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생(殺生)
서 기 원
1
나는 전쟁 중 둘의 생명을 죽였다. 두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둘이라고 한 까닭은, 그중 한 경우가 사람 아닌 소였기 때문이다.
허기야 짐승이나 곤충의 생명으로 치자면 닭의 목을 비튼 일이라든가 허다못해 무의식중 개미를 밟아 죽인 일쯤이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흔했을 이치이나, 지금껏 내 뇌리에 선명하게 박힌 영상(映像)은 나어린 ‘인민군’ 전사를 저격했을 때와 소를 죽였을 때뿐이다.
내가 새삼 샬살(殺生)한 과거를 돌이켜 씂습한 감상(感傷)과 더불어 참회 비슷한 심경에 잠기어 보려는 심사는 아니다. 그렇기는 하나 전쟁이 지난 십년 후에까지도 ‘사람을 죽이고’도 악운사납게 체포되지 않고 시정(市井) 어느 한구석에서 숨을 쉬고 있는 살인자의 의식으로부티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웬일일까?
나는 이제 그 사실들을 고백함으로써 마음의 울적한 부담을 조금이라도 털어 버리는 동시, 이상심리(異常心理)의 소유자처럼 한 가지 집념에 붙들리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 스스로 캐어보는 것으로, 혹시 어떤 치료의 효과를 보지 않을까 싶은 계산(計算)인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는 내가 소속했던 부대가 ‘인민군’과 중공군에게 포위를 당했을 때 일어났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서 적에게 포위된 우리 연대는 거의 일주일 동안이나 낮에는 포격과 밤이면 피리소리 꽹과리소리에 신경이 온통 마멸되다시피 지쳐버린 끝에 사생결단 남쪽고개로 뻗은 단 한줄기의 탈주로를 뚫고 후퇴할 작전을 세웠다. 2주일 동안이 이십년에 상당한대도 과장이 안 될 성싶었다.
적군이 산에서 내려오면서 포위망을 좁혀 우리 부대를 몰살할 결전을 꾀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적의 병력이 비교적 소수였던 탓으로, 지형의 이를 차지한 채 좀더 노리고 있던 까닭이 아닌가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짐작이 간다.
일선전투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설명 할 필요가 없겠지만 싸움이란 이겨 앞으로 나갈 때와 천세가 불리해서 뒤로 물러날 때와는 한편이 절로 싸울 힘이 솟는다고 한다면 한편은 싸우기 전에 지레 져버리는 분위기에 감싸이게 마련이어서, 더군다나 적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당분간 구원부대를 바랄 수 없는 궁지에 빠지고 보면 여간 군율이 엄하고 사기가 왕성한 군대가 아니고는 제대로 지휘 계통을 유지하지 못하는 법이다.
아무래도 나는 나의 개인적인 체험을 얘기하기 전에 일주일이나 포위망 속에서 비록 낮이면 아군전투기의 끊임없는 지상원호의 덕이 컸을망정 큰 파탄 없이 견디어 냈을 뿐 아니라 적진 돌파에 성공한 우리 부대의 자랑을 덧붙여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2
우리부대는 적의 포위 방을 뚫고 나지막한 고개 하나를 넘었지만 우리의 수난은 실상 적에게 갇혔던 때보다도 탈출에 성공한 뒤부터였다.
GMC 수십 대를 탱크의 구실삼아 앞장세우고 부대의 주력이 고개를 넘어서기까지 우리는 공군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야간 보병 전투에서는 대개 비행기의 지원이 별로 소용이 없는 까닭도 있었으나 한밤중에 조명탄이라도 턴지는 날이면 우리부대는 흡사 조명에 비친 무대 위에 나오는 꼴이 될 것이므로 아예 처음부터 비행기를 보내지 말도록 연락을 취했었다는 뒷 얘기이다.
그날 자정부티 동이 트기까지 나는 부대와 함께 산을 몇 겹이나 넘었는지 모른다. 우리부대와 함께라고 하기보다는 앞 뒤 우리 측 병사의 틈새에 끼어 외톨이가 되지 않고 휩쓸려 다녔을 따름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성싶다.
