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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의 25시 - 1
술은 회현동에서 배웠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린 누나를 잡으려고 조갈 병 든 놈 물마시듯이 들이켰다. 술잔에는 뜬금없이 상경한 동생 건사하느라 화장한번 하지 못한 맨 얼굴이 어른거렸다. 어서 망각의 ‘레테’강을 건너기전 골드크림이라도 하나 건네고 싶었다.
술 내공이 쌓여서 두꺼비 두 마리 잡고 일을 해도 옆에서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술친구들은 모두가 통행에 걸려도 찾아올 사람 없는 거리의 자식들이었다
수입이 지출을 따라가지 못한 생활의 연속, 이건걸 ‘임시 지급 인생’이라고 하더라. 다방 찻값까지 외상으로 긋고 형님들 담배를 꺼내 도둑 담배를 피우며 반세기 나를 태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술은 마셔도 돈만 나가지 취하지 않아서 처음부터 소+막을 마구 섞어서 들이켰다. 무작정 상경한 나 때문에 화장품 하나 없이 살던 누나가 불의의 사고로 하늘나라로 가신 후의 일들이다.
어머님께서 누나를 망우동 어딘가에 묻고 나를 찾아와서야 알았다. “네가 알아서 좋을 것 뭐 있느냐. 산사람은 살아야지.” 누나 장례 치르고 나에게 사실을 알린 후 바로 내려가셨다. 타관에 있는 막내 놈이 마음 상할까 봐 내 앞에서는 눈물 한방을 보이지 않으시고 내려가신 것이다. 어머니는 차멀미가 너무 심해서 십리도 차를 안타셨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뉴스에 나오는 사고들이 남의 일인 줄 알았더니.
우리 누나가? 내 누나가 사고사를 했단 말이지.
마음이 안정이 안 돼서 걷잡을 수 없도록 무너졌다.
기술 하나 배우자던 촌놈이 바로 위 누나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옆으로 빠진 것이다.
술, 담배 배우며 옆으로 빠지고 보니. 회현동은 놀기가 아주 좋은 곳이었다. 매일 거닐던 길이며. 늘 만나던 사람들이건만 마음 하나 바뀌니 이렇게 달라지다니. 이거야 원. 예전엔 왜 몰랐지.
/ 건너, 신세계, 뒷골목에 '듀뽕'다방은 큰 형님 나와 바리 ‘나가시 차’(자가용 택시)
/ 건, 북적거리는 남대문 시장 99원짜리 맛있는 식사 들/ 희귀한 밀수품들
/ 건너, 두 가지씩 보여주던 경남 극장
/ 우측, 충무로 신 나는 ‘닐바나 라이트’
/ 건너, 김기수 참피온 다방,
/ 좌측, 밤이면 피어나는 상처 입은 장미들의 거처. 정신 하나 없는 양동.
/ 건너.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이별의 서울역.
/ 뒤, 뉴 남산 관광호텔/ 경동 호텔(추후 병원 지금은?)
/ 그리고 우리들의 쉼터 남산
/ 이 중앙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와! 내가 살던 곳이 이렇게 물 좋은 곳인 줄 예전엔 미쳐 몰았다니.
내가, 누나 사고사(死)하시고 이제야 개안(犬眼)을 한 거다.
어머님께서 내려가신 후 가슴에 맺힌 감정을 풀길이 없어 누가 제발 나하고 같이 가자고 술을 들이켰을 때 였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이제 막 동면하고 나온 곰처럼 게걸스럽게 설치고 다녔다. 딱새, 찍새들과 어울렸고 밀수하는 형도 가까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형님 세계라는 그 바닥에 한 발을 들어가 있었다.
형님만 잘 모시면 좋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뉴남산 호텔 라이트 무상출입, 충무로 '닐바나 나이트, 그리고 경남 극장, 멀리 동대문 극장까지 기도 주임 형님이 생겼다
낮에는 다방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이 많아서 하루에 차를 5~8잔씩 마셨다.
이렇게 커피를 무슨 숭늉 마시듯 했으니 자연 찻값도 만만치 않게 나갔다.
여기서, 다방 찻값을 외상으로 홀짝인 배경 좀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그때 전매청 정책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내 돈 내고도 청자 담배를 구하기 어려울 때였다.
