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장
사무엘의 죽음
1 사무엘이 죽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이 모여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라마에 있는 그의 집에 그를 묻었다. 그 뒤 다윗은 파란 광야로 내려갔다.
다윗과 아비가일
2 마온이라는 곳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카르멜에 목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양이 삼천 마리, 염소가 천 마리나 되는 큰 부자였다. 마침 그는 카르멜에서 양털을 깎고 있었다.
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고,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었다. 그 여인은 슬기롭고 용모도 아름다웠으나, 남편은 거칠고 행실이 악하였다. 그 남자는 칼렙족이었다.
4 다윗은 나발이 양털을 깎고 있다는 말을 광야에서 듣고,
5 젊은이 열 명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일렀다. “카르멜로 올라가 나발을 찾아가서 내 이름으로 안부를 묻고,
6 이렇게 내 말을 전하여라. ‘안녕하십니까? 댁도 평안하시고, 댁의 집안도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또한 댁의 모든 소유도 아무 탈이 없기를 빕니다.
7 댁이 지금 양털을 깎는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댁의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 우리는 그들을 괴롭힌 적이 없습니다. 카르멜에 있는 동안 내내 그들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8 댁의 일꾼들에게 물어보시면 그들이 사실대로 알려 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좋은 날 우리가 찾아왔으니 이 젊은이들을 너그럽게 보아 주시어, 부디 댁의 종들과 댁의 아들 다윗에게 무엇이든지 손에 닿는 대로 집어서 보내 주십시오.’”
9 다윗의 젊은이들이 도착하여, 나발에게 다윗의 이름으로 이 말을 그대로 전하고 잠자코 기다렸다.
10 그러자 나발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도대체 다윗이 누구며 이사이의 아들이 누구냐? 요즈음은 주인에게서 뛰쳐나온 종들이 득실거리는 판이다.
11 그러니 내가 어찌 빵과 물, 그리고 털을 깎는 내 일꾼들에게 주려고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12 다윗의 젊은이들은 왔던 길로 발길을 돌려 다윗에게 돌아가, 이 모든 일을 그대로 전하였다.
13 다윗이 자기 부하들에게 “모두 허리에 칼을 차라.” 하고 이르자, 모두 허리에 칼을 찼다. 다윗 자신도 허리에 칼을 찼다. 이리하여 부하 사백 명가량은 다윗을 따라 올라가고, 이백 명은 남아서 물건을 지켰다.
14 일꾼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다윗이 광야에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어 우리 주인께 축복의 문안을 드렸는데, 주인께서 그들에게 호통만 치셨습니다.
15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주 잘 대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들에서 지내며 그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동안 내내, 우리는 아무런 괴로움도 당하지 않고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16 그들은 우리가 양을 치면서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내내, 밤낮으로 우리에게 성벽이 되어 주었습니다.
17 주인님과 주인님 집안에 돌이킬 수 없는 화가 닥치고 있으니, 마님께서는 어떤 조치를 취하셔야 할지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주인님은 성미가 고약한 분이시라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18 아비가일은 빵 이백 덩이, 술 두 부대, 요리한 양 다섯 마리, 볶은 밀 다섯 스아, 건포도 백 뭉치, 말린 무화과 과자 이백 개를 서둘러 마련하여 여러 나귀에 실었다.
19 그리고 자기 일꾼들에게, “뒤따라갈 테니 나보다 먼저 가거라.” 하고 일렀다. 그러나 남편 나발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20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굽이를 돌아 내려가는데, 다윗과 그의 부하들도 그 여자 맞은쪽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아비가일은 다윗 일행과 마주치게 되었다.
21 다윗이 말하였다. “내가 광야에서 나발에게 속한 것을 모두 지켜 주어, 그에게 속한 것 가운데 아무것도 잃지 않게 해 주었지만 헛일이었다. 그는 나에게 선을 악으로 갚았다.
22 내가 내일 아침까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 가운데 벽에 오줌을 누는 자 하나라도 남겨 둔다면,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셔도 좋다.”
23 아비가일은 다윗을 보자, 나귀에서 얼른 내려와 다윗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24 그러고 나서 다윗의 발 앞에 엎드린 채 애원하였다. “나리, 죄는 바로 저에게 있습니다. 당신 여종이 나리께 말씀드리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고, 부디 당신 여종의 말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25 나리께서는 나발이라는 고약한 사람에게는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그는 나발이라는 이름 그대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당신 여종은 나리가 보내신 젊은이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26 나리, 살아 계신 주님과 나리의 목숨을 두고 맹세합니다만, 주님께서는 나리께서 사람의 피를 흘리시고 손수 복수하시는 일을 막아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리의 원수들과 나리께 해를 끼치려고 하는 자들은 나발같이 되기를 빕니다.
27 여기 당신 여종이 나리께 가져온 이 선물은 나리의 뒤를 따르는 젊은이들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28 당신 여종의 잘못을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나리께서는 주님의 전쟁을 치르고 계시니, 주님께서 정녕 나리께 튼튼한 집안을 세워 주실 것입니다. 나리께서는 한평생 어떤 재난도 겪지 않으실 것입니다.
29 나리를 쫓아다니며 나리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주 나리의 하느님 앞에서 나리 목숨은 생명의 보자기에 감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나리 원수들의 목숨을 팔맷돌처럼 팽개치실 것입니다.
30 이제 주님께서 나리께 약속하신 복을 그대로 이루어 주시어 나리를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실 터인데,
31 지금 정당한 이유 없이 피를 흘리며 몸소 복수하시다가, 나리께서 후회하시거나 양심의 가책을 받으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리께 복을 내려 주실 때, 당신 여종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말하였다. “오늘 그대를 보내시어 이렇게 만나게 해 주셨으니,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미할 뿐이오.
33 오늘 내가 사람의 피를 흘리고 내 손으로 직접 복수하는 일을 그대가 막아 주었으니, 그대와 그대 분별력에 축복을 드리오.
34 그대를 해치지 않도록 나를 막아 주신, 살아 계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고 분명히 맹세하지만, 그대가 급히 와서 나를 만나지 않았던들, 나발에게는 내일 아침이 밝을 때까지 벽에 오줌을 누는 자 하나도 남지 못할 뻔했소.”
35 다윗은 여자가 가져온 것을 그 손에서 받으며 말하였다. “이보시오, 내가 그대의 말에 귀 기울여 그대의 청을 들어주었으니,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시오.”
36 아비가일이 나발에게 돌아와 보니, 나발은 집에서 임금이나 차릴 만한 잔치를 벌여 놓고, 흥에 겨워 취할 대로 취해 있었다. 아비가일은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크건 작건 그 일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다.
37 아침에 나발이 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아내가 나발에게 그동안의 일을 알려 주었다. 그러자 나발은 심장이 멎으면서 돌처럼 굳어 버렸다.
38 열흘쯤 지나서 주님께서 나발을 치시니, 그가 죽었다.
39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내가 나발에게서 받은 모욕을 갚아 주시고, 당신 종이 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아 주셨다. 게다가 주님께서는 나발이 자기의 악을 되받게 하셨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 뜻을 전하였다.
40 다윗의 부하들이 카르멜에 있는 아비가일을 찾아 가서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 어르신께서 부인을 아내로 삼으시려고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41 아비가일은 일어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한 다음, “이 종은 나리 부하들의 발을 씻어 주는 계집종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2 아비가일은 서둘러 일어나 나귀에 올랐다. 그의 여종 다섯도 함께 따라나섰다. 이렇게 아비가일은 다윗의 심부름꾼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43 다윗은 이미 이즈르엘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았기 때문에, 두 아내를 거느리게 되었다.
44 사울은 다윗의 아내인 자기 딸 미칼을 갈림 출신 라이스의 아들 팔티에게 주었다.
26장
다윗이 사울을 다시 살려 주다
1 지프 사람들이 기브아에 있는 사울에게 가서 말하였다. “다윗이 여시몬 맞은쪽 하킬라 언덕에 숨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2 사울은 곧 이스라엘에서 뽑은 부하 삼천 명을 거느리고 지프 광야에 있는 다윗을 찾아 그곳으로 내려가,
3 여시몬 맞은쪽 하킬라 언덕 길가에 진을 쳤다. 다윗은 광야에서 지내고 있다가, 사울이 자기 뒤를 쫓아 광야로 온 것을 알게 되었다.
4 다윗은 정찰대를 보내어 사울이 분명히 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다음,
5 일어나 사울이 진을 친 곳으로 갔다. 그는 사울과, 네르의 아들인 군대의 장수 아브네르가 자고 있는 곳을 보아 두었다. 사울은 진지 한가운데에서 자고, 그의 주변에는 군사들이 야영하고 있었다.
6 다윗은 히타이트 사람 아히멜렉과, 요압의 동기며 츠루야의 아들인 아비사이에게, “누가 나와 함께 사울의 진영으로 내려가겠느냐?” 하고 물었다. “제가 장군님을 따라 내려가겠습니다.” 하고 아비사이가 대답하였다.
7 다윗은 아비사이를 데리고 밤을 타서 군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때 사울은 진지 안에서 머리맡 땅바닥에 창을 꽂아 놓고 잠들어 있었다. 아브네르와 그의 군사들도 사울을 둘러싸고 잠들어 있었다.
8 아비사이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오늘 원수를 장군님 손에 넘기셨으니, 이 창으로 그를 단번에 땅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습니다.”
9 그러나 다윗이 아비사이를 타일렀다. “그분을 해쳐서는 안 된다. 누가 감히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고도 벌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
10 다윗은 다시 말을 이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하는데, 주님께서 그분을 치실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자기 때가 되어서 돌아가시거나 싸움터에 내려가 사라지실 것이다.
11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니 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가자.”
12 다윗은 사울의 머리맡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왔다. 주님께서 그들 위에 깊은 잠을 쏟으시어 그들이 모두 잠들었기 때문에, 다윗을 본 사람도 알아채거나 잠을 깬 사람도 없었다.
13 다윗은 맞은쪽으로 건너가 상대와 거리를 멀리 두고 산꼭대기에 서서,
14 군대를 향하여 네르의 아들 아브네르에게 소리쳤다. “아브네르야, 대답하지 못하겠느냐?” 아브네르가 “임금님을 부르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하며 대꾸하자,
15 다윗이 아브네르를 꾸짖었다. “너는 대장부가 아니냐? 이스라엘에 너만 한 자가 또 어디 있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이쪽 군사 하나가 너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해치려고 들어갔는데도, 너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지켜 드리지 못하였느냐?
16 너는 이번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하는데, 너희는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너희 주군을 지켜 드리지 못하였으니 죽어 마땅하다. 그분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병이 어디 있는지 당장 찾아보아라.”
17 사울이 다윗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물었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다윗은 “제 목소리입니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하고 대답하였다.
18 그가 다시 말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주군께서는 이 종을 뒤쫓으십니까? 제가 무슨 짓을 했단 말입니까? 제 손으로 지은 죄악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19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는 이제 이 종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만일 주님께서 임금님을 부추기시어 저를 치시려는 것이라면, 저는 기꺼이 그분께 바치는 예물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그렇게 하였다면, 그들은 주님 앞에서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제가 주님의 상속 재산을 더 이상 받아 누리지 못하도록,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라.’ 하면서, 그들이 오늘 저를 쫓아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 그러니 이제 제가 주님 앞에서 멀리 떨어진 채, 땅에 피를 흘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스라엘 임금님께서 정녕 산에 있는 자고새를 뒤쫓듯이, 벼룩 한 마리를 찾아 나서셨으니 말입니다.”
21 그러자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내가 잘못했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너라. 네가 오늘 내 목숨을 소중하게 보아 주었으니, 내가 다시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 내가 정말 어리석은 짓을 하여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22 다윗이 응답하였다. “여기 임금님의 창이 있습니다. 젊은이 하나가 건너와 가져가게 하십시오.