포소리와 소화기소리가 가라앉은 다음에도 나는 적이 나의 등뒤로 바싹 붙어오는 공포를 놓아 버리지 못했다. 공포심이란 정작 생명이 위태로운 고비를 지난 다음부티 또는 그처럼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생생하게 되살아 오르는 것인지도. 모루다.
나는 동쪽 산등성이로 뿌연 구름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깨닫게 될즈음 처음으로 내가 천우들과 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기 거무스름한 소나무 밭의 산마루턱엔 나밖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덜컥 겁을 먹었다. 허지만 몇 분 후 나는 우리부대와 헤어져 외톨이가 된 지금이 차라리 안전할는지도 모른다는 발상(發想)을 틀어쥔 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나를 깨우쳤다.
다른 전우들과 떼를 지어 산속을 헤매는 것보다 혼자서 남쪽을 향해 아군측으로 빠져나가는 편이 훨씬 적에게 발견될 위험이 적으리라 여기고 싶었던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온몸을 죄이는 고립감(孤立感)을 상쇄해 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골짜기를 흐르는 물로 배를 채우고 동쪽을 가늠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시장기와 졸음을 함께 느꼈지만 그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아쉬운 것인지 분간하지도 못한 채 다만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산다는 외골수의 상념 (想念)뿐이었다.
필경 굶주림과 피로가 겹친 나는 먹을 것을 찾기 앞서 짐을 자야 할 것 같은 막
우:l한 완단에 몸읕 내던첬다. 나는 나무가지 사이로 골짜기의 바위와 가느다란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중턱 어느 후미진 바위틈에 몸을 감추고 눈을 감았다. 잠시 나무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은 성싶다.
나는 눈을 뜨자 시계를 보았다. 세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침 열 시부티 다섯시간밖엔 자지 못한 셈이었다. 잠든 시간이 무척 짧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반대로 만 하루를 잠든 채로 이튿날 오후 네시인 것도 같은 도무지 믿음직스럽지 못한 느낌 속에서 어리둥절해 있었다.
나는 M1을 잡아 그걸 지팽이삼아 몸을 일으키려다가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나무가지 사이로 골짜기의 바위에 등을 기대고 있는 병사는 틀림없는 적이었다. 누비옷 같은 누린 군복을 눈여겨 살필 것도 없이 모자를 벗은 중머리가 또렷이 보였다.
적병은 소식 장총을 곁에 세워둔 채 다리를 뻗고 앉은 품이 몹시 피곤한 듯했다. 그는 내 시선 속에서 매우 부주의한 위지로 노출(露出)되어 있긴 했으나 이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산길이 좀더 높은 윗컨으로 통하고 있던만큼 그로서는 기껏 아늑한 휴식처를 차지한 셈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총을 잡아 배를 깔고 적병을 지켜보았다. 그는 배낭에서 두툼한 봉투 같은 것을 끄집어 내더니 무엇을 먹기 시작한다. 아마 건빵일 것이다. 만일 내가 그처럼 굶주려 허기지지 않았던들 조심스럽게 발자욱을 떼어 산마루를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쪽은 에누리 없이 나 혼자밖에 없었지만 그쪽은 아무래도 하나뿐이 아닐 것으로 판단해야 할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가 건빵을 먹는 동작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의 몫을 반쯤이라도 뺏어 먹을 수가 있다면 한 이틀 동안은 내 목숨을 부지할 것만 같은 욕심이 치솟았다.
그러나 나는 긴장된 눈매로 그의 입 언저리만 노려보고 있었다. 바위의 주변을 샅샅이 살폈으나 다른 인기척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가 과히 시장하지 않은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기보다는 꽤 여유 있는 태도로 건빵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 있어서는 이 골짜기에 그와 나 단 둘뿐이라고 확신할 수가 있었다.