청자 담배 한 갑 주머니에 들어 있으면 뿌듯하고. 어디서 건 “나 이런 사람이야.” 잘 보이는 탁자 앞에 청자 담배를 턱 내놓고 한쪽 다리 꼬고 은근히 무게를 잡았다.
새로운 담배도 안 나오고 전매청 정책이 그대로 계속 이어졌더라면 청자 담배 넣은 원 쪽 가슴 내밀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지금 이순(耳順)이 쪽 저쪽 된 서울 사는 남자 중에는 담배가 든 왼쪽 가슴을 내밀고 걷는 이상한 모양의 집단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다방을 고자 처갓집 들랑거리듯이 하였더니 청자 담배를 다른 손님 몰래 갖다 주던 "미스 안"이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꼭 ‘안 인숙’이라는 여배우를 닮았는데 눈빛이 샛별처럼 반짝거린 야무진 아가씨였다. 자주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오빠 동생하고 지냈다.
“남산에 올라갈 때는 오빠 동생 하더니~숲 속에서 나올 때는 여보 당신 하더라.” 뭐 요런 노래가 유행할 때인데 남산은 둘이서 자주 올라갔지만 여보 당신은 못 해보고 그저 손목만 잡고 다닌 그야말로 타지에서 만난 오빠 동생인 것처럼 바르게(?) 행동했다. 이 아가씨는 대부도가 고향인데 어머님은 돌아가시고 새엄마와 아버지가 또 다른 동생들과 함께 산다고 했다.
고향에 다녀오면 바지락, 이름 모를 조개, 등 갯것을 한 소쿠리씩 가져와서 그날은 종일 酒 님을 모시는 날이다. 다방 아가씨와 오빠 동생 하였더니 자연 주방장하고도 친구가 되었다. 다방 주방장과 친구가 되니 좋은 점이 많았다. 한밤중에 소주 사 들고 들어가서 주방에 있는 쌍화차 만들려고 준비해둔 달걀을 술안주로 먹어서 좋고. 홍차를 시키면 알아서 비싼 위스키를 듬뿍 넣어 주었다. 이거야 개 꼬리가 개를 흔든 격이다.
어느 날 주방장 친구하고 남산에 올라가서 놀다가 장충단 공원으로 하산했다. 그때 장충단 공원에는 들병장수 아줌마들과 카세트를 가지고 장사하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웃을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카세트 가지고 있는 집이 별로 없을 때였다.
몇 푼돈을 내고 둘이서 카세트에 노래를 부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계를 통하여 금방 부른 자기 노래를 듣는 것이다. 그 맛이란 가수가 된 것처럼 속된말로 아주 죽였다. 내 노래가 내 목소리가, 저 비싼 기계를 통해서 가수처럼 나오다니, 와! 신통방통~
그 순간은 자기도 가수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아저씨 딱 한 번만 더 들려줘 잉” 하고 징그럽게 시리 도리질을 하며 사정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 카세트 아저씨가 “둘 다 목소리가 좋다. 가수 소질이 있다.” 이런 논평을 날린 것이 사단이었다. 순전히 장삿속으로, 하루에도 많은 사람에게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에 주방장 친구는 뱀 앞에 최면 걸린 개구리가 돼 버렸다.
최면 걸린 개구리를 어찌어찌 끌고 내려왔는데 ‘시구 문’ 밖에서 이 친구 발걸음이 딱 멈추어 버렸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요지부동 이어서 이 친구 눈빛을 따라 건너다보니. 헉! 거기 큼지막한 간판이.“배상태 작곡 사무실” 오! 맙소사 꼬인다. 꼬여.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 있나.
늑대를 피했더니 앞에 호랑이가 기다린다더니. 이런 우연도 있을 수가 있나? 장충단 공원에서 금방 둘이서 불렀던 노래도 배호 노래였고 내려오다가 우연히 마주친 건물 윗층 작곡가 사무실도 배후를 길렀다는 저 유명한 배상태 작곡 사무실이 아닌가.