23 주님은 누구에게나 그 의로움과 진실을 되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지만, 저는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24 이렇게 제가 오늘 임금님의 목숨을 귀중하게 보아 드렸으니, 주님께서도 제 목숨을 귀중하게 보아 주시어 온갖 재앙에서 건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25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 다윗아, 복을 받아라. 너는 하고자 하는 일을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자기 갈 길을 가고, 사울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27장
다윗이 다시 필리스티아로 망명하다
1 다윗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이러다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망할 것이다.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으로 가 목숨을 건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사울은 나를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만 찾다가 마침내 단념하고 말겠지. 그러면 나는 그 손에서 목숨을 건지게 될 것이다.’
2 다윗은 일어나 자기를 따르는 부하 육백 명과 함께 갓 임금, 마옥의 아들 아키스에게 넘어갔다.
3 이렇게 하여 다윗과 그 부하들은 저마다 가족을 데리고, 갓에 있는 아키스와 더불어 살게 되었다. 다윗이 거느리고 간 두 아내는 이즈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카르멜 여자 아비가일이었다.
4 사울은 다윗이 갓으로 달아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는 그를 찾지 않았다.
5 다윗이 아키스에게 청하였다. “제가 임금님 눈에 드신다면, 지방 성읍들 가운데 한 곳을 저에게 주시어 거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제가 어찌 왕도에서 임금님과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6 아키스는 그날로 치클락을 다윗에게 주었다. 그리하여 치클락이 오늘날까지 유다 임금들의 차지가 된 것이다.
7 다윗이 필리스티아인들의 지방에서 산 기간은 일 년 사 개월이었다.
8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올라가 그수르족과 게레즈족과 아말렉족을 습격하였다. 그들은 텔람에서 수르를 거쳐 이집트 땅에 이르는 지역의 주민들이었다.
9 다윗이 그 지역을 칠 때는 남자든 여자든 아무도 살려 두지 않았다. 그런 다음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옷가지들을 빼앗아 아키스에게 돌아오곤 하였다.
10 아키스가 “오늘은 누구를 털었소?” 하고 물으면, 다윗은 “유다의 네겝입니다.” 하거나 “여라흐므엘족의 네겝입니다.” 또는 “카인족의 네겝입니다.” 하고 대답하곤 하였다.
11 다윗은 “저들이 우리를 두고 ‘다윗이 이러저러한 일을 하였다.’고 말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 하며, 남자든 여자든 모두 죽이고 아무도 갓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다윗은 필리스티아인들의 지방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내내 이렇게 하였다.
12 그러나 아키스는 “다윗이 제 백성 이스라엘에게 미움을 사서 이제는 영영 내 종이 되겠구나.” 하며 다윗을 믿었다.
28장
사울이 점쟁이를 찾아가다
1 그 무렵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전투에 필요한 부대를 소집하였다. 아키스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와 함께 출전하게 될 터이니 그리 아시오.”
2 다윗이 아키스에게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이 종이 무엇을 할는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아키스는 다윗에게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그대를 평생 나의 경호원으로 삼겠소.” 하고 말하였다.
3 사무엘은 이미 죽어, 온 이스라엘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운데 고향 라마에 묻혔다. 한편 사울은 영매와 점쟁이들을 나라에서 몰아내었다.
4 필리스티아인들이 수넴에 모여 와 진을 치자, 사울도 온 이스라엘군을 모아 길보아에 진을 쳤다.
5 사울은 필리스티아인들의 진영을 보고 두려워서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6 그래서 사울은 주님께 여쭈어 보았으나, 주님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를 통해서도 대답해 주시지 않았다.
7 그리하여 사울은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혼백을 불러 올리는 여자를 하나 찾아내어라. 내가 가서 그 여자에게 물어봐야겠다." 신하들이 사울에게 "엔 도르에 혼백을 불러 올리는 여자가 하나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8 사울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옷을 갈아입고는, 부하 둘을 데리고 밤에 그 여자에게 가서, "나를 위해 혼백을 불러 점을 쳐 주고, 내가 말하는 망령을 불러 올려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9 그 여자가 사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사울이 이 나라에서 영매와 점쟁이들을 없애 버린 사실을 잘 아시겠지요. 그런데 어쩌자고 당신은 나의 목에 올가미를 씌워, 나를 죽이려 하시오?”
10 사울은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이 일로 그대가 벌을 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오.”
11 그러자 여인이 "누구를 불러 올릴까요?" 하고 물었다. 그가 "사무엘을 불러 올려 주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12 그 여자는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를 지르며 사울에게 따졌다. “어찌하여 저를 속이셨습니까? 당신은 사울 임금님이 아니십니까?”
13 임금이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무엇이 보이느냐?” 그 여자가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땅에서 신령이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14 사울이 다시 그 여자에게 “어떤 모습이냐?” 하고 묻자, “겉옷을 휘감은 노인이 올라옵니다.” 하고 그 여자가 대답하였다.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것을 알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15 사무엘이 사울에게 물었다. "왜 나를 불러 올려 귀찮게 하느냐?" 사울이 대답하였다. "저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이 저를 치고 있는데, 하느님께서는 저를 떠나셨는지 예언자들을 통해서도, 꿈으로도 저에게 더 이상 대답해 주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주십사고 어르신을 부른 것입니다."
16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미 너를 떠나 네 원수가 되셨는데 어쩌자고 나에게 묻느냐?
17 주님께서는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그대로 너에게 하시어, 이미 이 나라를 네 손에서 빼앗아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다.
18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분의 타오르는 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않았다. 주님께서 오늘 너에게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9 주님께서는 너와 더불어 이스라엘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 넘기시어, 내일이면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진영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 넘기실 것이다.”
20 그러자 사울은 곧바로 땅바닥에 벌렁 나가떨어졌다. 사무엘의 말에 몹시 겁을 먹은 데다, 밤낮으로 온종일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여 기운이 없었던 것이다.
21 그 여자가 사울에게 다가와 그가 몹시 놀란 것을 보고 간청하였다. “보십시오, 이 여종은 임금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저에게 이르신 그대로 임금님의 말씀을 목숨을 걸고 따랐습니다.
22 그러니 이제 임금님께서도 이 여종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께 음식을 좀 차려 드릴 터이니 잡수십시오. 그래야 임금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기운을 차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23 사울은 “먹지 않겠다!” 하면서 거절하였으나, 신하들이 그 여자와 함께 억지로 권하자, 그들의 말을 들어 땅바닥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았다.
24 마침 그 여자 집에는 살진 송아지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여자는 서둘러 그것을 잡았다. 그리고 밀가루를 가져다가 누룩을 넣지 않고 반죽하여 빵을 구워서,
25 사울과 그의 신하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은 그것을 먹고 일어나 그 밤으로 길을 떠났다.
29장
다윗이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배척당하다
1 필리스티아인들은 모든 진영을 아펙에 집결시키고, 이스라엘은 이즈르엘에 있는 샘가에 진을 쳤다.
2 필리스티아 통치자들은 수백 명씩, 또는 수천 명씩 거느리고 나아갔고, 다윗과 그 부하들은 아키스와 함께 뒤에서 나아갔다.
3 그런데 필리스티아 제후들이 “이 히브리인들은 누구요?” 하고 물었다. 아키스가 필리스티아 제후들에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 임금 사울의 신하였던 다윗이지 않소? 그가 나와 함께 지낸 지 이미 한두 해가 되었지만, 나에게 망명해 온 날부터 이날까지 나는 그에게서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소.”
4 그러나 필리스티아 제후들은 아키스에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그 사람을 돌려보내시오. 그는 임금께서 정해 준 곳으로 돌아가야 하오. 그가 싸움터에서 우리의 적대자가 될지도 모르니, 우리와 함께 싸움터로 내려갈 수는 없소. 이자가 무엇으로 제 주군의 환심을 사겠소? 여기 있는 군사들의 머리를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니겠소?
5 그가 바로 사람들이 춤을 추며 ‘사울은 수천을 치셨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하고 노래하던 그 다윗이 아니오?”
6 그러자 아키스는 다윗을 불러 말하였다.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하는데, 그대는 올곧은 사람이오. 그대가 나에게 온 날부터 이날까지 나는 그대에게서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대가 나와 함께 출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소. 그러나 다른 통치자들 눈에는 그대가 좋게 보이지 않는가 보오.
7 그러니 이제 평안히 돌아가시오. 필리스티아의 통치자들 눈에 거슬리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8 다윗이 아키스에게 항의하였다. “제가 무엇을 했다는 말입니까? 임금님 앞에 나아온 날부터 이날까지 이 종에게 무슨 잘못이 있기에,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싸우러 나가지 못하게 하십니까?”
9 아키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내 눈에는 그대가 하느님의 천사처럼 좋은 사람이오. 그 사실을 나는 알고 있소. 그러나 필리스티아 제후들이 ‘그가 우리와 함께 싸우러 나가면 안 되오.’ 하고 말하였소.
10 그러니 그대는 그대와 함께 온 옛 주군의 부하들과 더불어 아침 일찍 일어나시오. 아침 일찍 일어나 동이 트는 대로 길을 떠나시오.”
11 그리하여 다윗과 부하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필리스티아인들은 이즈르엘로 올라갔다.
30장
다윗이 아말렉을 치다
1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사흘 만에 치클락에 이르렀는데, 그때는 아말렉족이 네겝과 치클락을 습격한 뒤였다. 아말렉족은 치클락을 쳐 불을 지르고는,
2 거기에 있던 여자들을 비롯하여 어린이와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사로잡아, 하나도 죽이지 않고 제 길로 끌고 갔다.
3 다윗과 부하들이 성읍에 이르러 보니, 성읍은 불타 버리고 그들의 아내와 아들딸들은 이미 사로잡혀 가고 없었다.
4 다윗과 그의 수하 군사들은 더 이상 울 기운조차 없을 때까지 목 놓아 울었다.
5 다윗의 두 아내 이즈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카르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혀 갔다.
6 다윗은 큰 곤경에 빠졌다. 모든 군사가 저마다 아들딸을 잃고 마음이 쓰라려, 다윗에게 돌을 던져 죽이자고 수군거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주 자기의 하느님 덕분에 힘을 얻었다.
7 다윗은 아히멜렉의 아들 에브야타르 사제에게, “에폿을 나에게 가져오시오.” 하였다. 에브야타르가 에폿을 다윗에게 가져오자,
8 다윗이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이 강도떼를 쫓아가면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셨다. “쫓아가거라. 반드시 따라잡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
9 다윗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부하 육백 명을 이끌고 나섰다. 브소르 개울에 다다랐을 때 뒤에 처지는 이들은 거기에 남겨 두었다.
10 지쳐서 브소르 개울을 건너지 못하는 부하 이백 명은 그곳에 남겨 두고, 다윗은 부하 사백 명만 데리고 계속 쫓아갔다.
11 그러다가 벌판에서 어떤 이집트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부하들이 그를 다윗에게 데려왔다. 그들은 그에게 빵을 주어 먹게 하고 물도 마시게 하였다.
12 또 말린 무화과 과자 한 조각과 건포도 두 뭉치도 주었다. 이것을 먹고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사흘 밤낮을 빵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했던 것이다.
13 다윗이 그에게 “너는 누구네 집 사람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는 이집트 아이로서 어떤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이 들자 사흘 전에 주인이 저를 버렸습니다.
14 우리는 크렛족의 네겝과 유다 지방과 칼렙의 네겝을 습격하고, 치클락을 불태웠습니다.”
