있는 것 중에서 먹어도 되는 깨끗한 것을 먹도록 하라. 그리고 사탄의 발자취를 밟지 말도록 하라. 진실로 사탄은 너희의 공공연한 적이니라."(쿠란 2:68)
"알라께서 너희에게 먹지 말도록 금하는 것은 사육(죽은 짐승의 고기), 피, 돼지고기와 잡을 때 알라의 이름으로 잡지 않고 다른 이름을 부르고 잡은 것뿐이니라.그러나 먹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먹은 게 아니라던가 알라(하나님)에게 죄지을 생각으로 먹은 게 아니라, 할 수 없어서 먹었을 경우에는 죄가 되지 않느니라."(쿠―란 2:173)
이 쿠―란 구절은 조물주(알라)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모든 무슬림은 이에 무조건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무슬림이 교리에 복종함은 군인이 군에 무조건 복종하여 국법에 순종함과 같은 것이다.
이 쿠―란 구절에 "할 수 없이 먹었을 경우에는"이라는 말씀이 있다. 즉 다시 말해서 기아상태에 있을 때 돼지고기이외의 다른 음식물이 없을 시 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를 먹도록 총칼로 위협을 한다면 불가피 이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슬림이 우상숭배를 강요당했을 경우 무슬림은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
무슬림이 자존심을 버리고 돼지고기를 먹는다면 그는 주의주장의 신념이 없는 가치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한 무슬림은 파렴치하고 죄 많은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도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를 먹는 무슬림을 경멸하다.)
무슬림이 할 수 없이 강제에 못 이겨 돼지고기를 먹었을 때는 죄가 되지 않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 돼지고기를 먹으면서도 무슬림이라 자처하는 사람은 큰 죄를 짓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힌두교도들이 쇠고기를 먹지 않는 것과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그 성질이 다른 것이다. 힌두교도는 소를 신성시 하지만 무슬림은 돼지를 멸시한다.
내가 1943년 12월과 1967년 10월 가족과 함께 "칼캇타"에가 있을 때 "벵갈" 지방에서 수 천명의 피난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것을 내 눈으로 본 일이 있는데 수많은 피난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한편에는 임자 없는 성우(聖牛)들이 거리와 언덕을 메우고 있었다. 성우들도 아사지경이었다. (1967년도 인도에는 늙은 소의 수효가 9,400만 마리였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소에 손을 댈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고, 소를 잡아서 인명을 살리거나 최소한 소를 팔아서 쌀이나 밀을 사들이자고 제창하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전 세계 소의 ¼이 인도에 있다 한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이슬람교만이 아니라 유태교에서도 먹지 않는다.
쿠란 구절의 "땅 위에 있는 것 중에서 먹어도 되는 깨끗한 것을 먹도록 하라"외 "사탄의 발자취를 밟지 않도록 하라"는 두 구절은 전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느껴지리라. 그러나 이 두 구절을 심사숙고하면 두 구절의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자연이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취하는 것을 마시지 말라. 하는 쿠란 구절은 내적 표현인 동시에 외적 표현인 것이다. 이 양면표현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각자 읽는 이에 달렸다. 회의에 대하여 예언자 무함마드(P.B.U.H)은 이렇게 말했다.
:"합법성 여부에 대하여 회의를 품게 될 땐 너의 내부의 소리에 물어보라. 무슬림은 쿠란이 조물주의 말씀임을 공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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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아랍어: الإسلام al-islām 듣기 (도움말·정보))는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하는 유일신 종교로, 그리스도교, 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이슬람”이란 뜻은 “신에 대한 순종”이란 뜻이다. 신자는 무슬림이라고 한다. 이슬람은 제정일치의 교리를 가졌기에 종교는 곧 정치이며 따라서 교리가 곧 법이다.
이슬람교의 경전은 꾸르안(코란)이며,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대천사 가브리엘(아랍어: 지브릴)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1] 이슬람의 대표적인 종파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하는 수니파와 이란이 대표하는 시아파가 있으나, 시아파를 따르는 무슬림은 전체 무슬림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는 소수이며, 중앙아시아의 무슬림들은 수피 무슬림들이며, 나머지 무슬림은 정통 이슬람인 수니파이다. 이슬람 안에서 무슬림 모두는 형제이며, 종파간에도 서로를 무슬림이라고 인정한다.[2]
목차
1 이슬람의 휴일
2 용어의 정의
3 역사
4 아랍색
5 교리
6 분포
7 종파
7.1 수니파
7.2 하와리즈 파
7.3 시아파
7.4 열두 이맘파와 자이드파
7.5 이스마일파와 암살단파
7.6 알라위파(Alawis)와 드루즈파(Druzes)
7.7 바비파(Babis)와 바하이
7.8 수피(Sufi) 사상
8 주석
9 바깥 고리
이슬람의 휴일
이슬람 신도나 국가는 금요일이 휴일이다.
용어의 정의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다.