나는 총을 겨누어 방아쇠에 손가락을 대었다. 그의 맹숭한 머리가 내 조준 속에 들어왔다. 총구를 내려서 가슴팍으로부터 서서히 위를 겨누어 올라간다. 가늘고 흰목읕 지나 옆얼굴 한가운데에 조준기의 중심이 들어맞는다. 허나 나는 좀더 주위를 살피기로 마음먹고 사방을 훑어본다.
아무도 없다. 바람소리뿐이다. 이 골짜기에서 한방쯤 소총 소리가 울린대도 그다지 냥패가 될 것 같지도 않은더…….
나는 건빵의 부피가 첨첨 줄어드는 것과 총소리를 두려워하는 겁이 묘하게 엇갈린 채 일초 일초를 초조하게 다져 보낸다.
앞으로 3분쯤 지나면 그는 그 건빵을 남김없이 먹어치울 것이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좀더 기다려 보는 편이 안전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열을 세는 동안만 참겠다. 열을 세면서 방아쇠를 당겨야겠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기까지 세자 그가 고개를 비스듬이 돌려 이쪽을 본다. 이쪽을 눈치 챈 것은 아니다. 입술이 붉다. 입에서 손가락을 떼자 붉은 입술 사이로 흰이가 엿보인다. 그 붉은 빛깔은 나를 멈추게 했다. 나는 그가 사람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 입술이 나의 메마른 감각을 자극하기까지 나는 그가 사람인 줄 몰랐다. 몰랐다고 해야 옳겠다. 하나의 물체로 착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먹이를 줏어대는 산짐승으로 알았던가?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잠시 고개를 떨구어 밑을 들여다본다. 나는 입을 비틀고 스스로 비웃는다. 개머리판을 새삼 겨드랑이에 바싹 붙이고 다시 그를 겨눈다.
나는 사격에는 자신이 있었다. 우리 대대에서 제일가논 솜씨였다. 사단대회에 출전해서 셋째를 했지만 첫 째를 차지할 행운이 못 되었을 뿐이니까.
조주기 속에 다시 그의 옆구리가 들어맞는다. 좀더 아래를 겨눈다. 그의 머리나 얼굴을 맞추고 싶지는 않다. 또 단숨에 고꾸라지도록 넓적다리 같은 맞아 신음하지 않도록 한방에 쓰러뜨려야 한다.
나의 MI은 그가 다시 손을 입으로 올려대었을 때 격발했다. 순간 그는 몸을 꿈틀하더니 아까처럼 느릿느릿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두번째로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흙더미가 허무러지듯 쓰러졌다.
나는 꽤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고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좀도둑처럼 골짜기를 내려갔다. 나는 그기 남긴 건빵봉지를 바지 호주머니 속에 쑤셔넣었다. 그리고 그의 배낭 속을 뒤졌다. 먹을 것이라곤 그 건빵밖엔 없었다. 그리고 그의 죽은 얼굴을 보았다. 입술은 검붉고 눈가장자리엔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있었다.
내가 쏘지 않았다! 내가 쏜 것이 아니다. 전쟁이 쏘았다. 전쟁이 쏜 것이다.
나는 그 현장에서 이렇게 중얼거린 기억은 없다. 다만 그처럼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에야 돌이켜 볼 뿐이다. 사실은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에야 아마 그랬을 성싶게 나 스스로를 다짐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3
나는 혼자서 후방으로 귀환한 까닭으로 한 달 동안이나 수용대대에 들어가 헌병대와 G2의 심사를 치루었다. 때로는 적의 포로와 다름없는 냉대를 받으면서도 나는 별로 원망하려 하지 않았다. 그건 병력을 정비하기까지 군대로선 당연한 과정이라 스스로 체념할 수 있었던 까닭이지만, 한편으론 어느 정도 나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그 적병의 앙갚음을 덜어볼 심산이 없지는 않은 듯한 것이다.