15 다윗이 그에게 “네가 나를 강도떼에게 데려다 줄 수 있겠느냐?” 하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저를 죽이지 않으시고 제 주인의 손에 넘기지도 않으시겠다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에게 맹세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나리를 그 강도떼에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16 이렇게 하여 그가 다윗과 함께 내려가 보니, 과연 그들이 온 땅에 흩어져 있었다. 그들은 필리스티아인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빼앗아 온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온통 먹고 마시며 흥청거리고 있었다.
17 다윗은 새벽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그들을 쳐부수었는데, 그들 가운데 낙타를 타고 도망친 젊은이 사백 명을 빼고는 아무도 목숨을 구하지 못하였다.
18 그리하여 다윗은 아말렉족이 빼앗아 간 것을 모두 되찾고 두 아내도 되찾았다.
19 어린이와 늙은이, 아들딸들과 전리품, 그리고 그들에게 빼앗겼던 모든 물건들 가운데 잃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윗은 모든 것을 도로 찾아왔다.
20 양 떼와 소 떼도 모두 빼앗았다. 사람들은 앞에 서서 이 가축 떼를 몰고 오면서, “이것은 다윗의 전리품이다!” 하고 외쳤다.
21 다윗이, 너무 지쳐서 자기를 따르지 못하여 브소르 개울에 머무르게 했던 이백 명의 부하들에게 돌아오자, 그들이 나와서 다윗을 맞이하고 다윗과 함께 오는 사람들도 맞이하였다. 다윗도 그들에게 다가가 문안하였다.
22 그런데 다윗과 함께 갔던 이들 가운데 악하고 고약한 자들이 모두 이렇게 말하였다. “이들은 우리와 함께 가지 않았으니, 우리가 되찾은 전리품은 하나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저마다 제 아내와 자식들만 데리고 가게 합시다.”
23 그러나 다윗이 말렸다. “형제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넘겨주신 것을 가지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오. 그분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를 치러 온 강도떼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는데,
24 이 일을 두고 누가 그대들의 말을 들을 것 같소? 싸우러 나갔던 사람의 몫이나 뒤에 남아 물건을 지킨 사람의 몫이나 다 똑같아야 하오. 똑같이 나눠 가져야 하오.”
25 그날 이후 다윗은 이것을 이스라엘의 규정과 법규로 세웠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다.
26 다윗은 치클락에 돌아온 다음, 자기 친구인 유다 원로들에게 전리품의 일부를 보내면서 이렇게 전하였다. “여기 주님의 원수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 일부를 어르신들께 선물로 드립니다.”
27 그들은 베텔, 라못 네겝, 야티르,
28 아로에르, 시프못, 에스트모아,
29 라칼, 여라흐므엘족의 성읍들, 카인족의 성읍들,
30 호르마, 보르 아산, 아탁,
31 헤브론, 그리고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드나들던 모든 고장의 원로들이었다.
31장
사울이 죽다
1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어왔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도망치다가, 길보아 산에서 살해되어 쓰러졌다.
2 필리스티아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에게 바짝 따라붙어, 사울의 아들들인 요나탄과 아비나답과 말키수아를 쳐 죽였다.
3 사울 가까이에서 싸움이 격렬해졌다. 그러다가 적의 궁수들이 사울을 발견하였다. 사울은 그 궁수들에게 큰 부상을 입었다.
4 사울이 자기 무기병에게 명령하였다. “칼을 뽑아 나를 찔러라. 그러지 않으면 할례 받지 않은 저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희롱할 것이다.” 그러나 무기병은 너무 두려워서 찌르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울은 자기 칼을 세우고 그 위에 엎어졌다.
5 사울이 죽는 것을 보고, 무기병도 칼 위에 엎어져 그와 함께 죽었다.
6 그리하여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병을 비롯하여 사울의 모든 부하가 그날 다 함께 죽고 말았다.
7 이스라엘 군사들이 도망치고 사울과 그 아들들이 죽는 것을 보고, 골짜기 건너편과 요르단 건너편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러자 필리스티아인들이 거기에 와서 살았다.
8 그 이튿날 필리스티아인들이 와서 살해된 이들의 옷을 벗기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9 그들은 사울의 머리를 자르고 갑옷을 벗긴 다음, 필리스티아인들의 땅 곳곳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저희 우상들의 신전과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10 그러고 나서 그들은 그의 갑옷을 아스타롯 신전에 보관하고, 시체는 벳 산 성벽에 매달아 놓았다.
11 야베스 길앗의 주민들은 필리스티아인들이 사울에게 한 일을 전해 들었다.
12 그러자 그곳의 용사들이 모두 나섰다. 그들은 밤새도록 걸어가서, 사울의 주검과 그 아들들의 주검을 벳 산 성벽에서 내려다가, 야베스로 돌아와 거기에서 불태웠다.
13 그다음 그들은 그 뼈를 추려 야베스에 있는 에셀 나무 밑에 묻고, 이레 동안 단식하였다
.
사무엘 하
1장
다윗이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다
1 사울이 죽은 뒤에, 다윗은 아말렉을 쳐부수고 돌아와 치클락에서 이틀을 묵었다.
2 사흘째 되는 날, 어떤 사람이 옷은 찢어지고 머리에는 흙이 묻은 채 사울의 진영에서 찾아왔다. 그가 다윗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자,
3 다윗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물었다. 그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다윗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서 말해 보아라.” 하자, 그가 대답하였다. “싸움터에서 군사들이 달아났습니다. 또 많은 군사가 쓰러져 죽었는데, 사울 임금님과 요나탄 왕자님도 돌아가셨습니다.”
5 소식을 전해 준 젊은이에게 다윗이, “사울 임금님과 요나탄 왕자님도 돌아가신 줄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고 물었다.
6 그러자 소식을 전해 준 젊은이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갔다가 사울 임금님께서 창에 몸을 기대고 서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병거와 기병들이 그분을 바짝 뒤쫓고 있었습니다.
7 그분은 뒤돌아보시다가 저를 발견하고 부르셨습니다. 제가 ‘예!’ 하고 대답하니,
8 임금님께서 저에게 ‘너는 누구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아말렉 사람입니다.’ 하자,
9 임금님께서 저에게 ‘내 곁으로 와서 나를 죽여 다오. 내게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으니 괴로워 견딜 수가 없구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0 제가 보기에도 그분께서는 쓰러지신 뒤에 다시 살아나실 것 같지 않아, 그분 곁으로 가서 그분을 돌아가시게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머리에 쓰신 왕관과 팔에 끼신 팔찌를 벗겨 여기 나리께 가져왔습니다.”
11 그러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12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 그리고 주님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이 칼에 맞아 쓰러진 것을 애도하고 울며, 저녁때까지 단식하였다.
13 그러고 나서 다윗이 소식을 전해 준 그 젊은이에게 “너는 어디 사람이냐?” 하고 물었다. 그가 “저는 이방인의 자손으로 아말렉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14 다윗이 “네가 어쩌자고 겁도 없이 손을 뻗어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를 살해하였느냐?” 하고 말하였다.
15 그리고 다윗은 부하들 가운데 하나를 불러, “가까이 가서 그를 쳐라.” 하고 일렀다. 부하가 그를 치니 그가 죽었다.
16 다윗이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 “네 피가 네 머리 위로 돌아가는 것이다. 네 입이 너를 거슬러 ‘제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를 죽였습니다.’ 하고 증언하였기 때문이다.”
다윗이 사울과 요나탄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를 짓다
17 다윗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을 생각하며 이런 애가를 지어 부르고는,
18 ‘활의 노래’라 이름 붙여 유다의 자손들에게 가르치라고 일렀다. 그 애가는 ‘야사르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살해되어 언덕 위에 누워 있구나.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졌는가?
20 이 소식을 갓에 알리지 말고 아스클론 거리에 전하지 마라. 필리스티아인들의 딸들이 기뻐하고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딸들이 좋아 날뛸라.
21 길보아의 산들아 너희 위에, 그 비옥한 밭에 이슬도 비도 내리지 마라. 거기에서 용사들의 방패가 더럽혀지고 사울의 방패가 기름칠도 않은 채 버려졌다.
22 요나탄의 활은 살해된 자들의 피와 용사들의 굳기름을 묻히지 않고서는 돌아온 적이 없고 사울의 칼은 허공을 치고 되돌아온 적이 없었네.
23 사울과 요나탄은 살아 있을 때에도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더니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았구나. 그들은 독수리보다 날래고 사자보다 힘이 세었지.
24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생각하며 울어라. 그는 너희에게 장식 달린 진홍색 옷을 입혀 주고 너희 예복에 금붙이를 달아 주었다.
25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서 쓰러졌는가? 요나탄이 네 산 위에서 살해되다니!
26 나의 형 요나탄 형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오. 형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하였고 나에 대한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27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지고 무기들이 사라졌는가?”
2장
다윗이 유다의 임금이 되다
1 그 뒤 다윗이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유다의 성읍들 가운데 한 곳으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그에게 “올라가거라.” 하고 이르셨다. 다윗이 다시 “어디로 올라가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자, 그분께서는 “헤브론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2 그래서 다윗은 두 아내, 곧 이즈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카르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곳으로 올라갔다.
3 다윗은 함께 있던 부하들도 저마다 가족을 데리고 올라가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헤브론의 여러 성읍에 자리 잡았다.
4 그러자 유다 사람들이 와, 거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유다 집안의 임금으로 세웠다. 다윗은 사울의 장례를 치른 이들이 야베스 길앗 사람들이라는 소식을 듣고,
5 심부름꾼들을 야베스 길앗 사람들에게 보내어 이런 말을 전하게 하였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주군 사울에게 그토록 충성을 다하여 그의 장례를 치렀으니, 주님께 복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6 이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애와 성실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이런 일을 하였으니 나도 여러분에게 선을 베풀겠습니다.
7 여러분의 주군 사울이 세상을 떠났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용기를 내십시오. 유다 집안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았습니다.”
이스 보셋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다
8 사울 군대의 장수이며 네르의 아들인 아브네르가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갔다.
9 거기에서 그는 이스 보셋을 길앗과 아수르족과 이즈르엘, 에프라임과 벤야민과 온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10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 것은 마흔 살 때였다. 그는 두 해 동안 다스렸다. 한편, 유다 집안은 다윗을 따랐다.
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집안을 다스린 기간은 일곱 해 여섯 달이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기브온에서 싸우다
12 네르의 아들 아브네르와,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의 부하들은 마하나임에서 기브온으로 출정하였다.
13 츠루야의 아들 요압도 다윗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기브온 못 가에서 그들과 마주쳤는데, 한편은 못 이쪽에, 다른 편은 못 저쪽에 자리 잡았다.
14 그때 아브네르가 요압에게 “부하들을 내세워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하자.” 하니, 요압도 “좋다.” 하였다.
15 그래서 부하들이 일어나 정한 수대로 나갔는데,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 쪽에서 벤야민 사람 열둘,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에서 열둘이 나갔다.
16 그들은 저마다 상대방의 머리를 붙잡고 칼로 옆구리를 찔러 함께 쓰러졌다. 그래서 그곳을 ‘옆구리 벌판’이라고 하였는데, 그곳은 기브온에 있다.
17 그날 싸움은 매우 치열하였다. 아브네르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배하였다.
18 그곳에는 츠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사이와 아사엘이 있었는데, 아사엘은 들에 사는 영양처럼 달음박질이 빨랐다.
19 아사엘은 아브네르의 뒤를 쫓아,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몸을 돌리지 않고 아브네르의 뒤만 따라갔다.
20 아브네르가 뒤돌아보며, “네가 바로 아사엘이냐?” 하고 물으니, 아사엘이 “그렇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아브네르가 그에게 말하였다.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몸을 돌려 젊은이나 하나 잡고 그를 털어 가라.” 그러나 아사엘은 물러서지 않고 그의 뒤를 쫓았다.