이슬람 : 흔히 “이슬람교”라고 불리는 종교의 이름이다. 꾸르안에 명시하고 있는 바 이것을 “이슬람”이 아닌 “이슬람교”나 “회회교,” “회교,” “마호메트교” 등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무슬림 : 이슬람에의 복종자, 곧 이슬람을 믿는 사람을 가리킨다. 역시 “이슬람교도” 등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꾸르안꾸르안 : 이슬람의 경전 이름이다. “읽다”(아랍어: 까라아)의 동명사로서 그 뜻은 “읽기”이다. 이는 무함마드가 받은 첫 계시가 “읽어라! 창조주이신 너의 주님의 이름으로.”라고 시작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꾸르안을 “코란”이나 “꾸란”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특히 “꾸란”이라는 말에는 “읽다”라는 뜻이 없다. 라쑬룰 라 : “성사(聖使)”라는 뜻으로 주로 무함마드(마호메트)를 가리킨다. 성사는 “알라가 보낸 사람”을 뜻하며, 이는 예언자보다 격이 높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이다.
이만 : 이슬람 교리에서 이르는 “여섯 믿음”을 가리킨다.
이바다 : 이슬람 교리에서 이르는 “다섯 의무”을 가리킨다. 이것을 “아르칸”이라 하여 “다섯 기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이슬람교의 역사입니다.
성지(聖地) 메카는 아라비아 반도 중부, 홍해 연안에서 약 80 km 지점의 불모지 골짜기에 위치하는 도시로, 인도양에서 지중해안에 이르는 대상로(隊商路)의 요지인 동시에 카바 신전과 북동쪽 구릉지대는 옛날부터 유대교 ·그리스도교의 신성한 영장(靈場)으로 되어 있어 매년 많은 대상과 순례자들이 찾아들었다. 메카의 지배계급은 5세기 말경, 부근 황야에서 온 코레이시족이었으며 무함마드는 그 중의 하심가(Hashim 家) 출신이다. 무함마드는 아버지가 죽은 후 유복자로 태어났는데, 어머니도 얼마 후에 죽었으므로 어린 무함마드는 할아버지에게 맡겨졌고, 그 후 숙부의 손에 양육되었다.
당시 아라비아 각지에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전해져 그 신도 수도 점차 증가하고 있었는데, 메카에도 그 영향이 미쳐 신은 유일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도 나타났는데, 그들을 ‘하니프(Hanif)’라고 불렀다. 그러나 일반대중은 여전히 다신교 신당에 빠져, 돌 ·천체 ·샘 ·수목 등을 숭배하였다. 하니프들은 이에 반대하여 세계의 종말은 가까워지고 있으며, 그때는 선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게 되고, 유일신은 곧 창조주이며 인간에 대하여 선의를 갖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무함마드가 자신은 유일신 알라의 가르침을 모든 아라비아 백성에게 전도할 사명을 띤 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은 40대에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다분히 하니프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무함마드가 메카 근교의 힐라산(山) 동굴에서 최초로 하늘의 계시를 받은 후 맨 처음 그의 아내 하디자가 입신하였는데, 그 후 그녀는 메카의 박해시대에는 자주 남편의 힘이 되어 주었다.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선교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40명, 10년 만에 겨우 100명의 신도밖에 얻지 못하였고 게다가 메카의 집권자인 코레이시족의 박해가 날로 심해졌으므로, 이를 피하여 622년 9월 메카 북방 약 400 km 떨어져 있는 메디나로 갔다. 신도들도 이때를 전후하여 메디나로 피난, 그곳 협력자들(안사르)의 집에 수용되었다. 이 메디나 행을 이슬람에서는 ‘헤지라[聖遷]’라고 하는데, 이 해를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아라비아에서는 어떤 명문 인사가 다른 유럽 부족의 보호를 요청하여 그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헤지라라고 하는데, 지금도 가끔 볼 수 있는 풍습이다. 무함마드의 운명과 이슬람의 장래는 이 헤지라를 통하여 일변하였다. 메카에서 이주한 교도와 메디나의 협력자들은 힘을 합쳐 교단을 조직하였다. 이것이 이슬람교의 시초인데, 후에 점차 강화되어 이슬람교단은 국가로까지 발전했다.
그 후 무함마드는 교단을 이끌고 여러 차례 메카군과 싸워 630년 1월에는 마침내 메카를 정복하고, 카바 신전을 알라의 신전으로 바꾸어놓았다. 얼마 후 아라비아인의 태반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그 광대한 아라비아 지역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된 것은 실로 유사 이래 처음이었다. 그의 이상은 종래의 부족단위의 사회를 하나의 이슬람 교단으로 바꾸어, 알라의 가르침에 따라 전체 교도를 한 형제로 삼는 평화스런 사회를 만드는 데 있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632년 6월 메디나의 자택에서 병사하였다.
무함마드 사후, 교단은 신도의 장로 중에서 교통(敎統)의 후계자인 칼리프를 선출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633~664년 시리아 ·이라크 ·북부 메소포타미아 ·아르메니아 ·이란 ·이집트 등을 정복하고 여러 곳에 기지도시(基地都市)를 건설하였다. 그 후에도 정복사업은 계속되어 우마이야왕조 시대에는 서쪽은 북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까지, 다시 711년부터는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하였고, 동쪽은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서부까지 그 지배력이 미쳤다.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의 중추부까지 진출한 군은 732년 푸아티에 북방의 싸움에서 패퇴하였으나, 동방에서는 751년 여름 탈라스 강의 싸움에서 당군(唐軍)을 대파하고 중앙아시아의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아바스 왕조 초기 100년간은 칼리프 정권의 전성기였는데, 그 후 이베리아는 우마이야가(家) 일파에 의하여 독립하고, 이어서 모로코 ·튀니스 ·중앙아시아 ·이란 동부 ·이집트 등에도 독립정권이 출현하여 칼리프의 직할지는 점차 축소되었다.