나는 다시 소총소대에 편입이 되어 전방으로 나가게 되었다. 한 소대 안에는 서너 명 구면이 있었으나 아무에게도 그 사건을 털어 놓지는 않았다. 그런 얘기를 흡사 대단한 고백처럼 늘어놓다가는 술안주도 될 수 없는 조롱거리로밖엔 받아들여지지 못할 전쟁의 생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두번째는 거듭 밝혀 두지만 사람이 아니라 소였다.
우리 사단은 처음 동부전선으로 배치되어 제대로 전개(展開)가 끝나기도 전에 중동부에서 일대 반격전으로 나갔던 아군이 적의 주력을 밀어 북으로 깊숙이 진출하게 되자, 이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급한 대로 전면공세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전쟁 귀신이 혹했는지 나는 장교 한 명과 사병 넷으로 짠 수색대에 전입되었다. 허기야 소대 안에서도 총을 잘 쏘고, 비교적 담이 크다고 인정되는 병사가 척후나 수색대로 뽑히는만큼 마땅히 영예스러운 일로 한층 분발해야 할 것 이었다.
그러나 나는 솔직이 말해서 몹시 겁을 먹었고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쟁터에서 무작정 도망치고 싶다든가, 후방으로 집으로 그리고 친구들한테로 달려가고 싶다든가 하는 흔히 있음직한 마음의 동요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내가 그 적병과 꼭 같은 위치에 놓여 어디서 누가 쏜지도 모르는 총알에 뚫려 죽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탓이라고나 할는지. 아뭏든 전선을 넘어 적을 찾아 헤매이는 수색대의 임무로하여 그만큼 그 숙명적인 처지로 굴러떨어질 것을 두려워했다고나 할는지.
수색대의 지휘자는 최소위라고 제2소대를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6.25 사변이 일어나기 전에 입대한 그는 사병 출신으로 소위로 현지 임관된 지 일 년도 못 되는 장교였다. 나는 제1소대원이었으므로 직속 부하는 아니었으나, 그의 성격이 가끔 변태스러우리만치 잔인하다는 얘기는 진작부터 듣고 있는 터였다.
먼저 우익(右翼)에 큰 구멍이 뚫려 주력이 쫓기는 통에 동부전선의 적도 싸움을 피하고 뒤로 물러서는 모양이었다.
수색대는 약 10마일쯤 들어갔다가 돌아와서 적의 전방이 후퇴했다고 보고했다. 다음날 수색대는 새 명령을 받고 무전기를 갖추어 일곱 명으로 증원(增員) 한 다음 다시 앞을 헤쳐나갔다. 무전기가 아니더라도 식량을 건빵까지 합쳐 사흘분씩 받은 것으로 보아 수색임무 치고는 장기에 걸친 실상 정보대라고나 해야 할 것이었다.
적은 예상외로 멀리 후퇴하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녘에 우리는 일개분대 정도로 헤아려지는 적과 만나 삼십분가량 총격전을 벌였다.
적은 초가집 너덧 채만 안고 있는 작은 언덕바지에 산재하고 있었으나 전의 (戰意) 가 없는지 싱겁게 뒷산으로 도방치고 말았다. 최소위는 적을 추격 하라고 호령했다. 우리는 뒤를 쫓아 산속으로 들어갔다.
선임 하사인 김 상사가 추격을 중지 하도록 넌지시 건의했으나 최소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적병을 한 명이라도 사로잡게 된다면 귀중한 정보가 입수되리라는 생각뿐이었던 성싶다.
우리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야 말았다. 허긴 길을 잃었다는 말은 적정(敵情) 탐색을 임무로 삼는 수색대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그러나 최소위가 지닌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도무지 현 위치를 알아낼 수 없게 되었으니 감쪽같이 사라진 적을 비웃거나 농을 걸 사정은 못 되었던 것이다. 해도 남북의 방향은 뻔하고, 우리나라 땅이 넓다면 얼마나 넓겠느냐 싶은 사기만은 여전했다.
우리는 온종일 북을 향해 걸어갔다. 이튿날 오후가 지나서 겨우 자동차가 다닐만한 큰 길을 찾아, 지도와 맞추어 볼 수가 있었다.
