寶城 文化遺産總攬을 보는 기쁨
과제: 산맥을 따라 고적, 풍광, 전설, 산업, 교통 등을 체워 기록 한다.고향 자랑 이용현
아득한 옛날에 아시아 민족의 한 지루가 이주하여 중부 강남에서 살면서 韓族이 되었고 후에 부여족이 남하하여 본군의 원주민이 되었다.
그 후 시속(時俗)의 변천과 전란(戰亂)으로 이방민속(異邦族屬)이 혼입(混入)하였으나 원주민에 동화(同化)되어 단일민족(單一民族)을 이루고 있다.
주몽이란 인기 드라마를 시청하며 연타발의 딸 소서노(召西奴) 와 해부루(海夫婁)의 서손 우태(優台)사이의 두 아들 비루와 온조 탁월한 리더십, 민족단결, 치밀한 전략으로 고구려 건국의 주역, 백제의 건국, 대륙을 꿈꾸는 조선 최고의 여걸의 후손임을 자랑으로 기쁨과 자부심을 감추지 못하였다.
내 고향은 전라남도의 남부 동경 127도 북위 34도 46분에 위치하며 광주무등산(瑞石山)으로부터 내려온 노령산맥 북으로부터 서남동으로 뻗고 문덕에 天鳳山(천봉산; 中峰山)을 밀어놓고 복내 방동산(方洞山)과 노동의 예재를 거쳐 벽옥산(碧玉山)을 밀어세우고 화순 화학산(華鶴山)에 우뚝 솟아 일지맥(一支脈)을 뻗어 월출산맥(月出山脈)을 짓도록 달려 보내고 主脈은 장흥 유치면과 장평면사이의 가지산(迦知山)을 짓고 피재를 거처 룡두산(龍頭山)을 일어 세우고 다시 감나무재(시목정 柿木頂)를 거처 웅치면의 제암산(帝岩山)을 장엄하게 솟아 세웠으니 군내 산중 제일 높은 해발 778m로 보성군의 주산이라고 할 것이다. 이 산은 흡사 帝 字모양의 삼층 석이 큰 바위 위에 단좌(端坐) 직고가 100여척이요 산마루턱에 둥글고 평원(平圓)해서 가히 100여명이 앉을 수 있고 사면에 옹기종기 서있는 여러 바위들이 제왕 앞에서 공수(拱手)하고 국궁(鞠躬)하여 侍立하고 있는 것처럼 바라다 보인다.
벌교에서 제석산(帝釋山)이 제왕의 역할을 하듯이 이 제암산이 보성군내에 있는 산중의 왕적 존재라 하여 帝岩山이라 이름 하였다한다.
여기에서 다시 분기(分枝)하여 남으로 장흥의 천관산(天冠山)을 짓고 회천면의 日林山을 세웠으며 간맥(幹脉)은 제암산(帝岩山)에서 보성 웅치사이의 활성산(活城山)을 만들고 장원봉(壯元峰)과 관주산(貫珠山)으로 하여 보성읍에 감돌아 해발 325m 고지(高地)를 이루었으며 주맥(主脉)은 봇재(량치 樑峙) 온 산야에 녹차(綠茶)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고장의 자랑인 보성다원을 거처 봉화산(烽火山:正興山)을 세우고 기러기재(안치 雁峙)에서 한 가닥을 빼내어 명승고적으로 유명한 득량의 오봉산(五峰山)이다.
원호대사는 신라시대에 해동종을 개종한 명승으로 속성은 설씨요 신라시대의 명현인 설총(薛聰)의 부친이며 진평왕 39년 상주불지촌에서 출생하였다.
불도의 이치를 수도코자 명산승지를 찾아다니다가 이곳 오봉산중록에 머물러 49일간의 기도를 드렸다는 암자의 고지(古趾)와 석정(石井)이 있으며 방(房)바위 위에는 쌀을 두었다는 흔적과 우수가 잦으면 뜨물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이곳을 남기고 대룡산(大龍山)에 솟아오른다. 남해가 내려다보이는 강물봉은 통정대부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호군 벼슬을 하신 나에 高祖父 산소가 모셔진 곳이다. 다시 오두재(烏頭峙)에서 과협하고 방장산(方丈山)에서 지맥(支脉)을 내려 주월산(舟越山)을 거처 고흥 팔경산(八景山)으로 줄 다름질 하고 간맥은 초암산(草岩山 金華山)을 밀어세우고 다시 율어면 고도 703m 존제산(尊帝山)을 지은다움 지맥을 빼내어 문덕면 용암리(龍岩里)의 650m고지의 망일봉(望日峰)을 짓고 벌교추동(筏橋楸洞)의 석거리 재에서 내려가서 백이산(白夷山)과 제석산(帝釋山)의 양대 산을 이루고 승주 조계산과 광양백운산으로 향하여 마치 U자형의 일종성곽(一種城廓)을 이루고 있어 풍광의 아름다움은 글과 말로 형언 할 수 없으며 산악의 중마기복(重巒起伏)한 본군은 평야가 적으나 일부해안을 끼고 있어 간척사업(干拓事業)을 이룩한 예당(禮堂), 벌교(筏橋) 간척 평야는 호남의 보고로서 기후가 온화하여 그 가치를 자랑하고 있다.
文廟의 사회적 영향은 학식의 보급 보다는 덕풍의 교화에 더 큰 비중을 둔 것인 만큼 사람이 지켜야 할 도의를 바로잡고 書院은 스승을 높이고 선현(先賢)을 흠모(欽慕)하는 기풍을 진작 하기위하여 실천하는 현장교육장으로 하마비 앞을 지날 때에 누구든지 차마(車馬)와 교여(轎輿: 교자 와 가마)로부터 내려야했다. 홍살문(홍전문:紅箭門)은 동윤동(東倫洞) 도로변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로 1672년에 건립 1973년에 보성읍 지정문화재(指定文化財)로 선정 되었고 거북이 도사리는 좌대에 높이 300cm 너비 80cm의 육중한 교룡의 머리의 석비이다.
소서노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고, 문묘(文廟)와 서원(書院)의 영향으로 교육열이 높고, 충의(忠義), 효행(孝行), 선행(善行),열부(烈婦),현부(賢婦)와 많은 인제를 배출하였으며, 명승지와 고분이 많고, 문화, 서화, 예절이 바른 내 고향이다.
보성다향신문에 순수 우리말 땅이름, 마을전통, 보성지명의 유래가 연제되고, 보성문화유산 총람을 편찬하는 등 향토생활의 문제를 발견 본받고 더욱 발전 향토애의 감정이 싹터서 민족의식과 민족감정을 조성하고 군민이 하나로 뭉쳐 향토교육에 큰 지침이 되리라 싶어 40년 이세 교육에 생을 보낸 나로서는 기쁨이 넘쳐 감사드리며 내 고향 보성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