10세기에 들어서자 921년 이후 볼가강 중류의 불가르족(族)이, 이어서 960년 이래 톈산남북로의 투르크족이 다같이 대량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아랍족, 이어서 이란인이 중심이었던 이슬람 세계는 이 무렵부터 투르크의 패권 밑으로 옮겨지는 경향이 생겨, 10세기 말부터는 투르크계 가즈니왕조의 마호무드왕은 자주 인도에 침입하여 이 지방의 이슬람화가 확고한 기반에 놓였다. 한편 동아프리카에는 740년 무렵부터 이슬람교가 퍼지기 시작하여 1010년경에는 사하라 사막을 넘어 나이저 강변의 서 수단 지방에 있는 흑인 왕국에까지 이슬람의 세력이 미쳤다. 1071년 아르메니아의 만지케르트 싸움에서 셀주크 투르크군은 비잔틴군을 격파하였다. 이 때부터 서아시아의 이슬람화 ·투르크화가 시작되었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 11세기 말~13세기 말의 거의 2세기에 걸친 십자군 운동이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그리스도교도의 역정복이 진행되어 1493년에는 무어인의 최후 거점인 그라나다가 함락되고 마침내 이슬람은 북아프리카로 후퇴하였다.
이와는 달리 셀주크왕조와 교체된 오스만 왕조는 발칸 반도로 진출하여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공략,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켰다. 또 인도에 세력을 부식한 이슬람 교도는 이곳을 기지로 하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방면에 선교를 하여 동남아시아의 이슬람화는 15~16세기에 광범한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⑵ 분포 현황:현재의 이슬람 교도수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세계 인구의 약 25 %인 12억 내외로 알려져 있다. 지역적으로는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에 이르는 이른바 중동지역과, 동부 러시아, 투르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서부 ·중국 ·인도에 이르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기타 한국 ·일본 등 세계 곳곳으로 선교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예를 들면, 남 ·북미 지역과 유럽 지역에도 오랜 이슬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수백 만의 무슬림들이 있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 지역에서의 이슬람 문화 ·역사 ·종교학에 관한 연구는 그 역사도 오래되었고 수준도 높다.
아랍색
소말리아, 코모로, 지부티 같은 일부 이슬람국가를 빼고는 국기에 빨강, 초록, 검정, 흰색만 넣는데, 이는 이슬람에서 파랑을 아랍색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교리
이슬람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믿는 유일신 종교이다.
이슬람 교리는 매우 단순하게 여겨질 만큼 명료하게 정립되어 있다. 이슬람 교리는 이만(6가지 종교적 신앙)과 이바다(5가지 종교적 의무)를 기본으로 하며, 6신(信) 5행(行)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5행을 무슬림의 신앙생활을 받치는 다섯 기둥으로 보아 아르칸(기둥들)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 중심가 모스크에서의 쌀라 풍경이만(6신)이란 알라와 천사, 경전, 예언자, 마지막 심판, 정령에 대한 여섯 믿음이다.
이 부분의 본문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입니다. 수니파 무슬림에게 다섯 기둥(Arkan-al-Islam)은 샤리아(이슬람법)에 근거하며 무슬림에게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시아에는 ‘종교의 뿌리’(Usul-ad-Deen)로 알려진 다섯 가지 믿음과 ‘종교의 가지’(Furoo-ad-Deen)로 알려진 열 가지 의례가 있는데, 이 열 가지는 수니의 이슬람의 기둥과 유사한 것이다.
복장을 갖추고 메카로 순례 여행을 떠나는 무슬림들신앙고백 (샤하다) - 하나님(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예언자라는 선언
기도 (쌀라) - 매일 5회의 기도
단식 (사움) - 일출부터 일몰까지, 이슬람력 9월(라마단) 한달 동안 음식 및 음료의 섭취와 성행위를 금한다.
자선 (자카) - 일반적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부자들의 재산의 2.5%나 농민들의 연 생산의 10-20%정도이며, 이 돈이나 생산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진다.
메카 순례(핫즈) - 이슬람력 12월(둘 힛자)에 이루어지며 경제적 신체적으로 능력이 있는 모든 무슬림이 일생에 한 번 행해야 한다. 다른 종교와는 달리 이슬람의 교조는 유일신 알라이다. 흔히 ‘교조 무함마드’라고 부르는 호칭은 다른 종교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관용 표현”일 뿐이다. 또한 이슬람의 경전인 꾸르안에는 오로지 유일신 알라에게서 받은 ‘계시’만을 기록하고 있다. 다른 종교의 경전에서 기록하는 ‘인간의 말’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분포
국가별 신자 분포주로 중동과 터키, 중앙아시아, 중국 서부(신강위구르자치구), 북아프리카, 러시아(주로 남부지역), 카프카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에 이슬람교가 존재한다. 여기서 동남아시아의 무슬림은 과거 이슬람 상인들의 활발한 무역 활동으로 이슬람 신앙을 갖게 된 이들이다.유럽에서는 알바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주로 코소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이슬람교가 존재한다. 일부는 독일, 이탈리아, 몰타, 그리스, 스웨덴에도 존재한다.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는 이슬람교가 제2의 종교 세력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유럽의 무슬림들은 이슬람에 대한 편견, 무슬림에 대한 차별(취업, 교육) 등의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아메리카에서는 미국, 브라질에 이슬람교가 극소수로 존재하며, 오세아니아에서는 파푸아뉴기니가 극소수로 존재한다. 실례로 유명한 흑인운동가인 말콤X는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후에 개종한 무슬림이다. 대한민국에는 약 10만 명의 이슬람교도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한국전쟁당시 터키군의 선교 활동과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공화국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에 의한 것이다. 한국인 신도는 약 2만 명 정도이다.