적의 트럭이 간간이 보이얀 먼지를 피우면서 내왕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틀림 없이 적의 전방을 빠져 제이선까지 깊이 침투해 들어간 것이었다. 수색대는 다시 남으로 내려와서 적의 전방을 쑤셔대야 할 것이었다. 적의 후방을 살피는 것보다 전방을 타진(打診)해서 적의 병력과 화력올 시험해 보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어려운 문제는 되도록이면 우리가 올라온 길을 되찾아 남으로 내려가야 적과 맞부딪칠 염려가 적으리라는 점이었다. 설사 우리가 뚫은 구멍이 벌써 빈틈없이 메꾸어졌다고 가정하더라도, 적의 차량이 오르내리는 신작로를 따라 걸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산 속에서 다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밤은 숯을 굽던 토막에서 묵었다. 우리는 필경 그 마르고 찝질한 건빵마저 봉지를 털어 버렸다.
수색대가 탈진한 걸음걸이로 이 제법 부촌이라고 여길 만한 어느 마을에 들어섰을 때, 어디선가 과히 멀지 않은 곳에서 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부촌이라도 해가 일찍 저무는 두메산골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환성을 지르고 외양간에서 소 한 마리를 끌어냈다. 뿔이 굵고 시커먼 황소였다. ‘인민군’이 이런 황소를 처치하지 않고 도망지다니 엔간히 다급했던 성싶기도 했지만, 나는 대여섯간짜리 초가집보다도 더 값이 나갈 것 같은 황소를 끌고 피난하지 못한 농부의 딱한 마음을 생각했다.
최소위는 먼지 숯을 있는 대로 긁어모으도록 지시했다. 아궁이엔 불을 지필 수가 없으니 숯을 피워 쇠고기를 굽는 판이다. 최소위는 우두커니 소를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도끼를 찾아오도록 명령한다. 총으로 쏘아 죽일 것으로 알았던 나는 최소위의 의도를 깨닫고, 무척 어리석은 나를 비웃었다. 그와 동시 나는 까닭모를 노여움이 치밀어 올라왔다. 왜 하필 나란 말인가! 왜 하필 내가 도끼로 찍어 죽여야 하는가! 최소위가 버럭 고함을 지른다. 나는 부엌에서 날이 무딘 도끼를 들고 마당으로 나섯다. 다른 친구들이 달겨들어 소의 네 다리를 둘로 묶어볼 참이었으나 그리 수월하게 다리를 모을 수가 없다. 쳐라! 쳐, 이맛배기를 찍어! 최소위가 쇠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고삐만을 쥐고 도끼를 잘못 쓰는 날엔 뿔에 받칠 걱정은 고사하고 영영 소를 놓쳐버리기 십상이다. 궁리 끝에 흡사 올개머리를 씌우듯 새끼줄로 다리를 옭아매어 자신이 서기까지 근 반시간이나 지체했다. 소는 퍽나 온순했다. 네다리에 그물을 치감은 채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자, 됐어, 쳐라! 쳐! 나는 긴칼을 어깨니머로 휘어잡듯, 용트림으로 숨을 들이키고는 얏, 하는 기압과 함께 소의 양미간을 내려쳤다. 굵은 장작을 세로 찍은 것 같은 충격이 양팔에 반사한다. 소는 혓바닥읕 꿈틀했을 뿐 아까와 꼭같은 눈으로 도살자를 쳐다본다. 나는 웃음으로 일그러진 낯이 되어 거퍼 두번을 내리쳤다. 둔중한 음향을 내면서 소의 몸뚱이가 옆으로 자빠졌다.
됐어, 됐어, 보통 솜씨가 아닌데…… 최소위는 말하자면 백정의 익숙한 슴씨 같다는 희롱을 던진 셈인지도 몰랐으나 나는 다시 웃지 않았다. 나는 도끼를 땅에 내던지고 뒤로 돌아섰다. 소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소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의 비린내를 맡았다. 그러면서 나는 그때 그 적병의 쓰리지는 광경을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