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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이 덜컹거린다.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 바람이 무슨말인가를 스산하게 속삭인다.
어디선가 이밤 누군가 잠들지 못하고 아직도 하얗게 깨어 있다는게다.
누구에게도 말못할 외로움을 거추장스러운 그림자처럼 끌며 불안하게 서성이는 한사람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외로운 영혼들은 유독 소리에 민감해진다. 덜컹이는 창문 밖에선 허위단심 산을 넘어가는
나그네새 울음이 들려오고,하루 하루 봄병을 앓았던 나무들의 외로움이 전해진다.
이런 밤에는 한잔 술이 간절해진다.
인생은 짧다고 하지만 아직 술잔을 기울일 시간은 충분하다. 지루해서 죽느니 취해서 죽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은가. 일터와 집터 사이의 술터는 정해진 궤도만을 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묘한 일탈감을 경험케함으로써 생활의 리듬을 잃지 않게 한다.
거기에 포장마차가 있다.
밤에 포장마차 불빛 하나 없는 곳에서 나는 살지 않겠다는 말을 평소에 버릇처럼 하고 다니는
위인으로서 마차의 모든 것을 나는 극진히 사랑한다.
귤색의 포장 사이로 모락모락 새어나오는 수증기와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을 만큼 알맞은 백열등 불빛,
그리고 두런두런 모여앉아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의 그림자,연탄화덕으로 굽는 곰장어 냄새.
무엇보다 주눅 들지 않는 가격. 내 궁핍한 주머니 속사정으로도 은근히 여유를 부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단 돈 만원에 '고갈비'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호기 차게 비울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산근처 포장마차다.
포장마차가 만만한 것은 어딘지 빈틈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편안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라면 독작이 측은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포장마차에서의 독작은 어딘가 낭만적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나는 포장마차로 망명한다. 포장마차는 유랑마차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유랑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모두 근원으로부터 뿌리 뽑혀 내던져진 존재들이다. 그것이 우리의 아린 실존이다.
그러한 존재들이 잠시 유랑을 멈추고 허름한 포장을 지붕과 바람벽 삼아 만났다.
칸을 지르지 않은 나무 의자와 수레 위에 올린 탁자를 공동의 술상 삼아 만났다.
이 허름한 술상 앞에서 내 아비들이 일상에 지친 마음을 술로 다스렸고,
내 아비들이 먹던 고전적 안주를 이제는 내가 먹는다.
그 날의 아버지가 굽던 곱창을 이제 내가 굽는다.
그 날의 아버지 냄새가 내게서도 나고 있다.
어디서 술잔을 부딪는 소리가 들려온다.
술잔 부딪는 소리로 이 밤의 한쪽에선 별이 떨어지고,별이 떨어지는 쪽을 향하여 밤새가 난다.
어둠의 한쪽이 환하게 끓어오르다가 까무룩 다시 어두워진다.
나 역시 저렇게 저물어 가리라. 소멸해 가리라.
그러나 깨어 있는 순간 나는 살아 있음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련다.
소멸해가는 것들의 눈부심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련다.
/에세이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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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떤 때는 술을 자유 자재로 먹을수 있었으면 하는데.. 그래야 포장마차가 안신처가 될건데.. 제눈에는 그냥 밤에 우동 파는 곳으로 보이니~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