종파
이슬람에는 기독교와 같은 ‘이단’의 개념은 없다.[출처 필요] 하지만 다수 신도는 스스로를 주류, 수니 무슬림이라고 부른다. 전 세계 무슬림의 83% 이상이 수니 무슬림이다. 그 외에는 16%의 시아 무슬림과 나머지 종파이다.
수니파
무슬림 공동체 즉 움마의 순나(sunnah 관행)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순나란 꾸란, 하디스 및 예언자와 정통 칼리파의 선례에 바탕을 두고 있다. 4대 법학파(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로 나뉘어진다.
하와리즈 파
무함마드 사망 25년 뒤, 칼리파 우스만 이븐 아판이 살해를 당하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그 뒤를 이었다. 우스만의 6촌인 다마스쿠스 총독 무아위야 1세는 알리가 우스만의 복수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내란 속에서 알리 지지자들은 주전파와 협상파로 갈라졌다. 그중 주전파는 절대신 알라만이 중재를 할 수 있고 인간은 현 상황에서 계속 싸워야 한다면서 알리 진영을 떠난다. 이들이 이슬람 역사상 최초의 종파 하와리즈(탈퇴자)이다.
하와리즈파는 전투적인 행동주의자여서, 지하드(jihad 주로 ‘성전’으로 번역한다)를 여섯번째 ‘신앙의 기둥’으로 삼았다. 661년 이들은 알리를 살해했다. 하와리즈파는 메카의 부족 꾸라이쉬의 자손만이 칼리파가 될 수 있다는 순니파의 전통적 견해를 비난하고, 독실한 무슬림이면 누구나 칼리파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민 평등주의적 입장과 아랍 귀족층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베드윈과 비아랍계 무슬림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지만 내분으로 뒷날 저절로 약화됐다. 현재는 알제리와 튀니지의 베르베르 지역,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에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청교도적인 정신은 18세기 사우디아라비아 건국의 기반이 된 와하브(Wahhab) 운동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시아파
빼앗긴 칼리파 자리를 살해당한 알리 가문에 되돌려주려는 운동으로써 시작된 것이 시아 이슬람이다. 시아는 '쉬아 알리(Shia Ali)' 즉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에서 나온 명칭. 초기 칼리파들의 뒤를 이은 우마위야 왕조(661-750)와 압바스 왕조(750-1258)는 무함마드의 '혈통'을 중시한 쉬아를 억압하는 정책을 펼쳤다.시아파는 우마위야 왕조 창시자 무아위야 1세가 알리와 파띠마의 장남인 하싼(Hasan)을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하싼의 동생 후세인(Husayn)은 680년 이라크의 카르발라(Karbala)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참혹하게 살해됐다. 카르발라와 인접한 나자프에는 이맘 알리, 이맘 후세인 사원이 지금도 남아 있어 시아파들의 최대 순례지가 되고 있다.후세인의 제삿날인 이슬람력 정월(Muharram) 10일, '모하라 아슈람'은 시아파들의 최대 추모제 날이자 명절이기도 하다. 신자들은 이날 길거리에 나와 행렬을 지어 후세인의 고통을 체험한다. 시아파는 초기의 희생자들을 순교자로 떠받드는 것에서 시작했으나 훗날 유대 유일신교의 한 분파인 그노시즘(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순니의 이슬람 주류와 신학적으로도 갈라섰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이맘'이라는 인도자의 존재. 순니가 말하는 이맘은, 꾸란을 독경하고 에배를 인도하는 정도의 사람을 가리킨다(전통적으로 이슬람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즉 '성직자'를 인정치 않으며 모든 신도가 직접 신앙의 힘으로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쉬아의 이맘은 알리와 후세인의 후계자, 꾸란의 신비를 밝혀주어 신도들을 빛과 은총으로 이끄는 사람으로 격상됐다. 이란의 아야툴라 루흘라 호메이니와 그 뒤를 이은 최고종교지도자 알라 하메네이 같은 이들이 가장 최고위급의 이맘들이다.희생과 순교를 중시하는 시아파들은, 이 지점에서 구세주 신앙과 만난다. 특히 알리 이후 열두 이맘의 시기가 지나고 마지막 12대 이맘이 873년 사라졌다고 믿는 '열두이맘파'에게서는 메시아사상의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사라진 12대 이맘이 오랜 은둔에서 벗어나 언젠가 지상에 구세주(마흐디)로서 나타날 것이라 믿고 있다. 훗날 많은 이들이 '마흐디'를 자처하면서 등장하기도 했다.
