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 49:14-15
제목 : 하나님의 사랑
서론
유대인들은 절망 상태에서 낙심하고 있습니다. 즉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낙심을 했는가 하면 애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이 절망 상태였습니다(겔 37:1-11). 그러나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낙심하라고 한데는 없고 하나님을 찾아 간절히 도와 달라고 한 사람치고 주의 도움을 받지 못한 이들 또한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때를 따라 돕는 사랑입니다.
본문 15 "여인이 어찌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하였습니다. 갓난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의 젖먹을 시간이 되면 반드시 시간을 맞추어 젖을먹이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시간에 젖을 먹이지 아니하면 아이는 배가 고파서 울겠지만 어머니는 젖이 불어서 터질 지경이라 많은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걱정은 이만 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성애보다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이는 젖먹이는 아이를 생각하는 어머니보다 더 생각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서 돋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기록하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신 28:12)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해도 때를 따라서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불쌍히 여기는 사랑입니다.
본문 15 "자기 태에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하였습니다. 긍휼이라는 말은 불쌍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부모의 사랑도 자식이 잘못을 범하였으면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돌아올 때는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탕자가 죄를 범하고 돌아 올 때에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죄를 범하였어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여 주십니다. 단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회개를 전제로 해서 말입니다. 시편 저자는 말하기를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의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3-14)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사랑보다 더 강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는 자식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둘도 아닌 독생자를 희생시켜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3. 잊지 않는 사랑입니다.
본문 15 "그들은(부모는)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강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어머니가 자식을 잊을 수가 있고 버릴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 사랑보다 더 강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쌀 자루 대신에 아이를 내버리고 가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같은 실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미라도 자신의 처지가 어려워지면 자식을 잊고 행동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성도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F.M.Lehmam 목사는 찬송가 404장을 작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히나님의 사랑을 찬양하였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사랑이요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는 사람이며 영원히 잊지 아니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시 11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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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50:4-9
제목 : 메시야의 사역
서론
본문 말씀은 메시야의 사역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인데 메시야는 심혼골수를 쪼개는 인생들을 도와 주시고 하나님과 교통하시면서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희생하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메시야가 어떻게 일하셨는가 알아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대로 하였습니다.
본문 4-5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하였습니다. 학자라는 말은 배운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메시야는 하나님께 배워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아시고 그의 뜻을 따라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실 때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였습니다(요 3:32).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2. 자원하여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본문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구속사업을 성취하실 때의 그의 태도에 대하여 미리 예언하신 것입니다. 잡히시는 것도 잡혀 주셔야 그들이 잡을 수 있꼬 죽는 것도 그가 생명을 내어 주셔야만 죽을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원수들의 힘으로 그를 죽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희생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된 이상 때가 되면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에게 잡혀주시고 죽이려고 하는 자들에게 생명을 내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 누구도 잡을 수도 죽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혀서 모진 수모를 당하심은 모두가 자원하셔서 하신 일입니다(마 26:55-56).
3. 하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본문 7-9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헤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두려운 것도 없고 또 피하여 도망하지도 아니하시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누구라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때문에 수치를 당치 않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기 때문에 정죄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데는 못하실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크신 일을 차질 없이 잘 감당하셨습니다.
결론
메시야는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시고 죄 많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어서 죽으심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죽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신약의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요 4:33-34)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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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51:1-3
제목 :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보라
서론
하나님께서는 미약한 자들을 도와 주시기 때문에 약한 자들이나 가난한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옛날에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것을 생각하고 낙심하지 말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럼 아브라함을 생각하라고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겠습니다.
1. 부르심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본문 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하였습니다. 그의 부르심을 생각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잘난 데도 없고 가문이 좋은것도 아니고 아브라함의 인품이 좋아서도 아니며 신앙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이와 같은 것을 교훈하시기 위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1) 하였습니다. 이는 비유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환경을 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돌에다 비유하고 그 돌을 사용하시기 위하여 석수장이가 돌을 떠냈는데 돌 자체가 다듬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석수장이가 그 돌을 떠 내다 다듬어서 성전 주춧돌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을 좋지 않는 환경에서 불러내서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우상 장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환경에서 불러 내어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낸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죄로 인하여 죽었지만 불러서 은혜의 역사로 구원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고전 1:26-29). 그러므로 죄를 지었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 복 주심을 생각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본문 2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을 만힌 일을 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고 무조건 불러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고(창 15:6) 그의 순종을 보시고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창 22:1-18). 아브라함이 순종하여서 복을 받았지만 사실은 순종 이전에도 이미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민족들이 그를 인하여 복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창 12:1-3). 행위가 아니고 믿음으로 인하여 복을 받았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였습니다(히 11:8-12). 이는 우리들도 믿음으로 복을 받을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을 때는 자식도 하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러서 죽은 시체나 다를 바 없는 그들에게 아들을 낳게 하셔서 필경은 나라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3. 위로하심을 생각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본문 3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하였습니다. 이는 1-2절을 전제로 해서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께서는 현재에도 무엇이라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서 복을 주신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받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광야를 에덴 같게 하시고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괴로움이 주던 환경이 천국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우리를 불러서 복을 주시며 위로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고 위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취하실 때에 외모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서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불러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도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심이 그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고 용기를 잃지 말고 위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