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를 처음 제 손에 잡아 본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사진관에서 사진기를 빌어 친구들과 학교 뒤 주교관에서, 영남대학교 교정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 대여했던 사진기는 라이카, 올림퍼스 정도로 기억됩니다. 가끔 사진첩에서 흑백의 빛바랜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최초로 제 사진기를 가져본 것이 금성사에서 사진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만들었던 오토보이3였습니다. 이후 제 사진기는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만 주로 소니였습니다. 몇 년 전 자유로운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사진 찍기를 선택하면서 하이엔드, 미러리스급인 올림퍼스 E-P5와 니콘 쿨픽스 P900S, 2대를 사서 아직도 애용 중입니다. 두 대 사는데 옵션 포함해서 150만 원 정도 들었으니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참 돈 적게 들이고 취미 생활을 하는 편입니다. 저는 작품사진이 아닌 기록사진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기에 이도 넘친다 생각합니다. 그냥, 사진 관련 책 몇 권 읽고, 간혹 사진작가인 누나와 후배의 가르침을 들으며 시작한 사진 찍기는 이제 절대 떼어낼 수 없는 제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작품을 찍는 것이 아니니 찍은 사진 잘못 나왔다고, 건질 게 없다고 짜증낼 일도 없습니다. 사진 열심히 찍기를 시작한 이후 예전보다 문화재가, 자연이, 사람이 더 살갑게 제게 다가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단체 활동에서는 누가 해 달라 한 것도 아닌데 열심히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고마움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즐거운 일입니다. 행복한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제게 작가라 하시는데, 과분한 말씀은 부담이 되어 손사래를 칩니다. 오토가 아닌 매뉴얼로 사진기 조도와 조리개 개폐정도, 셔터속도를 잡아낼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저는 아직 그 반열에는 들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냥, 어느 작가의 말처럼 ‘따발총 쏘듯’ 찍은 사진 들 중 지인들의 마음에 드는 게 많았으면 하는 바람만이 클 따름입니다. 타인을 찍다 보니 정작 제 사진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폰으로 저를 스냅으로 찍어 보내주시기도 하고, 제 사진기를 뺏어 찍어주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그런 일에 태무심한 분들도 많습니다. 어떤 일정에서는 제 사진이 한 장도 남지 않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은 핸펀으로 셀카를 찍기도 합니다. 셀카 잘 찍는 법도 따로 있는 듯합니다. 찍고 나면 배경이 맘에 들지 않거나, 자신의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셀카 잘 찍는 법은 따로 배워야겠습니다. 연구해야겠습니다. 요즘은 제가 사진 취미 전도사가 되어 친구들에게, 지인들에게 취미 삼으라고 강권(?)하기도 합니다. 작품 사진 찍을 것 아니면 비싼 카메라 필요 없고, 사진기 하나 장만하면 부가적으로 돈 들 일도 없고, 주변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한 번 나갈 일 두 번, 세 번 나가게 되니 나이 들어가면서 소일거리로는 이만한 게 없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적지 않은 벗들이 제 권유에 귀를 기울입니다. 다양한 얘깃거리에 사진 찍기까지 추가되면 대화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니 이 또한 좋은 일입니다. 앞으론 사진 찍을 일도 많겠지만 찍힐 일도 적지 않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요즘 함께 나들이 나가서 사진 찍는 데 열중하시는 어머니를 뵈면 제게 엔도르핀이 넘칩니다. 그래서 더욱 즐겁습니다. 행복합니다.
10월의 마지막날과 11월의 첫날을 포항, 청도, 대구로 돌아다녔습니다. 900여장의 사진이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아직 가을 나들이를 망설이시는 분들, 짝은 일자까지 표하였으니 참고로 하시고, 혹 나갈 시간이 안 되시면 그냥 눈요기라도 하시라고...
포항 북부해수욕장, 오어사의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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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산자연휴양림에도 가을이 곱게 내려앉았습니다. 화려하기보다는 은근한 맛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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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에서는 처음으로 비구니의 행렬, 승가대학 내 400살 먹은 은행나무를 친견했습니다. 솔숲에서 일제 수탈의 잔재를 재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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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구수목원에서 국향에 잔뜩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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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면 멋진 곳이 더 많겠지만 구미, 제 집에서 10분 거리 내에도 충분히 가을의 정취를 느낄 곳이 많이 있습니다.
10월 29일엔 송정동 은행나무의 진노랑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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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체육공원엔 억새, 갈대, 달뿌리풀이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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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연수원과 금오산대주차장의 단풍도 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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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물음(모셔온 글)===================
숟가락이 내게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밥을 떠먹여준 적이 있느냐고.
손이 내게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의 아픈 이마를 짚어준 적이 있느냐고.
세상 만물은 우리에게 늘 무언가를 묻고 있다. 책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세상을 향해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느냐고.
하늘이 내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때 하늘을 올려다보느냐고.
숟가락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밥을 떠먹여준 적이 있느냐고.
신발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발이 아프도록 간절히 어딘가에 닿기를 바란 적이 있느냐고.
밥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이 바 한 그릇을 위해 얼마나 신성한 노력을 바치느냐고.
그리고 세상 만물은 때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대답을 들려준다.
책이 우리에게 대답한다.
당신이 자주 책에 몰입해 한 끼의 식사를 건너뛰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 순간을 당신이 무척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늘이 우리에게 대답한다.
답답할 때 타인을 비난하는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는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숟가락이 우리에게 대답한다.
때때로 누군가의 밥을 걱정하는 당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손이 우리에게 대답한다.
당신이 가끔 아픈 이의 이마를 짚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리고 때때로 쓰러진 사람의 손을 잡아 일으켜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김미라의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