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시산제(始山祭), 여수 금오산(金鰲山)에서 지내다.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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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날씨는 해맑아도 바람이 불어 기온이 싸늘했다.
내일 시산제를 지내야하는데 날씨가 걱정이 되어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내일 날씨 추움, 아침 영하권, 낮 5-6도”라는 기상예보가 떠오른다.
기분이 우울하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바람 끝이 싸늘하고 추웠다.
겨울 파카를 입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집으로 되돌아가기 싫어 입고나온
옷차림 그대로 버스를 탔다.
광주역에 도착해 시간이 남아 대합실에서 산행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성회원
“수선화”가 다가오면서,
“양동에서 산행버스를 보았는데, 시간이 어중간해 광주역까지 와 버렸다.”고
웃는다.
“수선화”회원은 웃을 때가 제일 예쁘다.
“민들레”총무의 열성적인 회원관리와 이 강순회원(5명)과 “줌마짱(3명)”,
“방랑자”, “희수氏”등이 회원들을 동원해줘 오늘도 42명의 남녀회원들이 여수
금오산 시산제산행에 기꺼이 참여를 해주었다.
산행버스가 돌산대교를 지나가는데 새로 설치한 해상케이블카가 일렬로 줄을
서서 하늘과 바다사이로 이동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회원들은 차창 밖으로 내다보며 연신 감탄을 자아낸다.
섬으로 들어갈수록 바다 바람은 세지고 있었다.
산행 들머리인 율림치주차장에 도착을 했더니,
나주 삼포농협 여성 산악회원들이 대형버스 3대를 동원해 우리처럼 시산제를
지내고 산행을 할 계획으로 먼저 도착해있었다.
차 밖으로 나와 보니 바람은 불어도 세지 않으며 추위도 생각처럼 춥지 않았다.
우리는 서둘러 “금광산악회시산제” 현수막을 걸고 제수음식을 차려 놓았다.
집에 집 지킴이가 있듯이 산에도 주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산신령(山神靈)이다.
산신령은 초능력적 영험力을 발휘하여 인간세상을 지배하여 왔으며 이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산을 숭배하여 온 것이다.
산신제(山神祭)는 산신에게 올리는 하나의 제의(祭儀)행사이다.
고대사회의 제천의례(祭天儀禮)에 뿌리를 두고 이어져 온 것으로,
오늘날 지역민의 안녕과 평화를 도모하는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졌다.
최고봉인 백두산(2,744m)을 위시하여 수없이 많은 산이 국토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으며 이러한 산악 지형적 여건과 환경은 한국인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왔다.
이로 인해 한국 역사와 문화는 자연스럽게 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로부터 수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하강한 곳이 산(태백산)
이요, 나라를 세워 백성을 다스린 단군왕검이 산신이 되었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이 이를 역사적 사실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지내는 시산제(始山祭)란,
산신제로써 한 해가 시작됨에 산신(山神)에게 올리는 제의행사로 산악회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고 산악회원들의 무사산행을 산신령께 기원하는 것이다.
시산제를 올리는데 향을 피우고, 제물을 차려놓고 시산제축문을 낭독한다.
시산제축문을 읽을 때는,
참가자들은 모자를 벗고 예의를 표하는 것이 기본이며
회장이나 원로회원이 향을 피우고 산신께 좌, 우, 중앙으로 세 번씩 술을 붓고
재배를 한다.
종헌(終獻)을 마치고 나면 헌작(獻酌)이 이어지는데 이때는 누구나 잔을 올리고
재배할 수 있다.
오늘 시산제를 지내는 데는 하늘과 날씨가 도와주었다.
산행버스를 바람막이로 주차시켰지만 거칠게 불던 바람도 잠시 잦아들고 큰 무리
없이 시산제를 마쳤다.
제수비용으로 33만원을 사용했으며 전체회원의 마음도 하나였지만,
많고 적음을 게의 치 않고 24명의 회원들이 헌금 184만원을 내주었는데 작년에
비해 50여만 원이 더 많았다.
시산제를 마치고 오전 11시 30분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하산시간을 오후 3시 30분으로 정했으니 오늘은 여유 있는 금오산산행이 되겠다.
나는 6명이 한 조가 되어 금오산탐방을 시작했다.
산은 높지도 않으며 산길은 가파르지도 않아 신선처럼 유유자적(悠悠自適) 할
수 있었다.
짙푸른바다를 바라보며 걷노라면,
크고 작은 섬들이 병풍처럼 둘러 쳐지고, 아니면 그림 액자처럼 올망졸망한
섬들이 이웃을 만들고 있다.
여수 외항에 머물고 있는 화물선들이 작은 섬처럼 보인다.
포구에 정착한 상가와 마을이 가느다란 길로 연결되면서 한결 여유롭게 보인다.
가까운 바다에는 스티로폼양식부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돈되어 바다위에 떠 있다.
그것은 잘 그려진 한 폭의 유채색 풍경화다.
