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영혼 세상 울림 _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송광택
독서운동의 대부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서서히 가을이 묻어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문화관광부가 올해 초 발표한 ‘2004 국민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서율, 다시 말해 1년 동안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은 전체 국민의 76.3%다. 한 해 동안 세 권 넘게 읽은 다독자 비율은 14.5%, 열 권 이상은 1.1%에 불과했다. 독서의 계절이라고 특별히 독서율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던 안중근 의사가 보시면 통탄할 일이다. 독서를 장려하기 위한 운동이라도 벌여야 될 판이다. ‘독서운동’이라…. 생소한 단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미 10년이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독서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송광택 목사가 바로 그다.
예수님을 만나다
송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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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2월 어느 주일 아침, 담임목사인 안길옹 목사가 누가복음 19장을 본문으로 <지나가시는 예수님>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말씀의 요지는 2천 년 전에 여리고를 지나가시던 예수님께서 오늘, 이 아침에도 우리 앞을 지나가신다는 것이요, 우리 각 사람이 그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설교 후에 회중은 조용히 묵상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정직한 기도의 첫 마디를 생각해 내려고 끙끙거렸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마지막 순간에 떠오른 한마디가 있었어요.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이 그것이었습니다. 이제 막 ‘만일’이라고 기도 첫마디를 입 밖으로 내놓으려는 순간, 내 망가지고 상처난 영혼 깊은 곳을 향해 큰 꾸지람의 소리가 임했어요.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이 무엇이냐!’”
송 목사는 그 순간 부끄러운 내면, 가장 약한 부분이 그대로 노출되고 지적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엄중한 책망의 말씀은 차갑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이제까지 접해본 적이 없는 ‘거룩한 무게’를 지닌 사랑의 음성이었다.
“그 책망의 말씀이 내 영혼에 임하는 순간, 내 안에서 그 무엇인가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거의 동시에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
같은 해 송 목사는 세례를 받았다. 진지하게 성경을 공부했다.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의 월요성경공부나 산기도를 따라다니면서, 신앙 선배들의 영성을 배우기도 했다. 1973년에는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바람을 실천하기 위해 총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
문학에 빠져들다
“신앙생활 초기에는 문학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푼돈을 모아 사두었던 문학 월간지들이 적지 않았고, 창작에 대한 미련이 없지 않았으나, 삶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기독교 세계관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온 ‘균형을 잃은’ 태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는 1982년에 쓴 <새벽>이라는 시를 통해 문단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신앙계> 독자란에 소개된 그의 시를 보고 이성교 시인이 큰 찬사를 보냈다. 그 후 <월간 창조문예>에 응모하여 신인상을 받았다. 당선 소감에서 송 목사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시는 내게 무엇인가, 자문해 봅니다. 문학소년 시절에 시작한 습작을 아직도 계속하는 심정으로 글을 쓰곤 합니다. 그 동안 써온 몇 편의 시들은 싫든 좋은 나의 분신입니다. 표현은 어눌하고, 세상 바라보는 눈도 어설플 뿐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스치는 생각과 느낌을 붙잡아, 세상살이의 안팎을 살펴보거나, 소소한 일상의 파편들을 다듬어 보려고 했습니다. 훌륭한 문인들의 꿈이 그러하듯이, 저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독서운동을 시작하다
80년대 말, 신학교에서 여학생을 중심으로 한 독서모임 <글사랑>을 조직했다. 모임을 통해 독서의 신앙적 의미를 조금씩 인식하게 됐고, 그 시절 가진 글사랑의 경험이 독서운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오랜 준비 끝에 1993년 10월, 조만제 (<책 읽는 젊은이에게 미래가 있다>의 저자·경희대학교 명예교수) 교수를 명예회장으로 ‘사랑의나라 독서운동본부’를 개설했다. 이를 통해 ‘제1회 독서운동 세미나’를 열고, 11월에는 독서운동본부의 명칭을 ‘독서문화센터’로 개칭했다.
1994년에는 ‘독서지도자 교육 과정’을 개설, 많은 교육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극동방송 후원으로 아현감리교회에서 ‘독서능력 개발 세미나’를 개최했고, 8월에는 ‘제1회 독서 수련회’를 열었다. 이듬해 6월에는 ‘목회자 독서 세미나’를 통해 교회 지도자들을 통한 독서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독서문화센터는 2000년 9월 지금의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로 개칭하고 조직을 정비했다. 송 목사는 교회에서 뿐만아니라 삶의 터전인 일산 주민들을 위한 독서운동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화정문화센터 어머니 독서 교실’지도강사로 수년동안 자원봉사했고, 2000년에는 안양 청소년 수련관에서 ‘독서 지도 공개 강좌 및 독서 교실 지도’를 했다. 2001년에는 기독교신학대학원에서 ‘경건 훈련을 위한 독서 전략’을 강의했다. 올해초까지 극동방송에서 ‘신앙서적 길라잡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약했으며, 현재 여러 월간지와 웹진(Webzine)에 서평(북리뷰)을 쓰고 있다.
교회가 독서운동에 앞장서야 할 때다
송 목사는 1995년 임마누엘선교미디어의 협조로 <독서가족만들기 31일>을 펴냈다. 이 책은 2002년, <좋은 독서가족 길라잡이(비전북출판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증보개정판인 이 책에는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와 기술, 독서 일기 쓰는 법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독서 명언과 추천도서, 독서지도자 아카데미 과정에 관한 자세한 설명도 함께 실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입니다. 이제 선교 2세기의 한국교회는 문화적 측면에서도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그 구체적 전략을 세우고 실현해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악인이나 미술가가 그 재능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정신적 풍요와 복지)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처럼, 좋은 글을 쓰고 읽는 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송 목사는 믿는다. 그래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을 집으로 초대해 자작시로 시화전을 열고 다과를 함께 하기도 한다.
송 목사는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특히 크리스천의 독서습관에 대해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교회의 독서운동을 거창하게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도 그의 당부다. 교회가 독서 계획을 제시하고, 주보나 홈페이지를 통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신간을 소개하고, 교회 형편에 따라 교회 도서관을 운영하고 교회 안에 크고 작은 독서모임을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교회가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평신도들만 양산한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은 어둡습니다. 이제는 책을 가까이 하는 성도로 키워야만 합니다. 만능 목사가 교회를 인도하던 시대는 지났어요. 평신도의 은사를 개발하고, 독서 운동을 통해 미래를 책임질 일꾼들을 키워야 합니다.”
송 목사는 앞으로도 한국교회를 섬기기 위한 지속적인 독서운동을 계속할 것이다. 또 책을 사랑하는 이웃을 위한 독서 모임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가 예수를 만난 후 복음을 전하리라 꿈꾸었던 일들이 독서운동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독서는 건강한 믿음을 세우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전략입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그러한데, 그것은 이미 개인적인 경험과 교회사를 통해 검증됐습니다.”
목사 송광택, 이웃집 아저씨 송광택을 통해 많은 이들이 어렴풋한 그분을 점점 더 확실하게 만난다. 그를 통해 독서운동은, 사랑과 복음의 통로가 된다.
[주간 기독교]의 옛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