나의 이 우연을 불안한 눈으로 보고 구름 속에서 헤매는 친구 놈을 끓어 내리려고 애썼고, 금방 가수가 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친구 녀석 눈에는 ‘오호라! 이것은 곧 하늘의 계시오, 자기는 어쩔 수 없이 가수로 가야 할 필연이로다.’ 친구 머리에 대못을 꽝꽝 박아버렸다.
장충단 공원 카세트 아저씨 말에 절반쯤 맛이 간 이 주방장 친구는 양귀비 태우는 냄새를 맡은 아편 중독자 모양 그 건물로 뒤도 안돌아 보고 가버렸다. 이 친구 귀에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오로지 가수! 나가수!
젊은 놈 하나 맛 가는데 요렇게 몇 가지 우이면 충분했다. 평안 감사도 저 싫다면 그만이고 나 또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한동안 연락 없이 지냈다. 연락 없이 지낸 것이 아니고 제 놈이 직장도 그만두고 사라져 버렸다. 고향에서 동생이 자기 형을 찾아서 내게 올 정도였으니 이 녀석 성긴 마 잠방이 사이로 방귀 사라지듯 증발해 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뭔가 망설이더니 ‘가수’증’을 내 앞에 쓱 내밀었다.
이 친구 기어이 가수가 되기는 했나보다. 하나 그때 가수 증 하나 있으면 만사가 오케이?
조석 간 곳이 없는 삼류 가수가 밤하늘에 별인데 말이다.
가수 배호야 인물 노래가 되니까 인기가 있지. 노래 그렇고 그런 또 다른 배 모 씨는 집안이나 잘 살아서 어머니가 여기저기 007 가방이라도 돌려서 라디오에 노래가 그런대로 나온 것으로 아는데. 내 친구는 뭐로 가수 하나? 지나 내나 노래 인물 그렇고 그런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닌가. 친구 집도 어렵게 사는 것은 익히 아는 처지라서 선뜻 축하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축하받으려고 내민 가수 증에 내가 멍하니 쳐다만 보았더니 제 놈도 쑥스러운지 슬그머니 주머니에 담는다. 그리고 다시 사라져 버렸다.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 동생이 찾아왔다. “형이 가수가 되어서 라디오에도 나오고 돈도 금방 잘 벌 수 있다고 어머님을 하도 졸라서 조금 있는 강원도 밭을 팔아주었어요. 그런데...,” 그 후로 어머님은 언제나 형이 라디오에 나오나 자나 깨나 라디오만 안고 사신단다. 당신이 잠이 들었을 때 아들 노래가 지나갈까 봐 잠도 편히 못 주무신단다.
노래를 하늘나라 옥황상제 전에서 부르시나 아니면 염라대왕 전에서 부르시나 가수 친구 소식은 라디오에서도 티브이에서도 3차로 간 삼류가수가 등장하는 그 어느 곳에서도, 강원도 산 다방 주방장 출신 가수. 장충단 공원 카세트에 노래하던 친구는 보지 못했다. 지금은 어디서 노래 부르는가?
“장충단 공원 카세트 아저씨 내 친구 돌려주사이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뉴스에 나오는 사고들이 남의 일인 줄 알았더니. 우리 누나가? 내 누나가 사고사 하셨다고? 도저히 마음이 안정이 안 돼서 걷잡을 수 없도록 무너졌다. 기술만 배우자던 두메촌놈이 바로 위 누나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옆으로 빠진 것이다. 술, 담배를 배우며 옆으로 빠지고 보니. 그 시절 회현동은 놀기가 아주 좋은 곳이었다. 매일 거닐던 길이며. 늘 만나던 사람들이건만 마음 하나 바뀌니 이렇게 달라지다니. 이거야 원 예전엔 왜 몰랐지? 사방이 별천지다.
/ 건너, 신세계, 뒷골목에 '듀뽕'다방은 큰 형님 나와 바리 (나가시 차:자가용 택시)
/ 건너, 북적거리는 남대문 시장 99원짜리 맛있는 식사 들/ 희귀한 밀수품들
/ 건너, 두 가지씩 보여주던 경남 극장,
/ 우측, 충무로 신나는 ‘닐바나 라이트’
/ 건너, 김기수 다방,
/ 좌측, 밤이면 피어나는 상처 입은 장미들의 거처. 정신 하나 없는 양동.
