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안과 피안의 경계 - 사찰의 ‘다리’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다리는 일반적인 다리와 달리 기능적인 가치 이상의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찰의 불전 영역을 이상화하려는 의지와 선계에의 동경심이 반영된 다리의 이름을 절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순천 송광사 삼청교(三淸橋)와 승주 선암사 승선교(昇仙橋), 여천 흥국사 홍교(虹橋), 고성 건봉사 능파교(凌波橋) 등이 있고, 피안교(彼岸橋)와 극락교(極樂橋), 능허교(凌虛橋) 등의 이름을 가진 다리도 많다. 이 다리들은 그 이름이 시사하는 것처럼 단순한 편의 시설의 차원을 넘는 상징적인 구조물이다.
다리의 이름들을 살펴볼 때, 피안이란 도피안(渡彼岸)에서 따온 말로 생사번뇌로 가득 찬 속세를 떠나 열반의 언덕에 도달하는 것을 뜻한다. 《금강경》에서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뗏목을 타고 저편 강기슭에 다다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따라서 다리 이름을 '피안교'라 함으로써, 이 다리를 생사의 세계인 차안에서 열반의 세계인 피안으로 건너가는 뗏목에 비유한 것이다. 또한 극락교는 극락으로 진입하는 다리를 뜻하고, 연화교는 연화 화생의 의미와 관련이 있다.
이처럼 사찰 초입의 다리에 붙여진 이름에는 불교적인 의미와 도교적인 의미가 혼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안·극락·연화·칠보 등은 불교와 직접 관련된 이름이고, 삼청·승선·능파·능허·청운·백운 등은 도교적인 색채가 짙은 이름이다.
도교에서는 이상세계를 선계라 하고, 불교에서는 불국정토 또는 극락세계라고 하여 서로 다르게 부르지만, 도교와 불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서로 상통한다.
이렇듯 사찰의 다리는 기능적인 효용성과 함께 사찰 경역(境域)을 이상화하려는 의지와 불국세계를 향한 염원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구조물이다. 또한 현실세계와 피안정토의 경계이자, 두 영역을 연결시켜주는 통로가 된다.
[출처] 차안과 피안의 경계 - 사찰의 ‘다리’|작성자 일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