22 아브네르가 다시 아사엘에게 “내 뒤는 그만 쫓고 물러서라. 내가 너를 쳐 땅바닥에 쓰러지게 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그렇게 되면 네 형 요압 앞에서 내가 어떻게 머리를 들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23 그래도 아사엘은 물러서기를 마다하였다. 그래서 아브네르는 창끝으로 그의 배를 찔렀다. 창이 등을 뚫고 나오자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아사엘이 쓰러져 죽은 자리에 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멈추어 섰다.
24 그러나 요압과 아비사이는 계속 아브네르의 뒤를 쫓아, 해가 질 무렵 기브온 광야로 가는 길가의 기아 맞은쪽에 있는 암마 언덕에 이르렀다.
25 그때 벤야민의 자손들은 아브네르의 뒤로 모여들어 한 무리가 되자, 어떤 언덕 꼭대기에 버티고 섰다.
26 아브네르가 요압을 불러서 말하였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칼부림을 해야 하겠느냐? 이러다가 결국 비참한 일이 일어나게 될 줄을 모른단 말이냐? 그대는 군사들에게 제 형제의 뒤를 그만 쫓고 돌아서라는 명령을 끝내 내리지 않을 셈인가?”
27 요압이 대답하였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는데, 그대가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내일 아침이 되어서야 군사들이 저마다 제 형제의 뒤를 쫓는 것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28 요압이 나팔을 부니, 모든 군사가 멈춰 서서 더 이상 이스라엘인들의 뒤를 쫓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았다.
29 그날 아브네르와 그의 부하들은 밤새도록 걸어 아라바를 지나 요르단을 건너고, 오전 내내 걸어 마하나임에 이르렀다.
30 요압도 아브네르의 뒤를 더 이상 쫓지 않고 돌아섰다. 그가 군사들을 모두 모아 보니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 열아홉 명과 아사엘이 비었다.
31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은 벤야민 사람과 아브네르의 부하를 삼백육십 명이나 쳐 죽였다.
32 그들은 아사엘을 메어다가 베들레헴에 있는 그의 아버지 무덤에 묻었다. 그런 다음 요압과 그의 부하들은 밤새도록 걸어서 동틀 무렵에 헤브론에 이르렀다.
3장
1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의 싸움은 오래 계속되었다. 다윗은 갈수록 강해졌고 사울 집안은 갈수록 약해졌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
2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다. 맏아들은 이즈르엘 여자 아히노암에게서 난 암논이다.
3 둘째는 카르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에게서 난 킬압이고, 셋째는 그수르 임금 탈마이의 딸 마아카의 아들 압살롬이다.
4 넷째는 하낏의 아들 아도니야이고, 다섯째는 아비탈의 아들 스파트야이다.
5 여섯째는 다윗의 부인 에글라에게서 난 이트르암이다. 이들이 헤브론에서 다윗이 낳은 아들들이다.
아브네르가 이스 보셋을 배반하다
6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에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아브네르는 사울 집안에서 점점 강해졌다.
7 사울에게는 아야의 딸 리츠파라는 후궁이 있었다. 어느 날 이스 보셋이 아브네르에게 “장군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후궁을 범하였소?” 하고 말하였다.
8 이스 보셋의 말에 아브네르가 몹시 화를 내며 대꾸하였다. “내가 유다의 개 대가리란 말이오? 오늘날까지 나는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안과 그분의 형제들과 친구들에게 충성을 다하였고, 당신을 다윗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소. 그런데도 당신은 오늘 한낱 여자에 관한 잘못을 들어 나를 꾸짖으시오?
9 주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일이 있는데 내가 그것을 하겠소. 그러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이 아브네르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실 것이오.
10 그 일은 이 나라를 사울 집안에서 거두어, 다윗의 왕좌를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 위에 세우는 것이오.”
11 이스 보셋은 아브네르를 두려워하여 그에게 다시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하였다.
12 아브네르는 다윗에게 자기 대신 사자를 보내어 이렇게 전하였다. “이 땅이 누구 것입니까? 저와 계약을 맺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의 편이 되어 온 이스라엘을 임금님께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13 다윗은 이렇게 응답하였다. “좋소. 그대와 계약을 맺겠소. 그 대신 내가 그대에게 한 가지만 요구하겠소. 그대가 나를 보러 올 때 사울의 딸 미칼을 데려오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대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오.”
14 한편 다윗은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렇게 전하였다. “나의 아내 미칼을 돌려주시오. 나는 필리스티아인들의 포피 백 개를 바치고 그 여자를 아내로 얻었소.”
15 이스 보셋이 사람을 보내어 미칼을 그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팔티엘에게서 데려왔다.
16 남편도 그 여자와 함께 떠나, 바후림까지 울면서 그 뒤를 따라왔다. 아브네르가 그에게 “그만 돌아가시오.” 하니, 그가 돌아섰다.
17 아브네르는 이미 이스라엘 원로들과 이렇게 약속한 바가 있었다. “여러분은 오래전부터 다윗을 여러분 위에 임금으로 모시려 하고 있습니다.
18 이제 그렇게 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의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그리고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겠다.’”
19 아브네르는 또 벤야민 사람들과도 이야기한 다음, 이스라엘과 온 벤야민 집안이 다 좋게 여긴 것을 다윗에게 알리러 헤브론으로 갔다.
20 아브네르가 부하 스무 명과 함께 헤브론으로 다윗을 찾아가자, 다윗은 아브네르와 그 부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21 아브네르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제가 일어나 가서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 온 이스라엘을 모아들여 그들이 임금님과 계약을 맺게 하겠으니, 임금님께서는 뜻하시는 대로 다스리십시오.” 다윗이 아브네르를 보내자 그가 무사히 떠나갔다.
요압이 아브네르를 죽이다
22 마침, 다윗의 부하들과 요압이 약탈하러 갔다가 많은 노획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때 아브네르는 헤브론에 다윗과 함께 있지 않았다. 다윗이 그를 보내어 그가 무사히 떠나갔기 때문이다.
23 요압과 그의 모든 군대가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요압에게 “네르의 아들 아브네르가 임금님께 왔는데, 임금님께서 그를 보내시어 그가 무사히 떠나갔습니다.” 하고 일러 주었다.
24 요압이 임금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도대체 임금님께서는 무슨 일을 그렇게 하셨습니까? 아브네르가 임금님께 왔다는데, 어찌하여 그를 보내어 그가 떠나가게 하셨습니까?
25 임금님도 아시다시피 네르의 아들 아브네르는 임금님을 속이려고 왔습니다. 임금님께서 들어오고 나가시는 것을 살피고, 또 임금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살피러 온 것입니다.”
26 요압은 다윗에게서 물러 나온 다음, 사람들을 보내어 아브네르의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그들은 아브네르를 시라 우물 가에서 데려왔는데, 다윗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27 아브네르가 헤브론으로 돌아오자, 요압은 그와 더불어 조용히 이야기하겠다고 그를 성문 안쪽으로 데려갔다. 그런 다음 요압은 거기에서 그의 배를 찔렀다. 아브네르는 이렇게 요압의 동생 아사엘의 피를 흘린 탓에 죽었다.
28 나중에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나와 나의 나라는 네르의 아들 아브네르의 피에 대하여 주님 앞에서 영원히 죄가 없다.
29 그 죄는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 집안 전체에 닥치리니, 요압의 집안에는 고름을 흘리는 자와 악성 피부병 환자, 물레질하는 자와 칼에 맞아 쓰러지는 자와 양식이 없는 자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30 요압과 아비사이 형제가 아브네르를 죽인 것은, 아브네르가 기브온 싸움터에서 저희 동생 아사엘을 죽였기 때문이다.
31 다윗이 요압과 그가 거느린 모든 군사에게 일렀다. “너희는 옷을 찢고 자루옷을 두른 채 아브네르의 주검 앞에서 애도하여라.” 그러고 나서 다윗 임금 자신도 상여 뒤를 따라갔다.
32 아브네르를 헤브론에 장사 지낸 다음, 아브네르의 무덤에서 임금이 소리 높여 우니 모든 군사도 울었다.
33 임금은 아브네르를 생각하며 이런 애가를 읊었다. “어리석은 자가 죽듯이 아브네르가 그렇게 죽어야 했더란 말이냐?
34 그대의 손이 묶이지도 않았고 그대의 발이 쇠고랑에 차이지도 않았는데 불의한 자들에게 맞아 쓰러지듯 쓰러졌구나.” 그리고 모든 군사가 다시 그를 생각하며 울었다.
35 때는 낮이었다. 군사들이 모두 와서 다윗에게 음식을 들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맹세하였다. “내가 만일 해가 떨어지기 전에 빵이나 그 밖의 어떤 것이라도 맛본다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실 것이다.”
36 군사들이 모두 이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보기에 좋았다. 임금이 하는 일은 무엇이나 모든 군사가 보기에 좋았던 것이다.
37 그리하여 그날 모든 군사와 온 이스라엘은, 네르의 아들 아브네르를 죽인 것이 임금의 뜻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38 임금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오늘 이스라엘에서 위대한 장수 하나가 쓰러진 것을 모르오?
39 내가 비록 기름부음 받은 임금이지만 오늘은 이렇게 약하구려. 츠루야의 아들들인 이 사람들이 나에게는 너무 벅차오. 주님께서 악을 저지르는 자에게 그 악에 따라 갚아 주시기를 바랄 뿐이오.”
4장
이스 보셋이 죽다
1 아브네르가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은 두 손에 맥이 빠졌다. 온 이스라엘도 혼란에 빠졌다.
2 사울의 아들에게는 약탈대 장수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이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레캅이었다. 그들은 벤야민의 자손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이었다. 사실 브에롯도 벤야민 지파에 속한 것으로 여겨졌다.
3 브에롯인들은 일찍이 기타임으로 달아나 오늘날까지 거기에 머물러 살게 된 것이다.
4 사울의 아들 요나탄에게는 다리를 저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의 나이가 다섯 살 되던 해, 이즈르엘에서 사울과 요나탄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유모가 그를 데리고 황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그가 떨어져서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므피보셋이다.
5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캅과 바아나가 뜨거운 한낮에 길을 떠나 이스 보셋의 궁에 이르렀다. 마침 이스 보셋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6 그들은 밀을 가지러 온 체하며 궁 안으로 들어가, 이스 보셋의 배를 찔렀다. 그리고 레캅과 그의 동생 바아나는 거기에서 빠져나왔다.
7 그들이 궁으로 들어갔을 때 이스 보셋은 침실에서 침상에 누워 자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를 쳐 죽인 다음에 그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나와서 밤새도록 아라바 길을 걸었다.
8 그들은 이스 보셋의 머리를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가지고 가서 임금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의 목숨을 노리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위하여 사울과 그의 후손에게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
9 그러나 다윗은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캅과 그의 동생 바아나에게 말하였다. “온갖 고난에서 나의 목숨을 건져 주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10 전에 어떤 자가 제 딴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줄로 여기며, ‘사울이 죽었습니다.’ 하고 나에게 알렸다. 그러나 나는 그 기쁜 소식의 대가로 그를 잡아 치클락에서 죽였다.
11 하물며 악한 자들이 자기 집 침상에서 자는 의로운 사람을 살해하였는데, 내가 어찌 그 피에 대한 책임을 너희 손에 묻지 않으며 이 땅에서 너희를 없애 버리지 않겠느냐?”
12 다윗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부하들은 그들을 죽인 다음 그들의 손과 발을 자르고 헤브론의 못가에 달아 매었다. 그러나 이스 보셋의 머리는 거두어 헤브론에 있는 아브네르의 무덤에 장사 지냈다.
5장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다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4 다윗은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
5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유다를 다스린 다음,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다
6 다윗 임금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족을 치려 하자,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거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7 그러나 다윗은 시온 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 성이다.