[편집] 열두 이맘파와 자이드파
시아파의 85%를 이루고 있는 열두 이맘파는 이란과 이라크 인구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아라비아 반도에는 드물게 분포하고 있고, 레바논과 파키스탄, 인도 등지에 소수파로 존재한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경우 왕가는 알리의 자손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순니 말리키파다. 자이드파는 후세인의 손자 자이드(Zayd)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열두 이맘 중 후세인의 아들인 4대 이맘까지만 인정하는데, 여기에 자이드를 포함시켜 다섯 이맘파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자이드파는 알리 이후 순니파 칼리프들을 인정치 않는다는 점을 빼면 교리상 순니와 같다. 예멘 지방에 많이 남아 있다.
[편집] 이스마일파와 암살단파
시아파 중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고 매력적인 것, 그런 이유로 옛 문헌이나 소설에 가장 자주 소재로 다뤄졌던 것이 이스마일파 즉 일곱 이맘파다. 그들은 열두 이맘파의 7대 이맘 무사 대신 6대 이맘 자아르 알 싸디끄(765년 사망)의 장남 이스마일을 추종하기 때문에 이스마일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은 빈민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압바스 왕조 칼리프에 맞서 인기를 모았다. 10세기 한때 메카를 점령하기도 했다.
이스마일파의 또 다른 분파는 북아프리카에서 아랍족과 베르베르족 사이의 긴장을 이용해 권력을 잡고 파티마 왕조(909-1171)를 세운 우바이둘라 알 마흐디(909-934) 세력이다. 이들은 969년 이집트를 정복하고 옛 수도 푸스타트 근처에 까히라(al-Qahirah 승리자; 오늘날의 카이로)라는 도시를 세웠다. 칼리프조는 까히라에 거대한 도서관을 짓고 이슬람 교리의 본산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는 알 아즈하르(al-Azhar)성원(聖院)을 만들었다. 이 칼리파조는 11세기 초 국력을 키워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등지를 세력권에 넣었으며, 바그다드의 칼리프도 한때는 카이로의 세력에 맥을 못 췄다. 그러나 1171년 아이유브 왕조의 살라흐 앗 딘(1138-1193; 살라딘)에 멸망했으며 이집트와 시리아는 다시 수니파의 손으로 들어갔다.
암살단파는 '산상의 노인'이라 불렸던 이란계 지도자가 11세기 말 파티마조와 결별하고 이란과 시리아를 잇는 산악지대에 요새를 만들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마약의 일종인 해시시에 중독돼 암살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아사신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이는 영어 assassination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중세 십자군 전쟁을 다룬 기록들이나 마르코 폴로의 '세계의 서술(동방견문록)' 등 옛 문헌들에는 '산상의 노인'에 대한 전설이 많이 나와 있다. 암살단파는 자객을 이용, 주로 순니파 칼리프들을 살해했다. 현대의 학자은 암살단파가 예루살렘을 놓고 전쟁을 벌였던 기독교 세력보다는 오히려 순니 기득권층에 더 큰 위협이 됐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에 살해된 최초의 희생자는 셀주크 투르크의 술탄 말리크 샤 1세(1072-1092)의 재상으로 유명한 니잠 알 물크(1091년 사망)였다.
암살단파는 순니 지도층을 살해, '숨은 이맘'의 통치체제를 전 이슬람권에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13세기 내분이 일어나면서 약화됐고, 이란을 점령한 몽고군에 의해 섬멸됐다. 시리아의 분파도 이집트, 시리아에서 득세한 맘루크조에 의해 제거됐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추종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암살이 아닌 사업에 종사해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무슬림 부유층을 형성하고 있다.
알라위파(Alawis)와 드루즈파(Druzes)
이스마일파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종파들로, 오늘날 레바논과 시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슬람 주요 교리에서 워낙 벗어나 있어, 쉬아 무슬림이라기보다는 순니-쉬아 이외의 제3의 종파로 분류되곤 하며 심지어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로까지 분류되기도 한다. 알라위파(Alawi)는 시아파의 알리 숭배를 극단화시켜 신격화했는데, 창시자인 무함마드 이븐 누사이르(Muhammad ibn Nusayr)의 이름을 따 '누사이리파'라 불리기도 한다. 레바논, 시리아에 많은 성스런 나무숲을 숭배할 뿐 아니라 기독교 의례까지 받아들여 부활절까지 축하하곤 한다. 시리아에서도 인구의 1%만이 알라위파이지만 장기집권했던 하페즈 알 아사드 전대통령과 그 아들로 세습정권을 이어가고 있는 바샤르 알 아사드 현대통령이 이 종파인 덕에 권력층이 되어 있다.드루즈파는 11세기 이스마일파에서 나온 다라지(Darazi)라는 인물이 숨은 이맘 '마흐디'를 자처하면서 창시했다. 비밀주의가 강하며, 레바논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신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따르는 이슬람과 달리 하킴이라는 칼리파가 신의 현신이라 주장하며 일신론을 믿는다. 일부다처제는 금지돼 있고 여성들의 지위는 남성과 동등하며 영혼은 윤회한다고 믿는다. 이슬람의 하지(순례) 기간 축제를 열긴 하지만 순례 자체는 하지 않으며 라마단 금식도 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으며 금욕적인 생활을 찬양한다. 교리와 관행으로 보아, 이슬람이라기보다는 별도의 종교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바비파(Babis)와 바하이
19세기 중반 이란에서 나타난 바비파는 아랍어로 '문'을 뜻하는 '밥'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는 진리의 문을 뜻한다. 바비파는 구약성서와 조로아스터, 중국에서 전해져온 유교 사상과 불교 등의 예언자들을 모두 인정했다. 이들은 이란의 부패한 왕정에 반대하다가 잔혹한 탄압을 당했다. 대량학살에서 살아남은 추종자들은 바하울라라는 예언자를 추종하는 바하이파로 계승됐다. 바하이의 가장 큰 관용과 사회의식이다. 이들은 이맘 알리가 남긴 메시지는 사회를 개혁하고 살기 좋게 만드는 것이라 믿는다. 여기에는 여성 평등, 교육과 국제평화 등이 모두 포함된다. 바하이는 대부분 평화주의자로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금주 금연, 채식 등을 선호한다. 이들도 이란 정부의 박해를 받았으며, 왕정이 끝나고 1979년 이슬람혁명 세력이 정권을 잡은 뒤에도 계속 탄압을 받고 있다.