/ 건너. 가는 사람 오는 사람 이별의 서울역.
/ 뒤, 뉴 남산 관광호텔 / 경동 호텔(지금은 병원
/ 그리고 우리들의 쉼터 남산 이 중앙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와! 내가 살던 곳이 이렇게 물 좋은 곳인 줄 예전엔 미쳐 몰았다니.
내가 누나 사고사하고 이제야 개안을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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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께서 그렇게 내려가신 후 가슴에 맺힌 감정을 풀길이 없어 누가 제발 나 좀 때려주었으면 했을 때였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이제 막 동면하고 나온 곰처럼 게걸스럽게 설치고 다녔다. 딱새, 찍새들과 어울렸고 밀수하는 사람과도 가까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형님 세계라는 그 바닥에 한 발을 들이민다. 형님만 잘 모시면 좋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뉴 남산 호텔 라이트 무상출입 충무로 닐바나 사이트 그리고 경남 극장, 멀리 동대문 극장까지 기도 주임이 형님이셨다.
낮에는 다방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이 많아서 하루에 차를 5~8잔씩 마셨다.
이렇게 커피를 무슨 숭늉 마시듯 했으니 자연 찻값도 만만치 않게 나갔
여기서, 다방 찻값을 외상으로 홀짝인 배경 좀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그때 전매청 정책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내 돈 내고도 청자 담배를 구하기 어려울 때였다. 청자 담배 한 갑 주머니에 들어 있으면 뿌듯하고. 어디서 건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양 잘 보이는 탁자 앞에 청자 담배를 턱 내놓고 한쪽 다리 꼬고 은근히 무게를 잡았다.
새 담배가 안 나오고 전매청 정책이 그대로 계속 이어졌더라면 청자 담배 넣은 원 쪽 가슴 내밀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지금 이순(耳順)이 쪽 저쪽 된 서울 사는 남자 중에는 담배가 든 왼쪽 가슴을 내밀고 걷는 이상한 모양의 집단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자주 세숫대야 디밀던 다방에 청자 담배를 다른 손님 몰래 갖다 주던 "미스 안"이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꼭 안 인숙이라는 여배우를 닮은 눈빛이 샛별처럼 반짝거린 야무진 아가씨였다. 자주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오빠 동생하고 지냈다
'남산에 올라갈 때는 오빠 동생 하더니~숲 속에서 나올 때는 여보 당신 하더라.'
뭐 요런 노래가 유행할 때인데 남산은 둘이서 자주 올라갔지만 여보 당신은 안 해보고 그저 손목만 잡고 다닌 그야말로 타지에서 만난 오빠 동생인 것처럼 바르게(?) 행동했다. 이 아가씨는 대부도가 고향인데 어머님은 돌아가시고 새엄마와 아버지가 또 다른 동생들과 함께 산다고 했다.
한 번씩 고향에 다녀오면 바지락, 이름 모를 조개, 등 갯것을 한 소쿠리씩 가져와서 그날은 종일 酒 님을 모시는 날이다. 다방 아가씨와 오빠 동생 하였더니 자연 주방장하고도 친구가 되었다. 다방 주방장과 친구가 되니 좋은 점이 많았다. 한밤중에 소주 사 들고 들어가서 주방에 있는 쌍화차 만들려고 준비해둔 달걀을 술안주로 튀김해서 먹어서 좋고. 홍차를 시키면 알아서 비싼 위스키를 듬뿍 넣어 주어서 이거야, 개 꼬리가 개를 흔든 격이다.
한번은 이 주방장 친구하고 남산에 올라가서 놀다가 장충단 공원으로 하산했다. 그때 장충단 공원에는 들병장수 아줌마들과 카세트를 가지고 장사하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웃을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카세트가 비싸서 카세트 가지고 있는 집이 별로 없을 때다. 여기서 돈 몇 푼 내고 둘이서 카세트에 노래를 부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계를 통하여 금방 부른 자기 노래를 듣는 것이다. 그 맛이란 가수가 된 것처럼 속된말로 아주 죽였다. 내 노래가 내 목소리가, 저 비싼 기계를 통해서 가수처럼 나오다니, 와! 신통방통~
그 순간은 자기도 가수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아저씨 딱 한 번만 더 들려줘 잉' 하고 징그럽게 시리 도리질을 하며 사정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 카세트 아저씨가 '둘 다 목소리가 좋다. 가수 소질이 있다.' 이런 논평을 날렸다.