8 그날 다윗이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여부스족을 치려는 자는 지하 수로로 올라가, 이 다윗이 미워하는 저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을 쳐라.” 여기에서 “다리저는 이와 눈먼 이는 궁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 생겨났다.
9 다윗은 그 산성에 살면서, 그곳을 ‘다윗 성’이라고 하였다. 다윗은 밀로 안쪽으로 성곽을 둘러쌓았다.
10 다윗은 세력이 점점 커졌다.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11 티로 임금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단과 함께 향백나무와 목수와 석수들을 보내어, 다윗에게 궁을 지어 주게 하였다.
12 그리하여 다윗은 주님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튼튼히 세우시고,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자기 왕권을 높여 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
13 다윗은 헤브론을 떠나온 뒤에 예루살렘에서 후궁과 아내들을 더 얻었는데, 그들이 아들과 딸들을 더 낳아 주었다.
14 그가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은 삼무아, 소밥, 나탄, 솔로몬,
15 입하르, 엘리수아, 네펙, 야피아,
16 엘리사마, 엘야다, 엘리펠렛이다.
다윗이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워 이기다
17 필리스티아인들은 사람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이 다윗을 잡으려고 모두 올라오자, 다윗은 그 보고를 듣고 산성으로 내려갔다.
18 그때에 필리스티아인들은 이미 르파임 골짜기로 와서 그곳에 퍼져 있었다.
19 다윗이 주님께 “필리스티아인들을 치러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그들을 제 손에 넘겨주시겠습니까?” 하고 여쭈어 보자, 주님께서 다윗에게 이르셨다. “올라가거라. 내가 반드시 필리스티아인들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
20 그래서 다윗은 바알 프라침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그들을 쳐부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큰물로 무너뜨리듯, 주님께서는 내 앞에서 원수를 무너뜨리셨다.”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바알 프라침이라 하였다.
21 필리스티아인들이 그곳에 자기 우상들을 버리고 갔으므로,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그것들을 치웠다.
22 필리스티아인들이 다시 올라와 르파임 골짜기에 퍼졌다.
23 다윗이 주님께 여쭈어 보자, 주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바로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 발삼 향나무 숲 맞은쪽에서 그들에게 다가가거라.
24 발삼 향나무 꼭대기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거든, 그때 습격하여라. 주님이 앞장서 나가 필리스티아인들의 군대를 칠 것이다.”
25 다윗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여, 게바에서 게제르까지 필리스티아인들을 쳤다.
6장
다윗이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다
1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에서 정병 삼만 명을 모두 소집하였다.
2 다윗은 유다 바알라에서 하느님의 궤를 모셔 오려고,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그곳으로 떠났다. 그 궤는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불렸다.
3 그들은 하느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내갔다. 아비나답의 아들 우짜와 아흐요가 그 새 수레를 몰았다.
4 그들이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느님의 궤를 내갈 때, 아흐요가 궤 앞에서 걸었다.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집안은 주님 앞에서 방백나무로 만든 온갖 악기와 비파와 수금과 손북과 요령과 자바라에 맞추어 춤추었다.
6 그들이 나콘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였다. 소들이 비틀거리는 바람에 우짜가 손을 뻗어 하느님의 궤를 붙들었다.
7 그러자 우짜를 향하여 주님의 분노가 타올랐다. 하느님께서 그의 잘못 때문에 거기에서 그를 치시니, 그는 거기 하느님의 궤 곁에서 죽었다.
8 다윗은 주님께서 우짜를 그렇게 내리치신 일 때문에 화가 났다. 그래서 그는 그곳을 페레츠 우짜라고 하였는데, 그곳이 오늘날까지 그렇게 불린다.
9 그날 다윗은 주님을 두려워하며, “이래서야 어떻게 주님의 궤를 내가 있는 곳으로 옮겨 갈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하였다.
10 그래서 다윗은 주님의 궤를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가져가려 하지 않고, 갓 사람 오벳 에돔의 집으로 옮겼다.
11 주님의 궤가 갓 사람 오벳 에돔의 집에서 석 달을 머무르는 동안, 주님께서는 오벳 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 복을 내리셨다.
12 주님께서 하느님의 궤 때문에 오벳 에돔과 그의 모든 재산에 복을 내리셨다는 소식이 다윗 임금에게 전해지자, 다윗은 기뻐하며 오벳 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하느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갔다.
13 주님의 궤를 멘 이들이 여섯 걸음을 옮기자, 다윗은 황소와 살진 송아지를 제물로 바쳤다.
14 다윗은 아마포 에폿을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집안은 함성을 올리고 나팔을 불며, 주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갔다.
16 주님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갈 때, 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서 뛰며 춤추는 것을 사울의 딸 미칼이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17 그들은 다윗이 미리 쳐 둔 천막 안 제자리에 주님의 궤를 옮겨 놓았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주님 앞에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쳤다.
18 다윗은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다 바친 다음에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였다.
19 그는 온 백성에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 모든 군중에게 빵 과자 하나와 대추야자 과자 하나, 그리고 건포도 과자 한 뭉치씩을 나누어 주었다. 그 뒤 온 백성은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20 다윗이 자기 집안을 축복하러 돌아오니, 사울의 딸 미칼이 다윗을 맞이하러 나와서 말하였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 가운데 하나가 알몸을 드러내듯이, 자기 신하들의 여종들이 보는 앞에서 벗고 나서니, 그 모습이 참 볼 만하더군요!”
21 다윗이 미칼에게 대답하였다. “주님께서는 당신 아버지와 그 집안 대신 나를 뽑으시고, 나를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바로 그 주님 앞에서 내가 흥겨워한 것이오.
22 나는 이보다 더 자신을 낮추고, 내가 보기에도 천하게 될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말하는 저 여종들에게는 존경을 받게 될 것이오.”
23 그 뒤 사울의 딸 미칼에게는 죽는 날까지 아이가 없었다.
7장
나탄의 예언
1 임금이 자기 궁에 자리 잡고, 주님께서 그를 사방의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셨을 때이다.
2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
3 나탄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엇이든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4 그런데 그날 밤,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6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천막과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7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니던 그 모든 곳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한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간의 채찍으로 그를 징벌하겠다.
15 그러나 일찍이 사울에게서 내 자애를 거둔 것과는 달리, 그에게서는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17 나탄은 이 모든 말씀과 환시를 다윗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다윗의 감사 기도
18 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 나아가 앉아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
19 주 하느님, 당신 눈에는 이것도 부족하게 보이셨는지, 당신 종의 집안에 일어날 먼 장래의 일까지도 일러 주셨습니다. 주 하느님, 이 또한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20 이 다윗이 당신께 무슨 말씀을 더 드릴 수 있겠습니까? 주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알고 계십니다.
21 당신께서 이 위대한 일을 모두 이루시고 그것을 당신 종에게 알려 주신 것은, 당신의 말씀 때문이며 또 그것은 당신의 뜻이었습니다.
22 그러므로 주 하느님, 당신께서는 위대하시고 당신 같으신 분은 없습니다. 저희 귀로 들어 온 그대로, 당신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습니다.
23 이 세상 어느 민족이 당신 백성 이스라엘과 같겠습니까? 하느님께서 그들을 찾아가 건져 내시어,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이름을 주셨습니다. 또한 당신께서는 이집트에서 손수 건져 내신 당신 백성 앞에서 다른 민족들과 그 신들을 몰아내시려고, 위대한 일과 무서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24 또한 당신을 위하여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당신의 백성으로 튼튼하게 하시고, 주님, 당신 친히 그들의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25 그러니 이제 주 하느님, 당신 종과 그 집안을 두고 하신 말씀을 영원히 변치 않게 하시고,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26 그러면 당신의 이름이 영원히 위대하게 되고, 사람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 종 다윗의 집안도 당신 앞에서 튼튼해질 것입니다.
27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당신 종의 귀를 열어 주시며, ‘내가 너에게서 한 집안을 세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종은 이런 기도를 당신께 드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28 이제 주 하느님, 당신은 하느님이시며 당신의 말씀은 참되십니다. 당신 종에게 이 좋은 일을 일러 주셨으니,
29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8장
다윗이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다
1 그 뒤에 다윗은 필리스티아인들을 쳐서 굴복시키고,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메텍 암마를 빼앗았다.
2 그는 또 모압을 치고 그들을 땅에 눕힌 다음 줄로 쟀다. 두 줄 길이 안에 든 사람들은 죽이고, 한 줄 길이 안에 든 사람들은 살려 주었다. 그러자 모압은 다윗의 신하가 되어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3 다윗은 르홉의 아들, 초바 임금 하닷에제르가 유프라테스 강 가에 자기 세력을 일으키러 갈 때 그를 쳐서,
4 기병 천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았다. 그러고 나서 병거 백 대를 끌 말만 남겨 놓고, 나머지 말은 모두 뒷다리 힘줄을 끊어 버렸다.
5 다마스쿠스의 아람인들이 초바 임금 하닷에제르를 도우러 오자, 다윗은 아람인 이만 이천 명을 쳐 죽이고,
6 다마스쿠스의 아람인들 가운데에 수비대를 두었다. 그리하여 아람인들도 다윗의 신하가 되어 조공을 바쳤다. 주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도와주셨다.
7 다윗은 하닷에제르의 신하들이 가지고 있던 금 방패들을 거두어 예루살렘으로 가져왔다.
8 또한 다윗 임금은 하닷에제르의 성읍 베타와 베로타이에서 매우 많은 청동을 거두었다.
9 하맛 임금 토이는 다윗이 하닷에제르의 군대를 모두 쳐부수었다는 소식을 듣고,
10 자기 아들 요람을 다윗 임금에게 보내어 문안하고, 다윗이 하닷에제르와 싸워 그를 쳐부순 것을 축하하였다. 토이는 하닷에제르와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은 기물과 금 기물과 청동 기물들을 보내왔다.
11 그래서 다윗 임금은 이것들도 그가 정복한 모든 민족들에게서 거둔 은과 금과 함께 주님께 바쳤는데,
12 그것들은 아람과 모압과 암몬의 자손들과 필리스티아인들과 아말렉에게서 거둔 것과 초바 임금 르홉의 아들 하닷에제르의 전리품에서 떼어 놓은 것이었다.
13 다윗은 돌아오는 길에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인 만 팔천 명을 쳐 죽여 이름을 떨쳤다.
14 그는 에돔에도 수비대를 두었다. 에돔 전지역에 수비대를 두자 에돔 전체가 다윗의 신하가 되었다. 주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도와주셨다.
다윗의 관리들
15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모든 백성에게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였다.
16 츠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대 지휘관이었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팟은 기록관이었다.
17 아히툽의 아들 차독과 에브야타르의 아들 아히멜렉은 사제였고 스라야는 서기관이었다.
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크렛족과 펠렛족을 지휘하였다. 다윗의 아들들은 사제였다.
다윗 왕위의 계승
9장
다윗이 요나탄의 아들에게 호의를 베풀다
1 하루는 다윗이 물었다. “사울 집안에 아직 살아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탄을 기억하여 그에게 자애를 베풀고자 한다.”
2 마침 사울 집안에 치바라는 종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를 다윗에게 데려왔다. 임금이 “네가 치바냐?” 하고 물으니, 치바가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그러자 임금은 “사울 집안에 아직 살아남은 사람이 없느냐? 그에게 하느님의 자애를 베풀고자 한다.” 하고 말하였다. 치바가 임금에게 “요나탄의 아들이 하나 있는데, 두 다리를 접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임금이 치바에게 “그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묻자, “그는 로 드바르에 사는 암미엘의 아들 마키르의 집에 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5 다윗 임금은 사람을 보내어, 로 드바르에 사는 암미엘의 아들 마키르의 집에서 그를 데려왔다.
