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분께서 만물에 관한 어김없는 지식을 주셔서
세계의 구조와 기본요소들의 활동을 알게 해 주셨다
(지혜7,17).
*벨렘에 위치하고 있는 이 수도원은 1983년 '히에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렘 탑'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수도원은 포루투갈이'발견의 시대'에 이끌어갔을 당시 누렸던 영광을 반영하고 있다.
Ⅴ.대중 전달 수단의 사용
2493현대 사회에서 대중 전달 수단은 정보,문화의 향상,교양의 확산 등의 분야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이 역할은 기술의 발달,전달되는 새로운 소식의 풍부함과 다양함,여론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증대되고 있다.
2494대중 매체를 통한 정보 전달은 공동선을 위한 것이다.사회는 진실과 자유와 정의와 연대 의식에 근거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 권리의 올바른 행사는,커뮤니케이션이 그 내용에서 언제나 진실하여야 하고 정의와 사랑을 지키며 완전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더 나아가 그 방법과 관련하여 커뮤니케이션은 공정하고 적절하여야 한다. 곧 뉴스의 취재와 보도에서 인간의 정당한 권리와 존엄성 그리고 도덕률을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
2495“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이 분야에서도 정의와 사랑의 의무를 완수하여야 한다.따라서 사회매체의 힘으로도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고 전파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연대 의식은 참되고 올바른 전달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촉진하는 의견들의 자유로운 소통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포루투갈 리스본 타구스강 연안에 있는 대항해 시대를 기념하는 기념비.
발견 기념비 군상중 포루투갈의 항해왕자 엔히크,바르톨로메우 디아스,바스쿠다가마,페르디난도 마젤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등을 통해 이베리아제국은 항진.그것은 전쟁과 평화(선교)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2496사회적 전달 수단(특히 대중 매체)은 그 이용자들에게 일종의 수동성을 길러 주거나,그들이 시청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력이 부족한 소비자가 되게 할 수도 있다.이용자들은 대중 매체를 대할 때 절제와 규율을 지켜야 한다.그들은 불성실한 영향력에 더 쉽게 저항하기 위해서,식견을 갖추고 정확한 의식을 다져 가야 할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2497언론인들은 그들의 직책상,정보의 전파에서 진실 전달에 이바지하고,사랑을 해치지 않을 의무를 지고 있다.그들은 한결같은 주의를 기울여,사실의 내용을 중시하는 동시에 개인에 대한 비판의 한계도 중시하도록 힘써야 한다.그들은 명예를 훼손하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바스코 다가마의 세계 일주의 위업과 현대 항로 발전에 기여한 것을 기념하는 탑.
2498“국가 권위는 이 문제에서 공동선을 위한 의무를 지고 있다.국가 권위는 자기 임무로서,현대 사회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진실하고 공정한 정보의 자유,특히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옹호하여야 한다.”국가는 법률의 공포와 효과적인 적용을 통하여,“사회 매체의 오용으로 공중도덕과 사회 발전에 중대한 위험이 미치지 않도록”감시해야 한다.공권력은 명예와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받아야 할 사람의 권리에 대한 침해를 제재해야 한다.공권력은 대중의 이익에 관계되거나 대중의 근거 있는 불안을 해소시켜 줄 정보를 제때에 성실하게 제공해야 한다.여론 조직을 목적으로 대중 매체를 통해서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라도 정당화할 수 없다.이러한 개입으로써,개인과 집단의 자유를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2499철저하게 진실을 왜곡하고,대중 매체를 통하여 여론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며,공개 재판의 피고인과 중인들의 증언을 조작하고,자신들이 ‘사상범’이라고 여기는 모든 이를 제압하고 억누름으로써 자신들의 절대적 지배력을 공고히 하겠다고 전체주의 국가들의 고질적인 악습을 도덕은 고발한다.
Ⅵ.진리,아름다움,성예술
2500선행의 실천에는 무상의 영적 즐거움과 윤리적 아름다움이 따른다.마찬가지로,진리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지성을 부여받은 인간에게는,창조된 실재와 창조되지 않은 실재에 대한 인식을 이지적으로 표현하는 언어의 진실성이 필요하다.그러나 진리가,특별히 그 안에 내표된 형언할 수 없는 것,곧 인간 마음의 심오함,영혼의 고결함,하느님의 신비 등을 환기시키고자 할 때, 인간은 다른 표현 형태들,곧 보완적인 표현 형태들을 사용할 수도 있다.하느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당신을 드러내시기 이전에도,당신의 ‘말씀’과 당신‘지혜’의 업적이 되는 천지 만물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를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셨다.그것은 바로 –어린이도 과학자도 발견하게 되는-우주의 질서와 조화이다.“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지혜13,5).“아름다움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지혜13,3).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지혜7,25-26).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밤은 빛을 밀어내지만,악은 지혜를 이겨내지 못한다(지혜7,29-30).나는 그 아름다움 때문에 사랑에 빠졌다(지혜8,2).
*옛 베네딕토 수도원자리로 포루투갈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타일 양식인 '아줄레주'가 가득하며 2만 개가 넘는 타일에 그림을 그렸다고 함.