수피(Sufi) 사상
이슬람 쉬아에서 갈라져나온 신비주의 수피즘은 종교라기보다는 철학, 사상에 가깝다. 현대 서구문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수피즘은 금욕적인 자기수양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모하메드의 시기 이후에, 무슬림 공동체는 여러 집단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는 신학적이거나 철학적인 것만큼 정치적인 요소와 문화적인 요소가 중요했다. 이슬람 사상의 발전에 있어 형성기는 사상의 흥미진진한 전쟁터였으며, 결국 정통 수니파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분파로 귀결되었는데, 이 "수니파"(Sunni)는 대다수 무슬림들이 따르는 확립된 교조가 되었다. 주요 이슈는 믿음과 행위, 운명예정과 자유의지, 계시와 이성, 신의 유일성이 함축하는 것, 코란의 영원성, 코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것인지에 관한 것들이었다. 모하메드가 622년 9월에 메디나로 도망을 간 것이 이슬람 시대의 기원을 이루었고, 632년 6월의 그의 죽음은 상당한 권력과 명예를 갖는 국가를 세우는 데 성공케 했다. 이 짧은 10년의 기간 동안, 사막에 거주하는 아랍의 베두윈 부족들 대부분은 이슬람의 예언자와 동맹을 맺겠다고 서약했으며, 이것은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알라신의 새로운 신앙을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모하메드의 죽음은 유아기의 이슬람 공동체에 첫번째 주요 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어지는 위기는 이슬람 공동체에서 필경 수니파와 시아파로 영원히 나뉘도록 한 것의 시초가 되었다.
모하메드가 살아있는 동안, 무슬림들은 그가 이슬람의 계시된 메시지에 따라 가장 훌륭한 지시를 내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가 메디나에서 죽자, (적어도 다수파의 관점에서 보면) 예언자가 그의 후계자에 대한 형식적 지시나 유언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심각한 혼란상태에 빠졌다. 계속되는 토론 가운데서, 단 한 가지 점에서는 즉각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신의 계시를 통하여 모하메드는 "예언자들의 봉인"(Seal of the Prophets)이라는 것이 이미 알려졌기 때문에, 예언자의 후계자는 또 하나의 예언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효과적인 지도력을 가지고 이슬람 공동체와 국가의 지속성을 확실히 할 수 있는 후계자를 질서롭게 선출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논쟁 가운데, 이슬람 최초의 개종자들 중 한 사람이자 모하메드에게서 신뢰받던 동료인 아부 바크르(Abu Bakr)가 후계자로 선출되었다. 그는 "칼리파트 라술 알라"(Khalifat Rasul Allah, 신의 사자의 후계자)라는 호칭을 받았으며 이 호칭은 곧 칼리파트(영어로는 "칼리프")로 단순화되었다. 이처럼 예언자의 첫번째 후계자가 선출됨으로써, 이슬람의 독특한 칼리프 제도가 또한 생긴 것이었다. 바로 그러한 시초에서부터, 칼리프직은 공동체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력을 함께 통합시켰다. 초기 무슬림들은 종교와 국가, 종교적인 권위나 조직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차이점을 알지 못했다. 사실, 질서에 대한 엄격한 신정주의적인 구상은 이슬람이 단순히 종교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영적인 통치수단이자 사회적, 정치적 것으로서 신이 위임한 완전한 체계라는 것인데, 이러한 구상은 모하메드의 언행을 통합한 것이었다.
아부 바크르의 칼리프직은 2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634년에 그가 죽기 전에 그는 개인적으로 우마르('Umar)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644년에 암살당한 우마르는 자신의 후계자의 선출을 위한 새로운 절차를 도입했는데, 그것은 초기 동료 6명의 위원회에서 그들 가운데 새로운 칼리프를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머지 않아, 중요한 메카인 씨족 중의 한 사람인 우트만 브 아판('Uthman b 'Affan)이 선출되어 3대 칼리프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모하메드가 죽자 마자, 메디나에서는 모하메드의 사촌이자 사위(모하메드의 딸 파티마와 결혼)인 알리 브 아비 탈리브('Ali b Abi Talib)가 아부 바크르나 다른 어떤 후보자보다도 예언자의 뒤를 잇기 위해 가장 자질이 있다고 믿는 소수 집단이 나타났다.이 소수집단은 "시아트 알리"(Shi'at 'Ali)로 알려졌고 "시아"(Shi'a)로 다시 단순화되었다. 알리의 후계자 승계는 메디나에 있던 그의 일당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곧 시아파는 교리를 만들었으며 그들의 교리는 보다 폭넓은 인식을 받아들였다.