6 사울의 손자이며 요나탄의 아들인 므피보셋은 다윗에게 와서 엎드려 절하였다. 다윗이 “므피보셋아!” 하고 부르자, “예, 당신 종이 여기 있습니다.” 하고 므피보셋이 대답하였다.
7 다윗이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아버지 요나탄을 기억하여 너에게 자애를 베풀고자 한다. 너의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땅을 너에게 돌려주겠다. 그리고 너는 늘 내 식탁에서 음식을 먹어라.”
8 그러자 므피보셋이 절하며 말하였다. “당신 종이 무엇이기에 죽은 개와 같은 저를 보살펴 주십니까?”
9 임금이 사울의 시종 치바를 불러 말하였다. “내가 사울에게 속한 모든 것과 그의 집안에 속한 모든 것을 네 상전의 아들에게 주었으니,
10 너는 그를 위해서 네 자식들과 종들을 거느리고 그 밭을 갈고 거두어들여, 네 상전의 아들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마련하여라. 그러나 네 상전의 아들 므피보셋은 늘 나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것이다.” 치바에게는 아들 열다섯 명과 종 스무 명이 있었다.
11 치바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당신 종은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 이 종에게 분부하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므피보셋은 왕자들 가운데 하나처럼 다윗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었다.
12 므피보셋에게는 미카라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치바의 집에 사는 사람은 모두 므피보셋의 종이 되었다.
13 므피보셋은 예루살렘에서 살며 늘 임금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었다. 그는 두 다리를 절었다.
10장
다윗이 암몬과 아람을 쳐부수다
1 그 뒤에 암몬 자손들의 임금이 죽자, 그의 아들 하눈이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2 다윗은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나에게 자애를 베풀었듯이, 나도 그의 아들 하눈에게 자애를 베풀어야겠다.’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신하들을 보내어, 그에게 그의 아버지에 대한 조의를 표하고자 하였다.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들의 땅에 들어가자,
3 암몬 자손의 장수들이 그들의 주군 하눈에게 말하였다. “다윗이 조문 사절들을 보냈다 해서, 임금님께서는 그가 부왕께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보십니까? 이 성읍을 샅샅이 살피고 염탐하여 이곳을 뒤엎으려고, 다윗이 자기 신하들을 임금님께 보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4 그래서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턱수염을 절반씩 깎아 버리고, 예복도 엉덩이 부분까지 절반씩 잘라 낸 뒤에 돌려보냈다.
5 사람들이 이 사실을 다윗에게 보고하자, 임금은 그들이 심한 모욕을 당하였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그대들의 턱수염이 다 자랄 때까지 예리코에 머물러 있다가 돌아오시오.” 하고 말하였다.
6 암몬 자손들은 자기들이 다윗에게 미움을 사게 된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암몬 자손들은 사람을 보내어, 벳 르홉의 아람인들과 초바의 아람인 보병 이만 명, 천 명의 군사를 거느린 마아카 임금, 그리고 톱 사람 만 이천 명을 고용하였다.
7 다윗이 이 소식을 듣고 용사들로 이루어진 부대 전체를 요압과 함께 보냈다.
8 그러자 암몬 자손들이 밖으로 나와 성문 어귀에서 전열을 갖추고, 초바와 르홉의 아람인들, 톱 사람들, 그리고 마아카도 따로 들판에 전열을 갖추었다.
9 요압은 전선이 자신을 상대로 앞뒤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의 모든 정병 가운데 일부를 골라 아람인들에게 맞서 전열을 갖추게 하였다.
10 그리고 나머지 군사들은 동생 아비사이의 손에 맡겨, 암몬 자손들에게 맞서 전열을 갖추게 하였다.
11 그런 다음에 요압이 말하였다. “만일 아람인들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도와야 한다. 암몬 자손들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러 가겠다.
12 용기를 내어라. 우리 백성을 위해서, 우리 하느님의 성읍들을 위해서 용기를 내자. 주님께서는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이루실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요압과 그의 군대가 아람인들과 싸우러 나아가니, 아람인들은 요압 앞에서 도망쳤다.
14 아람인들이 도망치는 것을 본 암몬 자손들도 아비사이 앞에서 도망쳐 성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요압은 암몬 자손들과 싸우기를 그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15 아람인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에게 패배한 것을 보고 한데 모였다.
16 하닷에제르가 사람을 보내어 강 건너에 있는 아람인들을 출전시키니, 하닷에제르 군대의 장수 소박의 지휘 아래 그들이 헬람에 이르렀다.
17 이 소식을 들은 다윗도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여 요르단을 건너가서 헬람에 이르렀다. 그러자 아람인들이 다윗에게 맞서 전열을 갖추고 그와 싸웠다.
18 그러다가 아람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쳤다. 다윗은 아람인들의 병거병 칠백 명과 기병 사만 명을 죽였다. 그러고 나서 그가 군대의 장수 소박을 내리치니 소박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
19 하닷에제르를 따르던 모든 임금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에게 패배한 것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한 뒤에 이스라엘을 섬겼다. 그리고 아람인들은 두려워서 더 이상 암몬 자손들을 돕지 않았다.
11장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 세바를 차지하다
1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는데, 어떤 이가 “그 여자는 엘리암의 딸 밧 세바로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가 아닙니까?” 하였다.
4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왔다. 여인이 다윗에게 오자 다윗은 그 여인과 함께 잤는데, 여인은 부정한 기간이 끝나 자신을 정화한 다음이었다. 그 뒤 여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5 그런데 그 여인이 임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제가 임신하였습니다.” 하고 알렸다.
6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나에게 보내시오.” 하였다. 그래서 요압은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7 우리야가 다윗에게 오자, 그는 요압의 안부를 묻고 이어 군사들의 안부와 전선의 상황도 물었다.
8 그러고 나서 다윗은 우리야에게, “집으로 내려가 그대의 발을 씻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우리야가 왕궁에서 나오는데 임금의 선물이 그를 뒤따랐다.
9 그러나 우리야는 제 주군의 모든 부하들과 어울려 왕궁 문간에서 자고,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10 사람들이 다윗에게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보고하자, 다윗은 우리야에게 “그대는 먼 길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의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는가?” 하고 물었다.
11 우리야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계약 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초막에 머무르고, 제 상관 요압 장군님과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신하들이 땅바닥에서 야영하고 있는데, 제가 어찌 제 집에 내려가 먹고 마시며 제 아내와 함께 잘 수 있겠습니까? 살아 계신 임금님을 두고, 임금님의 목숨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12 그러자 다윗은 우리야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오늘도 여기 머물러라. 내일은 내가 그대를 돌려보내겠다.” 그래서 우리야는 그날도 예루살렘에 머물렀다. 그다음 날
13 다윗이 그를 다시 불렀다. 우리야는 다윗 앞에서 먹고 마셨는데, 다윗이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우리야는 밖으로 나가 제 주군의 부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4 다음 날 아침,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보냈다.
15 다윗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16 그리하여 요압은 성읍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보기에 강력한 적군이 있는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17 그러자 그 성읍 사람들이 나와 요압과 싸웠다. 군사들 가운데 다윗의 부하 몇 명이 쓰러지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
18 요압은 사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전쟁 상황을 모두 보고하였다.
19 요압은 전령에게 이렇게 일렀다. “네가 임금님께 전쟁 상황을 모두 보고하면,
20 임금님의 분노가 타올라 너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어쩌자고 성읍에 바짝 다가가 싸웠느냐? 성벽에서 그들이 활을 쏘아 댈 줄 몰랐단 말이냐?
21 여루빠알의 아들 아비멜렉을 누가 죽였느냐? 한낱 여인이 성벽 위에서 그의 머리 위로 맷돌 위짝을 떨어뜨려, 그를 테베에서 죽이지 않았더냐? 어찌하여 너희들은 성벽에 바짝 다가갔느냐?’ 그러면 너는 ‘임금님의 부하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하고 아뢰어라.”
22 전령이 와서 다윗에게 요압이 시킨 대로 다 보고하였다.
23 전령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 사람들이 저희보다 우세하였습니다. 그들이 저희에게 맞서 들판으로 나오기에, 그들을 추격하여 성문 입구까지 갔습니다.
24 그러자 궁수들이 성벽 위에서 임금님의 부하들에게 활을 쏘아 대어 부하 몇 명이 쓰러졌습니다. 임금님의 부하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25 다윗이 전령에게 말하였다. “너는 요압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칼이란 이쪽도 저쪽도 삼켜 버릴 수 있으니, 이 일을 나쁘게 여기지 말고, 그 성읍을 맹렬히 공격하여 그곳을 무너뜨리시오.’ 이런 말로 그를 격려하여라.”
26 우리야의 아내는 자기 남편 우리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 주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27 애도 기간이 끝나자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는데, 여인은 그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그러나 다윗이 한 짓이 주님의 눈에 거슬렸다
12장
나탄이 다윗을 꾸짖다
1 주님께서 나탄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나탄이 다윗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2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매우 많았으나,
3 가난한 이에게는 자기가 산 작은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는 이 암양을 길렀는데, 암양은 그의 집에서 자식들과 함께 자라면서, 그의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의 잔을 나누어 마시며 그의 품 안에서 자곤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이 암양이 딸과 같았습니다.
4 그런데 부자에게 길손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려고 자기 양과 소 가운데에서 하나를 잡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잡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대접하였습니다.”
5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하여 몹시 화를 내며 나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6 그는 그런 짓을 하고 동정심도 없었으니, 그 암양을 네 곱절로 갚아야 한다."
7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우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8 나는 너에게 네 주군의 집안을, 또 네 품에 주군의 아내들을 안겨 주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집안을 주었다. 그래도 적다면 이것저것 너에게 더 보태 주었을 것이다.
9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님이 보기에 악한 짓을 저질렀느냐? 너는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 죽이고 그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자손들의 칼로 죽였다.
10 그러므로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11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거슬러 너의 집안에서 재앙이 일어나게 하겠다. 네가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너의 아내들을 데려다 이웃에게 넘겨주리니, 저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너의 아내들과 잠자리를 같이할 것이다.
12 너는 그 짓을 은밀하게 하였지만, 나는 이 일을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앞에서, 그리고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할 것이다.’”
13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14 다만 임금님께서 이 일로 주님을 몹시 업신여기셨으니, 임금님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
15 그러고 나서 나탄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께서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아 준 아이를 치시니, 아이가 큰 병이 들었다.
다윗의 아들이 죽다
16 다윗은 그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호소하였다. 다윗은 단식하며 방에 와서도 바닥에 누워 밤을 지냈다.
17 그의 궁 원로들이 그의 곁에 서서 그를 바닥에서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는 마다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18 이레째 되는 날 아이가 죽었다. 다윗의 신하들은 아이가 죽었다고 그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왕자님이 살아 계실 때에도 우리가 그분께 말씀드리면 우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는데, 지금 우리가 어떻게 왕자님이 돌아가셨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소? 그분께서 해로운 일을 하실지도 모르오."
19 다윗은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윗은 신하들에게 “아이가 죽었소?” 하고 물었다. “예, 돌아가셨습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였다.
20 그러자 다윗은 바닥에서 일어나 목욕하고 몸에 기름을 바른 다음, 옷을 갈아입고 나서 주님의 집에 들어가 경배하였다. 그리고 자기 궁으로 돌아와 음식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들이 그에게 음식을 차려 오자 그것을 먹었다.
21 신하들이 그에게 여쭈었다. “임금님께서 어찌 이런 행동을 하십니까? 왕자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단식하고 우시더니, 이제 왕자님이 돌아가시자 일어나시어 음식을 드시니 말입니다.”
22 다윗이 말하였다. “아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내가 단식하고 운 것은, ‘주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 아이가 살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하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오.
23 그러나 지금 아이가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단식하겠소? 아이를 다시 데려 올 수라도 있다는 말이오? 내가 아이에게 갈 수는 있지만 아이가 나에게 돌아올 수는 없지 않소?”
