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에게 주신 희망은?^^*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느끼고
그 사랑에 감사를 드리셨나요?
그리고 그 사랑을 가정 안에서 실천해보셨나요?
많이 행복하셨죠?
형제 자매님,
오늘 제2독서에서 바울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
그런데 하느님께서 형제 자매님을 부르실 때 어떤 희망을 주셨습니까?
그리고 형제 자매님은 그 희망을 성취해나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도 못합니까?
우리는 매일 바쁘게 살아갑니다.
나와 내 가족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한 덩어리의 빵을 얻기 위해서 바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엔 좀 더 나은 빵을 구하기 위해서 역시 바쁘게 살았습니다.
이제는 그 빵을 즐기면서 먹을 수 있기 위해서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어떻게 하면 먹을 빵에 대한 걱정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까하고 궁리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은
이 기막힌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으니
그분이 왕이 되면 그들은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이 복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그들이 생각했던 빵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한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요한복음을 통해서 듣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공관복음의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예수님과 함께 지냈고
그래서 제자들이 걱정이 되어서 예수님께
사람들이 먹을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그들을 빨리 돌려보내야 한다고 청했을 때
제자들이 갖고 있던 빵과 물고기로 그들을 배불리 먹이셨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산에 오르셔서 아예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필립보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예수님 당신이 주도권을 행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빵과 물고기도 어떤 아이가 갖고 있던 것을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빵도 공관복음서처럼 그냥 빵이 아니고
오늘 제1독서에서 나왔던 엘리사가 기적을 일으켰던 보리빵입니다.
그리고 공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를 손에 들고 축복하셔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신 것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바로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당신 몸을 내어주신
성찬례와 똑 같은 묘사입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이 남자만도 5천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성찬례를 거행하셨다고, 미사를 드리셨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빵이 아니라
당신의 몸을 주시고자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세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한 끼의 배고픔을 해결해줄 물질적인 빵만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날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고자 하시는데
우리들은 그 보다 못한 것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5만 원짜리 식사를 샀다면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몇 번이나 감사할 것입니다.
또 기회가 되면 나도 한 번 대접하겠다고 약속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 미사에 참례해서 성체를 모시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본 적이 있습니까?
매일 미사를 통해서,
빵이 예수님의 몸으로,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
변화되는 엄청난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잠시라도 예수님이 짠 하고 나타나는 작은 기적하나만 보여 주시면
흔들림 없이 신앙생활을 잘 하겠다고 예수님께 떼를 쓰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습니다.
이 약속이 우리에게 주신 희망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희망을 바라보며 그것을 성취할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사랑의 삶입니다.
뭐 다 아는 얘기를 새삼스럽게 하느냐고요?
예,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것이지만
팔십 살 먹은 노인도 실제로 지키기는 힘든 일이죠.
그래서 바울로 사도도 거듭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형제 자매님,
이러한 삶이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까지 내어주시며 보여주신 사랑의 삶이고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영원한 삶을 성취하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힘든 일이라도 그 일이 가져다줄 결과가 좋은 것임을 안다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을 느낍니다.
내가 행하는 사랑의 결과가 영원한 생명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산격성당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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