여수 금오산(金鰲山)은,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里에 있는 높이 323m의 산으로,
여수반도에서 돌산대교로 이어진 전남 남단의 돌산島에 우리나라에서 일출풍경이
가장 뛰어나다고 자랑하는 향일庵이 있다.
이는 해를 향해 있다는 뜻으로 이 산에 있는 암자이지만 산보다 더 유명하다.
금오산과 금오峰을 오르는데 여러 바위와 가파른 길이 있어도 큰 무리는 없었다.
금오峰에서 향일庵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급경사이지만 철제와 데-그제로
안전계단을 만들어 놓아 내려가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계단 밖으로 나갈 수 없게 울타리 목을 세워두어 바위위로 함부로 올라
갈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안전계단이 없다면 수많은 바위와 바위절벽들 때문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
이런 계단을 얼마를 걸어 내려가니 향일庵이 나왔다.
향일庵(向日암)은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里 산-7번지의 금오산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금오산이 바다와 맞닿은 가파른
언덕에 있으며 1984년 02월 29일 전남도문화재자료(제40호)로 지정되었으나,
2009년 12월 20일에 화재로 대웅전, 종무 실, 종각 등 건물 3동이 전소하였다.
왼쪽에는 중생이 서원(誓願)에 감응하였다는 감응도,
앞바다에는 부처가 머물렀다는 세존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화현하였다는 미타도가 있다.
향일庵이라는 명칭은 금오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울창한 동백이 남해의 일출과
어우러져 절경을 빚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12월 31일과 1월 1일에는 향일庵 일출제가 열려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해맞이 명소이기도 하단다.
또한 향일庵은 낙산사의 홍연庵, 남해 금산 보리庵 , 강화도 보문庵과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처 가운데 하나로 금 바위의 전설이 얽혀 있다.
풍수지리상 경전을 등에 모시고 바다 속으로 막 잠수해 들어가는 금 거북이의
형상이라 하는데 대웅전 앞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봉우리가
머리, 향일庵이 선 곳이 거북의 몸체에 속한다고 말한다.
쇠 금(金), 큰 바다 거북 오(鰲)자를 써서 금오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한때 거북 구(龜)자를 써서 영구庵이라 부른 적이 있고 현재 영구庵이란 편액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전설을 더욱 그럴 듯하게 꾸며주는 것이 이 일대 바위의 무늬이다.
바위마다 하나같이 거북의 등 모양을 닮은 문양이 나 있는 것이다.
향일庵에서 백미를 이루는 장관은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관음전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뒤의 이 산 오름길은 정상까지 단 20분 거리로 향일庵 일대의 절경을 제대로
즐기길 원한다면 이 산정의 등행(登行)을 한번 해볼 만하다.
우리는 반대로 하산을 했던 곳이다.
암자 뒤에는 어른이 흔들거나 아이들이 흔들거나 똑같이 흔들리는 바위가 있다.
설악산 흔들바위보다 조금 작은 이 바위는,
흡사 경전을 펼친 모습이라 이를 한 번 흔들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功德)이 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흔들바위 입구에서 5분 정도 비탈길을 오르면 곧 시야가 탁 트이는 바위지대
위에 서게 된다.
촛대바위, 기둥바위 등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짙푸른 바다에 서 있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좀 채로 보기 힘든 멋진 광경으로 일출을 맞이해보는 것이 좋다.
지금은 안전 때문에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 안타깝다.
이렇게 뛰어난 향일庵 일원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남문화재자료(제40호)
로 지정하였다.
향일庵은 사찰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산의 높이와 별개로 이 산을 명산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향일庵을 찾고 있었으며 나는 절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대웅전, 관음전, 원효대사 좌선 대. 바위석굴, 흔들바위, 책 바위, 동백나무 등
모르면 물어보면서 확인을 해봤다.
함께 동행 한 “운파”가 나 보다 더 했다.
절 구경을 하고 내려오면서 “운파”가 산 칡즙을 한 잔씩 했는데 그 향이 좋았다.
산행버스는 공단주차장에 있었으며 여기서 하산 주를 했다.
하산 주는 찰밥으로 준비했으며 시산제를 지내고 난 돼지머리고기, 나물, 과일 등
제물을 함께 먹었으며 막걸리와 소주가 식욕을 돋운다.
오후부터는 날씨가 풀리며 햇살이 좋아졌다.
(봄의 정원으로 오세요. / 석류꽃 향기로움 속에 따스한 햇살과 포도주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 그대가 오지 않는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
그대가 온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13세기 페르시아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의 詩다.
봄이면 루미의 詩가 전 세계에서 인용된다.
800년이 넘은 시가 아직도 우리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그대”라는 존재가 神이든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든 새싹이 움트는 봄의 정원에 누군가를 초대하고픈 그 마음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5년 2월 27일)
첫댓글 시산제를 잘 지냈다니 다행이군요.
여수 금오산과 향일암의 자세한 설명으로 옛 생각이 절로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