솔로몬이 태어나다
24 다윗은 자기 아내 밧 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밧 세바가 아들을 낳자 다윗은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다. 주님께서 그 아이를 사랑하셨다.
25 주님께서는 예언자 나탄을 보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이라 하여 그의 이름을 여디드야라고 부르게 하셨다.
다윗이 라빠를 점령하다
26 요압은 암몬 자손들의 라빠를 공격하여 그 왕성을 점령하였다.
27 요압은 다윗에게 전령들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라빠를 공격하여 그 ‘물의 성’을 점령하였습니다.
28 이제 임금님께서는 나머지 군사들을 모아 그 성읍 앞에 진을 치고 그곳을 점령하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그 성읍을 점령해서 그곳이 제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29 다윗은 모든 군사를 모아 라빠로 가서 그 성읍을 공격하고 점령하였다.
30 그런 다음 그들 임금의 머리에서 왕관을 벗겨 왔는데, 그 무게가 금 한 탈렌트나 되었고 거기에는 값진 보석들이 박혀 있었다. 이제 그것은 다윗의 머리에 얹혀졌다. 다윗은 그 성읍을 털어 아주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나왔다.
31 그는 또 그곳의 백성을 데려다가 톱과 날카로운 쇠 연장과 쇠도끼 다루는 일을 맡기고, 그들에게 벽돌 만드는 일을 시켰다. 그는 암몬 자손들의 성읍마다 이렇게 하였다. 그러고 나서 다윗과 모든 군사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13장
암논과 타마르
1 그 뒤에 이런 일이 있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는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는데 이름은 타마르였다. 이 타마르를 다윗의 아들 암논이 사랑하였다.
2 암논은 제 누이 타마르 때문에 애를 태우다가 병이 나고 말았다. 타마르가 처녀인지라, 그에게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이 암논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3 암논에게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다윗의 형인 시므아의 아들로 이름은 여호나답이었다. 여호나답은 매우 영리한 자였다.
4 그가 암논에게 물었다. “왕자님, 무슨 일로 나날이 그렇게 야위어 가십니까? 저에게 그 까닭을 말씀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암논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 동생 압살롬의 누이 타마르를 사랑한다네.”
5 그러자 여호나답이 그에게 말하였다. “왕자님은 침상에 누워 아픈 척하십시오. 그러면 부왕께서 왕자님을 보러 오실 것입니다. 그때 그분께 ‘누이 타마르를 들여보내시어 저에게 음식을 먹이게 해 주십시오. 제가 볼 수 있도록 그 애가 제 눈앞에서 음식을 만들고, 그 애 손에서 제가 음식을 받아먹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리십시오.”
6 암논이 누워서 아픈 척하자 임금이 그를 보러 왔다. 암논이 임금에게 “누이 타마르를 들여보내시어, 그 애가 제 눈앞에서 과자 두 개를 만들고, 제가 그 애 손에서 받아먹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7 다윗이 타마르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어 일렀다. “네 오라비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어라.”
8 그래서 타마르가 자기 오빠 암논의 집으로 가 보니 그가 누워 있었다. 타마르는 밀가루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그의 눈앞에서 과자를 구웠다.
9 타마르가 번철을 들고 가 암논의 눈앞에 과자를 내놓았으나 그는 먹기를 마다하였다. 그러면서 암논은 “사람들을 모두 내게서 물러가게 하여라.” 하고 일렀다. 사람들이 모두 물러가자,
10 암논이 타마르에게 말하였다. “음식을 방 안으로 가져와, 내가 네 손에서 받아먹게 해 다오.” 타마르는 자기가 만든 과자를 들고 암논 오빠의 방으로 가져갔다.
11 타마르가 암논에게 먹을 것을 가까이 가져가니, 암논은 타마르를 끌어안으며 말하였다. “누이야, 이리 와서 나와 함께 눕자.”
12 그러자 타마르가 그에게 말하였다. “오라버니, 안 됩니다! 저를 욕보이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에서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추잡한 짓을 저지르지 마십시오.
13 제가 이 수치를 안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또한 오라버니는 이스라엘에서 추잡한 자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임금님께 청하십시오. 그분께서 저를 오라버니에게 주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4 그러나 암논은 타마르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타마르보다 힘이 셌기 때문에 강제로 타마르와 함께 잤다.
15 그런 다음 암논은 타마르가 지독히 미워졌는데, 타마르를 미워하는 마음이 전에 타마르를 사랑하던 마음보다 더 컸다. 그래서 암논은 타마르에게, “일어나 나가라!” 하였다.
16 그러자 타마르가 암논에게 말하였다. “안 됩니다! 저를 내쫓는 것은 조금 전에 제게 하신 행동보다 더 나쁜 짓입니다.” 그러나 암논은 타마르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17 시중드는 젊은이를 불러 “내 앞에서 이 여자를 밖으로 내쫓고 그 뒤에서 문을 걸어 잠가라!” 하고 일렀다.
18 타마르는 긴 겉옷을 입고 있었는데, 시집 안 간 공주들이 보통 그런 옷을 입었다. 암논의 시종은 타마르를 밖으로 내보내고 그 뒤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19 타마르는 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자기가 입고 있는 긴 겉옷을 찢었다. 그리고 머리에 손을 얹은 채 울부짖으며 계속 걸었다.
20 타마르의 오빠 압살롬이 타마르에게 말하였다. “네 오라비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렇다면 얘야, 지금은 입을 다물어라. 어떻든 그는 네 오빠이다. 이 일에 마음을 두지 마라.” 타마르는 제 오빠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냈다.
21 다윗 임금이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화를 내었다.
22 압살롬은 암논에게 좋다 나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 누이 타마르를 욕보인 일로 압살롬은 암논을 미워하였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다
23 두 해가 지났다. 에프라임 근처 바알 하초르에는 압살롬의 양털깎는 일꾼들이 있었다. 압살롬은 왕자들을 모두 그곳으로 초대하고,
24 다윗 임금에게도 가서 말하였다. “이번에 임금님의 이 종이 사람들을 불러 양털을 깎게 되었는데, 임금님께서도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이 종과 함께 내려가 주십시오.”
25 그러나 임금은 압살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다, 내 아들아. 우리가 다 내려가 너에게 짐이 되어서야 되겠느냐?” 압살롬이 계속 간청하였지만 그는 가려 하지 않고, 그 대신 복을 빌어 주었다.
26 그러자 압살롬이 “그러면 암논 형이라도 우리와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임금이 그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암논이 너와 함께 가야 하느냐?”
27 그래도 압살롬이 간청하자 임금은 암논과 모든 왕자를 압살롬과 함께 떠나보냈다.
28 압살롬은 부하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였다. “암논이 술로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내가 ‘암논을 쳐라.’ 하거든 그를 죽여라. 겁내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힘을 내어 용사답게 행동하여라.”
29 압살롬의 부하들은 그가 명령한 대로 암논에게 하였다. 그러자 왕자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노새에 올라타고 도망쳤다.
30 그들이 돌아오는 도중에, 압살롬이 왕자들을 모두 죽여 그들 가운데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졌다.
31 그러자 임금은 일어나 옷을 찢고 바닥에 누웠다. 그를 모시고 섰던 신하들도 모두 옷을 찢었다.
32 그때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여호나답이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그들이 젊은 왕자님들을 모두 살해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은 암논 왕자님 혼자만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암논 왕자님이 누이 타마르 공주님을 욕보이시던 날부터 이미 압살롬 왕자님이 작정하신 일입니다.
33 그러하오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는 ‘왕자들이 모두 죽었구나.’ 하시면서 이 일을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암논 왕자님 혼자만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34 그 사이에 압살롬은 달아났다. 한편 파수를 보던 병사가 눈을 들어 보니, 많은 사람이 산등성이에서 호로나임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35 여호나답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왕자님들이 오셨습니다. 이 종이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36 그가 막 이 말을 마쳤을 때, 왕자들이 도착하여 목 놓아 울었다. 임금과 신하들도 몹시 슬프게 울었다.
37 압살롬은 달아나 그수르 임금 암미훗의 아들 탈마이에게 가고, 다윗은 날마다 자기 아들을 생각하며 애도하였다.
압살롬이 돌아오다
38 압살롬은 달아나 그수르로 가서 세 해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39 암논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에서 벗어나자, 다윗 임금은 압살롬을 애타게 그리워하였다
.
14장
1 츠루야의 아들 요압은 임금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기우는 것을 알아차렸다.
2 그래서 요압은 트코아에 사람을 보내어, 거기에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불러다가 말하였다. “그대는 애도하는 여자 행세를 하시오.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도 말고, 죽은 이를 위하여 오랫동안 애도하는 여자인 체하시오.
3 그다음 임금님께 나아가 이런 말씀을 아뢰시오.” 그러고 나서 요압은 여인이 해야 할 말을 알려 주었다.
4 그 트코아 여인이 임금에게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한 다음, “임금님, 도와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5 임금이 그 여인에게 “무슨 일이냐?” 하고 묻자, 여인이 대답하였다. “사실 저는 남편을 여읜 과부입니다.
6 이 여종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들판에서 서로 싸우다가 말리는 이가 없어, 아들 하나가 다른 아들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7 그런데 이제 온 집안이 이 여종에게 맞서 일어나 말합니다. ‘제 동기를 죽인 자를 내놓아라. 그가 살해한 동기의 목숨 값으로 우리가 그를 죽여 상속자마저 없애 버리겠다.’ 이렇게 그들은 남은 불씨마저 꺼 버려, 이 땅 위에서 제 남편에게 이름도 자손도 남겨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8 그러자 임금이 여인에게 “집에 가 있어라. 내가 친히 너를 위해 명령을 내리겠다.” 하고 말하였다.
9 트코아 여인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이 죄는 저와 제 아버지 집안에 있지, 임금님과 임금님의 왕좌에는 없습니다.”
10 이에 임금이 일렀다. “누가 너에게 무어라 하거든 그자를 나에게 데려오너라. 그자가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다.”
11 여인이 또 “임금님께서 임금님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이 일을 기억하게 하시어, 피의 복수자가 살육을 그만두고 제 아들을 없애 버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한 올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12 여인이 또 “이 여종이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 한 말씀만 더 드리게 해 주십시오.” 하자, 임금이 “말해 보아라.” 하고 일렀다.
13 그래서 여인이 말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하느님 백성에게 해가 되는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임금님께서는 당신께 쫓겨난 이를 돌아오지 못하게 하셨으니, 그런 결정으로 임금님께서는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신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14 우리는 반드시 죽기 마련이니, 땅바닥에 쏟아져 다시 담을 수 없는 물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목숨을 거두지 않으시고, 쫓겨난 이를 당신에게서 아주 추방시키지는 않으실 계획을 마련하십니다.
15 제가 지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 이 말씀을 드리러 온 까닭은, 백성이 저를 두렵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신 여종은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임금님께 아뢰면 임금님께서는 당신 여종의 말대로 해 주실 것이다.
16 임금님께서 청을 들어 주시어, 하느님의 상속 재산에서 나와 내 아들을 함께 없애 버리려는 자의 손에서 이 여종을 구해 주실 것이다.’
17 이 여종은 또 이렇게도 생각하였습니다. ‘나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말씀이 나를 안심시켜 주실 것이다. 나의 주군이신 임금님은 하느님의 천사 같은 분으로, 선과 악을 판별해 주시는 분이시다.’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18 그러자 임금이 여인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묻는 말에 아무것도 숨기지 마라.” 이에 여인이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말씀하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19 임금이 “요압이 네 뒤에서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 아니냐?” 하고 묻자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살아 계신 임금님의 목숨을 두고 맹세하는데,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사실 임금님의 신하 요압이 시켰습니다. 이 종이 해야 할 말을 모두 알려 준 것도 그분입니다.