2501“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인간은 자신의 예술 작품들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그가 창조주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의 진실을 표현한다.실로 예술은 인간에게 고유한 표현 형태의 하나이다.살아 있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생활 필수품의 추구를 넘어서,예술은 인간이 무상으로 받은 과분한 내적 풍요로움에서 넘쳐 흐르는 산물이다.창조주께서 주신 재능과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생겨난 예술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표현 수단을 빌려서 실재의 진실을 표현해 보려고 지성과 능력을 결합시킨 실천적인 지혜의 한 형태이다.이처럼 예술은 존재들의 진리와 존재들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는 만큼,피조물을 통한 하느님의 활동과 어떤 유사성을 지니게 된다.다른 모든 인간 활동과 마찬가지로,예술도 그 자체로서 절대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그러나 예술도 인간의 궁극 목적을 위해 있는 것이기에,고귀한 것이 된다.
2502성예술이 그 표현 형태를 통해 제 본래의 사명에 부합할 때,그것은 참되고 아름답다.그 사명이란,“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히브1,3)이신 그리스도 안에나타난,진리와 사랑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자체이신 하느님의 초월적인 신비를,신앙과 흠숭을 통해서 상기시키고 찬미하는 것이다.“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머물러 있는”(콜로2,9)그리스도의 영적 아름다움은 천주의 모친이신 지극히 복되신 동정마리아와 천사들과 성인들 안에서 빛을 발한다.진정한 성예술은,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시고 거룩하시며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흠숭과 기도와 사랑으로 인간을 이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발췌)
*포루투갈의 왕 루이스 1세 때 건설 되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당신의 적들을 물리치시고
대항하는 자와 항거하는 자를 멸하시려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당신께서는 요새를 지으셨습니다.
(시편8,3)
시편 전체의 경탄이라는 분위기와 이질적으로 전투 용어인 “적들”‘물리치자’,‘멸하다’,“요새”가 등장한다.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원래 시편에 없던 것을 첨가한 것으로 본다.아마도 박해받았던 공동체의 체험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두기 위해서인 듯하다.여기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대조를 이룬다.한 부류는 하느님의 적들,곧 하느님께 “대항하는 자”와 “항거하는 자”다. 다른 부류는 자신의 나약함에도 엄위하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이들,곧“아기”와“젖먹이”다. 전자는 무신론자들로서 하느님의 주권과 통치를 거부하고,반그리스도적이며,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그러나 순수한 아기들은 주님의 이름을 통해 전해지는 주님의 영광과 계시를 받아들인다.아기와 적먹이는 연약함과 겸손의 상징이다.하느님은 그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신다.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자들이다.하느님은 이 보잘것없고 연약한 이들을 통해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신다.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1,27).아기들은 인류의 미래이며,하느님의 신앙을 전수하는 일은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예수님은,하느님의 뜻을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신다(마태11,25)고 말씀하셨다.또한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마태18,3-4)라고 말씀하셨다.
마태21,16은 시편 8,3을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어린이들이 외친 찬양이라고 해석하였다.카시오도루스는 이 구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당신은 당신을 완전히 알고 있는 완전한 사람으로부터 찬양받을 만할 뿐 아니라 젖먹이들과 보잘것없는 이들의 입으로도 선포받을 만하다.그들은 새로운 신앙으로 주님께 다가가기 시작했다.그래서 이 지혜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쌓였다기보다는 하늘로부터 주어졌을 것이다.
시편8편의 전체적 의미:시편8편은 창조 및 우주와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시인은 깊은 기도와 묵상을 통해 인간은 본래 희망찬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고 있다.그리하여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심오하게 다룬다.또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하느님 앞에서 말한다.인간은 창조주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우주 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이 시인은 겸허한 태도로 하느님의 엄위하심을 인정하고 찬양한다.그의 기본적인 자세는 관찰.바라봄.경탄.찬양이다.천상에 충만한 하느님의 영광에 비해 자신의 왜소함과연약함을 본 시인은 하느님 안에 자신을 발견한다.그는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영광과 존엄을 드러내는 우주의 피조물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앞에 선 인간으로서의 오묘함을 깨닫는다.인간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에 근거하기 때문이다.죽을 수밖에 없는 하찮은 인간을 하느님이 기억하고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에 시인은 감탄한다.하느님은 인간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시어 인간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신다.인간이 받은 영광과 존귀의 관은 인간의 능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이로써 인간은 하느님보다 조금 못하지만 만물을 다스리게 되었다.인간이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게 된다는 이 시편의 이상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1코린15,27;히브2,6-8;마태21,6).히브2,6-8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실 분으로 이해한다(1코린15,27).그리스도는 수난을 통해 천사보다는 못하게 되셨으나 부활과 승천으로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 두시게 되었다.그리스도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땅에 주님의 이름이 존엄함을 찬양함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이들이다.(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시편1-41편)
사랑은
가슴에 나무를 심는 것
화분 하나 들여놓는 것이 아니다
시들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내 몸속에 나무를 심는 것
그 사랑 떠나는 날
내 심장이 뽑히고
한 세계가 뽑히고
깊은 심연에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 뚫린 어둠 사이로
은하수가 흐르고
긴 탄식이 흐르는
아 나는 사랑을 했어라
내 안에 나무를 심었어라
사랑의 나무를 심었어라
그 나무처럼 내가 살고 푸르러지고
그 나무처럼 내가 죽고 메말라가는
사랑은
내 몸속에 나무를 심는 것
내가 죽어도 나를 거름 삼아 커나가는
아,사랑은 내 심장에 나무를 심는 것
(사랑은 가슴에 나무를 심는 것/박노해)
행복한 날만 되시길!