시아파는 모하메드가 사실은 후계자를 지명했으며 그 사람은 바로 알리라고 믿었다. (그들은 후계자를 영적인 지도자로 부르기를 좋아하여 "이맘"(imam)이라고 하였다.) 알리와 그의 동료들은 선거제를 통하여 예언자의 후계자를 선출하는 행위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이것이 무슬림 다수파로부터 시아파를 분리시키게 된 바로 그러한 반란이었다.
정당한 질서에 대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4명의 칼리프들 (알 쿨라파 알 라시둔(al-khulafa' al-rashidun) 또는 "정통 칼리프"로 알려짐) 은 코란에 담긴 계시의 내용대로 이슬람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모든 포괄적인 규율의 정통 보존자로 여겨졌다. (수니파 이슬람으로 알려진 것은 이러한 정통파였다.)
시아파의 교리에 따르면 이맘들(알리와 그의 직계 후손들)은 종교적인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근거였으며, 가장 중요한 논점은 이슬람의 교리와 종교적 주장의 해석에 관계된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코란의 가르침과 이슬람의 성스러운 율법 ("샤리아", Shari'a)이 인간을 뛰어넘는 곳에서 나온 것이며 따라서 인간 이성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슬람 계시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맘이라고 하는 종교적인 권위자가 필요하다고 시아파들은 인식했다.
알리는 마침내 4대 칼리프로 계승했지만, 시아파는 그가 첫번째 진짜 칼리프라고 믿고 있으며 11명의 다른 칼리프들이 뒤를 이었다. 시아파의 눈에, 알리의 후계자로서의 독특한 자질은, 모하메드의 유언을 통해 표현된 대로 신의 명령에 의해 임명되었다고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차원을 갖는 것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알리는 또한 신적인 영감을 갖고 있으며 오류와 죄가 무결하고, 따라서 그의 지식에서나 예언자의 뒤를 이은 가르치는 권위자로서나 그는 완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의 믿음 때문에, 시아파는 ""12인""(twelvers, 이맘의 수에 근거하고 있다)이라고 알려졌다. 12번째 이맘이 878년에 신비하게 사라지자, 이맘직은 끝이 나고 "울레마"(ulema)라고 하는 시아파 종교학자들의 집단조직이 그의 직위를 대신했고 그가 다시 '정당하게 지명된 자(rightly guided one)'로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아야톨라"(Ayatollahs, 신의 표적)는 자신들을 역사 끝에 오게 될 이맘의 지위를 공동 관리하는 자로서 인식한다.
하지만, 후계자 계승이 모든 시아파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었고 또 다른 집단이 떨어져 나와 ""7인"(seveners)"이라고도 하는 "이스마엘파"(Ismaelis)가 되었다. 이유는 정당한 7대 이맘 (그래서 마지막 이맘)은 무사 알 카짐(Musa al Kazim)이 아니라 어릴 때 죽은 그의 형 이스마일이라는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열"의 결과로 대체로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겠다. 정통 수니파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코란이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며 더이상의 계시는 없다고 믿는다. 시아파 이슬람은 정당한 이맘은 코란의 메시지를 추가할 수 있는 신적인 영감과 알라의 권위를 함께 갖는다고 믿는다. 이처럼 시아파 이슬람은 2개의 주요 분파 중 보다 급진적이고, 여러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차기 "이맘"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특별한 주의로 무슬림들을 재통합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불행히도 이것은 "지하드"(Jihad, 이교도에 대한 성전)로 자주 표출되었다.
이러한 초기 시절에는 더 많은 분열이 무슬림 공동체에서 있었다.
"하리즈파"(Kharijites, 탈퇴자)는 그 당시 무슬림 지도자들이 코란을 엄격히 따르지 않으며 신에게 주요 결정을 맡기지 않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알리 당"에서 축출되었다. 아직도 북 아프리카에서 소수 분파로 남아있는 이 하리지파는, 이슬람은 성인들의 공동체이어야 하며 중대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여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행위보다는 올바른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중대한 죄인에 대한 결정은 심판의 날에 신에게 유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르지파"(Murji'ites, 연기자, 희망하는 자)라고 불리워졌다. 예정운명보다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또 "카다르파"(Qadarites, 결정자)라고 불리워졌다.
"이스마엘파"(Ismaelis)는 자신들의 독특한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10세기에 번성하여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의 파티마 왕조(Fatimid dynasty)를 세우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또한 이슬람의 활동적인 선교사들이었으며 특히 남부 아라비아와 동부 아프리카로 퍼져나갔다. 이스마엘파의 본 조직은 2개의 분파로 나뉘었는데, "무스탈리파"(Musta'lis, 봄베이에 본부가 있다)와 "니자리파"(Nizaris, 아가 칸의 지휘를 받았다)가 그것이다. 다른 지파로는 "누사이리파"(Nusayris)와 "드루즈파"(Druze)가 있다.
드루즈파는 비밀 조직으로서, 금요일 대신 목요일에 모이고, 일부일체제를 엄격히 고수하며 '알리는 신의 화신이다'라는 것과 같은 독특한 신앙과 자신들의 엄격한 경전을 가지고 있다.