20 임금님의 신하 요압이 사정을 바꾸어 보려고 이 일을 꾸몄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우신 임금님께서는 하느님의 천사처럼 지혜로우시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21 임금은 요압을 불러 말하였다. “좋소. 이제 내가 그대 뜻대로 하겠소. 가서 그 어린 압살롬을 데려오시오.”
22 그러자 요압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며 임금에게 축복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오늘 이 종은 임금님께서 이 종의 뜻대로 해 주시는 것을 보고, 제가 임금님 눈에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3 요압은 일어나 그수르로 가서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다.
24 그러나 임금은 “그를 제집으로 돌아가게 하되, 내 얼굴은 보지 못하게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압살롬은 제집으로 돌아갔으나, 임금의 얼굴은 보지 못하였다.
다윗이 압살롬과 화해하다
25 온 이스라엘에서 압살롬만큼 잘생기고 그만큼 칭찬을 받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26 그는 머리가 무거워지면 해마다 연말에 머리카락을 자르곤 하였는데, 그가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서 그것을 달아 보면 왕궁 저울로 이백 세켈이나 나갔다.
27 압살롬에게는 아들 셋과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의 이름은 타마르였다. 타마르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28 압살롬은 예루살렘에서 두 해를 머물렀는데도 임금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29 그래서 압살롬은 요압을 임금에게 보내려고 그에게 사람을 보냈으나, 그가 압살롬에게 오려 하지 않았다. 압살롬이 두 번째로 사람을 보냈으나 역시 오려 하지 않았다.
30 그러자 압살롬은 자기 종들에게, “보다시피 보리를 심어 놓은 요압의 밭이 내 밭에 잇닿아 있다. 가서 거기에 불을 놓아라.” 하고 일렀다.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놓았다.
31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따졌다. “어찌하여 왕자님의 종들이 제 밭에 불을 놓았습니까?”
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장군에게 사람을 보내어 ‘좀 와 주시오.’ 하고 청하였소. 나는 장군을 임금님께 보내어 이렇게 청하려고 하였소. ‘무엇 때문에 제가 그수르에서 왔습니까? 차라리 제가 계속 그곳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제가 임금님의 얼굴을 뵙게 해 주십시오. 저에게 죄가 있다면 저를 죽여 주십시오.’ 하고 말이오.”
33 그리하여 요압이 임금에게 나아가 사정을 아뢰니 임금이 압살롬을 불렀다. 압살롬은 임금에게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그러자 임금은 압살롬에게 입을 맞추었다.
15장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다
1 그 뒤, 압살롬은 자기가 탈 병거와 말들을 마련하고, 자기 앞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쉰 명이나 거느렸다.
2 압살롬은 일찍 일어나 성문으로 난 길 옆에 서 있곤 하였다. 그러다가 고발할 일이 있는 사람이 임금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마다, 압살롬은 그를 불러 “그대는 어느 성읍에서 오시오?” 하고 물었다. 그가 “이 종은 이러저러한 이스라엘 지파에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3 압살롬이 그에게 말하였다. “듣고 보니 그대 말이 다 옳고 정당하오. 그러나 임금 곁에는 그대의 말을 들어 줄 자가 아무도 없소.”
4 그리고 압살롬은 이런 말도 하였다. “누가 나를 이 나라의 재판관으로 세워만 준다면, 고발하거나 재판할 일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찾아오고, 나는 그들에게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 줄 텐데!”
5 또 누가 그에게 가까이 와서 절할 때마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곤 하였다.
6 압살롬은 임금에게 재판을 청하러 가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7 네 해가 지나자 압살롬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제가 헤브론에 가서 주님께 한 서원을 채우게 해 주십시오.
8 이 종은 아람의 그수르에 머무를 때, ‘주님께서 저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면, 제가 주님께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하고 서원을 드렸습니다.”
9 임금이 그에게 “평안히 떠나라.” 하자, 그는 일어나 헤브론으로 떠났다.
10 그러나 압살롬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밀사들을 보내면서 이렇게 전하게 하였다. “나팔 소리를 듣거든 ‘압살롬이 헤브론의 임금이 되었다.’고 하시오.”
11 예루살렘에서는 이백 명이 초청을 받아 압살롬과 함께 떠났는데, 그들은 그저 따라가기만 했을 뿐 아무 영문도 몰랐다.
12 압살롬은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고문인 길로 사람 아히토펠도 길로 성읍에서 불러내었다. 그때 그는 희생 제물을 바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반란 세력이 점차 커지고 압살롬 편이 되는 백성이 점점 많아졌다.
다윗이 요르단으로 달아나다
13 전령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14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어서들 달아납시다.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 서둘러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서둘러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고, 칼날로 이 도성을 칠 것이오.”
15 임금의 신하들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이 종들은 저희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모두 따르겠습니다.”
16 임금은 그의 온 집안 사람을 데리고 걸어 나가고, 후궁 열 명은 궁을 지키도록 남겨 두었다.
17 임금이 온 백성을 데리고 걸어 나가다가 마지막 집 앞에서 멈추었다.
18 신하들이 모두 임금 곁을 지나가고, 모든 크렛 사람과 모든 펠렛 사람과 갓에서부터 그를 따르던 갓 사람 육백 명이 모두 임금 앞을 지나갔다.
19 그때 임금이 갓 사람 이타이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그대까지도 우리와 함께 가려고 하오? 그대는 외국인이고 그대의 나라에서 유배된 사람이니, 돌아가 다른 임금과 함께 지내시오.
20 그대가 온 것은 어제인데, 오늘 내가 그대에게 우리와 함께 가자고 할 수 있겠소? 더구나 나는 발길 닿는 대로 가야 할 처지요. 그러니 그대의 동족을 데리고 돌아가시오. 주님께서 그대에게 자애와 성실을 베풀어 주시기 바라오.”
21 그러나 이타이는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살아 계신 주님과 살아 계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두고 맹세하는데, 죽을 곳이든 살 곳이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 계시는 곳이면 어디나 이 종도 거기에 있겠습니다.”
22 다윗이 이타이에게 일렀다. “그러면 어서 지나가시오.” 갓 사람 이타이가 자기의 모든 부하와 자기에게 딸린 모든 아이와 함께 지나갔다.
23 이렇게 그 모든 사람이 지나갈 때 온 세상이 목 놓아 울었다. 임금이 키드론 시내를 건너고, 사람들도 모두 그곳을 건너 광야로 난 길을 향하였다.
24 마침 차독도 모든 레위인과 함께 하느님의 계약 궤를 모시고 나오다가 하느님의 궤를 내려놓자, 에브야타르도 올라와 사람들이 모두 도성에서 지나갈 때까지 거기 서 있었다.
25 그때 임금이 차독에게 일렀다. “하느님의 궤를 도성 안으로 도로 모셔 가시오. 내가 주님의 눈에 들면 그분께서 나를 돌아오게 하시어, 그 궤와 안치소를 보게 하실 것이오.
26 그러나 그분께서 ‘나는 네가 싫다.’ 하시면, 나로서는 그저 그분 보시기에 좋으실 대로 나에게 하시기를 바랄 뿐이오.”
27 임금이 또 차독 사제에게 말하였다. “이보시오, 그대는 도성으로 평안히 돌아가시오. 그대들은 두 아들, 곧 그대의 아들 아히마아츠와 에브야타르의 아들 요나탄도 데리고 가시오.
28 그대들이 나에게 소식을 보낼 때까지, 나는 광야의 길목에서 기다리겠으니 그리 아시오.”
29 차독과 에브야타르는 하느님의 궤를 예루살렘에 도로 모셔다 놓고 그곳에 머물렀다.
30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31 다윗은 “아히토펠이 압살롬의 반란 세력에 끼여 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 제발 아히토펠의 계획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32 다윗이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산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에렉 사람 후사이가 옷은 찢어지고 머리에는 흙이 묻은 채 다윗에게 마주 왔다.
33 다윗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나와 함께 떠나면 그대는 나에게 짐만 될 뿐이오.
34 그러나 그대가 도성으로 돌아가 압살롬에게 ‘임금님, 이제 저는 임금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전에는 제가 임금님 아버지의 종이었으나 지금은 임금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하고 말하면, 그대가 나를 위하여 아히토펠의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오.
35 그곳에는 차독 사제와 에브야타르 사제가 그대와 함께 있을 것 아니오? 그대가 왕궁에서 듣는 말은 무엇이나 다 차독 사제와 에브야타르 사제에게 알려 주시오.
36 또 거기에는 그들의 두 아들, 곧 차독의 아들 아히마아츠와 에브야타르의 아들 요나탄이 함께 있소. 그러니 그들을 시켜 그대가 들은 말을 모두 나에게 전해 주시오.”
37 그리하여 다윗의 벗 후사이는 도성으로 들어갔다. 그때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16장
다윗과 치바
1 다윗이 산꼭대기에서 조금 더 갔을 때, 마침 므피보셋의 종 치바가 안장 얹은 나귀 한 쌍에 빵 이백 덩이와 건포도 백 뭉치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부대를 싣고 그에게 마주 왔다.
2 임금이 치바에게 “웬일로 이것들을 가져오느냐?” 하고 묻자, 치바가 대답하였다. “이 나귀들은 임금님의 집안이 타실 것이고, 빵과 여름 과일은 임금님의 부하들이 먹을 것이며, 포도주는 광야에서 지친 이가 마실 것입니다.”
3 임금이 또 “네 주군의 아들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묻자, 치바가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지금 그분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에야 이스라엘 집안이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나에게 돌려줄 것이다.’ 하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4 임금이 치바에게 “므피보셋에게 딸린 것은 이제 다 네 것이다.” 하고 이르자, 치바가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임금님께 경배드립니다. 제가 임금님의 눈에 들기만 바랄 뿐입니다.”
다윗과 시므이
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 그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6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 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7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
8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 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너는 살인자다. 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9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이 길을 걷는 동안, 시므이는 다윗을 따라 산비탈을 걸으며 저주를 퍼붓고, 그에게 돌을 던지며 흙먼지를 뿌려 대었다.
14 임금과 그를 따르던 온 백성은 지친 몸으로 그곳에 도착하여 한숨을 돌렸다.
후사이가 압살롬에게 접근하다
15 압살롬과 이스라엘 온 백성이 예루살렘에 들어왔는데, 아히토펠도 압살롬과 함께 있었다.
16 다윗의 벗 에렉 사람 후사이가 압살롬에게 나아가, “임금님 만세! 임금님 만세!” 하고 외치자,
17 압살롬이 후사이에게 물었다. “이것이 그대의 벗에 대한 충성이오? 그대는 어찌하여 벗을 따라가지 않았소?”
18 후사이가 압살롬에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저는 주님과 이 백성과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뽑은 바로 그분께 속한 몸이니, 그분과 함께 머무르겠습니다.
19 그렇다면 제가 누구를 섬겨야 하겠습니까? 그분의 아드님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부왕을 섬겼듯이 이제는 임금님을 그렇게 모시겠습니다.”
20 압살롬이 아히토펠에게 물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의견을 내놓아 보시오.”
21 아히토펠이 압살롬에게 말하였다. “부왕이 궁을 지키라고 남겨 놓은 그분의 후궁들에게 드십시오. 임금님께서 부왕에게 미움 받을 일을 한 것을 온 이스라엘이 듣게 되면, 임금님을 따르는 모든 이가 손에 힘을 얻을 것입니다.”
22 그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천막을 쳐 주자, 압살롬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자기 아버지의 후궁들에게 들었다.
23 그 시절에 아히토펠이 내놓는 의견은 마치 하느님께 여쭈어 보고 얻은 말씀처럼 여겨졌다. 아히토펠의 모든 의견이 다윗에게도 압살롬에게도 그러하였다.
17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