순전히 장삿속으로 하루에도 많은 사람에게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에 다방 주방장 친구는 뱀 앞에 최면 걸린 개구리가 돼 버린 것이다. 이 최면 걸린 개구리를 어찌어찌 끌고 내려왔는데 '시구 문 밖을 지나는데 이 친구 발걸음이 딱 멈추어 버렸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요지부동 이어서 이 친구 눈빛을 따라 건너다보니. 헉! 거기 큼지막한 간판이.< 배상태 작곡 사무실> 오! 맙소사 꼬인다. 꼬여 늑대 피해서 오니 앞에 호랑이가 기다린다더니. 이런 우연히 있을 수가 있나. 장충단 공원에서 금방 둘이서 불렀던 노래도 배로 노래고 내려오다가 우연히 마주친 건물 위층에 있는 작곡가 사무실도 배후를 길렀다는 저 유명한 <배상태' 작곡 사무실> 이 아닌가.
나의 이 우연을 불안한 눈으로 보고 구름 속에서 헤매는 친구 놈을 끓어 내리려고 애썼고, 금방 가수가 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친구 녀석 눈에는 '오호! 이것은 곧 하늘의 계시오, 자기는 어쩔 수 없이 가수로 가야 할 필연으로 '대가리에 꽝꽝 대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장충단 공원 카세트 아저씨 말에 절반쯤 맛이 간 이 주방장 친구는 양귀비 태우는 냄새를 맡은 아편 중독자 모양 그 건물 <배상태 작곡 사무실> 로 뒤도 안돌아 보고 가버렸다. 이 친구 귀에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오로지 가수, 가수, 가수.
젊은 놈 하나 맛 가는데, 요렇게 몇 가지 우연히 연결되다니. 평안 감사도 저 싫다면 그만이고 내 또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한동안 연락 없이 지냈다. 연락 없이 지낸 것이 아니고 제 놈이 직장도 그만두고 사라져 버렸다. 고향에서 동생이 자기 형을 찾아서 내게 올 정도였으니 이 녀석 성긴 마(麻) 잠방이 사이로 방귀 사라지듯 증발해 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가 나를 찾아와서 ‘가수’증’을 쓱 내밀었다. 이 친구 기어이 가수가 되기는 했다. 하나 그때 가수 증 하나 있으면 만사가 오케이? 조석 간 곳이 없는 삼류 가수가 밤하늘에 별인데 말이다. 가수 배호야 인물 노래가 되니까 인기가 있지. 노래 그렇고 그런 또 다른 배 모 씨는 집안이나 잘 살아서 어머니가 여기저기 007 가방이라도 돌려서 라디오에 노래가 그런대로 나온 것으로 아는데. 이 친구는 뭐로 가수 하나? 지나 내나 노래 인물 그렇고 그런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니던가. 친구 집도 어렵게 사는 것은 익히 아는 난데 말이다. 축하받으려고 내민 가수 증에 내가 멍하니 쳐다보니 제 놈도 쑥스러운지 내밀던 가수 증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담는다. 그리고 다시 사라졌다.
나중에 권투를 배우던 동생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형이 가수가 되어서 라디오에도 나오고 돈도 금방 잘 벌 수 있다'고 어머님을 하도 졸라서 조금 있는 강원도 밭을 팔아주었다고 한다. 그 후로 어머님은 언제나 형이 라디오에 나오나 자나 깨나 라디오만 안고 사신단다. 당신이 잠이 들었을 때 아들 노래가 지나갈까 봐 잠도 편히 못 주무신단다.
노래를 하늘나라에서 부르는지 염라대왕 전에서 부르는지 그 후 이 친구는 꿩 구워 먹은 소식이고. 라디오에서도 티브이에서도 3차로 간 삼류가수가 등장하는 곳, 등등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노래 부르는 다방 주방장 출신 가수. 그때 장충단 공원 카세트에 노래하던 친구는 보지 못했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사나?
'장충단 공원 카세트 아저씨 내 친구 돌려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