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자신한테는 아버지가 두 명이라고 말했던 그였습니다. 한 분은 자신을 낳아준 친아버지, 그리고 또 다른 한 분은 지금의 추신수를 있게 만들어주신 고 조성옥 감독님(동의대)입니다. 그런데 추신수는 경기 직전에 조 감독님 아들 찬희 씨로부터 ‘감독님이 돌아가셨다’란 비보를 전해 들었습니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니 절대로 안 울 거라고 말하면서 시즌 마치고 귀국해서 감독님을 찾아 뵙고 그때 울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추신수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기자가 더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따라 연타석 홈런 등 4안타, 7타점을 쓸어 담은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진출 후 최고의 성적을 올렸지만 그 성적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다고 했어요. 단 감독님의 부음을 듣고 경기에 임하면서 타석에 설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방망이를 휘둘렀고(보통 타자들은 투수와 심리전을 펼치게 되잖아요. 구질이나 코너 등과 관련해서. 그런데 이날 추신수는 정말 머리를 비우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홈런도 되고 안타도 됐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감독님이 자신한테 마지막 선물을 주시고 가신 것 같다면서.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경상도 사나이라 표현이 서툴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추신수이지만 잠긴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얼마나 침통한 상태인지, 또 시즌 중이라 조문도 못하고 여전히 야구장에 나가야 하는 현실 또한 그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란 사실이 다가왔습니다. 스승이 값진 선물을 주고 가셨듯이 제자도 연속 안타 등으로 불방망이를 뽐내며 클리블랜드를 후꾼 달아오르게 했습니다. 다음은 <일요신문>에 게재된 추신수의 일기 전문입니다. 솔직히 오늘은 이 일기를 쓰는 게 버겁기만 합니다. 신문사와의 약속만 아니라면 이번 주만큼은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눈물도 안 나오고 그냥 멍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를 어떻게 치렀는지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납니다. 경기 끝나고 5연패를 끊었다고 해서 라커룸과 경기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전 그들 속에서 철저히 혼자 있는 듯했습니다. 제 마음은 경기 시작 전부터 이미 한국의 부산으로 향했으니까요. 결국 제 아버지나 다름없었던 동의대 조성옥 감독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4월부터 간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종종 전화로 안부를 여쭈면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곤 했는데 이렇게 빨리 세상과 이별을 고하실지 전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요. 부산만 가면 항상 절 반갑게 맞이해주셨던 스승님이 지금은 그 자리에 안 계신다는 걸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은 클리블랜드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가 열렸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경기 전에 와이프랑 잠깐 통화를 하는데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는 신호음이 들리더라고요. 이상하게 그 전화가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연결을 했더니 찬희였어요. 찬희는 조성옥 감독님의 아들이자 제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후배입니다. 찬희는 제 목소리를 듣자마자 흐느껴 울기 시작했어요.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임종을 지켜보고 바로 저한테 전화를 한 거였어요. 그런데 너무 가슴이 아픈 건 눈을 감으시기 직전에도 제 얘길 하셨다고 합니다. ‘신수가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갈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전화를 끊고 도저히 경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 공항으로 달려가서 감독님 얼굴을 직접 봐야할 것 같았어요. 뒤죽박죽, 복잡다단한 상태에서 결국엔 타석에 섰고 방망이를 휘두를 때마다 감독님을 떠올렸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오늘 제가 경기장에서 보여준 성적이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5타수4안타, 그리고 7타점이라는 개인 최다 타점 기록을 올렸다는 사실이죠. 팀도 5연패 만에 15-3으로 대승을 거뒀고요. 정말 인생이 재밌지 않습니까?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남겨진 자식들보다는 멀리 있는 제자를 걱정하실 정도로 조성옥 감독님은 제 야구 인생에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수영초등학교 시절 야구를 처음 맛보게 해주신 고 정장식 감독님과 조성옥 감독님은 제가 죽어도 잊지 못할 스승이신데 지난해에 정장식 감독님이 돌아가신 데 이어 이번엔 조성옥 감독님마저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아!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습니다. 저한테는 고등학교 시절의 야구 생활이 가장 깊고 진하게 각인돼 있습니다. 부산고 우승과 2000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등을 함께했던 분이 조 감독님이셨고 그 분의 도움으로 시애틀 매리너스에도 입단하게 됐습니다. 미국 진출 후 맑은 날보다 비오고 구름 잔뜩 낀 우중충한 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때마다 조 감독님은 저한테 전화를 하셔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와 채찍질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월급을 털어서 선수들 밥도 사주시고 간식도 챙겨주셨으며 야구부 회비를 내지 못하는 어려운 가정 형편의 선수들을 대신해 선수들 몰래 회비를 내주셨던 것도 익히 봤던 모습들입니다. 가는 곳마다 우승을 일궈낸 전력으로 ‘우승 청부사’란 별명도 달았지만 감독님은 명성에 비해 물질적으로 여유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당신의 이익보단 선수들을 배려하고 더 살뜰히 챙기셨습니다. 지난 겨울 부산에서 뵈었을 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생님,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더 고생하시면 제가 편히 모실 겁니다. 그때까지 건강 돌보시면서 후배들 양성해주세요.’ 그런데 감독님은 제가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그리곤 저한테 홈런 2방과 7타점이라는 선물을 주고 떠나셨어요. 일기를 통해 감독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님, 신수입니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그 열정과 사랑,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꼭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해서 선생님께 많은 선물 안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찬희는 제가 평생 책임질 테니 걱정마세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클리블랜드에서 추신수 |
첫댓글 운동선수는 운동도 잘해야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인간됨됨이도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바입니다. 추신수 선수 역시 오랜 마이너 생활 이후 다른선수들보다 훨씬 먼저 나와 몸을 풀고 하는 모습이 어린 선수들에게도 귀감이 되며 코칭스탭과 스카우팅 리포트에도 그런것들까지 다 나와있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추신수선수 마음적으로 굉장히 힘들테지만 무더위를 날리는 멋진 모습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