"하쉬샤신파"(Hashshashin, 암살자)도 11세기 초기 십자군의 기간 동안 시리아의 이스마엘파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들은 인도대마(hashish)를 사용하여 그 이름을 얻었는데, 십자군의 요새를 탈환하고 기독교인을 암살함으로써 유명해졌다. 오늘날, 그들은 호자스(Khojas) 또는 마울라스(Mawlas)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의 봄베이 지역에 주로 거주하지만, 일부는 시리아나 이란에도 있다.
가장 초기의 수니 학파 중의 하나는 아부 하니파(Abu Hanifah, 767년 사망)가 형성한 것인데, "하나피 제의"(Hanafi rite) 또는 학파로 알려졌다. 그것은 근본주의자들과 비교될 수 있을 정도로 보다 자유로운 학파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이 학파는 중앙아시아, 터키, 비옥한 초생달 지역의 아랍 국가들, 저지대 이집트, 인도의 투르크 민족 사이에서 지배적이다.
말리크 이븐 아나스(Malik ibn Anas, 795년 사망)는 "말라크 제의"(Malakite rite)라고 알려진 또 다른 학파를 창설했다. 이 제의는 예언자 그 자신보다는 모하메드의 동료들의 전통에 의지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근거로 발전되었다. 모순되는 전통이 있게 되면, 말리크와 그의 추종자들은 단순히 그 절충안을 만들어냈다. 이 제의의 지지자들은 북아프리카, 특히 알제리에서 세력이 매우 강하다.
"샤피파"(Shafi'ites)는 알 샤피(Al Shafi'i, 820년 사망)에서 그 이름을 따왔는데, 그는 말리크의 추종자였다. 일생 동안, 그는 이슬람 법학의 발달에 주목할만한 영향을 끼쳤으며, "샤리아"(Shariah, 기본법)의 정의와 "하디트"(Hadith, 모하메드의 발언록)을 권위적인 문서로 만드는 데 역할을 했다. 샤피파의 구성원은 저지대 이집트, 시리아, 인도, 인도네시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신비주의적 사고는 AH(이슬람 기원) 1세기에서부터 이슬람 사상의 흐름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피 교단"(Sufi orders)의 기원은 그 의식만큼이나 신비스럽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아랍인들이 사용하는 좌상인 "수페"(suffe)"라는 단어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모하메드의 가까운 지지자들이 정기적으로 와서 수페에 앉아 그의 설교들 듣고 지혜를 배웠을 때, 그들은 점차로 수피로 불려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피 대부분은 집을 떠나 산이나 사막, 반도로 가서 고독과 알라에게 가까이 가기를 구했다는 것이다. 세상의 육체적 안락을 포기하고 조용한 기도와 명상을 추구하면서,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세속의 삶을 뛰어넘어 알라와 하나 될 수 있는 천상의 영원한 정적에 이르고자 했던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분파는 수프(suf)라는 아랍어 단어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양모를 뜻하며 초기 무슬림 신비주의자들이 입던 길다란 간편의상의 재료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기원에 관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피파는 일반적으로 무슬림 신비주의자로 여겨지고 있지만, 많은 수피파들 자신은 사실 자기들이 정통 이슬람의 참된 근간이라고 주장한다. 수피교의 중심 교리는 "와다트 알 우주드"(wahdat al-wujud, 존재의 단일성)이며, 그들은 상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것과 다른 실체를 갖는 것이 아니며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과 다른 실체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이슬람에서 사람은 코란을 통해서 절대성과 무한성에 접근할 수 있다. 그들은 또한 코란에서 가르치는 것에 추가해서, 영적인 정결을 추구하기 위해 현명하고 경험이 많은 스승이나 안내자로부터 도움을 얻거나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는 믿음을 견지하고 있다. 사랑의 삶과 알라에 대한 순수한 헌신을 요구하면서, 수피파들은 알라에게 다가서는 영적인 과정을 개발해냈다. 이러한 과정은 경건("마카마트", maqamat)의 다양한 단계와 영지주의적인 단계(아왈, ahwal)로 구성되며, 모든 수피들은 그러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경건의 단계라는 개념은, 성인들은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이슬람 성인의 단계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엄격한 정통 이슬람은 종교의식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것을 꺼리지만, 수피 교단은 노래와 타악기 등 다른 악기 등을 이용하여 다양한 예배 방법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의식들은 곧잘 어떤 형태의 춤이 포함되기도 하는데, 서구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터키 메블레비 교단(Mevlevi order)의 "탁발승의 회전 무용(whirling dervishes)"이라는 춤이다.
오늘날 이슬람 전역에 많은 수피 교단이 있으며, 학파의 선생이나 그 위치에서 이름을 따오기도 한다. 예컨대, 당신은 카라즈의 오베이씨 학파의 시아 수피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분명한 정의된 분파와 그들과 같은 다른 분파 외에도, 이슬람에 포섭되는 아주 다양한 집단들이 많다. 어떤 경우에는, 이슬람과 비 이슬람 요소가 결합하여 종교혼합적인 집단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인도의 시크교가 있으며 그것은
이슬람과 힌두의 신앙 및 의식을 결합하고 있다.
답변참고 >> http://kcm.co.kr/Bethany/a_code/islam.html#The%20First%20Major%20Cri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